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당·통합신당·당개혁론까지 백가쟁명 시대… 양쪽 입장 굳어져 분당 피할 수 없다는 관측도
‘한화갑 대표, 신당창당 뒤 민주와 통합.’ 요즘의 민주당 얘기가 아니다. 지난해 8월12일 어느 신문 1면에 실린 기사의 제목이다. 당시 민주당은 8·8 재보선 참패의 후유증 끝에 신당추진위원회를 꾸렸다. 위원장이 김영배 전 의원이었고 부위원장이 한나라당으로 떠난 김원길 의원이었다. 신당추진위는 이후 갑론을박을 벌이다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유야무야되고 만다. 이 신당추진위원회는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해산된 적이 없다. 구주류 일각에선 “신당추진위는 이미 구성돼 있으니 인선만 새로 하면 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당 밖 신당추진기구 구성’에 구주류 발끈
요즘 얘기되고 있는 민주당 안팎의 신당론도 논의의 복잡성이나 이해관계의 날 선 대립이라는 점에서 그때보다 조금도 덜하지 않은 것 같다. 곳곳에서 암초가 불거졌다. 통합신당이냐 개혁신당이냐의 문제로 격돌했고, 신당추진위원회를 당 안에 꾸리느냐, 당 바깥에 꾸리느냐는 문제로 일합을 겨뤘다. ‘개혁적 통합신당’을 하자는 모범답안이 나왔고, ‘제4세대 신당론’도 튀어나왔다. 아예 원점으로 되돌아가 신당론 이전에 당 개혁안부터 논의하자는 의견까지 제기됐다. 백가쟁명, 중구난방이다. 국민들은 도무지 뭐가 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재·보선 전패라는 충격 탓인지 신당을 하자는 공감대는 뜻밖에 일찍 형성됐다. 신주류 강경파가 민주당을 뛰쳐나가 신당을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당내 신당추진’ 방식을 들고 나오자 일거에 세를 얻었다. 신당추진을 “정치신의를 저버리는 배신행위”라고 격렬하게 비난하던 정균환 총무가 “민주당의 외연을 계속 넓혀가야 한다”며 슬그머니 통합신당론에 동조함으로써 신당론은 대세를 굳히는 듯했다. 신당론이 갑자기 대세를 이루자 정동영·신기남·천정배 의원 등 신주류 강경파 의원들도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신당론이 부닥친 첫 암초는 개혁신당이냐 통합신당이냐의 문제였다. 신주류 강경파는 ‘민주당의 발전적 해체’와 ‘기득권 포기’를 핵심으로 하는 개혁신당론을 폈다. 구주류와 중도파는 ‘민주당의 계승’과 ‘외부세력 통합’을 강조하는 통합신당론을 주장했다. 원래 ‘통합신당’이라는 용어는 김근태 의원이 맨 처음 사용했다. 김 의원이 “신당은 불가피하지만 몇명이 뛰쳐나가는 방식은 곤란하다”는 논리를 설파하며 이쪽저쪽을 오갈 때 사용한 용어였다. 김상현·김원기·정대철·정동영·조순형 의원이 참여하는 이른바 ‘6인중진회담’도 김근태 의원이 제안한 것이었다. 그런데 ‘신당 반대’의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던 구주류쪽 인사들이 통합신당론에 가세하고 나섰다. 통합신당론은 이전의 민주당 개조론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돼버렸고, 갑자기 상황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김 의원이 ‘개혁적 통합신당론’을 제기한 것도 구주류의 통합신당론과 선을 긋자는 차원이었다. 두 번째 암초는 당 바깥에 신당창당추진위원회를 두는 문제였다. 정동영 의원 등 신주류 일각에서 이런 주장을 하자 구주류쪽은 발끈했다. 한화갑 전 대표는 당 밖 신당추진기구 구성에 대해 ‘쿠데타적 발상’이라고 격렬하게 비난하며 민주당 수호의지를 밝혔다. 이에 맞춰 구주류쪽도 잇따라 모임을 열어 일대 반격을 시도했다. 구주류로선 당 바깥에 신당추진위가 꾸려지면 당내에서와 달리 자신들의 주도권을 행사할 공간이 없어진다. 당연히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신주류 강경파 의원들은 주춤하며 일단 당내 신당추진기구 구성쪽으로 물러섰다. 신주류 내부에서도 “당 밖 신당추진기구 구성을 제안한 것은 성급했다”는 자성론이 나왔다. 신주류엔 ‘컨트롤 타워’가 없다
