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의 노무현 읽기
권위로 찍어누를 수 없는 시대 변화의 최대 무기…“무늬만 토론”경계론도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우리나라가 토론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모든 부문에서 활발한 토론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청와대에 들어가자 수석보좌관회의와 국무회의 운영방법을 바꾼 것을 비롯해 본격적으로 토론공화국 건설에 착수했다.
국무회의는 과거에 보고안건과 심의안건 위주로 진행하던 것에 토론안건이란 것을 추가했다. 청와대에서는 정책실의 이병완 기획조정비서관이 국무회의 준비 담당인데, 기획조정비서관실은 회의자료를 취합하면서 다음 국무회의 토론 안건과 토론을 위한 발제 담당 장관을 미리 지정한다.
3월18일의 국무회의는 2004년도 예산편성안이 토론 주제였다. 과거 같으면 기획예산처가 예산편성 ‘지침’을 만들어 보고하면 형식적 논의를 거쳐 대통령의 재가를 ‘득’함으로써 정부 방침으로 확정됐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예산편성안은 지침이 아니며 토론안이라고 제한을 둔 다음 각 부처 장관들이 의견을 내도록 주문했다.
3시간이나 걸린 국무회의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는 정책은 정책이 될 수 없다. 게다가 부처별 이기주의 성격의 밥그릇 문제도 함께 딸린 사안이기 때문에 장관들은 앞다퉈 발언을 했으며, 그 결과 국무회의가 3시간이나 걸렸다. 물론 각 부처는 그 전에도 기획예산처 관리들을 붙잡고 치열한 예산투쟁을 벌였다. 예산안을 짤 때면 기획예산처 사무실에 다른 부처 관리들이 줄을 섰으며, 장외에서의 향응·접대 등 물밑 로비를 벌인다는 설도 무성했다. 그것을 국무회의에서 토론을 벌인다고 기존의 로비 관행이 없어지지야 않겠지만, 어쨌든 문제를 햇볕 아래로 끌어낸 가운데 이견을 조정해본다는 의미는 생긴 셈이다.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도 바뀌었다. 각 수석실이 보고하는 내용 가운데 대통령이 수시로 “이건 토론해봅시다”라고 화두로 끌어올리고 있으며, 정무수석실 신봉호 정무기획비서관이 맡아 그날그날 토론할 거리를 미리 준비한다. 한번은 수석보좌관회의에 김대중 정부에서 만든 제2건국위원회를 폐지하는 안이 보고됐다. 제2건국위는 새로운 국민운동상을 정립한다며 반관반민 조직으로 만든 것인데, 정치적 중립성 시비가 벌어지고 실효성을 발휘하진 못한 터였다. 그래서 폐지 의견이 우세했는데 유인태 정무수석이 “그래도 조직 스스로 충격을 완화시킬 말미는 주는 게 좋겠다”고 반박해 일단 폐지 결정은 유보됐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는 대통령 관저에서 수석보좌관들과의 자유토론이 벌어진다. 문희상 비서실장은 “포도주를 마시면서 일정한 주제를 정하지 않은 채 난상토론을 벌이는 이때가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문 실장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참모들의 의견이 뻔하게 한쪽으로 모아질 경우에는 박주현 국민참여수석 같은 이가 “내가 반대 토론자 노릇을 하겠다”며 일부러 논쟁을 유도한다고 한다.
토론이라는 의사결정 방법은 여러 장점이 있다. 먼저 혼자 결정하는 것보다는 중의를 모음으로써 실수를 줄이고 최적의 해답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조직 구성원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함으로써 자발성과 책임성을 높인다. 정보를 공개하고 공유함에 따라 담합이나 비리 가능성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토론공화국에는 이러한 실용적 이점 이상의 중층적 의미가 담긴 것 같다.
먼저 노 대통령이 놓인 시대상황을 보자. 그는 과거 대통령과 달리 전통적 의미의 막강한 ‘대권’을 휘두르기 어렵게 돼 있다. 김영삼·김대중 두 민간정부에서부터 사실 대통령의 절대권력은 퇴조해왔는데, 노 대통령은 그나마 김영삼·김대중 같은 정신적 카리스마도 없는 상태다. 당-정 관계만 봐도 노 대통령은 당-정 분리 때문에 당을 지배할 수 없으며, 지방분권 추진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기에 중앙정부 권한도 더 줄여야 할 판이다.
‘통치’가 아닌 ‘협치’ 모델을 세운다
권위로 찍어누를 수 없다면 대안은 명백해진다. 수평적 관계구조 속에서 상대를 설득함으로써 자발적으로 참여시키는 길을 찾아야 한다. 또한 이해관계가 맞서는 제반세력의 등장으로 급속히 다원화하는 사회에서 갈등 조정자의 필요성이 커졌다. 한마디로 “주먹으로 꿇릴 수 없으면 말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토론은 이러한 시대상황 변화에 대처할 최대무기가 될 수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을 지냈으며 ‘참여 정부’의 국정철학 전도사로 꼽히는 성경륭 한림대 교수(사회학)의 진단도 같은 맥락에서 참고할 만하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1차 민주화’는 형식적·제도적 민주주의(대의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성과를 남겼다. 그러나 소수 정치엘리트 중심의 특권과 부패, 배제정치는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2차 민주화’를 해야 하는데, 방향은 국민주권의 참여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민주적 참여의 통로를 넓혀 정부와 시민사회가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과거의 통치가 아닌 협치(協治) 모델을 정립해야 한다.”
