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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노무현맨 ‘토사구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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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4-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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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경선조직팀 사람들 자리 놓고 설왕설래… ‘전리품 없음’에도 적절한 관리 목소리 나와

사진/ 경선팀 사람들을 어찌할 것인가. 2002년 5월19일 경기지역 경선팀 해단식. 경선 직후 경선팀은 해체됐다.
‘경선팀’을 어찌할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평소 “정치를 하면서 크게 빚진 일이 없다”고 말해왔다. ‘3김씨’처럼 수십년 동안 정치를 하면서 가신이나 측근, 열성적 지지자들의 희생에 기대지 않았고, 따라서 신세 갚아야 할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노 대통령에게도 마음 한구석에 부채의식이 무겁게 자리잡은 이들이 있다. 바로 ‘경선팀 사람들’이다.

경선팀은 정확히 말하면 노 대통령의 민주당 내 경선 당시 사조직팀이다. 각 지역의 조직팀장을 맡아 지구당의 일선 대의원들과 접촉하며 온몸으로 현장을 누빈 사람들이다.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2~3%대를 맴돌 무렵 생업을 제치고 기약도 없이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뛰어든 ‘골수 노무현맨’들이다. 어려운 시절 함께 고생한 사람들인지라 이들에 대한 노 대통령의 감정이 각별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를 찾은 43명의 골수 노무현맨들


사진/ 노무현 경선팀은 민주당 경선 때 현장을 누비면서 표를 모았다. 사진은 지난해 3월6일 열린 민주당 대통령 후보 제주 경선 모습.(이용호 기자)
4월9일 저녁 6시, 청와대 충무실에 경선팀이 모였다. 노 대통령이 “한번 모시라”고 해서 마련된 비공식 만찬자리였다. 선거 때 도와준 사람들 가운데 가장 먼저 이들을 초청한 데서 노 대통령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날 참석인원 46명 가운데 대통령 부부와 김경륜 제2부속실장을 제외한 43명 전원이 경선당시 조직팀 소속이었다. 이 가운데는 서갑원 의전비서관과 양길승 1부속실장, 홍성일 총무비서실 행정관 등 청와대 식구도 있었는데, 이들도 원래 경선조직팀의 일원이었다. 노 대통령은 “여러분들과는 이런 자리가 아니라 드럼통에 삼겹살을 구워먹고 싶었다. 이 다음엔 꼭 그렇게 하자”며 살가움을 표시했다. 이들의 얼굴과 이름까지 훤히 기억하는 권양숙씨도 “감사하고 미안하다. 다음엔 부인들과 함께 자리를 만들자”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오랜만에 만나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신상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서 가라앉기도 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신상문제란 다름아닌 선거 이후 제자리를 잡지 못한 경선팀 사람들의 취직문제였다. 경선팀 이사로 활동한 강동원씨가 총대를 멨다. “지난해 경선 때는 꿈과 희망이 있었다. 돈도 안 내려오고 자리보장도 없었지만 사명감과 희망을 갖고 뛰었다. 결국 대통령이 되셨고, 오늘 이 자리까지 왔다. 주변에서는 좀더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왠지 허전하다. 주위 사람들이 ‘팽’당했다고 평가해 얼굴을 못 들겠다. 자리는 못 얻더라도 팽당했다는 인식은 안 받으면 좋겠다. 이 자리엔 내년 총선을 위해 뛰는 분들도 있다. 자리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부담 없이 활동할 수 있도록 명함이라도 하나 만들어주면 좋겠다.” 경기지역 팀장을 맡았던 황지연씨도 “떡 달라, 밥 달라 하지 않았고, TV를 통해 대통령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걱정되는 부분들이 있다. 몇년씩 ‘노무현 대통령’만을 외치고 다닌 사람들을 방치하면 대통령이 정없고 의리없는 사람으로 매도될까 걱정”이라고 에둘러 표현했다.

