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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박창식의 노무현 읽기] ‘국정 CEO’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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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4-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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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불협화음 잇따라 조직 경영자론 대두…탈권위 시대의 ‘방임형 국정’ 혼란 초래

사진/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각종 형식을 파괴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요즘 청와대 사람들(총원 480여명)은 국가 중추기관답게 착착 맞물려 돌아가면서 왕성한 생산성을 발휘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 반대로 우왕좌왕·중구난방 인상이 좀더 짙다.

이를테면 정무수석실은 4월11일 출입기자들에게 청남대를 미리 구경시켜주는 행사를 마련했는데, 기자들이 당일 상당수 불참하는 우스운 꼴이 빚어졌다. 바로 전날 충북도청이 도청 출입기자를 상대로 마련한 행사를 통해 ‘미리 가본 청남대’ 기사가 다 소화됐기 때문에 청와대 출입기자가 청남대에 갈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정무수석실은 사전 조정기술을 발휘하지 못했다.

도대체 청와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문재인 민정수석은 같은 날 전남 완도 보길도 상수원댐 증축공사를 둘러싼 군청과 주민들의 갈등을 조정한다며 현장을 방문했다. 민정수석실은 “상수원댐 사업을 놓고 자치단체와 주민 간 충돌이 장기화해 참여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서”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하필이면 인권변호사 출신이라 정책조정 경험이 적은 그가 나서는 게 적당한 일인지 궁금했다. 이 밖에도 홍보수석실의 ‘개혁 전도사’ 구실이 시원찮다든지, 정책실의 국정과제위원회 가동이 마냥 늦어진다든지 하는 따위의 ‘빈틈’들이 수두룩한 것이 요즘 청와대 모습이다.

그런 탓인지 청와대가 최근 실시한 국민여론조사에선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한 ‘개혁과제’로서 잘한 일을 꼽아달라는 물음에 청남대를 개방한 건만이 유일하게 꼽혔다. 노 대통령이 ‘고위직 인사에 국민추천 도입’, ‘권력기관의 정치적 중립화’ 등 많은 개혁 메시지를 던졌지만, 국민은 청와대가 뭘 하는지 기본적으로 모르며 그저 어수선하게만 느낀다는 이야기다.

배경은 역시 노무현식 리더십의 허와 실이 뒤엉킨 결과 같다. 노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국민 대중 앞에 신봉하는 가치를 열정적으로 제시해 지지자들의 에너지를 끓어오르게 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민주당 광주경선을 전후한 ‘1차 노무현 바람’, 김민석 전 의원의 탈당에서 촉발된 돼지저금통 러시 등의 ‘2차 바람’,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를 토대로 한 ‘3차 바람’ 등이 그것이다. 노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벌판에서 적장과 일합을 겨루는 ‘검객’으로서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대선 당시 노 대통령의 선거운동은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았다. 민주당 전체가 반노·비노·친노로 갈린 것은 물론이려니와, 선거캠프 내부도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내내 우왕좌왕하던 끝에 이해찬·임채정·이상수 의원 등이 선거대책위원회 본부장 라인을 맡은 뒤에야 근근이 기본적 선거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탁월한 검객에서 성숙한 경영자로

노 대통령 참모들은 이런 문제점들을 두고 ‘탈권위주의 시대에 맞춰 새로운 수평적 리더십’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과도적 혼란이라고 해명한다. 실제로 그는 기본적으로 휘하 참모들에게 일일이 지시하고 보고를 챙기는 ‘꼼꼼한 관리자’와는 거리가 멀다. 권한위임형이라고 할지, 방임형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참모들이 스스로 할 일을 찾아 하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강한 편이다. 국가인권위회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을 때는 노 대통령 스스로가 “일사불란의 시대는 갔다”며 인권위 행동에 문제가 없음을 주장했다.

그러나 국민은 ‘과도적 혼란’이 길어지는 것에 결코 관대하지 않을 것 같다. 후보시절에야 어수선함의 피해가 정당과 지지자에게 돌아가지만, 대통령과 청와대 주변이 어수선하면 피해 범위가 나라와 국민 전체로 확산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이제 ‘검객으로서의 탁월함’뿐 아니라 ‘조직 경영자’로서의 성과도 좀더 신속하게 보여줘야 할 상황이 됐다.

한겨레 정치부 박창식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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