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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금배지여, 앞으로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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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4-2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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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17대 총선에 도전장 던진 정치신인들… 정당 당직자·전대협 출신 등 각축전 돌입

내년 17대 총선(4월15일)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 터졌다. 정치신인들이 떼는 첫발에는 두근거리는 기대와 함께 막연한 불안이 실려 있고, 앞서가는 현역 의원들은 흘끗흘끗 뒤를 돌아보며 신예들의 추격속도를 가늠해본다.

17대 총선은 역대 선거에 견줘 여러 모로 뚜렷한 차별성을 보인다.

먼저 3김의 영향력이 완전히 탈색된 최초의 선거다. 더 이상 3김에 의한 ‘젊은 피 수혈’은 없다. 대신 상향식 공천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공천장을 주는 사람이 ‘보스’에서 지역구 당원과 일반국민으로 바뀐 것이다.

사진/ 정치신인들이 지역에서 유권자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4·24보선을 앞두고 후보자가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이용호 기자)

보스가 사라진 정치환경에 고무


민주당의 경우 아직 당 개혁안이 통과되지는 않았으나,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자는 선거인단에 의한 국민참여 경선방식이나, 완전개방 경선방식(오픈 프라이머리)으로 선출한다는 규정은 손대지 않을 예정이다. 또 기존 지구당 위원장들은 적어도 총선 6개월 전 사퇴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여, 위원장들의 기득권은 상당부분 쇠퇴하고 신인들이 경선에 뛰어볼 만한 조건이 어느 정도 갖춰지고 있다.

이에 따라 과거 3김시대에 당내 실력자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여의도 정가를 기웃거리던 현상이 사라지고, 모두 가방을 싸 지역으로 지역으로 내려가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며 ‘자력갱생’하는 것이 절대 유리하기 때문이다. 여의도는 비고 지역구는 붐비고 있다.

또 3김시대에는 386 총학생회장 출신 등 정치적 지명도가 높은 경우가 아니면 감히 공천경쟁에 뛰어들 엄두를 내기 힘들었으나, 이제는 지역에서 신망만 쌓으면 누구나 포부를 키워볼 수 있을 정도로 진입장벽이 낮아졌다. 이 때문에 광주광역시 동구의 경우 벌써 오르내리는 이름이 20명선을 넘어섰다.

근본적으로는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으로 정치지형에 상당한 지각변동 요인이 생겼다는 점이 젊은 신인들의 정치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조직도 자금도 없는 노 후보가 국민경선이라는 제도를 통해 대통령까지 된 신화를, 지역의 작은 경선에서도 재창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게다가 신인들도 정치후원금을 걷을 수 있도록 정치자금법이 바뀌면 유력한 무기가 주어지는 셈이다. 노 대통령은 현역 의원이나 지구당 위원장만 이용하는 후원회를 정치신인들에게도 허용하도록 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호남에서는 현역 의원들이 정치신인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정치신인들이 몰리고 있는 지역구의 김경천 의원, 정균환 원내총무, 김홍일 의원(왼쪽부터).(이용호 기자)

민주당 당직자들 대거 출마 채비

신인들의 야심찬 도전이 가장 두드러진 영역은 민주당의 중앙당 당직자들이다.

직능국의 박영호(38) 부장이 대표적 경우다. 박 부장은 충북대 총학생회장으로 1987년 6월항쟁을 주도하고, 청주지역 민주청년연합 의장을 지내는 등 지역에서는 나름대로 활동력을 인정받았으나 전국적 지명도는 무명에 가까운 편이다. 더구나 그는 2000년 민주당에 부장이라는 하위당직자로 들어와 보조 역할만 해왔다. 과거 같으면 공천을 넘볼 수 없는 직책이나 대선 이후 자신의 지역적 기반에 대한 믿음을 토대로 자신감을 얻고 청주에서 본격적으로 표밭갈이에 나섰다. 박 부장은 “노무현의 승리는 힘이나 계보의 승리가 아니라 논리와 문화의 승리다. 정치는 직함이 아니라 살아온 길로 평가받고, 대중과 함께 현장정치를 하며 대중의 역량을 모으는 것이다. 이제는 떨어지는 과일을 기대하지 말고, 지역에서 자기 실력을 길러 참여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정치개혁특위 소속 김두수(40) 국장은 경기 고양 일산을에 도전장을 낼 채비를 하고 있다. 김 국장은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의 동생으로, 대선 때 자신의 기여도와 ‘후단협’ 활동을 하며 노 대통령과 거리를 둔 김덕배 의원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킨다는 복안이 있다. 김 국장은 “김 의원과의 경쟁에서 기존 민주당원들만으로는 불리하나 개혁당이나 노사모 세력과 함께하면 열세를 만회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정창교(42) 정세분석국장은 인천에서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해온 경력을 밑천삼아 인천에 뛰어들 예정이고, 최동규(42) 기조국장도 학교를 다닌 서울 마포나 현재 살고 있는 경기 부천을 검토하고 있다. 1985년 민정당 중앙연수원 점거농성사건으로 투옥된 경력이 있는 이원욱(41) 기조국 부장은 충남 보령·서천에서 도전할 생각이다.