복잡한 용어들이 뒤엉켜 상황인식을 어지럽게 하지만 신당을 둘러싼 논란의 본질은 인적청산과 주도권 행사의 문제로 모아진다. “어떻게 하면 당내 반발을 최소화시키면서 모양새 있게 물갈이를 이뤄내 ‘무늬만 신당’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있느냐. 이를 위해 당내 소수파라는 한계를 어떻게 역전시키느냐.” 내놓고 말하자면 신주류쪽의 고민은 이렇게 요약된다. 구주류의 고민은 정 반대다. “정치개혁의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는 집단이라는 비난을 피하면서도 기득권을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을 없을까. 이를 위해 당내 다수파의 위치를 유지하고 주도권을 상실하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 ”
신당론의 방향은 어느 쪽이 명분과 세력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여론의 동향과 그동안 뚜렷한 목소리를 내지 않던 중도적 성향의 의원들이 어느 쪽으로 가세하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일부에선 이제 민주당의 분당이 가시권에 접어든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양쪽이 서로의 속내와 의도에 대한 탐색을 끝마쳤고, 양쪽 모두 물러서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결국 갈라설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분석이다. 신당론을 지원하는 열린개혁포럼의 장영달 간사는 “신당 논의단계는 끝났다”며 ‘신당 추진’을 선언한 상황이다. 한화갑 전 대표는 “민주당을 끝까지 지키겠다”며 물러설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했다.
민주당 외곽 개혁그룹과 민주당 내 광주·전남권 의원들의 엇갈리는 움직임에서도 어른거리는 분당의 그림자를 읽어낼 수 있다. 영남과 충청권 등지에서 민주당 신주류 강경파와 정서를 같이하는 개혁그룹은 속속 공식기구를 발족하고 나섰다. 5월9일 부산 정치개혁추진위원회 발족식엔 정동영·신기남 의원이 참석해 신당론의 불을 지폈다. 같은 날 정대철 대표가 구주류의 반발을 무릅쓰고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이강철씨를 민주당 대구시지부장 직무대행으로 임명한 것도 부산·대구를 중심으로 하는 영남권 개혁신당 태동에 대한 전망을 낳았다. 대전·충남 지역에서도 개혁그룹의 인사들이 신당 추진협의기구 설치를 공식적으로 제안하는 등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구주류쪽에선 이런 움직임을 경계심 어린 눈초리로 주시한다. 문제는 당장 판이 깨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신주류에서도 당 바깥의 이런 흐름을 제어하고 통제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점이다. 신주류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속도를 조절해달라고 말하지만 자연적으로 분출되는 흐름을 막아낼 수단은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5월16일이 고비
광주·전남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과 중도파를 자처하는 ‘통합과 개혁모임’쪽의 움직임에서도 분당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는 상황인식이 엿보인다. 이들은 일제히 기간당원화, 원내정책정당화, 상향식 공천 등 개혁안을 새롭게 들고 나왔다. 이런 문제들은 원래 신주류쪽에서 제기한 것들로, 당 개혁안 논의과정에서 이미 충분히 다뤄진 문제들이다. 민주당의 틀 안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니 신당을 추진하자는 것이었다. 이미 화살이 시위를 떠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이들이 새삼스럽게 이런 문제를 재론한 것은 분당에 대비한 명분축적용이 아니냐는 것이다. 즉, 분당이 현실화될 경우 책임을 떠넘기면서 개혁에 반대한 세력이라는 낙인을 피하자는 전략인 셈이다.
