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호남인맥·민주당 구주류의 반발…청와대 내에서도 ‘희생양’ 삼자는 주장 있어
서동만 상지대 교수와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30년이 다 돼가는 ‘술친구’다.
중학교 교사였던 서 교수의 모친이 강 장관 여중 3학년 때 담임을 맡았는데, 집에 와서도 제자 자랑을 늘어놓아 동갑내기인 서 교수의 기를 죽여놓고는 했다. 서 교수 모친은 강 장관이 검사와의 대화를 가진 다음날에는 온 가족을 불러모아 한턱 낼 정도로 애정을 보였다. 두 사람은 서울대 75학번으로 같은 계열에 입학하면서부터 친구로 지내왔고, 최근까지 망년회를 같이 하는 등 가족처럼 지내왔다.
국정원 직원들, 지지의견 많아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권력의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검찰과 국정원의 개혁을 맡았다. 서 교수는 비록 한두급 낮은 국정원 기조실장(1급)으로 내정된 상태긴 했지만, 대통령직인수위 시절부터 국정원 개혁의 청사진을 도맡아 짜왔고 고영구 국정원장과 함께 업무보고를 받았다.
또 두 사람은 검찰과 국정원 내부로부터 강한 반발을 샀고, 청와대와 민주당에서도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도 일치하고 있다.
‘서동만 기조실장’에 대한 국정원쪽의 반발은 인수위 시절로 거슬러올라간다. 서 교수는 “인수위원장에게 이미 보고를 했으니 외교통일안보 분과에는 별도로 보고를 하지 않겠다”는 국정원쪽을 압박해 업무보고 1시간 전에 자료를 제출받으면서부터 국정원의 ‘경계대상’으로 떠올랐다.
반발은 전주고 출신을 중심으로 한 호남인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 교수가 호남인맥이 주요 보직을 차지하는 상황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면서 태스크포스팀을 짜는 과정에 호남출신을 상대적으로 적게 배치한 것을 보고 위기감이 증폭됐다. 서 교수는 지역안배를 위해 태스크포스팀 11명 가운데 호남출신을 2명 넣고, 고영구 국정원장 후보자가 신건 당시 국정원장에게 요청해 내부에서 발령을 내는 형식을 갖추었으나 위기감을 씻어내지는 못했다.
반발 세력은 처음에 서 교수가 일본 유학시절 방북했다거나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혐의가 있다는 내용을 유포해 견제에 나섰다. 그러나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팀에서 국정원 내 존안자료 등을 토대로 샅샅이 조사한 결과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그러자 이번에는 ‘비타협적이다’라거나 ‘조직장악력이 없다’라는 인상비평을 부각시키는 한편, 서 교수가 국정원과 관련된 한 연구소 소장이 적임이라며 그 자리를 추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저항은 호남인맥, 그 중에서도 고위직의 이해관계에 관련된 것일 뿐 7천여명에 이르는 국정원 직원의 평균감각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인다. 고영구-서동만 청문회 다음날 하룻동안에만 국정원 내부 자유게시판에는 두 사람을 지지하는 글이 200여건 뜨고 각 글에 대한 조회건수가 500~1천건에 이르러 “내부의 지지는 폭발적이었다”는 게 국정원 한 관계자의 전언이다.
서 교수에 대한 반발은 청문회에서 극적으로 드러났다. 국회 정보위원회 여야 의원들은 ‘역통일전선’을 형성해 두 사람에 대해 무차별적 색깔공세를 펼쳤고, 결국 고 원장에 대해서는 ‘부적절’ 의견을 내면서도 서 교수에 대해서는 한층 강도가 높은 ‘불가’ 의견을 제출했다.
특히 민주당 함승희·천용택 의원이 공세의 날을 세워 서 교수를 당황하게 했다. 함 의원은 서 교수를 “지나온 인생을 보면 증인은 대단히 북한 편향적이고 사상 편향적인 사람”이라고 몰아붙였고, 천 의원은 서 교수의 국정원 개혁 구상을 “어린애 같은 소리”라고 매도한 데 이어, 유신시절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수감된 경력을 문제삼아 “국정원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고 단정했다. 박상천 의원은 질문공세에서는 한발 물러서 있었으나, 인사청문회 경과 보고서 작성 때는 강경 분위기를 주도했다는 것이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의 평가다.
