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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검찰 수사 조율은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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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5-2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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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최고 실세 문재인 민정수석비서관… ‘동교동계 죽이기’는 있을 수 없다

문재인(50)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두고 노무현 대통령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입니다.”

사진/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김진수 기자)
대통령의 철석 같은 ‘믿음’ 때문일까. ‘청와대 일은 문재인 수석이 다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검찰·경찰·국정원 개혁뿐만이 아니라, 부산고속철 노선변경, 보길도 댐 건축, 한총련 가족면담 등 각종 골칫거리들이 문 수석의 두 어깨에 지워지고 있다. 화물연대 파업도 문 수석의 몫이었다. 5월14일 업무시간이 끝난 뒤 이뤄진 1시간 남짓의 인터뷰 내내 문 수석은 장관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와 비서관들의 긴급보고로 진득하게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대통령 신뢰의 뿌리는 무엇일까. 20년 동안 이어온 변호사 동업자이자 민주화 동지이기 때문일까. 다 채워지지 않는 의문의 여백을 엉뚱하게도 그의 양말이 메운다. 구멍난 양말 사이로 반쯤 삐죽이 나온 엄지발가락.

참여정부 최고 실세이자 공식등록된 재산만 10억원대에 이르는 재력가의 구멍난 양말은 말 없이 많은 것을 설명했다. 대선 직후 노무현 당선자를 만나기 위해 서울에 올라올 때도 비닐봉투에 속옷뭉치와 서류 몇장만 달랑 들고 올라왔다고 한다. 인터뷰는 그 민망한 장면을 애써 외면하며 진행됐다.


참여정부의 5년 뒤는 다를 것

-오늘 민주당의 한광옥 전 대표와 최재승, 설훈 의원이 검찰에 소환됐다. 신당 창당과 관련해 ‘동교동계 죽이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러면 염동연, 안희정씨를 소환하면 ‘대통령 죽이기’인가. 그렇게 말하면 끝이 없다. 결대로 가는 거다. 검찰이 알아서 하는 것이고, 우리와 조율하는 것은 일절 없다. 그렇게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사진/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에 참석한 문재인 민정수석. 그는 검찰 수사를 청와대가 조율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청와대사진기자단)
-과거 관행에 비춰보면 민정수석실과 검찰은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데.

=언론에서, 특히 정치부 기자들이 사물이나 현상을 보는 눈을 바꾸었으면 좋겠다.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그 배후에 계산과 음모가 있는 것처럼 그럴듯하게 설정하고, 그러면 더 능력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과거에는 조율이 있었던 것으로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청와대에서 아무런 지침이 없어 오히려 검찰이 당혹해한다는 말을 듣고 있다. 우리는 조율할 능력도 없고, 조율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과거 김영삼, 김대중 정권을 보면 검찰과 정권이 협조관계를 잘 유지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정권을 궁지에 몰아넣은 것이 다 검찰이다. 혹시 단기적으로는 조율이 가능할지 몰라도, 그게 결국은 나중에 문제가 더 커져 화살이 돼서 돌아오기 마련이다. 역사를 통해 얻는 교훈이다.

조율할 능력도 없다. 동기(22회) 검사가 있기는 하나, 20년이 훨씬 넘게 각각 다른 생활을 해왔다. 만일 민정수석이 조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대통령이 생각했다면 검찰고위직 출신으로 인사를 했을 것이다. 검찰을 전혀 모르는, 오히려 검찰과 대립적인 위치에 서왔던 나에게 민정수석을 시켰을 때는 검찰과 조율은 처음부터 배제한 것이다. 유일한 통로는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보고를 받는 것이나, 법무부 장관도 검찰로부터 늘 사후보고를 받고 있고 세세한 내용은 보고 받지 못하고 있다.

-서로 각자의 길을 가면 된다는 뜻인가.

=그런데 그게 꼭 정답이냐고 물으면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원칙이기는 하나 때로는 검찰이 수사하는 대상이나 사건 중에는 좀더 큰 국익과 배치될 수 있는 것도 있다. 또는 수사가 필요하더라도 수사시기나 발표시기가 조정될 필요가 있는 것도 있다. SK 수사처럼 발표시기는 경제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들을 경제부처쪽에서 함께 내놓을 수 있도록 조율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조율하고자 덤비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한다고 오해받을 수 있어 답답하다. 청와대가 검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뜻이 없다는 것을 국민이 신뢰하는 시기가 되면 그 부분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나갈 수 있다.

-정권교체기에 지난 정권의 실세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5년 뒤 참여정부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나.

