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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젊은피는 정치판에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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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0-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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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야 의원이 말하는 386의 정치실험… 새 정치를 위한 도전에서 분화까지의 전말

“386의원들. 그들은 과연 새 정치의 희망인가, 아니면 그저 금배지를 달고 있는 또 한 사람의 국회의원일 뿐인가.”

4·13 총선에서 ‘바꿔 열풍’을 타고 정치권에 화려하게 등장한 ‘젊은피’인 386의원들. 그들은 한동안 계보정치 타파와 크로스보팅 보장 등을 외치며 새 정치문화 창출의 기대주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현재 정치권 안팎에서는 그들의 향해 이런 회의적 질문이 터져나온다.

당선 직후 너나없이 외쳐대던 정치개혁의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국회가 몇 개월째 파행을 거듭하지만 김성호·장성민(민주당), 안영근(한나라당) 의원 정도를 제외한 대다수 386의원들은 침묵하고 있다. 오히려 몇몇 386들은 소속정당 지도부의 생각을 대변함으로써 “자기색깔을 잃었다”는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다.

대체 386의원들의 그 왕성한 혈기는 어디로 갔을까. <한겨레21>은 지난 6개월 동안 당 지도부의 끊임없는 눈총과 ‘왕따’ 속에서도 비교적 꾸준히 제목소리를 내왔다고 평가받는 장성민·안영근 두 여야 의원의 입을 통해 그들의 복잡한 속내를 들여다봤다.


기성정치의 잘못된 관행 허물지 못하고…

(사진/기성정치권의 두터운 벽을 실감했다는 민주당 장성민 의원.그는 386정치인에 알곡과 쭉정이가 뒤섞여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6개월은 우리 386 안에 쌀과 보리, 뉘까지 마구 뒤섞여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젊은 신진들이 모였으면 기성정치의 잘못된 관행을 허무는 희망이 됐어야 했는데…. 솔직히 다수가 기성정치의 두터운 벽에 포섭됐고 이제 안주하고 있다.” 장성민 의원은 386의 공과를 묻는 질문에 대뜸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386들이 기성정치에 대한 도전을 통해 새 정치의 싹을 틔우기보다 흡수·통합됐다는 비관적인 진단이다.

지난 6개월 동안 386의원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스스로 이렇게 가혹한 평가를 내리는 것일까.

장 의원. 그는 16대 공천과정에서부터 동교동계의 비토로 낙천위기까지 몰리면서 기성정치권의 두터운 벽을 실감했다. 그런 만큼 정치개혁에 대한 각오와 희망도 남달랐다고 한다. “국민적 이익보다 개인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기성정치권에 대한 혁명없이는 정치에서 희망이 회복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함께 당선된 386 동료들과 그 혁명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장 의원을 비롯한 386들은 당선 직후 곧바로 기성정치권을 향해 도전장을 던졌다. 첫 도전은 4월27일 시작됐다. 아직 당선자 신분인 김성호, 송영길, 임종석 등 386 대표주자들과 함께 당과 국회개혁을 위한 세력화를 목표로 개혁모임을 결성하기로 의기투합한 것이다. 이들은 이날 당을 장악한 동교동계의 당직 배제와 2선 후퇴라는 도전적인 당 쇄신 방안도 살짝 내비쳤다. “당시 누구랄 것도 없었다. 침체된 당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넣고, 민주당이 새 정치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당시 체제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러나 동교동계 중심의 지도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김옥두 사무총장은 즉각 “당직 개편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받아쳤다. 이들은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눈앞에 닥친 국회의장 선출을 놓고 여야 지도부가 신경전을 거듭하던 5월3일 다시 나섰다. 이번에는 여야가 따로 없었다. 남경필, 원희룡, 오세훈 의원 등 한나라당 386들은 “그동안 대다수 의원들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당론에 이끌려 거수기 노릇을 했지만 이번 국회의장 선출에서는 크로스보팅을 보장해야 한다”고 잔뜩 목청을 높였다. 장 의원을 비롯해 김성호, 송영길, 임종석 등 민주당 내 386은 이종걸, 정범구, 함승희 의원 등 범 386으로 분류된 40대 초선들과 ‘창조적 개혁연대’를 구성했다. 그리고 “크로스보팅, 자유경선, 의장의 당적이탈 등이 민주적 국회운영을 위해 당연히 필요한 조처”라고 밝히며 뜻을 같이하는 인사들과 세규합 및 여야 386의 연대를 선언했다.

