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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당 해체는 전당대회에서 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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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5-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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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구주류의 핵심 박상천 의원… “신당은 민주당의 법통 잇고 국민정당 성격 유지해야”

신당추진을 둘러싸고 지루한 논란을 벌여온 민주당의 신·구주류가 마침내 분당이냐, 신당이냐의 갈림길에서 일대 격돌을 벌이게 됐다. 구주류가 신당추진을 완강히 반대하고 있는 가운데 신주류쪽이 당무위원회를 소집해 신당추진기구 구성안을 확정지을 태세이기 때문이다. 신주류의 이상수 사무총장과 구주류의 박상천 최고위원은 신당을 놓고 절충을 모색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 사무총장은 “구주류와 협상의 여지가 적다고 본다”고 비관적인 의견을 밝혔다. 박 최고위원도 “중도주의자나 보수주의자가 공식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선언과 민주당의 법통을 잇겠다는 확약이 없으면 신당참여가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사진/ 5월21일 민주당 구주류는 ‘정통모임’을 결성해 신주류에 맞섰다. 이들은 참여의원 수가 38명이라고 밝혔다.(이용호 기자)
구주류가 지난 5월21일 ‘민주당 정통성을 지키는 모임’(회장 박상천)을 결성한 것은 신당 반대세력이 본격적인 세규합에 나섰다는 것을 뜻한다. 세확산을 꾀하는 신주류에 맞서 앉은 채로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들이 참여 명단을 밝히지 않으면서도 38명이라고 숫자를 밝힌 것은 분당이 이뤄질 경우 별도의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을 정도의 세력이 된다는 것을 과시하는 일종의 시위다. 신주류쪽은 내심 민주당 잔류 인원이 교섭단체 구성 기준인 20명 이상일 경우 내년 총선에서 신당과 민주당이 한나라당에 참패할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구주류쪽도 이에 대해선 같은 의견이다. 박상천 최고위원은 “내년 총선에서 신당과 잔류 민주당이 공조하는 방안도 강구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한다. 구주류쪽이 이미 분당에 대비해 나름대로 여러 가지 생존방안을 모색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신주류쪽은 일단 당무회의를 열어 신당추진기구 구성을 강행한다는 계획이다. 구주류는 당무회의에서 신당기구 구성은 협의할 수 있지만 기구의 성격과 권한을 명확히 해야 하며, 당의 해체나 합당 등의 문제는 당무회의가 아닌 전당대회에서 논의하자는 쪽이다. 현재 당무회의 구성은 신주류쪽이, 전당대회 대의원 분포는 구주류쪽이 유리한 상황이다.

신당추진 방안 놓고 표대결 못한다


사진/ 이용호 기자
5월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구주류를 대표하며 민주당 정통성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는 박상천 최고위원을 만났다. 그는 “신당은 바람난 남편이 조강지처를 버리는 격이다. 버릴려면 깨끗하게 그냥 버릴 것이지 얼굴이 못생겼다느니, 바람끼가 있다느니 하면서 억울하게 누명을 씌워 내쫓겠다는 것이다. 이대로 가만 있다가는 민주당이 형체도 없이 사라지게 생겼다”며 ‘당 사수’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보였다.

-신주류는 당무회의에서 신당추진 방안을 놓고 표대결을 불사하겠다고 한다. ‘정통모임’은 여기에 응할 것인가.

=당무회의에서 신당추진기구는 띄울 수 있다. 그러나 당헌상 당 해체는 당무회의가 아니라 전당대회에서만 할 수 있다. 정당법 39조에도 그렇게 돼 있다. 따라서 전당대회를 열기 전에는 당 해체를 결의할 수 없다. 합당도 전당대회를 열어야 한다. 전대를 열 수 없는 부득이한 사유가 있을 때는 당무회의에서 결의할 수 있지만 지금 전당대회를 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신주류가 강행하겠다면.

=그건 용납할 수 없다.

-용납하지 못한다면 법에 호소하겠다는 것인가.

=방법은 나중에 연구할 문제다.

-신당추진기구 구성은 용인할 수 있다는 얘긴가.

=신당추진기구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와 권한을 정해줘야 한다. 저쪽에서 신당추진기구 구성안을 내면 이쪽에서도 구성안을 같이 낼 것이다. 신당추진기구에서 당을 해체하려 하면 용납할 수 없다. 신당추진기구에 모든 권한을 백지위임할 수는 없다.