=참여정부는 5년 뒤를 보장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과거에 끊임없이 그런 문제가 생긴 이유는 청와대 직책을 종국적인 자리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더 크게 진출하려는 디딤돌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즘 청와대는 청와대를 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로 채워졌고, 정치권과 무관한 사람들이 많다. 또 자꾸 사건이 터져나오는 것은 과거보다 그런 행위가 많아졌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만큼 사회가 맑아지고 투명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부정이 들키게 돼 있는 사회다. 앞뒤 분간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감히 부정을 저지르지 못할 것이다.

누구도 인사에 대해 독주할 수 없어

사진/ “호남 푸대접은 없다.”지난 3월26일 문재인 민정수석이 정찬용 인사보좌관(왼쪽)과 함께 인사내용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언젠가 ‘대통령 측근 중에도 좋지 않은 소문이 돈다’고 말한 적이 있어 시끄러웠다.

=측근에 대한 소문이 있어 확인해보니 측근을 사칭해 수사기관에 이첩한 경우 등이다. 그런 종류의 제보가 있으면 예방차원에서라도 사실을 확인해서 경고 등의 조처를 취한다. 일상적인 활동을 있는 그대로 말한 것인데, 언론에서 계산하고 의도된 발언인 것처럼 정치적 의미를 부여해 상당히 곤혹스러웠다.

-그 발언을 두고 부산파와 서울파 또는 386그룹 사이의 갈등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그런 식의 분류를 왜 하나. 과거에는 말을 교묘하게 잘하는 사람들이 얄밉더니만 요즘은 글도 교묘하게 잘 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파는 없고 있을 턱이 없다. 386인들 한 집단이며 부산출신인들 하나겠는가. 굳이 말한다면 나는 대선캠프에 있던 386 출신들의 최고 연장자였기 때문에 그쪽하고 정서적으로 가깝다. 유인태 정무수석이나 정찬용 인사보좌관과는 세대가 비슷하고 옛날 낭만적 학생운동 세대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어 또 가깝다.

-청와대에 들어와서 본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가.

=과거에 비해 훨씬 발전해 늘 놀란다. 국정에 대한 파악능력과 앞날을 내다보는 철학 등에서 아주 뛰어나다. 학습능력이 뛰어난데다 대권 도전을 결심한 이후 부단히 공부를 한 결과로 보인다. 또 오래 정치를 했기 때문에 현실과 타협하리라 생각했는데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나보다 더 원칙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을 방문해 ‘정치범 수용소’ 등의 발언을 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원칙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번에 방미를 통해서 얻으려는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북핵문제에 대한 한미간의 공조, 특히 평화적 해결의 원칙에 서로간 의견차이가 전혀 없다는 신뢰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나머지 미세한 부분은 모두 그 목표에 맞춰진 말씀일 것이다.

-그래도 우려되는 점이 있을 텐데.

=오히려 대통령이 모든 문제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있고, 확실한 식견을 가지고 있어 청와대 참모들이나 부처 장관들을 압도하는 면이 있다. 대통령의 말에 압도당해버리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정권출범 초기라 미리 구상해놓은 개혁방안이나 국정철학을 빨리 공유하려는 과정으로 이해되지만 그런 부분이 조금은 조심스럽다.

-민정수석실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인사 문제다. 정찬용 인사보좌관은 광주에 내려갔다가 “문재인이 다하고 정찬용 너는 들러리 아니냐”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호남 푸대접론이 나왔다.

=인사위원회는 문희상 비서실장이 주관하면서 정무수석, 인사보좌관, 민정수석, 홍보수석, 국민참여수석이 들어온다. 여기에 국가안보 관련 인사일 경우에는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이, 정책 관련 인사일 경우에는 이정우 정책실장이 추가된다. 어느 누구도 인사에 대해 독주할 수 없다. 정찬용 보좌관은 인사 대상 후보자들을 발굴하고 추천하는 역할을 맡고, 발굴추천과 더불어 우리가 검증에 들어간다. 인사위원회 논의과정에서 최종적으로 2~3배수로 압축되면 우리가 좀더 정밀하게 검증하고 그 결과를 놓고 최종결정을 하게 된다. 인사보좌관은 발굴추천과 더불어 인사프로세스 전 과정을 관장한다. 최종결정된 인선내용을 대통령으로부터 재가 받는 것도 인사보좌관이기 때문에 인사문제에서 발언권은 정 보좌관이 제일 크다. 우리의 역할은 검증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를 추천해서 되게 하는 것보다는 안 되게 하는 역할에 머문다.