긴급조치 시대를 통과한 70년대 학번들도 그동안의 소외감을 털고 도약을 꿈꾸고 있다. 70년대 중후반 학번들은 언론의 조명과 정치권의 관심에서 비껴간 세대로 통한다. 이들은 이철 전 의원과 유인태 정무수석 등 74년 민청학련사건 관련자들이 정치권으로 진출한 이후, 정치적 수요가 80년대 학번으로 바로 건너뛰면서 정치적 포부를 펼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 이들은 대부분 시위를 주도하다 긴급조치 7호, 9호가 적용돼 옥고를 치렀으나, 당시는 이런 시위보도 자체가 통제되던 시기라 대중적 지명도를 얻지 못한 점도 영향을 끼쳤다. 2000년 총선에 출마한 적이 있는 박종운씨의 경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서울대 운동권의 핵심 지도부였으나 내세울 만한 경력이 없어 동료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임의로 학생운동조직의 이름을 붙여 경력사항에 넣은 웃지 못할 사례도 있었다.

사진/ 내년 총선은 기득권을 지닌 위원장의 입김이 예전같지 않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30일 김원기 민주당 개혁특별위원장이 전체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한겨레 김정효 기자)

민주당·개혁당 통합 여부도 변수

민통련 시절부터 재야단체의 허리 역할을 해온 이명식 민주당 당보주간(고려대 76학번)은 이근진 의원의 한나라당행으로 공석이 된 경기 고양 덕양을의 선대위원장을 맡은 데 이어 당 조직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대 법대 73학번인 백계문 서울시지부 사무처장은 서울 동작을에 개인 사무실을 내고 기간당원을 모집하는 등 공개적 활동에 나섰다. 백 사무처장은 대선 당시 유용태 의원이 후단협의 핵심으로 활동해온 점과 자신의 ‘일관된 삶’을 대비시킨다는 계획이다. 서울대 74학번으로 님 웨일스의 <아리랑>을 번역한 조성두씨는 대전 서구을에서 지역구 활동에 주력하고 있으며, 78학번인 윤석규 당 개혁특위 사무처장은 분구를 염두에 두고 경기 안산에서 몸풀기에 나섰다.

개혁국민정당의 70년대 학번들도 민주당과의 ‘신설 합당’을 염두에 두고 경선에 대비하고 있다. 서울대 77학번인 유기홍씨는 민주당 이훈평 의원의 관악갑에 도전장을 낼 계획이며, 대우자동차 파업 사건의 홍영표씨는 인천 부평에, 청계피복노조 출신의 김영대 개혁당 사무총장은 서울 영등포갑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공급자원이 가장 풍부한 쪽은 전대협 출신들이다. 이미 임종석·오영식 의원과 이인영·우상호 지구당 위원장 등을 배출한 전대협 출신들은 폭넓게 총선 진용을 갖춰나가고 있다. 전대협 동우회는 2월 1~6기를 망라한 대규모 수련회를 열고, 17대 총선 진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노무현 정권 탄생에 전대협 출신들이 더할 나위 없이 정성을 쏟았고, 노 정권을 개혁적 정권으로 지켜내는 것 또한 전대협 출신들의 몫이라는 데 폭넓은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이에 따라 지역에서 출마가 가능한 사람들은 제도권 틀 안에서 진입을 시도해보자는 큰 틀의 원칙이 마련됐다. 이후 전대협 출신들은 각 기수별로 모임을 갖고 서로 출마지역에 대한 의사를 타진하고 있으며, 이인영 위원장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1~3기에는 기수별로 10여명씩 모두 30~40명이 출마의사를 굳히고 사무실을 내는 등 구체적 활동에 들어갔으며, 적극적으로 출마를 검토하는 사람까지 합칠 경우 70명이 넘는 것으로 자체 집계하고 있다.

명지대 총학생회장 출신 복기왕씨는 충남 아산에 내려가 선대위원장을 맡은 이후 현재 지구당 관리에 들어갔으며, 충남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경선 당시 노무현 후보쪽 대전지역 책임자였던 박영순씨는 대전에서, 영남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박대승씨는 대구에서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전대협 내부 조정… 영남권은 전문직 두각

민주당의 불모지역이라는 대구·경북에서도 참여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다.

