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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조기 경선, 누가 웃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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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0-1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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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통령 후보 2002년 1월 선출설… 분분한 해석 나돌며 입장차 드러나

(사진/김대중 대통령의 조기 전당대회 시사발언으로 여권이 술렁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 9월30일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모습)
“2002년 1월 후보 선출 전당대회는 어렵다. 1월부터 서너달간 경선 레이스를 펼쳐 한껏 주목을 끈 다음에 3, 4월에 하는 게 순리다.”(민주당 권노갑 최고위원 직계로 분류되는 이훈평 의원)

“우리 선에서 그런 보고서를 검토하거나 올린 적은 없다. 실무 참모들의 생각과 대통령의 생각이 다소 다른 것 같다. 어쨌든 1월 전당대회는 물리적으로 너무 이르다.”(청와대 정무수석실의 한 관계자)

“여권의 차기 대통령후보는 2002년 1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결정할 것”이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10월9일 <내일신문> 창간 인터뷰)을 두고 여권 안팎에서 분분한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견해가 다수이며, 일각에서는 당헌당규상 그렇게 규정된 것을 ‘가볍게’ 언급한 것일 뿐 정치적인 무게는 둘 필요가 없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올해 1월20일 창당하면서 2년마다 정기 전당대회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순수하게 ‘행정적’ 이유만 따지면 2002년 1월20일에 전당대회를 여는 게 맞다.

레임덕 감수한 김 대통령 발언의 의문들


김 대통령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첫 번째 이유는 과거 여당의 예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87년 전두환→노태우(6월10일), 92년 노태우→김영삼(5월19일), 97년 김영삼→이회창(7월21일) 등 권력이 사실상 차기 주자에게 넘어가는 대선후보 선출 전당대회는 모두 대선이 치러지는 해의 5월 이후였다. 더욱이 현직 대통령은 차기 주자가 결정되는 순간 힘이 빠진다는 점을 감안해 전당대회 시점을 최대한 늦추려는 경향을 보였다.

의문론의 두 번째 근거는 2002년 1월에 전당대회를 치를 경우 정치권의 최대 이벤트인 경선 레이스를 제대로 펼칠 여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97년 신한국당 대선후보 선출 전당대회의 경우 이른바 9마리의 ‘용’들이 출전해 서너달 동안 레이스를 펼침으로써 관전자들의 시선을 독점한 반면 당시 야당인 국민회의는 철저하게 소외된 바 있는데, 비슷한 전략을 구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1월에 전당대회를 할 경우 전년도 12월9일로 끝나는 정기국회 일정을 감안할 때 이벤트를 할 여유는 고작 한달밖에 안 된다. 이에 따라 “2002년 6월의 4대 지방선거 일정과 대선후보가 지방선거전을 이끌도록 해야 한다는 측면을 감안한다면 대선후보 선출 전당대회는 4월쯤이 적당하다”(이인제 민주당 최고위원)는 논리가 무난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기류에 정통한 핵심 참모들은 이러한 설왕설래를 한마디로 ‘무지의 소치’로 치부한다. 실제로 김 대통령의 ‘2002년 1월 전당대회 후보 선출’ 발언이 처음 나온 게 아니라 7월7일 민주당 의원들과의 만찬에서도 했던 이야기를 되풀이 확언한 것이다.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인 김 대통령이 나름대로 꼼꼼하게 여러 정치일정을 계산해본 끝에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는 게 옳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 대통령의 핵심 참모들도 2002년 6월 지방선거 이전에 차기 주자를 가시화할 필요성에는 일단 동감한다. 그러나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지방선거는 6월이 아니라 4월로 앞당기는 게 불가피하다. 6월에 한국과 일본이 공동주최하는 월드컵 축구대회가 열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참모는 “지방선거가 대선의 전초전인 만큼 차기 여당후보가 지방선거 공천단계부터 관여하면서 선거전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것은 옳다”며 “그러나 4월 지방선거를 치르려면 전당대회는 늦어도 2월 이전, 즉 1월에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더욱 중요한 측면은 김 대통령이 97년의 신한국당 경선 레이스를 본떠야 할 성공사례라기보다는 철저하게 반면교사해야 할 실패극으로 본다는 점이다. “신한국당의 레이스가 이벤트 효과가 컸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결과가 어떠했나. 여당 내부의 극심한 분란을 유발한 원인이 됐고 결국 이인제 후보가 경선에 불복하고 탈당함으로써 결정적으로 구여권 표를 갈라놓지 않았나.”(김 대통령의 한 핵심참모)

