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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강금실 “고고한 성주는 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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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4-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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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금실 법무부 장관

국민하게 겸손하면 검찰이 무지무지 존경받을 것… 국보법은 이념보다는 테러 대비방식으로

‘불도저와 립스틱’.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이미지가 강금실 법무부 장관을 만나 하나로 포개진다. 검사들의 집단적 저항을 받으면서도 머리카락 한올 흐트러지지 않고 서열파괴 인사안을 밀어붙여 무수한 검사장들의 목이 날아갔다. 그런데도 ‘전사’라는 느낌은 어디로 가고, 오히려 스카프와 액세서리를 적절히 이용하는 ‘강금실 패션’이 유행이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면 버드나무 속에 철심이 박혀 있는 셈이라고나 할까.

3월29일 경복궁의 봄볕이 내려다보이는 한 양식집에서 강 장관을 만났을 때도 그랬다.


사진기를 갖다대니 쌍꺼풀이 풀린 것을 걱정하고 재빨리 입술을 고쳤다. 하지만 검찰개혁 얘기가 나오자 폭포수 같은 열변을 토해냈다.

그 이중성을 지적하자 “원래 내가 이중 인격자예요”라고 웃음으로 받는다. 하나 더 있다. 경기여고-서울대 법대-판사로 이어지는 초엘리트의 길을 밟으면서도, 빵잡이를 남편으로 받아들이고 돈 안 되는 민변활동을 한 것 말이다. 노무현 정부 들어 가장 주목받는 인물로 부상한 데는, 이런 중층성에 대한 호기심이 작용했을 법하다.

법무부 밖 친구들과도 계속 만나

사진/ 여성단체의 초청 모임에서 참석한 강금실(왼쪽에서 두번째) 장관. 그는 “여성의 관점보다는 인간의 관점을 지녀왔다.”고 말한다. (박승화 기자)

-장관이 된 이후 검찰개혁에서부터 옷 입는 것까지 모든 것이 언론에 기사화되고 있다. 주목받고 있다는 느낌은 어떤가.

=고맙기는 하나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무 느낌이 없다. 주목받고 있다는 것을 의식할 만큼 사적인 마음의 여유가 없다. 법무부에 올 때부터 힘들었고, 앞으로 해나갈 일도 힘들기 때문이다. 또 의식해서도 안 된다. 법무부와 검찰 문제에만 24시간 매달려도 모자랄 판이다. 패션은 그냥 자연스럽게 해오던 대로 했을 뿐이다. 법무법인 지평의 대표를 하면서부터 정장을 입는 게 몸에 배었다. 패션이 화제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법무부 장관이란 자리는 어떤가.

=법무부 밖 일반인이 보는 시각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친구들과 계속 전화하고 만나고 있다. 법무부 안에 갇혀 그 감각을 잃어버리면 성안에서만 고고하게 군림하는 성주와 같아진다.

-여성계 유명인사들이 강 장관을 보호하기 위해 ‘여성정치인경호본부’를 만들었다. 여성계의 기대가 담겨 있는데.

=법대생 300명 가운데 여학생 3명으로, 판사 1천~2천명 가운데 여자판사 8명으로 살아왔으나, 여성의 관점보다는 인간의 관점을 지녀왔다. 판사를 할 때도 같은 동료라는 점에서 출발하고 어울렸기 때문에 사법파동 건의서 작성에 함께 참여할 수 있었다. 언행과 행위의 출발점을 여성이 아니라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해야 성문제도 풀린다. 다만 영향력 있는 집단에서 여성은 소수다. 옷만 봐도 사실 이창동 문화부 장관이 더 파격적이다. 나는 귀고리 한 것말고는 파격이랄 것도 없다. 그러나 소수이기에 주목받는다. 여성이 소수라는 점에서 솔직하게 발언하고 표현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고 본다. 가만히 있고 침묵하면 다수에 동의하는 결과가 돼버린다. 처음에는 소수인 여성이기에 주목받지만 쌓이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아, 여성 장관도 귀고리 할 수 있구나. 아, 여성 장관도 말 많이 하는구먼’ 하는 인식들이 일반화되는 게 중요하다.

-그래도 강 장관에게서 전투성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특히 얼마 전 법사위에서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 것은 아닌가.