5월16일 원내외위원장 워크숍이 신당론의 향배를 가름하는 분수령이 될 것 같다. 신주류쪽은 5월13일로 예정됐던 워크숍을 뒤로 미뤘다. 신주류의 한 관계자는 워크숍 일정을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와 광주를 방문하는 18일에 맞춘 것”이라고 말했다. 흐름을 타자는 것이다. 어쨌든 민주당을 모태로 하는 신당이 탄생할지, 아니면 민주당이 분당되면서 기존 민주당과 개혁신당, 한나라당, 자민련 등 다당구조로 전환할 것인지에 대한 윤곽이 조만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사진/ 민주당 개혁그룹은 신당추진을 위해 속속 공식기구를 발족하고 나섰다. 지난 5월9일 부산 크라운호텔에서 열린 부산정치개혁추진위원회 발족식.(연합뉴스)
재·보선 전패라는 충격 탓인지 신당을 하자는 공감대는 뜻밖에 일찍 형성됐다. 신주류 강경파가 민주당을 뛰쳐나가 신당을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당내 신당추진’ 방식을 들고 나오자 일거에 세를 얻었다. 신당추진을 “정치신의를 저버리는 배신행위”라고 격렬하게 비난하던 정균환 총무가 “민주당의 외연을 계속 넓혀가야 한다”며 슬그머니 통합신당론에 동조함으로써 신당론은 대세를 굳히는 듯했다. 신당론이 갑자기 대세를 이루자 정동영·신기남·천정배 의원 등 신주류 강경파 의원들도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신당론이 부닥친 첫 암초는 개혁신당이냐 통합신당이냐의 문제였다. 신주류 강경파는 ‘민주당의 발전적 해체’와 ‘기득권 포기’를 핵심으로 하는 개혁신당론을 폈다. 구주류와 중도파는 ‘민주당의 계승’과 ‘외부세력 통합’을 강조하는 통합신당론을 주장했다. 원래 ‘통합신당’이라는 용어는 김근태 의원이 맨 처음 사용했다. 김 의원이 “신당은 불가피하지만 몇명이 뛰쳐나가는 방식은 곤란하다”는 논리를 설파하며 이쪽저쪽을 오갈 때 사용한 용어였다. 김상현·김원기·정대철·정동영·조순형 의원이 참여하는 이른바 ‘6인중진회담’도 김근태 의원이 제안한 것이었다. 그런데 ‘신당 반대’의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던 구주류쪽 인사들이 통합신당론에 가세하고 나섰다. 통합신당론은 이전의 민주당 개조론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돼버렸고, 갑자기 상황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김 의원이 ‘개혁적 통합신당론’을 제기한 것도 구주류의 통합신당론과 선을 긋자는 차원이었다. 두 번째 암초는 당 바깥에 신당창당추진위원회를 두는 문제였다. 정동영 의원 등 신주류 일각에서 이런 주장을 하자 구주류쪽은 발끈했다. 한화갑 전 대표는 당 밖 신당추진기구 구성에 대해 ‘쿠데타적 발상’이라고 격렬하게 비난하며 민주당 수호의지를 밝혔다. 이에 맞춰 구주류쪽도 잇따라 모임을 열어 일대 반격을 시도했다. 구주류로선 당 바깥에 신당추진위가 꾸려지면 당내에서와 달리 자신들의 주도권을 행사할 공간이 없어진다. 당연히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신주류 강경파 의원들은 주춤하며 일단 당내 신당추진기구 구성쪽으로 물러섰다. 신주류 내부에서도 “당 밖 신당추진기구 구성을 제안한 것은 성급했다”는 자성론이 나왔다. 신주류엔 ‘컨트롤 타워’가 없다

사진/ 지난 4월29일 천정배·신기남·이종걸·정동영·이강래(왼쪽부터)등 민주당내 신당 추진파 의원들이 신당 창당 방식 등을 논의하고 있다. 일부에선 분당이 가시권에 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한겨레 윤운식 기자)

사진/ 지난 5월5일 민주당 박병석·이창복·박주선·강운태·조재환·홍재형 의원(왼쪽부터) 등 중도파 의원들이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신당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한겨레 김정효 기자)

사진/ 한화갑 전 대표는 당 밖 신당추진기구 구성에 대해 ‘쿠데타적 발상’이라고 격렬하게 비난하며 민주당 수호의지를 밝혔다.(국회사진기자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