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운동 진영 다각적 정치 참여 모색… 정치개혁 견인 기대 속에 구체적 대안 부재 지적도
현실정치 참여에 소극적이던 시민·사회운동 진영이 다각적인 형태의 정치운동을 모색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정치권 내부의 신당 논의와 연관돼 있기도 하고, 정치권과 거리를 둔 채 별개로 진행되기도 하는 등 여러 층위에서 논의되고 있다. 특히 일각에서는 2000년 4·13 총선 때 큰 파문을 던진 총선연대의 낙선운동을 ‘업그레이드’한 새로운 형태의 정치운동을 준비 중이어서 파문이 일 전망이다. 총선연대가 펼친 낙선운동의 ‘2004년 버전’인 셈이다.
이들은 지금껏 금과옥조로 여겨온 ‘정치적 중립’이라는 깃발을 내리고 직접 정치권에 참여하거나 낙선운동 이외에 특정 후보의 지지, 당선운동까지 벌이겠다는 계획이다. 정치개혁의 향방과 내년 총선의 양상과 결과를 전망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흐름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런 흐름이 중앙의 몇몇 시민사회운동 단체가 주축이 됐던 과거와 달리 영·호남과 충청권 등 각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분출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낙선운동 업그레이드… 지역에서 열기 높아
시민·사회운동 진영에서 정치개혁과 신당을 화두로 삼아 움직이고 있는 흐름은 대략 4가지 갈래가 있다. 첫째, 부산과 경남, 대구, 경북, 강원 등 동부지역에서 만들어진 정치개혁추진위원회. 민주당 신주류와 개혁국민정당, 노무현 지지그룹 등이 중심이 된 조직이며, 대체로 민주당 신주류의 신당이나 ‘노무현 신당’에 부응하는 지역조직의 성격을 띠고 있다. 둘째, 개혁국민정당이 주장하는 범개혁단일신당론이 있다. 민주당의 분당이나 해체를 전제로 모든 개혁세력의 연합정당을 만들자고 주장하면서 시민사회 명망가들의 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셋째, 함운경(군산미래발전연구소장)씨와 강영추(개혁당 기획위원장)씨가 실무적으로 주도하는 범개혁신당추진운동본부가 있다. 이들은 “국민의 힘으로 새로운 정당을 건설하자”며 국민참여운동을 통한 범개혁신당 창당을 주장한다. 6월 말까지 전국 227개 선거구별로 조직책을 선정한다는 계획이다. 현실정치 참여 의사가 좀더 확실한 인사들이 주축이다. 민주당이나 개혁신당과의 조직적인 관계 설정을 모색 중인 것으로 관측된다. 넷째, 6월 말이나 7월 초 발족을 목표로 준비 중인 시민정치네트워크가 있다. 한발은 시민운동에, 또 한발은 정치운동에 디디고서 시민정치 운동을 모색하겠다는 이들은 2000년 총선시민연대보다 훨씬 폭넓은 활동을 준비 중이다. 시민·사회진영이 이전과 견주어 좀더 직접적인 형태의 정치운동을 모색하게 된 데는 정치개혁을 기대했던 정치권에 대한 실망이 자리잡고 있다. 시민정치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는 황인성(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씨는 “정치권에서 잘 해주기를 기대했으나 당내문제에 묻혀 핵심적인 정치개혁 과제들이 실종돼버렸다.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을 기대하는 국민들의 힘을 모아내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통해 정치변화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이제 여의도 정치권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진영이 나설 때가 됐다”고 말한다. 민주당의 신당논의가 시민사회와 유리된 채 당내 권력투쟁 양상만 부각된 점도 시민사회 진영의 움직임을 자극했다. 가만 있으면 새로운 정당이 출현하더라도 국민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던 것이다.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은 “제도권 정당 내부의 싸움 끝에 만들어지는 정당은 신당이 아니다. 국민들이 기대하고 요구하는 내용을 담지 못한 채 자기들이 맘에 드는 사람을 골라서 쓰겠다는 방식은 과거 3김씨가 했던 ‘수혈방식’과 다를 게 없다”고 지적한다. 신당이 만들어진 뒤에 시민운동 진영의 몇몇 명망가들이 일방적으로 흡수 통합됐던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흡수통합식 정치참여는 더 이상 없다
범개혁신당추진운동본부와 시민정치네트워크는 똑같이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지만 접근방법은 조금 다르다. 범개혁신당추진운동본부는 전국 2004명의 발기인을 토대로 6월 중 발족한다는 계획이다. 박명광 경희대 교수, 최교진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의장, 이광철 전북지방자치개혁연대 상임대표, 고광성 전 홍성 YMCA 이사장, 이철우 경기북부비젼 공동대표 등 각 지역의 시민운동가들이 두루 참여하고 있다. 일단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춘 뒤 신당과 조직적으로 결합할 것으로 관측된다. 리모델링을 통한 통합신당에 반대한다는 분명한 태도를 견지해 민주당 신주류의 의사를 확고히 지지하는 편이다.