과열 피하며 굵고 짧게… 경선에 개입할 듯

(사진/조기 경선은 다목적 포석? 김대중 대통령은 여러 정치일정을 감안해 1월 경선을 추진하고 있다.)
김 대통령은 이에 따라 경선 시기를 가급적 앞당기며 레이스의 규모도 가급적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같다. 경선 시기를 앞당기면 설령 결과에 불복하고 뛰쳐나가는 주자가 나오더라도 그해 12월의 대선까지 장기간 홀로서기를 하기가 어렵다. 97년 대선 당시 이인제 후보의 국민신당이 자금과 조직력 부족으로 ‘헐벗고 굶주린’ 가운데서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어디까지나 투표일까지 남은 기간이 짧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참모는 “97년의 신한국당 내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지금의 여당 안에 잠재적 주자들이 우글거리는 상황에서는 탈락자들의 반발을 진무해 여권을 결속시킬 방안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선 레이스를 한달 안팎 정도로 ‘굵고 짧게’ 한다는 데도 심장한 의미가 담겨 있다. 과거 신한국당 예처럼 서너달씩 레이스를 펼치면 ‘과열’이 불가피하다. 전당대회 대의원들은 물론 국민들의 관심도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르게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효과적으로 세몰이를 펼침으로써 대세를 장악한 주자가 자연스럽게 후보를 거머쥐게 돼 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핵심 참모들에 따르면 이 경우 김 대통령의 개입 여지는 자동적으로 줄게 돼 있다. 자신의 노선을 계승하는 후보를 통해 정권을 재창출하려는 김 대통령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김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후보의 요건은 국민과 당원이 정하는 것이지만 그때 가면 제 생각도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경선 과정에 개입할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차기 여당후보의 덕목과 관련해 “통일국가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9월30일 <제주일보> 창간 회견)며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남북문제를 풀어나갈 리더십을 강조하고 있다.

김 대통령이 실제로 자기 마음에 드는 누군가를 명시적으로 ‘찍을’지 여부는 그때 가봐야 알 일이다. 누군가를 찍는 행위는 찍히지 않은 사람에게 ‘불공정 경선’이라며 반발할 명분을 주므로 쉬운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대통령이 현 시점에서 자신의 국정운영이 상당히 성공적이며, 따라서 차기 정권도 자신의 노선을 계승해야 한다고 믿는 것만은 분명하다. 또한 내놓고 찍는 방법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후계자를 만들어낼 다른 방법을 현직 대통령인 그는 강구해낼 수 있다. 김 대통령은 적어도 ‘800만표’라는 정치적 힘을 여전히 갖고 있다는 점에서도 역대 대통령들과는 다른 편이다.

대중적 세몰이엔 시간적 한계 많아

(사진/여권의 극심한 분란을 유발한 것으로 평가받는 97년 신한국당 전당대회)
이런 측면들 때문에 민주당의 예비 주자 진영들은 김 대통령의 발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인제 최고위원이 “1월은 너무 빠르다”며 ‘4월 경선론’을 주장한 것도 “몰라서가 아니라” 이런 흐름을 읽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최고위원의 경우 대중적 인기에서는 다른 경쟁자를 앞서되, 구여권 출신이란 점 때문에 ‘DJ 노선 계승’이란 점에선 취약한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의 한 측근은 “김 대통령이 힘이 더 빠지기 전에 후계자를 만들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우리로서는 가급적 큰 규모의 경선 판을 통해 대중적 세몰이를 함으로써 후보 자리를 쟁취할 수밖에 없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 진영은 “1월도 좋다”는 입장이다. 그의 한 측근은 “노선 계승을 따진다면 90년 3당 합당 합류마저 거부하고 정통 야당을 지킨 노무현말고 누가 있느냐”라고 말했다.

한화갑·김중권·박상천·정동영·김근태·정대철 최고위원 등 그 밖의 진영들은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전략적 대응을 따져보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대중적 지지도나 ‘무게’ 등에서 아직 후발 주자 위치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만 익명을 요구한 한 최고위원은 “다만 내 입장에서는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1월은 너무 이른 것 같다”고 말했다.

박창식 기자cspcsp@hani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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