인터넷 시대와 함께 사회 일반에 토론민주주의가 확산되는 흐름도 노 대통령은 감안한 것 같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까지 정적들로부터 색깔이 의심스럽다는 공격을 자주 받았다. 경선 때 이인제 후보가 ‘메이저 신문 국유화’ 발언을 들어 노무현 후보를 공격한 것이 대표적이었는데, 그때 몇몇 보수신문들은 이인제쪽 주장을 1면 톱으로 대서특필함으로써 노 후보를 압박했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인터넷을 통해 대대적 토론을 벌였으며, 그 결과 노 후보는 지지율을 방어할 수 있었다. 신문 매체의 불가피한 특성이 ‘거두절미’며 거두절미 기법이 종종 당파적 목적에 악용되는 반면, 인터넷상 토론은 정보의 완전한 공개와 공유가 특징이다. 그 결과 인터넷을 통해 ‘메이저 신문 국유화’ 발언 전말이 ‘별 게 아님’을 알게 된 네티즌들이 거꾸로 ‘노무현 지킴이’가 된 바 있는데, 이런 식으로 노 대통령은 진작부터 토론민주주의의 수혜자였다.
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도 집권 초기 국무회의를 토론무대화하겠다고 공언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초기에 국민과의 대화 같은 텔레비전 토론을 시도하면서 토론문화 창달과 권위주의 시대 마감 따위를 외쳤으나 다들 흐지부지된 사례들이 있다. 권력자 입장에선 사실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수하들이 군소리 없이 집행해주는 게 아무래도 편하다. 따라서 노 대통령도 너무 믿기엔 이르다.
노 대통령을 너무 믿지 말라
사실은 초심 실종 여부가 의문스러운 일이 벌써 있었다. 노 대통령은 3월14일 대북송금 사건 특검법을 수용해 공포할 것이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냐를 결정하기 위해 임시 국무회의를 소집했다. 그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장관들에게 자유로운 토론을 요청했다. 그 결과 6명의 장관이 발언에 나섰는데 그 가운데 5명이 거부권 행사를 주장했다. 특검 수사과정에서 남북 간 대화채널이 손상될 측면을 장관들이 중시한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40여분간 토론을 지켜본 뒤 “이 문제는 나에게 맡겨달라”며 일방적으로 결론을 내린 뒤 곧바로 기자실을 찾아가 수용공포 결정을 발표했다.
토론에 붙인 결과 다수가 자기 생각과 다르면 토론을 더해서 설득하든지, 최소한 결정을 보류하고 나중에 다시 검토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늉만 내는 토론이 될 수 있다. 노무현의 토론공화국에는 이러한 수상쩍은 이면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공화국의 겉과 속을 잘 살펴봐야 할 것 같다.
한겨레 정치부 박창식 cspcsp@hani.co.kr

사진/ 청와대의 수석보좌관회의. 각 수석실이 보고하는 내용 가운데 대통령이 수시로 “이건 토론해봅시다”라며 화두로 끌어올린다. (청와대사진기자단)
3시간이나 걸린 국무회의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는 정책은 정책이 될 수 없다. 게다가 부처별 이기주의 성격의 밥그릇 문제도 함께 딸린 사안이기 때문에 장관들은 앞다퉈 발언을 했으며, 그 결과 국무회의가 3시간이나 걸렸다. 물론 각 부처는 그 전에도 기획예산처 관리들을 붙잡고 치열한 예산투쟁을 벌였다. 예산안을 짤 때면 기획예산처 사무실에 다른 부처 관리들이 줄을 섰으며, 장외에서의 향응·접대 등 물밑 로비를 벌인다는 설도 무성했다. 그것을 국무회의에서 토론을 벌인다고 기존의 로비 관행이 없어지지야 않겠지만, 어쨌든 문제를 햇볕 아래로 끌어낸 가운데 이견을 조정해본다는 의미는 생긴 셈이다.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도 바뀌었다. 각 수석실이 보고하는 내용 가운데 대통령이 수시로 “이건 토론해봅시다”라고 화두로 끌어올리고 있으며, 정무수석실 신봉호 정무기획비서관이 맡아 그날그날 토론할 거리를 미리 준비한다. 한번은 수석보좌관회의에 김대중 정부에서 만든 제2건국위원회를 폐지하는 안이 보고됐다. 제2건국위는 새로운 국민운동상을 정립한다며 반관반민 조직으로 만든 것인데, 정치적 중립성 시비가 벌어지고 실효성을 발휘하진 못한 터였다. 그래서 폐지 의견이 우세했는데 유인태 정무수석이 “그래도 조직 스스로 충격을 완화시킬 말미는 주는 게 좋겠다”고 반박해 일단 폐지 결정은 유보됐다.

사진/ 노무현 대통령이 3월21일 박관용 국회의장과 여야 정치지도자 등을 청와대로 초청해 이라크 침공을 논의함으로써 ‘대화정치’의 또 한 사례를 기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