두 사람의 말이 끝나자 일순 정적이 흘렀다. 대통령이 무겁게 말을 이었다. “어려운 일입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같이 걱정하고 연구합시다.” 이강철 특보는 “대통령께서 경선을 하면서 차비도 못 주고 고생만 시켰는데 저녁 한끼 하면서 위로하고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노무현 캠프의 조직팀이 꾸려진 것은 2001년 상반기. 아직 ‘노무현’이라는 이름과 대통령이라는 단어의 결합이 생경한 시절이었다. 각 지역별 실무팀장 18명이 구성됐다(서울=김영득·정국환·정이택, 경기=황지연·이한주·이효재, 충청=박영순·오원배, 강원=김동준·이순자, 대구·경북=김충환·권헌식, 부산=정윤재, 경남=홍성일, 제주=이종우, 전북=강동원, 광주=양길승, 전남=박규환). 이들이야말로 경선팀 창단멤버인 셈이다.

지지율 바닥일 때 현장에서 활약

자료/ 노무현 경선 캠프에서 지역 포스트 교육용으로 만든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이유와 답변’이라는 팸플릿.
경선조직팀에 사람을 끌어들이고 다독여 이끌어간 사람은 사무총장을 맡은 염동연씨였다. 이강철·윤제술·강동원 이사가 각각 영남과 충청, 호남을 총괄했고, 김강곤 이사도 전남과 제주쪽을 지원했다. 당시는 ‘이회창 대세론’과 ‘이인제 대세론’이 휩쓸던 무렵이어서 대의원들에게 ‘왜 노무현인지’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 팀장은 “주변에서 ‘미친 짓이다. 되지도 않을 일에 왜 뛰어드느냐’고 손가락질하며 비웃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선팀은 40여명으로 늘었다.

조직팀장들은 먼저 각 지구당에 적으면 1명, 많으면 4명 정도의 조직원(일명 포스트)을 세우는 일에 착수했다. 지지율이 낮은 노무현을 도왔다가 대의원에서 제외되거나 왕따당할까봐 노심초사하는 분위기여서 포스트를 세우기가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전북의 경우 10개 지구당의 초창기 포스트가 34명이었다. 포스트가 세워지면 ‘노무현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어야 하는 10가지 이유와 7가지 답변’이라는 팸플릿 등 자료를 나눠줘 숙지하게 했다. 대의원들을 접촉하기에 앞서 이론적으로 무장시키기 위해서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이들에게 “본선은 자신 있으니 내 힘으로 하겠다. 여러분들은 예선만 통과시켜달라”고 다독였다. 조직팀장들은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2001년 8월 전북 무주에서 열린 민주당 전국 청년당원 행사에서 한 외부 연사가 “이인제 최고위원을 후보로 내세워 공고하게 뭉쳐야 한다”고 대놓고 주장하자 연단에 올라가 끌어내린 당사자도 바로 경기지역 팀장 2명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대통령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당의 후보가 되는 데는 현장을 뛴 우리의 힘이 컸습니다. 무명의 야전용사들이라고나 할까요. 언론에 이름 한줄 안 났지만, 우리를 내세운 적이 없습니다.” 노 대통령은 경선 직후 개인 사무실과 사조직 해체를 선언했는데, 이 때 사조직이란 경선조직팀을 뜻했다. 대선 때 사조직을 활용하지 않고 당 중심의 선거를 치르겠다는 의지였지만, 이들은 선거 때도 조직보좌역 명함을 지니고 국민참여선거운동본부 등 여러 선거단위에서 일했다.

조직팀장들은 이력과 경력이 매우 다채롭다. 정당판에 처음 들어온 사람도 있고, 수십년 정치밥을 먹은 인물도 있다. 연청 사무총장 출신인 염동연씨와 연을 맺은 연청식구들도 더러 있고,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도 있다. 본부 조직상황실장을 맡은 손주석씨는 손주항 전 국회의원의 사촌동생으로 서울보증보험에서 9년 동안 일하다 합류했다. 역시 조직상황실장을 맡은 김동수씨는 노 대통령이 의원시절 비서관으로 일했고, 김관수씨는 정동영 의원의 보좌관 출신이다. 윤제술씨와 성수희씨는 김상현 의원, 정국환씨는 김원기 의원의 보좌관 출신이다. 황지연씨는 전직 공무원으로, 박사학위도 있다. 성수희씨는 세종대, 박영수씨는 충남대 학생회장 출신이다. 오경수씨는 충북지역 학력고사 수석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일선 조직 활동가 물먹이는 건가”