-그러면 두개의 신당추진기구 구성안을 놓고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당무회의에서 표대결을 벌이자는 것인가.

=신당에 관해선 표대결을 벌인 적이 없다. 그것이 관행이다.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사안은 만장일치로 해왔다. 당헌개정도 그렇게 해왔다. 하물며 당의 해체나 합당이 수반되는 신당문제를 표대결로 할 수 있겠나.

-두개의 화해할 수 없는 안이 끝내 맞선다면 다수결 원칙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사안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당헌개정도 한번도 표대결을 벌인 적이 없다. 그보다 더 중요한 신당문제를 표대결로 하겠다면 되겠나.

-그래도 신주류가 강행하겠다면.

=우리는 합의처리를 강하게 주장할 것이다. 그렇게까지만 답변하겠다. 지금 최종적인 답변까지는 할 수 없다.

신주류의 신당은 진보정당

사진/ 5월16일 신당 창당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워크숍. 민주당의 신·구주류가 마침내 분당과 신당의 갈림길에서 격돌을 벌이게 됐다.(박승화 기자)
-신주류가 신당추진을 다수결로 결의하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당무회의가 전당대회 권한을 날치기로 통과하는데 그걸 가만히 놔두나. 엄연히 당헌과 정당법에 전당대회 권한이라고 못박아져 있다. 신당추진기구는 당무회의에서 타협할 수 있다. 그것은 협의하라는 기구다. 그러나 당 해체나 합당을 결의하면 그것은 이미 당무회의 권한을 넘어서므로 전당대회에 넘겨야 한다. 전당대회를 열면 우리가 이길 것으로 본다. 오랜 세월 민주당과 함께해온 분들이 민주당 해체나 성격변화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정통모임에서 당무회의에 관해 별도로 대책을 논의했나.

=당무회의 권한에 관해 연구를 해봤다.

-정통모임 서명 의원의 명단을 밝힐 수 없나.

=서명한 사람이 20명은 훨씬 넘는다. 전화로 위임한 의원까지 합치면 38명이다. 명단은 밝힐 수 없다. 신주류쪽에서 각개격파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름이 드러나면 시달려서 못 산다. 신주류쪽이 점잖게 하면 밝힐 수도 있다.

-신주류가 지향하는 신당의 색채를 진보정당으로 규정하는데 그런 근거가 있나.

=신주류쪽 발언을 보면 진보세력이 통합해서 범개혁단일정당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진보세력도 수용하는 국민정당체제다. 따라서 진보세력이 단일정당을 만들려면 민주당을 해체할 도리밖에 없다. 현실적으로도 한나라당 진보세력을 끌어들이려면 민주당을 놔두고는 어렵다. 한나라당 진보세력이 민주당으로 오게 되면 철새소리를 듣게 되니까 진보세력만 따로 떨어져나가 정당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신주류쪽이 밖으로 말할 때는 그런 말을 안 한다. 개혁신당이라는 것이 곧 진보정당이다. 진보를 개혁이라고 표현할 뿐이다.

-신당 추진세력을 진보정당이라고 규정할 만한 정책적 노선이 분명하지 않은데.

=신주류는 진보신당을 개혁신당이라고 부르면서도 절대로 진보라는 말을 안 쓴다. 아직 그들이 어떤 정책을 내놓고 있지 않아서 그것이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그분들이 쓰는 개혁이라는 말은 곧 진보라는 말이다.

-신당에 참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뭔가.

=첫째, 민주당의 법통을 끊어선 안된다. 둘째, 국민정당인 민주당의 성격을 바꿔선 안 된다. 이 두 가지다. 민주당은 반세기가 넘은 정당이다. 민주화와 개혁을 해온 정당이다. 범개혁단일정당을 만들기 위해 50년 내려온 민주당의 법통을 끊어선 안 된다. 세계적으로도 이념정당, 계급정당은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다. 서민과 중산층에 역점을 두는 개혁적 국민정당이 있으면 되지 굳이 노동자계급만을 위한 진보정당을 만들 필요가 없다. 국민정당인 민주당의 후보로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굳이 개혁신당을 만들 필요가 없다.

중도·보수도 참여할 수 있어야

-신당의 성격을 계급정당으로 본다는 얘긴가.

-계급정당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을지 몰라도 정치권에서 진보 성향의 의원들만 모아서 출발하겠다고 하는 것은 틀림없다. 밖에서는 노사모 등 세력들이 가세하고 있다. 다 아는 얘기 아닌가.

-그렇다면 신주류의 핵심인 정동영 의원을 진보성향 의원이라고 보나.