그러자 민주당 당 지도부는 집요한 회유와 협박을 시작했다. 5월4일 동교동 좌장인 권노갑 당시 민주당 상임고문이 저녁을 사겠다면서 이들을 비롯해 30대 당선·낙선자를 한 음식점에 불러모았다. 그리고 가시돋친 말을 했다. “386들은 참신하고 개혁적인 목소리라는 정체성은 있으나 당이 먼저이므로 조직의 일원으로 당을 위해 일하라.” “….” 말이 밥 먹는 자리였지 자꾸 나서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경고였다. 김옥두 총장도 이날 아침 이들을 모아놓고 “정치인은 혼자 튀는 게 아니라 선후배가 끌어줘야 가능하다. 자제하라”고 경고장을 날린 상태였다. 기성정치에 대한 젊은피의 도전이 더 거세지기 전에 미리 싹을 꺾겠다는 것이었다. 장 의원은 “당시 어떤 당직자로부터 ‘잘난 줄 알았으니 너무 튀지 말라’는 전화를 3번이나 받을 정도로 압박이 심했다”고 말했다.

장 의원 등은 고민에 빠졌다. “소신을 계속 펼칠 것이냐, 아니면 꺾을 것이냐.” 결국 안팎의 압박에 직면한 이들은 5월7일 밤 서울 시내 한 호텔 음식점에서 긴급모임을 열었다. 무려 5시간 동안 논란이 벌어졌다.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뒷배경으로 기성정치의 압박을 정면돌파하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그리고 ‘정치개혁 요구는 민의를 반영한 것이며, 앞으로 흔들림 없이 의견을 개진해 나가자’고 결의했다.”

한나라당 386들도 비슷한 주장을 펼치며 미래연대를 중심으로 의견을 모아갔다. 여야 386의 반란은 5월17일 19명의 젊은 당선자들이 망월동 묘역을 공동참배하는 것으로 첫 결실을 맺었다. 그리고 5월21일에는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여야 30∼40대 초선 당선자 17명이 모여 법정기한 내(6월5일) 국회개원, 신진 출마자에게 불리한 선거법 개혁, 의장 후보에 대한 자유투표 관철 등 공동투쟁 방침까지 합의했다. 장 의원은 당시 386의 분위기를 “소속 정당에 따라 국회의장 선출 방식 등에 미묘한 차이가 있었지만 정치개혁을 위한 초당적 연대 원칙에 공감한 상태”라고 말했다.

개인적 불이익 우려하며 푸른꿈 접어

그러나 서서히 결집하며 힘을 받던 여야 386들의 움직임은 뜻밖의 사건으로 분열의 길로 들어선다. 올림픽파크텔 결의가 있은 지 닷새 뒤인 5월26일, 언론에 김민석, 송영길 등 10여명의 민주당 소속 젊은 정치인들이 망월동 참배 뒤 광주시 한 술집에서 접대부와 함께 술을 마신 사건(이른바 ‘5·17 광주 술파동’)이 뒤늦게 보도된 것이다. 언론은 일제히 “검증이 필요한 ‘새피’”라며 공격하고 나섰다. 거대한 비난여론 속에 파문의 당사자인 민주당 386은 물론 한나라당 386들까지도 급속히 위축됐다.

바로 이때 이들의 계속적인 도전에 골머리를 앓던 기성정치권이 집요하게 반격을 가해왔다. 그리고 386은 서서히 분열됐다. 장 의원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5·17 술판은 하나의 분기점이었다. ‘386과 기성정치권이 다를 게 없다’는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그동안 미묘한 견해차를 덮고 개혁에 동의했던 386 내부가 분화하기 시작했다. 몇몇은 함께 묶여 있을 경우 자신이 당할 불이익을 따지며 전전긍긍했다. 그리고 하나둘 새 정치를 구현하겠다는 푸른꿈을 접기 시작했다.” 때맞춰 민주당 지도부는 임종석, 송영길, 이종걸 의원 등 몇몇 386들을 원내부총무, 정조위부위원장 등 당직과 예결위원 등 국회직에 중용하면서 이들의 분리를 더욱 부채질했다. 장 의원은 “총무 경선 뒤 이어진 당직 배분은 사실상 386세력에 대한 기성정치권의 분리·흡수전략 성격이 강했다”고 주장했다. 어쨌든 이런 과정을 거치며 민주당의 386들은 ‘튀는 행동’을 지속하는 쪽(장 의원과 김성호 의원 등)과 상대적 침묵하는 쪽(김민석, 임종석 의원 등)으로 나뉘었다.