안상영 시장 조사설 사실 무근

사진/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뒤 연 첫 수석비서관·보좌관 회의. 최근 ‘청와대 일은 문재인 수석이 다한다’는 얘기가 나온다.(청와대사진기자단)
호남 푸대접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 없다. 지역 안배에 굉장히 신경쓴다. 정 보좌관의 경우 혹여라도 호남쪽에 섭섭한 인사가 되지 않을까 아주 노심초사하고 있다. 전체적인 인사는 지역적 안배가 잘 되었다고 본다. 호남소외라는 말들이 되풀이되니까 마치 실제 그런 것처럼 잘못 인식되고 있다. 여당쪽 인사조차 ‘호남소외는 있었지만 다음 총선에서 영남쪽의 지지를 받기 위한 불가피한 조처로 이해해달라’는 취지의 말을 하던데, 전제가 되는 호남소외는 사실이 아니다. 청와대를 비롯해 정무직 전체 인사의 통계치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부처에 따라 현실적 사정 때문에 어떤 곳은 영남이 많은 곳도 있고, 또 어떤 곳은 호남이 많은 곳도 있다. 부분적으로는 편중 현상이 나타날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결코 그렇지 않다.

-한나라당 부산 의원들이 ‘노무현 사람들’의 부산 상륙에 비상이 걸렸다. 안상영 부산시장 조사설이 나오고 박종웅 의원의 신당합류 가능성이 얘기되고 있다.

=안상영 시장 조사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민정1비서관실이 대통령 친인척이나 특수관계자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늘 동향을 파악하고 첩보나 소문이 있으면 확인도 한다. 우리가 직접 다 못하기 때문에 경찰, 감사원, 검찰, 부패방지위원회 등으로 사정기관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한다. 그런 식으로 늘 관찰하는 친인척 특수관계자 중 일부가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안 시장의 측근들을 접촉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권을 청탁할 우려가 있어 접촉 여부를 확인했을 뿐이다. 알아보니 사실도 아니었다. 박종웅 의원은 고등학교 동기라 그런 말이 나오는 모양인데 말 될 것이 없다.

-내년 총선에 문 수석이 직접 나서지는 않나.

=나나 이호철 민정1비서관이나 전혀 뜻이 없다. 이 비서관의 경우 청와대에서 일하도록 설득하는 데만도 엄청난 힘이 들었다. 우리는 담백하게 청와대 일만 할 뿐이다. 나는 정치적 삶이 싫다.

-고영구 국정원장과 서동만 기조실장 임명으로 야당과의 관계가 냉각상태다. 서동만 기조실장 임명강행에 문 수석이 가장 앞장선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서동만 기조실장은 인사청문회 대상이 아니다. 고 원장이 인사청문회에서 국정원 개혁방향의 청사진을 제시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인수위 시절부터 국정원 개혁과제를 다뤄왔던 서동만 교수를 청문회 준비팀에 합류시킨 것이다. 서 교수는 솔직히 기조실장 내정도 아니었는데, 그런 사람에 대해서 된다 안 된다는 의사표시가 월권이다. 국회나 야당의 권한 범위에 속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히 귀를 기울이겠지만 그 한도를 넘는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는 참여정부의 개혁성이나 정체성의 문제기이기도 하다. 고영구, 서동만을 임명한 이유는 국정원을 그대로 둬서는 안 되고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 새 정부의 당연한 정책적 목표이기 때문이다. 온 국민이 바라는 바가 아닌가. 한나라당조차도 그런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그 개혁을 위한 인물로 인선한 것인데, 이념문제 등 전혀 개혁방향에 맞지 않는 요구를 했기 때문에 응할 수가 없었다.

한총련 출두하면 불구속 수사

-최근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한총련 합법화 정책에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

=조금 곤혹스럽게 됐다. 한총련이 굉장히 많이 변한 것으로 다들 인식하고 있고, 그걸 우리사회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허약한 것도 아니고, 다양한 가치와 의견을 수용할 정도로 성숙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한총련 문제는 두 단계로 접근하고 싶다. 일차적으로는 수배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총련 관계자들이 장기수배로 고통받고 있다. 젊은 시절 한때 급진적인 이상주의에 빠졌다 하더라도 세월이 지나면 정상적 사회로 복귀해야 하는데 장기 수배가 복귀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해결 방향으로는 본인들이 출두할 경우, 불구속수사를 해서 수사결과 범죄혐의가 있으면 기소하고 재판결과 형이 선고되면 형을 복역하면 된다. 2단계 합법화는 법원이 10기까지도 이적단체로 판단을 했기 때문에, 법원이 이적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한총련의 강령, 행동방식들, 이념들을 고쳐나가는 한총련의 변화가 도모돼야 한다. 한총련이 변하고, 한총련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하면 한총련을 합법화하는 문제는 시간을 두고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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