=가장 긴장한 순간은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을 때가 아니라 국회 법사위에 섰을 때다. 아, 이분들이 바로 국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무서웠다. 예의를 지켜야 하는 자리라고 봤다. 국회에서 정부의 잘잘못을 따지는데 잘 들어야 하고…. 그런 점에서는 의원들이 장관에게 좀 하대를 해도 된다.

조금 더 리버럴해질 필요가 있다

-그래도 의원들이 ‘젊은 여성’이라고 심하게 다룬 것은 아닌가.

=농담으로 말씀드리면, 원래는 빚도 있고 해서 몇년간 열심히 일해 돈을 번 다음 파리로 유학을 갈 생각이었다. 은퇴를 할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 여성이라는 말을 많이 들으니까….(웃음-젊다고 하니 기분 나쁘지 않다는 뜻이다) 표현하는 방식이 일반적 규범과 도덕률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자고 하는데, 조금 더 리버럴해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자유분방하고 창의적 생각들이 나온다. 미국 사람들은 굉장히 리버럴한 것 같지만, 예의를 지킬 때는 우리보다 보수적이다. 우리는 늘 엄격하다 보니 사람들이 반발을 할 때는 규범과 도덕률을 벗어나 지나치게 무례해지는 것 같다.

(강 장관이 취임인사차 국회의원회관을 도는 장면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의원들이 젊은 여성 장관 접대하기가 껄끄러워선지 모두 자리를 피해버렸다. 특히 여당 한 중진의원은 비서를 통해 ‘도서관에 간다’는 말만 남기고 방을 비웠다. 그때 얘기를 꺼내니 강 장관은 그날 바로 도서관까지 찾아가서 인사를 드렸다. 쉽지 않은 걸음인데 말이다. 언뜻 ‘강 장관에게 예의는 혹시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전략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법무부 장관을 마치고 난 뒤 정치를 할 생각이 있나.

=전혀 없다. 법무부에 오기 전 한달과 온 뒤 한달 동안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내 자신을 다 버리지 않으면 올 수 없는 자리였다. 지금 이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깨끗이 떠나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 내가 좀 떴으니 정치한다고 나서면 얼마나 추한가. 맡은 바 일을 열심히 하고 조용히 한 개인으로 돌아가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고, 그런 생각으로 장관직을 수락했다.

-검찰개혁의 큰 방향은 어떻게 잡고 있나.

=‘국민의 검찰로’가 좋겠다. 검찰이 멋있어지면 좋겠다. 검찰은 수사권이라는 대단한 권력을 쥐고 있는데, 이를 정도에 맞춰 제대로 행사하고 사려 깊게 행동하며 국민에게 겸손하면 검찰이 무지무지하게 존경받을 것이다.

-그동안 검찰은 정치적 외압으로 인해 정치적 사건을 제대로 다루기 힘들었는데.

=앞으로 바꿔야 한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끝이다. 이번에도 외압 얘기가 나오면 정말 끝이다. 법무부 장관은 참 어려운 자리다. 정무직이면서도 검찰의 중립을 지켜줘야 하는 이중적 위치다. 내가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정착시키겠다. 우리나라 발전속도로 봐서 한번 정착되면 다시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법무부 차관 내가 추천”

-그래도 이번 인사를 두고 호남 출신 몰락, 부산·경남 부활, 대통령 동기 중용 등의 말들이 많다.

=법무부 차관의 경우 내가 추천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얘기를 들었는데 내가 23회다 보니 16회 이상으로 올라가면 조금 부담이 돼 17회에서 추천이 많았다. 재야에 있는 분도 추천을 많이 받았는데, 그분도 대통령과 동기다. 시간이 지나면 신뢰를 받을 것이다.

처음으로 하는 인사라 이분이 호남인지 PK(부산지역)인지 하나도 고려하지 않았다. 그저 내부적 기준에 의해 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몰락한 케이스에 호남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인사에서 어려운 점은 PK 출신은 많은 데 비해 16회 이하에서 호남 출신이 너무 없다는 점이다. 검사 임용을 안 한 경우도 있고, 승진에서 차별이 오랫동안 쌓이다 보니 생긴 것일 수 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지역안배가 필요하다. 또 서울대 출신이 아닌 비주류에 대해서도 우대해나갈 생각이다. 그런 분들이 인사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심리가 있다. 어느 조직이나 구성원들이 이 조직이 나를 아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면 조직이 죽는다.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나.