물론 이후 몇몇 민주당 386들은 술판의 충격을 딛고 목소리를 모아내려는 몇 차례 시도를 거듭했다. 특히 장 의원과 김성호, 송영길, 임종석 의원 등은 8·31 최고위원 경선전에서 김민석 의원을 청년대표로 조직적으로 밀면서 재기를 모색한다. “386 대표주자인 김민석 의원이 젊은층의 정치개혁 시도를 사사건건 가로막는 기성정치권에 전면적으로 도전장을 내고 당선되면 젊은 바람이 다시 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게 장 의원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 시도는 386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만을 느끼며 끝났다.

“김성호 의원과 나는 김민석 의원에게 계파정치에 대해 명백히 비판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주춤거렸다. 오히려 안동선 의원을 ‘당에 오랜 뿌리가 있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때 우리는 더이상 생물학적 나이로 세대를 나눈 386을 개혁세력과 등치시키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그래서 장 의원과 김성호 의원은 오히려 세대는 다르지만 개혁의 목청을 한껏 높이고 있는 정동영·추미애 의원을 위해 뛰기 시작했다. 그는 덧붙였다. “정말 서글픈 경험이었다. 역사적 흐름을 읽고 국민이 부여한 정치적 명분을 소신있게 펼쳐야 할 386들이 그저 ‘젊은피’ 이미지에 기대 정치적 성장에 몰두하는 등 어느덧 기성정치의 패러다임에 포섭되고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더이상 집단적 목소리 기대하기 힘들어

(사진/386정치인들의 정치개혁을 위한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지난 7월18일 국회정상화를 촉구하며 상대방 공격수 노릇을 거부하겠다고 발표하는 여야386의원들)
이후 민주당 386의 분화는 더욱 명확해지고 있다는 게 장 의원의 설명이다. “이제 의총장에서 당 지도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386과 당 지도부의 지시에 따라 발언하는 386의 모습이 공존한다. 몇몇 386 대표주자들은 아무 죄의식 없이 지도부와 골프를 치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분화는 어느덧 386들 내부에 두터운 불신의 벽까지 쌓았다. 국회가 장기파행을 거듭한 9월15일 민주당 의원 13명이 ‘지도부 자진사퇴’와 ‘한빛은행 의혹에 대한 특검제 도입’을 촉구한 이른바 ‘13인의 반란’은 그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당 내에서 당 지도부를 정면 비판한 이 역사적 사건에는 당연히 이름이 오를 것으로 기대된 김민석, 임종석, 이종걸 의원 등의 이름은 없었다. 오히려 그 자리를 추미애, 곽치영, 이재정, 박인상, 김태홍 의원 등이 대신했다. 한 성명 참석의원은 “당시 참석자들이 임 의원 등의 참석을 제안하는 문제에 대해 뜨악한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장 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386의 도전이 정치개혁의 목소리를 높이고 정치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어느 정도 확대하는 등 몇몇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더이상 386이라는 세대의 이미지만 가지고 한목소리로 정치개혁을 외칠 수 없다는 것도 서로 알게 됐다.” 386들이 더이상 한목소리를 낼 수 없을 정도로 분화된 만큼 세대와 나이의 구분을 뛰어넘어 생각의 동질성에 기초한 연대로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근 386의 집단적 목소리가 사라진 데는 이런 아픈 속사정이 있다.

“실천 의지와 굳은 용기도 없었다”

(사진/당론을 거스르며 국가보안법 개정을 요구하기도 했던 한나라 안영근 의원.그는 386의원들의 철학적 고민을 촉구했다)
안영근 의원. 그는 엄밀히 세대를 구분한다면 ‘386’은 아니다. 나이가 41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내 초·재선들 가운데 기성정치를 향해 누구보다 바른소리를 하는 ‘범 386’으로 분류된다. 그런 그도 지난 6개월 동안 이뤄진 자신들의 도전에 대해 좀더 근본적이고 가혹한 평가를 내린다.

“386은 80년대를 의미있게 살았다며 연령별로 하나의 그룹을 형성했다. 언론은 그들에게 정치개혁을 위한 뭔가가 있는 것처럼 이미지를 만들었고, 국민들은 그런 기대 속에서 표를 던졌다. 그러나 지난 6개월은 그들에게 정치개혁에 대한 일치된 내적 동력이나 용기, 철학이나 정체성이 없었다는 것을 드러냈다.”