“당내 상황으로 인한 구주류의 반격”
민주당 의원들이 강경하게 나온 데는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은 함 의원의 경우 1980년대 공안검사를 지내는 등 정보위 소속 의원들이 대부분 기본적으로 냉전적 세계관에 머물러 있는 점이 가장 큰 요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친북 성향이 문제가 된 서 교수의 경우 실제 이념 성향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서 교수가 사사한 와다 하루키 도쿄대 교수는 북한을 기본적으로 ‘병영체제’라고 이해하고 있고, 이러한 인식 때문에 북한은 와다 하루키 교수에 대해 불만스러워하고 있다. 또 서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인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성립’은 1950~60년대 북한 역사에 대한 대표적 실증연구서로 꼽히며, 북한 사회가 어떻게 초기의 활력을 잃고 국가화하는가를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다.
정균환·김옥두·박상천 의원 등이 서 교수에 대한 동료의원들의 공격을 ‘방조’한 것을 두고는 구주류의 반격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김근태·신기남·이상수·이해찬·천정배 의원 등은 청문회날 저녁 모임을 갖고 ‘당내 상황으로 인한 구주류의 반격’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서 교수와 접촉을 시도하는 등 긴박하게 움직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다음날 의원 30여명의 서명을 받아 “시대적 과제인 국정원 개혁을 위해 고영구·서동만은 반드시 임명되어야 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채택해 발표했다.
또 개별적인 이해관계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함 의원은 인수위 시절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검찰 내 친한나라당 검사 척결방안을 제시하는 등 검찰개혁에 의욕을 보였으나 싸늘한 반응만 돌아와 정서적으로 반발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천 의원은 과거 국정원장을 지내면서 나름대로 인맥을 심어 고급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었는데, 고영구-서동만 라인이 들어서면서 일거에 무너지게 됐다는 것이 국정원 직원들의 평가다.
청와대 안에서도 서 교수의 기조실장 임명을 둘러싸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노 대통령에게 건의안을 올리는 인사위원회 소속 5명 가운데 서 교수를 지지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국정원 개혁에 손발을 맞춰온 문재인 민정수석과 정찬용 인사보좌관 정도인 것으로 전해진다. 문희상 비서실장과 유인태 정무수석은 서동만 불가론을 펴고 있으며, 애초 다른 사람을 천거했던 이광재 국정상황실장도 서 교수 임명에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 수석과 정 보좌관은 서 교수가 인수위 시절부터 국정원 개혁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업무보고 과정에 참여해 국정원 개혁의 적임자일 뿐아니라, 노무현 대통령 역시 “이념이 문제여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어서 한나라당의 공세에 밀려서는 곤란하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문 실장과 유 수석은 고영구 국정원장 임명 강행으로 정국이 급격히 경색되고 있는 만큼 서 교수를 ‘희생양’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폈다.
판사와 피고로 만났던 고영구와 서동만
고영구 국정원장은 정찬용 인사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어 “서 교수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으며 높게 평가한다”고 적극적 지지의사를 밝혀, 서 교수에게는 큰 힘이 되고 있다. 둘 사이에는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면서 쌓인 업무적 신뢰 외에 과거 판사와 피고인으로서 맺은 인연도 적잖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개혁 작업에 먼저 나섰던 서 교수는 고영구 변호사가 신임 국정원장으로 내정된 뒤 이력서를 들춰보다 깜짝 놀랐다고 한다. 자신에게 형을 선고한 판사를 ‘고 판사’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고 내정자와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즉시 정부기록보존서에서 자신이 관련된 사건 판결문을 떼어보고는 추정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했다. 서 교수는 당시 검찰로부터 7년형을 구형받았는데 강성 판사를 만나면 4년, 온건한 판사를 만나면 3년을 받던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고 판사는 학생 서동만에게 2년을 선고했고, 서 교수는 이를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서 교수가 고 내정자에게 이 얘기를 꺼내자 고 내정자는 “당시 서운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본 뒤 “고맙다면 술 한잔 사라”고 농담으로 받았다.
서 교수의 생사여탈권은 결국 노 대통령의 결심에 달려 있다. 야당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하느냐, 이념 문제에 대해 정면돌파를 택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서 교수는 “어떻든 내 거취를 놓고 결과적으로 전면전이 벌어진 것이 다행이다. 되도 좋고, 안 되더라도 최소한 후임자가 국정원 개혁의 명분을 지닌 채 들어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사진/ 서동만 교수에 대한 반발은 청문회에서 극적으로 드러났다. 국회 정보위원회 여야 의원들은 ‘역통일전선’을 형성해 무차별적 색깔공세를 펼쳤다.(이용호 기자)

사진/ 민주당 국회정보위원회 소속 의원들. 왼쪽부터 천용택(한겨레 이종찬), 함승희(한겨레 이종찬), 정균환(한겨레 이종근), 박상천(한겨레 이종근), 김옥두(이용호), 김덕규 의원(한겨레 이종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