=정 의원 본인이 그렇게 자처하고 있고, 우리도 그렇게 평가한다. 혼란을 일으키는 이유는 신주류 내부에서 자기들끼리 논쟁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을 해체해야 하느냐, 법통을 이어야 하느냐는 논쟁이 있다. 가급적 많은 의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우선은 통합으로 가다가 중간에 개혁신당의 본모습을 찾겠다고 하는 것이다.

-신당 추신세력의 핵심적 의도가 뭐라고 보나.

=범개혁세력의 단일정당 만들자는 것과 PK지역에서 표를 얻을 수 있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전자는 이념적 성향이 강하고, 후자는 노 대통령 출신지역에서 표를 얻고 취약지역에 진출하겠다는 의미다.

-민주당의 기반을 전국으로 확대하자는 데는 동의하지 않나.

=물론이다. 하지만 중도주의자나 보수주의자도 공식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들라는 것이다. 비공식적으로 얹혀가지 않고 공식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 전체를 위하지만 중산층과 서민에 역점을 두는 정당임을 선언해야 한다. 국민정당인 이상, 중도주의자나 보수주의자도 자기당으로 생각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들라는 것이다. 그래야 보수주의자나 중도주의자도 참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다 같이 활동할 수 있는 당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민주당의 법통을 해체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이 확정되면 무엇하러 이런 정통모임 같은 것을 만들겠나. 같이 하면 되지. 그런데 신당추진세력은 개혁세력 단일정당을 만들겠다고 한다. 세력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신당은 인터넷정당 비슷하게 해서 100만명의 기간당원을 만들겠다고 하는데 그 기간당원이 모두 개혁세력, 곧 진보세력이다.

-그러면 무슨 방법으로 민주당을 바꾸겠다는 것인가.

=간단히 해결된다. 당의 이름을 바꾸는 것은 수용할 수 있다. 대신에 당의 성격과 노선을 유지하면 전원이 참여할 수 있다. 민주당도 신진대사를 원활히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실질적인 상향식 공천을 하자고 합의했다. 그런데 신주류는 지도부 전체가 사퇴하고 임시지도부를 구성하자고 한다. 이는 자신들이 지도부를 장악해서 신당을 추진하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최고위원 자리 차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엉뚱한 방향으로 당을 끌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보루로서 자리를 지키려는 것이다.

당 지도부 경선에 나서지 않겠다

사진/ “가만 있다간 민주당이 형체도 없어지게 생겼다.” 당 사수 의지를 밝힌 박상천 의원.(이용호 기자)
-신주류쪽에선 구주류가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고 비판하는데.

=노 대통령 고향인 PK에서 표를 많이 얻는 데 찬성한다. 지도부의 모습이 비호남권 인사가 중심이 되는 것도 수용한다. 나도 당 개혁안 논의 당시 다음 총선 때까지는 당의장 경선에 나서지 않겠다고 했다. 당 지도부가 바뀌고 대통령과 정부의 중심 인물들이 그쪽 출신이면 표 많이 얻을 수 있다. 호남쪽 사람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또 다른 지역주의로 표를 얻으려 하면 정도가 아니다. 지역정서에 영합하기 위해 다른 지역을 소외시키는 것을 신지역주의가 아니라고 할 사람 아무도 없다. 그 방법말고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 대통령, 정부, 당 지도부 다 장악하면 된다. 탈호남을 하자고 하면 호남지역에도 다른 지역 사람 불러다 출마시키겠다는 것인가.

-구주류에선 당 지도부 경선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인가.

= 한화갑 전 대표는 스스로 사퇴했으니 또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한광옥 최고위원은 뜻이 있었으나 이제 어렵게 됐다. 나는 민주당의 영남권 진출을 위해 경선에 나서지 않을 뜻을 밝혔다. 그러면 신주류쪽에서 땅 짚고 헤엄치기로 지도부를 장악하게 돼 있다. 그런데 호남출신은 지도부에 나와선 안 된다고 미리 약속하라는 것은 군사정권 때나 하는 수법이다.

-한화갑 전 대표를 만나 협의한 적이 있나.

=만나지는 않았다. 몇 차례 전화한 적은 있다.

-만약에 민주당이 분당되면 정통모임쪽에서 호남 민심을 얻을 수 있다고 자신하나.

= 호남은 진보 일변도의 범개혁단일정당보다 전통적인 민주당을 더 지지할 것이다.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그렇게 나온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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