주목되는 흐름은 6월 말이나 7월 초 발족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정치개혁과 참여정치를 위한 시민사회의 전국네트워크’(시민정치네트워크) 결성 움직임이다. 5월16일 서울 사랑방모임과 5월24일 대전 모임을 거쳐 논의가 진행 중이며, 6월4일 대구 공개 워크숍과 부산, 광주, 서울 지역 순회 공개 워크숍을 통해 전국적인 시민정치운동 조직을 띄운다는 계획이다. 정대화 교수(상지대 교양학부)가 이론적 기틀을 제공하고 있으며,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오충일 목사, 황인성씨, 양길승(원진녹색센터 소장)씨, 김광식 대전환경연합의장, 김태일 영남대 교수, 김용기 경남대 교수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경남참여본부와 대전충남시민연대, 대구화요모임, 대구경북미래를 여는 모임, 국민의 힘, 노사모 등도 여기에 참여할지를 조직적으로 논의중이다. 지역별로 표출되고 있는 자발적이고 대중적인 참여의 흐름을 네트워크 형태의 전국조직으로 연결시켜 현실정치의 변화를 촉발시키기 위한 동력으로 삼자는 게 시민정치네트워크의 구상이다.
시민정치네트워크는 일단 정당형태를 지향하거나 특정 정당과 정치적 목적을 공유하지는 않을 방침이다. 다만 특정 정치과제나 개혁적인 인물의 정치진출을 위해선 정치권과 협력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하지만 개별적으로는 얼마든지 정당에 가입하거나 총선에 진출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단체에 참여하는 인물들이 대거 정치권에 진입하는 상황도 생각할 수 있다.
시민정치네트워크 적극적 선거 참여
시민네트워크는 제도를 바꾸는 정치개혁 이외에 사람을 바꾸는 ‘의회개혁’을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선거과정에 직접 개입해 특정인을 낙선시키는 활동도 펼치고 상황에 따라 특정인을 당선시키기 위한 지지활동도 펼치겠다는 계획이다. 2000년 총선연대의 낙선운동보다 훨씬 적극적인 형태의 낙선·당선운동을 펼치겠다는 것이어서 적잖은 정치적 논란을 부를 전망이다.
시민·사회운동 진영이 좀더 적극적인 낙천·낙선운동을 모색하게 된 데는 2000년 당시의 낙선운동 수준으로는 유권자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 대선때 노사모 등 적극적인 형태로 표출된 대중들의 요구를 담아내려면 뭔가 새로운 틀의 운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총선연대의 성공적인 활동 이후 대선유권자연대, 정치개혁시민연대, 정채개혁추진범국민협의회 등 일련의 시민사회연대조직이 결성됐지만 특별한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는 반성도 이런 움직임을 가속화시켰다. 정대화 교수는 “이것은 시민·사회운동 진영이 비판적 개입에서 참여적 개입으로 전환하는 것이며, 대안 없는 낙선운동에서 주체적 대안을 지닌 지지운동과 당선운동으로 전환하는 것을 뜻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시민사회운동 진영이 이런 형태로 현실 정치판에 한발을 내딛는 데 대해선 비판적인 의견도 많다. 녹색정치모임 서형원 간사는 “그분들이 현실정치를 좀더 나은 방향으로 개혁하는 데 기여하겠다면 그것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다만 그것을 시민사회운동의 정치 세력화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복지나 환경 등 좀더 분명한 가치와 대안을 내걸어야 한다. 구체적인 가치지향 없이 무조건 개혁하자고 하면서 정치권과 관계하는 것은 개혁을 빙자한 권력이동으로 오해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신주류는 시민운동진영이 정치에 관심을 보이는 데 대해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 한 관계자는 “검증된 시민운동가들이 현실정치에 참여할 의사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삼고초려가 아니라 십고초려라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신당의 성공 여부는 합류할 새로운 인물들의 면면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신주류가 구주류와의 피튀기는 투쟁을 통해 인적 청산에 목을 매는 것도 새로운 인물을 영입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민주당 신주류쪽은 참여연대의 박원순 집행위원장이나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등 이름이 알려진 시민운동가들의 영입을 기대하고 있으나 박 위원장은 직접 현실정치판에 뛰어드는 데 대해선 부정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최 이사장은 시민정치네트워크에 참여해 행보가 주목된다.
