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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경선주자탐구]보수에도 등급이 있다/최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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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6-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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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한나라당 경선주자 탐구- 최병렬 의원

강한 추진력·화려한 경륜 내세우는 최병렬 의원… 강한 보수색채·체제순응적 이미지 등 걸림돌

최병렬 의원은 별명이 ‘최틀러’다. 강한 카리스마로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그의 일하는 방식과 딱 들어맞는다. 원래는 <조선일보> 간부시절 그에게 호되게 혼이 난 후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붙인 별명이었다. 그 스스로도 “마음을 정하기까진 고민을 하지만 일단 결심하면 ‘풀베팅’한다”고 말한다.

그의 강한 성격은 경남 산청의 빈궁한 ‘깡촌’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13살 때 아버지를 여읜 불우한 어린 시절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때가 1950년 6·25전쟁의 와중이었으니 생존하려면 강해야 했다. 그는 나중에 자신의 ‘출세’를 일컬어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맨해튼에 진출한 것’으로 비유했다.

그의 다부진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 한토막. 그는 관청의 병무 관련부서에 근무하던 집안 형님의 배려로 군대를 면제받는 ‘병종’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군대를 가겠다고 떼를 쓰다시피 고집을 부려 ‘갑종’을 받았고 결국 대학재학 중 포병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모친의 반대로 결국 뜻을 접었지만 고3 때 그가 육사 입학을 지망했던 것을 보면 병역면제에 어지간히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행정경험 풍부… 민정계로 정치 입문

사진/ ‘믿고 맡길 수 있는 경륜 높은 리더’를 슬로건으로 삼은 최병렬 의원. 그는 강한 카리스마로 불도저처럼 일을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김진수 기자)
그의 이력은 꽤 화려하다. 1980년 42살에 편집국장에 올라 민정당 전국구 의원으로 진출하기까지 4년 남짓 <조선일보>를 진두지휘한다. 그가 정치권에 진출할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이 부산고 동기생인 허문도씨였다. 이후 4선을 쌓으며 청와대 정무수석, 문화공보부 장관, 공보처 장관, 노동부 장관과 서울시장을 거쳤다.

임명권자들은 일을 맡기면 딱 부러지게 처리하는 그를 좋아했다. 그의 지휘스타일은 ‘일벌백계주의’. 간부들에게 일을 전적으로 맡기되 잘못한 사람을 골라 혹독하게 혼냈다. 노동부 장관 시절 그는 총액임금제, 무노동무임금제 등 민감안 사안들을 밀어붙였다. 94년 성수대교 붕괴 직후 지방행정경험이 전무했던 그가 ‘구원투수’로 서울시장에 발탁된 것도 그의 추진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정치인이라기보다는 행정가였다.

97년 그는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들어 정치인으로서 평가받고 싶어했다. 하지만 결과는 6명 중 6위. 깨끗한 선거운동을 펼쳤다고 자부했지만 참담한 실패였다. 2000년 5월 부총재 경선에서 그는 1위를 차지함으로써 대중정치인으로서 저력을 보였다. 하지만 박근혜 의원의 1위 당선을 경계한 이회창 총재쪽의 측면 지원에 힘입은 결과였다는 분석도 있다. 2002년 대선후보 경선에 나서 이회창 총재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18%의 득표율에 머물렀다. 경선을 하다보니 이 총재쪽과 적잖은 감정의 골이 파이기도 했다.

그에겐 특별한 ‘계보’가 없다. 특정한 계보에 속해본 적도 없다. 이것은 그에게 강점이자 단점이다. 계보를 만들지 않으면 계보를 굴릴 큰돈을 만들 필요가 없다. 누구에게 빚질 일이 적은 것이다. 이것은 장점이다. 하지만 현실 정치판에서 강력하게 밀어줄 주력부대가 없다는 점은 약점이다. 그가 계보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가진 것은 정치부 기자시절 “정치인들이 계보정치를 하느라 남에게 손벌리는 것을 지켜봤기 때문”이었다. 여기엔 사람에 대한 좋고 나쁨의 감정표현이 뚜렷한 성격도 작용했다.

지난 6월5일 최 의원은 경선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장에서 농반진반으로 ‘내가 원래 체제순응적인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체제순응과 보수주의가 어떤 관계인지는 몰라도 그는 여태껏 보수주의 노선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이 때문인지 ‘최병렬’ 하면 ‘보수’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그런 그가 이제 보수세력의 통렬한 반성을 촉구한다. 보수세력이 나태했고 기회주의와 기득권 세력에 관대했으며 자기혁신과 변화를 주저했다는 것이다. 그가 내놓은 처방전은 ‘책임 있는 보수’, 제대로 된 보수주의다. 보수정당으로서의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더욱 굳건히하자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를 뒤덮고 있는 강렬한 보수색채는 그에게 약이자 독이다. 영남출신인 그가 보수를 강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영남 보수층의 확고한 지지다. 반면에 변화와 개혁을 중시하는 수도권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는 걸림돌이다. ‘흘러간 인물’, ‘구시대 정치인’이라는 이미지와 결부될 수도 있다.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보수’를 내세웠지만 집권에 실패한 이회창 전 총재의 사례도 그에겐 부담이다. 같은 보수계열인 강재섭 의원이 보수보다는 ‘실용주의 노선’을 강조하고, 서청원 의원이 ‘중간세력 주도론’을 내세우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는 수도권의 소장·개혁파 의원들로부터 ‘말이 통하는 보수주의자’라는 평가를 듣는다. 그는 “내가 그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서 나를 좋게 평가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판단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수도권 개혁파 의원들이 이번 경선에서 그를 얼마나 지지할지는 미지수다. 그가 당의 새로운 얼굴로 나설 경우 내년 총선에서 수도권 유권자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지가 개혁파 의원들의 고민이다.

당권 잡고 대권 내주는 합종연횡 가능

사진/ “나는 원래 체제순응적인 사람이다.” 최 의원은 총선에 패배하면 정계를 은퇴하겠다는 발언을 하는 등 대표 경선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김진수 기자)
그의 나이 올해 65살. 6명의 후보 중 가장 연장이다. 50대의 노무현 대통령이나, 그와 ‘맞장’을 뜨겠다고 나선 강재섭 의원 등에 비추면 심리적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는 나이다. 그는 당 대표가 되어 내년 총선에서 패하면 미련 없이 정계를 떠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나이에 대해서도 정공법을 택한 셈이다.

서청원 의원이 경선불출마 선언을 번복하지 않을 때까지 최 의원은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경선준비도 가장 먼저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서 의원은 그와 <조선일보>에서 함께 근무했던 후배다. 후배가 당의 대표가 될 경우 최 의원은 설 자리가 없다. 1위 아니면 의미가 없는 셈이다. 이 때문인지 그는 이번에 사력을 다해 뛰고 있다. 막판 합종연횡설이 끊임없이 불거지는 것도 이런 탓이다.

경선일이 가까워지고 우열의 판가름이 드러나면 후보간 연대가 활발히 모색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가장 유력한 합종연횡 시나리오는 ‘대권-당권 역할 분담론’이다. 이 경우 그는 대권이 아니라 당권쪽이다. 합종연횡이 진행될 경우 그의 파트너로 개혁적 이미지가 강하고 호남과 수도권 득표력이 있는 김덕룡 의원이 될지, 영남쪽 기반을 확실히 메꿔줄 수 있는 강재섭 의원이 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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