사진/ 경선팀 사람들은 대부분 ‘전리품’을 챙기지 못했다. 경선팀을 주도적으로 이끈 염동연(왼쪽) 민주당 인사위원. 이강철 민주당 조직강화특위 위원.
40여명의 조직팀장 가운데 광주지역을 맡은 양길승씨가 청와대 제1부속실장으로, 경남쪽을 맡은 홍성일씨가 총무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취직된 게 전부다. 나머지는 자리를 못 잡은 채 당 주변을 맴돌고 있다. 이강철씨가 대통령 특보직함을 받았지만 나머지는 이사들도 특별한 직함을 받지 못했다. 이사로 활동한 강동원·김강곤씨는 각각 연고지인 전북 남원과 전남 나주에서 내년 총선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당 인사위원회는 조직팀장 전원에게서 희망부서와 이력서, 자기소개서를 제출받았다. 인사위원회에 이력서를 내려면 대개 국회의원의 추천서를 덧붙여야 하는데 이들은 “우리는 대통령이 추천한 사람들”이라며 노 대통령을 추천자로 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으나 일괄적으로 이강철 특보를 추천인으로 내세웠다.

일부 팀장들은 현재의 처지에 대해 서운함을 표시한다. 한 팀장은 “캠프 본부에선 하다못해 여직원들까지도 대부분 청와대로 들어갔는데 일선 조직을 뛴 우리들은 선대본부나 비서실·인수위·청와대 등 핵심기구 구성과정에서 줄곧 소외됐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도 외부에선 조직팀 사람들만 물먹은 것으로 비친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팀장은 “팀장들은 어려울 때 모든 것을 다 바친 사람들이다. 3·1절 때 만세 부른 사람하고 8·15 때 만세 부른 사람하고 똑같이 취급해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4월9일의 청와대 초청 만찬은 이런 분위기를 다독이려는 뜻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직팀의 좌장격인 염동연씨가 나라종금 사건과 관련해 검찰수사 대상이 되면서 이들은 더욱 위축됐다. 당 인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염씨가 자신들을 배려해주기를 기대했으나 걸림돌이 생긴 것이다. 한 팀장은 “생업을 포기한 채 경선에 뛰어든 사람들에겐 일정한 자리를 마련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과하다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01년 민주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광주·전남 국정홍보대회에서 “여러분께 자부심 외에 나눠줄 전리품이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인터넷 사이트 개설과 함께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퀴즈를 냈는데, 이 문구를 노 대통령이 언제, 어느 곳에서 말했는지가 퀴즈문제였다. 청와대쪽으로선 이 부분을 강조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현실의 정치판에선 자부심만 가지고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자리를 못 잡은 이들은 이런저런 유혹을 받기 쉽다. 국민의 정부 때 수십년씩 DJ를 추종하며 당 주변을 맴돈 이른바 ‘동교동 특무상사’들 가운데 상당수가 비리에 연루된 전례가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그냥 모른 채 하는 게 상책이 아니다. DJ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수이므로 적절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내놨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이들을 적절히 소화해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특별한 전공이 있거나 능력을 갖췄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당 추천인사도 반드시 청와대 인사보좌관실을 거치도록 교통정리를 해놓은 상태다.

방치할 수도, 가까이할 수도 없는 상황

이들을 멀리 할 수도, 가까이 불러들이기도 쉽지 않은 노 대통령으로선 어려운 선택이 놓여 있다. 이들을 방치할 경우 ‘낙하산 인사’나 ‘온정주의 인사’라는 비난은 면할 수 있는 대신에 이들이 이권 관련비리에 연루될 위험과 ‘의리 없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노 대통령이 난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지켜볼 대목이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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