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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경선주자탐구]기대하시라 ‘디지털 리더십’/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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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6-1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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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한나라당 경선주자 탐구- 김형오 의원

중앙 정치무대에서 이름 떨치진 않았으나 신선함과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김형오 의원

김형오 의원은 중앙 정치무대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3선에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장을 했고, 한나라당 부산시지부장도 맡았지만 그가 중앙정치인으로 크게 이름을 떨친 적은 없다. 중요 당직을 맡거나 정쟁에서 튀지 않으면 이름을 날리기 어려운 우리의 정치현실을 반영하는 대목인지 모른다. 어쨌든 그가 경선에 나선다고 했을 때 당 안팎에선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이 많았다. ‘총선 준비용’이라거나 중앙에 이름자나 알리려는 게 아니냐는 비아냥도 나왔다.

“강영훈 전 총리는 내 인생의 향로”


사진/ 김형오 의원(이용호 기자)
하지만 선거운동이 진행되면서 그런 얘기는 쑥 들어갔다. 먼저 그는 방송토론에서 논리적인 언변을 구사하며 호평을 받았다. 그가 내세운 정책도 진지함이 묻어난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을 촉구했고, 정당명부 작성시 취약지역 후보자 상위순번 게재 등 지역정당구조 완화방안을 제시했으며, 호주제 폐지 등 눈길 끄는 공약을 내놨다.

선거운동 방식의 신선함, 기발한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경쟁 주자 진영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그가 내세우는 주요 구호는 ‘맑은 힘’, ‘담을 허무는 정치’, ‘디지털 리더십’ 등이다. ‘담을 허무는 정치’라는 주제로 4차례에 걸쳐 남북, 세대, 지역, 성별의 담을 허무는 정책을 발표해 정책적 기반이 탄탄함을 과시했다. 자신의 정치역정을 삽화를 곁들여 펴낸 아담한 미니책자도 눈길을 모았다. 자신의 때묻지 않은 이미지를 ‘맑음’과 연결시키고 정보통신 분야에 대한 식견을 ‘디지털’로 단순화해 집중하는 전략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그는 경남 고성의 바닷가 마을 태생이다. 아버지는 법무사였고 할아버지는 신간회의 지역 활동가였다. 서울대 외교학과 재학시절 그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마오쩌둥의 사상을 집중 탐구했다. 석사학위 논문도 이 분야였다. 동아일보 기자가 됐으나 3년 만에 외교안보연구원 연구관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가 <신동아>에 썼던 ‘해외 한국학자들의 현주소’라는 르포 기사가 계기였다. 당시 외교안보연구원장이던 강영훈씨가 이 기사를 눈여겨보고 그를 찾은 것이었다. 이때의 인연은 그의 정치 입문에도 결정적 계기가 됐다. 국무총리가 된 강씨가 YS(당시 민자당 대표)에게 그를 추천했고, 이 덕택에 1992년 14대 총선에서 부산 영도지역에 출마해 비교적 수월하게 금배지를 달 수 있었다. 그는 지금도 “강영훈 전 총리는 평생의 은인이며 내 인생의 향로였다”고 고마워한다.

외교안보원에서 청와대로 자리를 옮긴 그는 정무수석실과 공보수석실에서 실무행정관과 정무비서관으로 일했다. 그가 정무수석실 행정관이었을 때 강재섭 의원은 법무비서관이었다. 5공시절 청와대에 근무한 이력을 들어 일부에선 그를 민정계 출신으로 몰아붙인다. 하지만 그는 “입당원서를 낸 것은 3당합당 이후이므로 나는 민정계가 아니라 민자계다. 오히려 청와대에 오래 근무했지만 승진도 못하는 등 민정계의 핍박을 받았다”고 항변한다.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에 앞장서기도

원래 그는 ‘디지털’과는 인연이 멀었다. 그가 지금 ‘디지털’을 자신의 고유상표처럼 내세울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초선시절 인기가 없던 교통·체신위원회에 배정된 덕이었다. 이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던 그는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집중 강습을 받으며 열심히 공부했다. 당시 정보통신 관련 상임위의 의원들이 ‘GHz’(기가헤르츠)나 ‘MHz’(메가헤르츠)를 제대로 읽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99년엔 전자민주주의를 주제로 박사학위도 받았다. 이런 전문성을 바탕으로 도청문제에 천착해 통신비밀보호법 전면 개정에 앞장섰다.

권철현·김무성·유흥수·김진재 의원 등 내로라 하는 정치인들이 버티고 있는 부산지역의 세력다툼권에서 벗어난 그는 중앙무대 진출을 노리는 허를 찔렀다. 현재까지 그의 시도는 꽤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당내에선 “100억원대 홍보에 성공했다”는 농담도 나온다. 내년 총선을 위한 탄탄한 기반도 쌓았다. 그가 새로운 도전을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도약할 수 있을지, 아니면 ‘반짝홍보’에 머물지 지켜볼 일이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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