기존 정치질서 재편의 촉매제 구실할 듯
시민사회운동 진영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는 궁극적으로 기존 정치질서 재편의 촉매제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권 내부의 개혁세력 이합집산과 시민사회 진영의 정치 세력화가 맞물리면서 폭넓은 정치지형의 변화가 촉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여의도 바깥에서 정치개혁을 화두로 삼은 새로운 축이 형성되고 있고, 이 흐름이 내년 총선과 관련해 중요한 흐름으로 떠오를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운동 세력이 기성 정치권에 새로운 인물을 대주는 단순한 ‘저수지’ 역할에 그칠 경우 시민운동을 정치권 진출을 위한 발판으로 이용했다는 비난에 부닥칠 수 있다. 경남대 김용기 교수(사회학)는 “정치운동을 모색 중인 시민운동진영의 여러 흐름이 단일한 대오를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지역정당구조 타파, 지구당 민주화와 상향식 공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 정치자금 투명성 확보 등의 정치개혁 과제들을 의제로 설정해 현실 정치권을 제대로 견인해 내느냐가 관건”이라고 전망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사진/ 시민·사회운동 진영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 참여를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정치개혁과 신당을 화두로 삼고 있다.(연합,한겨레 김봉규,연합)
시민·사회운동 진영에서 정치개혁과 신당을 화두로 삼아 움직이고 있는 흐름은 대략 4가지 갈래가 있다. 첫째, 부산과 경남, 대구, 경북, 강원 등 동부지역에서 만들어진 정치개혁추진위원회. 민주당 신주류와 개혁국민정당, 노무현 지지그룹 등이 중심이 된 조직이며, 대체로 민주당 신주류의 신당이나 ‘노무현 신당’에 부응하는 지역조직의 성격을 띠고 있다. 둘째, 개혁국민정당이 주장하는 범개혁단일신당론이 있다. 민주당의 분당이나 해체를 전제로 모든 개혁세력의 연합정당을 만들자고 주장하면서 시민사회 명망가들의 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셋째, 함운경(군산미래발전연구소장)씨와 강영추(개혁당 기획위원장)씨가 실무적으로 주도하는 범개혁신당추진운동본부가 있다. 이들은 “국민의 힘으로 새로운 정당을 건설하자”며 국민참여운동을 통한 범개혁신당 창당을 주장한다. 6월 말까지 전국 227개 선거구별로 조직책을 선정한다는 계획이다. 현실정치 참여 의사가 좀더 확실한 인사들이 주축이다. 민주당이나 개혁신당과의 조직적인 관계 설정을 모색 중인 것으로 관측된다. 넷째, 6월 말이나 7월 초 발족을 목표로 준비 중인 시민정치네트워크가 있다. 한발은 시민운동에, 또 한발은 정치운동에 디디고서 시민정치 운동을 모색하겠다는 이들은 2000년 총선시민연대보다 훨씬 폭넓은 활동을 준비 중이다. 시민·사회진영이 이전과 견주어 좀더 직접적인 형태의 정치운동을 모색하게 된 데는 정치개혁을 기대했던 정치권에 대한 실망이 자리잡고 있다. 시민정치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는 황인성(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씨는 “정치권에서 잘 해주기를 기대했으나 당내문제에 묻혀 핵심적인 정치개혁 과제들이 실종돼버렸다.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을 기대하는 국민들의 힘을 모아내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통해 정치변화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이제 여의도 정치권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진영이 나설 때가 됐다”고 말한다. 민주당의 신당논의가 시민사회와 유리된 채 당내 권력투쟁 양상만 부각된 점도 시민사회 진영의 움직임을 자극했다. 가만 있으면 새로운 정당이 출현하더라도 국민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던 것이다.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은 “제도권 정당 내부의 싸움 끝에 만들어지는 정당은 신당이 아니다. 국민들이 기대하고 요구하는 내용을 담지 못한 채 자기들이 맘에 드는 사람을 골라서 쓰겠다는 방식은 과거 3김씨가 했던 ‘수혈방식’과 다를 게 없다”고 지적한다. 신당이 만들어진 뒤에 시민운동 진영의 몇몇 명망가들이 일방적으로 흡수 통합됐던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흡수통합식 정치참여는 더 이상 없다


사진/ 그동안 시민·사회운동 진영은 정치 참여에 소극적이었다. 2000년 4·13 총선 때는 낙선운동에 초점을 맞추었다.(한겨레 강창광 기자)

사진/ 시민·사회운동 진영의 정치참여 논의에서 주목받는 사람들. 박원순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함운경 군산미래발전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