대구 지역의 경우 교수·변호사·의사 등 전문직종을 중심으로 한 20여명의 개혁인사들이 ‘대구 화요 공부모임’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보수색채가 강한 대구·경북의 정치기상도를 바꿔보려는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3월 중순부터 매주 화요일에 만나는 이 모임에는 이재용 전 남구청장, 김준곤 변호사, 권오상 변호사, 김태일 영남대 교수, 김사열 경북대 교수 등이 주요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또 젊은 층으로는 권형우 민주당 조직국 부국장을 포함해, 청와대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배기찬·남영주·김학기씨 등이 관여하고 있다. 권 부국장은 경북대 76학번으로 경북 민통련 초대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이 지역 재야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 인물로, 곧 달서사랑시민모임이라는 사무실을 열고 달서을에서 본격적인 표밭갈이에 나설 예정이다. 또 청와대 행정관들도 이 모임에서 “언제든지 뛰어들겠다”는 의사를 강력히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4월 초 대구 팔공산 한 호텔에서 모임을 열었을 때는 이강철 대통령 정무특보가 내려와 강연을 했는데, 이 특보는 신당창당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이 모임이 대구 지역에서 신당의 모태가 돼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는 별도로 주목되는 단체가 3월7일 경북 안동 청소년수련관에서 결성된 ‘경북 국민참여정치개혁연대’이다. 이 단체는 대선 때의 국민참여운동본부 조직을 토대로 결성된 것으로, 내년 총선에 대비해 경북에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 있다. 개혁연대쪽은 “중앙에서 정계개편이나 신당창당의 움직임만 가시화되면 바로 정당조직으로 전환하려는 모임으로, 정당개혁 논의가 지지부진한 중앙당만 믿지 말고 아래서부터 미리 준비를 해놓음으로써 위아래 결합이 이뤄질 때 시간을 절약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 단체에서는 각 지역 조직 책임자까지 선정했는데, 정일순 울진군 의회 의장, 김홍진 영주시 의원, 의성에서는 서울대 82학번으로 농민운동을 해온 김현권씨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노무현 정부의 전위로 내년 총선에 투입될 준비를 하고 있다.

호남에서는 정치신인들이 광주 동구의 김경천 의원, 전북 고창·부안의 정균환 원내총무, 목포의 김홍일 의원 지역구로 몰리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광주 동구의 경우 이영일 전 의원, 박현 전 청와대 행정관, 광주 행정부시장 출신인 송재구 개혁당 지구당위원장, 노인수 전 청와대 사정비서관, 양길승 청와대 부속실장, 김영집 국가균형발전위원회 행정관, 김정수 <무등일보> 사장 등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인물만 현재 20여명에 이르고 있다. 김경천 의원 지역구가 경쟁률이 높아지는 것은 김 의원의 조직 장악력이 떨어진다는 판단과 더불어, 김 의원이 대선과정에서 노무현 후보의 사퇴를 촉구하는 개인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반노’적 성향을 분명히 드러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대선과정에서 노 대통령과 ‘긴장관계’를 유지했던 정 총무의 고창·부안에서도 장세환 전 전북 정무부시장, 김원기 의원 보좌관 출신의 김찬호씨, 안규백 당 지방자치국장, 연청 서울지부장 출신인 김경민씨 등이 출마를 타진하고 있다. 신주류 의원들 사이에서는 정 총무를 꺾기 위해 진념 전 경제부총리 등을 투입하는 방안이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목포에도 김유배 전 청와대 복지노동 수석, 김성진 전 여성부 차관, 유선호 전 청와대 정무수석, 전윤철 전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민영삼 당 부대변인, 홍승태 당 미디어지원단장 등이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정치신인은 가시밭길을 걸어야 한다

밑으로부터 자생적으로 성장한 정치인들이 17대 총선에서 대거 당선될 경우 과거 계보정치의 폐해를 벗어나 정치를 국민의 손으로 돌려주는 긍정적 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게 정가의 대체적 평가다.

그러나 정치신인들이 정치현실의 두꺼운 벽을 뚫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최근의 경우만 보더라도, 민주당 거제시장 재·보궐선거 출마자를 뽑기 위한 당내 경선에서 비교적 약체로 평가되던 배길송 현 지구당 위원장이 1600여명이 참가한 당내 경선에서 너끈히 통과되고, 이 지역 신진세력들이 조직적으로 민 권순옥 거제시 의원이 3등밖에 못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배 위원장의 경우, 기존 당원 500표에서 절대적 우위를 보인데다 지역주민 1100여표에서도 높은 인지도를 앞세워 선전한 것으로 분석돼, 정치신인들이 넘어야 할 장벽의 두꺼움을 새삼 느끼게 했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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