=우리나라가 실질적인 법치주의를 해본 적이 없다. 김영삼 정부 때도 법치주의를 무시했고, 김대중 정부가 인권을 신장시키고 남북 문제에 진전을 가져온 것은 굉장히 높게 평가하지만 역시 법치주의에서는 약했다. 이런 것들이 정상화돼야 한다.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는 정치적으로 큰 사건 때문에만 국민이 불신하는 게 아니라 평소에 쌓인 불만이 터지는 것이다. 토론회에서 내게 지지를 보낸 이유도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국민의 인권이 보장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수사과정에서 인권침해 시비가 없어져야 한다. 검찰청법에는 검사가 피의자를 기소할 뿐 아니라 피의자의 인권도 보호하도록 돼 있다. 그 점에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

-검찰개혁에 대한 내부 반응은 달라진 게 있나.

=청와대 업무보고 뒤 법무부가 자체적으로 2시간 정도 토론회를 열었다. 내가 놀란 것이 토론회에 참여한 검사들 스스로가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생각에 다른 점이 없었다는 것이다. 모두 개혁에 외부인사가 참여해야 하고, 외부인사가 보는 관점을 따라가야 한다고들 말했다. 대검에서도 준비가 많이 돼서 준비된 것을 가져다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기만 하면 될 것 같다.

국보법 함부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아

-특별사면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취임 초에 해야 했는데 준비가 덜 돼 시기를 놓친 측면이 있다. 전체적으로 1천명 정도가 검토대상이다. 국가보안법 위반 기결수는 17명밖에 되지 않고, 대부분 노동이나 학원사건과 관련된 공안관련 사범들이다. 이번에 일반 형사범은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한총련 학생들에 대한 처리방향은.

=우선 기소중지가 되면 수배해제 자체가 법적으로는 어렵다. 책임이 무거워 꼭 구속이 불가피한 경우 외에는 불구속수사하는 방향으로 내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일단은 본인들이 나와서 조사를 받아야 한다. 한총련 합법화는 재판부에서 해야지, 검찰이 합법단체라고 선언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대법원 판결이 바뀌어야 한다.

-한총련이나 국가보안법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민감한 문제다. 어떤 입장을 취할 생각인가.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개방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북한 핵문제 등 여전히 남북대결 상황이 현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사정을 두루두루 고려해야지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 법무부라는 것이 법제도를 맡고 있다는 점에서는 보수적이어야 하고, 국민 전체 인권을 옹호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점에서는 선진적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국보법을 함부로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미래지향적으로 보면 이념 문제보다는 테러행위에 대비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서 바꿔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남북교류협력법이나 국보법 다 지리멸렬해 있다. 앞으로 국가안보나 남북문제를 조화롭게 가져갈 수 있는 통합된 법체계가 나와야 할 것이다.

-검찰 공안부를 폐지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공안부 축소론이나 폐지론은 종전의 이념적 차원에서 부정적 측면만을 본 데서 나온 것이다. 미래지향적으로 공안기능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 안녕질서에 위협이 되는 테러행위나 국익저해 행위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공안의 약화가 아니라 재정립이다.

재소자에게 바란다

-이념 대결로 인한 가족사의 불행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제주 4·3의 여파로 제주농고 교감이던 아버지가 구속된 적이 있다. 그러나 아버지 관사에 신 대령이라는 토벌대 대장이 묵을 정도로 토벌대쪽과 더 가까웠다. 단지 비상계엄 상황이었는데도 학생들 가르쳐야 한다고 계엄군과 싸우고 학교에 들어가는 것 때문에 미움을 산 것 같다. 그래도 악의는 없었으니 결국 무죄판결을 받았을 것이다. 아버지의 정치성향은 오히려 우익에 가까웠다. 우리 가족뿐 아니라 제주에서는 4·3과 연관이 되지 않은 집이 하나도 없다.

-교정이나 출입국관리 분야에서도 개혁이 요구된다.

=외국인 노동자와 재소자 인권 문제가 자꾸 제기된다. 최소한 시비가 일어나지 않는 상황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동북아 중심국가로 간다는데, 외국에서는 이미 정착된 제도가 우리 사회에서 병목현상이 벌어지면 모두 공염불이 된다. 일반인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부분이 선진화되고 투명해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재소자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몇년 전부터 재판받을 때 미결수에게는 사복을 입도록 하는데 시행이 안 되고 있다. 사복 입으면 건방져 보여 판사들이 형량을 높일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다. 실질적인 법치주의가 정착하려면 공무원뿐 아니라 일반국민도 같이 가줘야 한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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