안 의원 스스로 386들과 크로스보팅 보장, 보스정치 타파를 소리높여 외쳤고 때로는 당론을 거스르며 국가보안법 개정을 요구했다. 또 몇몇 민주당 386들과 상대당에 대한 공격수 역할을 거부하겠다는 성명서까지 냈다. 때문에 “아예 탈당하라”는 압력에도 시달렸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동참했던 386의 도전에 대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퍼붓는다. “우리는 등원 전부터 크로스보팅 보장과 보스정치 타파를 외쳤다. 그러나 자기 주장을 관철할 수 있는 현실적 힘이나 방식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실천 의지와 굳은 용기도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주장이 이뤄졌을까. 안 의원은 “당시 누군가 아이디어를 내면 ‘그게 좋은 거니까’라는 바람이나, ‘언론용 이벤트’로 일단 내뱉고 보자는 식으로 정치개혁을 외쳤다”고 말했다. 4·13 총선 직후 여야 정치권을 후끈 달궜고, 여야를 떠나 386의 공동연대를 모색하는 핵심계기가 됐던 국회의장 선출방식에 대한 공론화가 정작 그것을 관철시키려는 깊은 고민없이 시도됐다는 고백인 셈이다.

안 의원은 “그런 중요한 문제는 면밀히 계산해서 발언하고 여론을 조직적으로 모아가야 하는데 그런 계획이 없었다. 때문에 언론에는 떠들었지만, 정작 의총장이나 당 연찬회 등에서 이를 관철하려는 적극적인 발언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실제 당시 한나라당 386들은 이 총재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크로스보팅은 당론이 없거나 크로스보팅 하기로 당론을 정한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못박자 곧바로 물러섰다. 5월9일 열린 연찬회에서도 오세훈, 정병국 의원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모았으니 선배들이 고려해 달라”고 소극적 발언을 했을 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못했다. 결국 그뒤 한나라당 386들의 새 정치 움직임은 민주당 386과의 망월동 공동참배(5월17일)와 올림픽파크텔 결의(5월21일) 정도에 머물렀다. 의약분업에 따른 혼란과 국회파행 등 굵직한 현안에는 침묵했다. 미래연대 차원에서도 최근까지 집단 농활 외에 뚜렷한 움직임이 없었다.

안 의원은 386 초선들이 초기 자기 주장을 계속 발전시키지 못한 이유를 의원직 수행에 대한 철학적 고민의 부재와 기성정치권에 대한 동화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만약 초창기에 주장했던 국회운영 원칙에 관한 고민을 지금까지 계속했다면, 오랜 파행을 겪는 국회상황에 대해 발언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몇 사람을 제외한 다수의 386은 침묵했다. 결국 그런 주장이 1회용이었다는 게 판명난 셈이다.” 국민들은 정치개혁과 올바른 국회운영상을 만들라고 386을 선택했지만 정작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노력이 부족했다는 반성인 것이다.

386을 선택한 국민의 뜻을 외면할 건가

(사진/여야 지도부들은 회유와 협박 그리고 중용을 통해 386의원들을 분리했다.당지도부와 이야기를 나누는 임종석(맨왼쪽)의원)
그는 또 거대한 현실정치의 벽 앞에서 변해가는 자신들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솔직히 나도 그렇다. 지도부는 끊임없이 인간적인 친밀감으로 접근한다. 자꾸 만나 밥을 얻어먹다 보면 어느 순간 정작 제기해야 할 문제를 인간적인 곤혹스러움 때문에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국회는 이런 것이다. 어차피 당론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이런저런 현실을 하나둘 인정하면서 자기 통제가 이뤄지고 자연히 정치개혁에 대한 목소리도 작아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덧 “누군가 먼저 나서면 하겠다”는 관조주의자로 바뀌면서, 당론을 추종하거나 오히려 당직 배치 등 현실적인 이익에 연연하는 단계에 이른다. 침묵하는 한나라당 386의 현실은 당의 압박과 주변의 정치환경에 이렇게 순치되면서 적응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과 동료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지도부가 압박하고 눈총을 준다고 애초 주장을 접는다면 결국 기성정치에 포섭되는 것이다. 그럴수록 오히려 자기 영역을 계속 만들어가야 한다. 왜 내가 의원이 됐는지도 자꾸 생각해야 한다.”

신승근 기자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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