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 행정관급에 80년대 학생운동권 대거 포진… ‘빵잡이’도 눈에 띄어1
청와대가 수석비서관과 보좌관, 비서관에 이어 실무를 담당하는 3급 이하 행정관급 인선을 대체로 마무리지었다. 각 부처에서 파견된 이들을 빼면 1980년대 대학시절을 보낸 이른바 ‘386세대’가 대다수다. 학생운동권에 몸담은 ‘운동권의 투사’들이 청와대에 대거 포진한 셈이다. 학생회 간부 출신과 시국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른 이른바 ‘빵잡이’도 더러 눈에 띈다.
공무 출신들과 마찰은 없을까
노무현 대통령과 오래 인연을 맺은 참모그룹도 대거 진입했다. 노 대통령과 가까운 국회의원 보좌관들과 부산과 대구의 운동권 인맥도 상당수 청와대에 입성했다. 젊음과 개혁성으로 무장한 이들이 청와대와 공직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지, 아니면 공무 출신 청와대 인사들과 마찰을 빚으며 겉돌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노 대통령의 측근그룹은 민정수석실과 부속실, 국정상황실 등 핵심보직에 자리를 잡았다. 문재인 민정수석을 보좌하는 고성규씨는 노 대통령이 총애하는 인물이다. 97년 노 대통령의 개인 영어교사로 연을 맺은 이후 민주당 경선 직전까지 그림자처럼 수행했다. 서울대 약대를 나와 약국을 경영하면서 적중토익시리즈 등 7권의 토익 관련저서를 펴낸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대통령과 가까운 인물들의 내력과 성향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 이호철 민정1비서관과 함께 노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인물로 꼽힌다. 배기찬(정책관리)씨는 비서관으로 내정됐다가 정책수석실 산하 여러 태스크포스의 업무를 조정해야 하는 업무의 성격상 나이가 지긋한 인물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행정관으로 조정됐다. 직급과 관계없이 정책조정과 관련한 중책을 담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김원기 의원과 고 이수인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고, 일본과 미국에서 리더십을 공부한 뒤 귀국해 세종리더십개발연구원 소장으로 일했다. 2000년 노 대통령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취임하면서 배씨를 정책자문관으로 데려갔다.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 <노무현이 만난 링컨> 등의 책을 기획해 신임을 얻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대선과정에서 정책분야를 총괄하며 자문교수단과 노 대통령을 잇는 다리 구실을 했다.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시절부터 노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황이수(민정1)씨는 서울대 사회대 학생회장을 맡던 중 총학생회장이 구속되면서 총학생회장 권한대행을 맡았다. 장기욱 전 의원과 김홍신 의원 보좌관 출신이다. 대선 때 수행팀장을 맡은 여택수(제1부속실)씨는 88년도 고려대 총학생회 부회장이었다. 고교시절 교내 록밴드의 리드싱어로 활약했고 기타도 잘 친다. 성이 여씨여서 붙은 별명이 ‘여비서’다. 잠시 민주당 이정일 의원 보좌관을 했다. 경선 때 짧은 기간 노 대통령을 수행한 문용욱(국정상황실)씨도 연세대 문과대 학생회장 출신이다. 백원우(공직기강)씨는 제정구 전 의원 비서관 출신이며, 대선기간엔 인터넷쪽을 맡아 사이버 선거전을 지원했고 막판엔 개혁당쪽 연락업무를 맡았다. 노무현 캠프의 홍보와 공보쪽에서 일한 이정민(정무1)씨는 광고회사에서 일한 이력과 프로덕션 프로듀서 경험을 살려 선거 때 텔레비전 토론쪽을 맡았다. 고려대 농악대 상쇠 출신으로 투옥경력도 있다. 사이버선거쪽을 맡은 송진옥(국정홍보)씨도 고려대 운동권 출신이다. 행정관중 간부출신 유난히 많아
이번에 새로 청와대 식구가 된 행정관들 가운덴 과거 학생운동권의 간부로 활약한 인물이 유난히 많다. 김병규(정무기획)씨는 87년도 연세대 우상호 총학생회장 시절 부회장이었다. 민주당 정세분석국과 국가전략연구소 등에서 일했다. 권오중(민정2)씨는 90년도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다. 줄곧 권양숙씨의 일정을 챙기며 수행해온 이은희(제2부속실)씨는 88년도 연세대 총여학생회장이었다. 이씨의 남편 정명수씨는 같은해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다. 이씨는 대선 때 여성계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도 기여했다. 박주현 국민참여수석을 보좌하는 유송화씨는 88년도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이었다. 유씨는 7년동안 노원구의회 의원을 했으며, 대선 때 여성정책 수립에 기여했다. 오승록(참여기획)씨는 93년도 연세대 부학생회장이었다.
89년도 숭실대 총학생회장을 한 임상경(총무수석실 행정)씨는 박상규 의원의 보좌관을 하다가 한나라당행을 거부해 화제에 오른 인물이다. 강병원(총무수석실 행정)씨는 94년도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으며, 지난해 경선 이후 노 캠프에 참여해 잠시 노 후보를 수행했다. 권혁기(국정홍보)씨는 93년도, 윤건영(정무2)씨는 91년도에 각각 국민대 총학생회장이었다. 권씨는 임종석 의원 비서관 출신으로 경선 때는 김근태 후보를 수행하다 경선 직후 노무현 캠프로 옮겼다. 윤씨는 신계륜 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성북구의회 의원을 했고, 개혁당에서 일했다. 김영배(정무1)씨는 고려대 정경대 학생회장 출신으로 서총련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성북구청장 비서실장도 했고, 인수위에서 신계륜 인사특보를 보좌했다. 김성진(정무2)씨는 경남대 학생회장 출신으로 지난해 8·8 재보선 때 경남 마산 합포에 출마 이력이 있다.
이 밖에도 운동권 출신이 많다. 김현(춘추관)씨는 88년 재야파의 평민당 입당 창구인 평민련 시절 당과 연을 맺은 이후 개혁파 의원들의 연락을 맡아 ‘마당발’로 통한다. 민주당 대변인실 국장으로 일했다. 한양대 총학생회 학술부장을 했다. DJ정부 때 제1부속실에서 일하다 국정기록 비서관실로 옮긴 김정섭씨는 고려대 노래패 ‘노래얼’ 출신으로 총학생회 총무부장으로 일했다. 강대진(국정홍보)씨는 국민대 총학생회 정책국장이었고, 민주당 전문위원으로 일한 이은영(여론조사)씨도 국민대 총학생회 간부로 활동했다. 김성환(정책관리)씨는 전대협 1기 대외협력 담당으로 일했고, 평민련에서도 활동했다. 신용훈(춘추관)씨는 연세대, 유민영(대변인 보좌)씨는 성균관대, 최광웅(정무수석실)씨는 서울대 운동권이었다. 한주형(국민제안)씨와 이승(국민참여)씨는 전대협에서 일했다. 정재호(정무1)씨는 외환카드 노조위원장으로 7년 동안 일한 이력이 있다. 양정철(국내언론1)씨는 한국외국어대 자민투 위원장 출신으로 외대학보 편집장을 했고, 언론노보 등에서 일했다. 오종식(정책프로세스개선팀)씨는 고려대 총학생회장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조국통일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민경배(국정모니터)씨는 선거광고 기획사에서 정치카피를 만들었고, 사이버문화연구소를 창설해 인터넷과 정보통신문화 분야에선 독보적인 경력을 쌓았다. 김경수(국정상황실)씨는 서울대 총학생회 학술부장으로 임채정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고 선거 때는 전략기획을 맡았다.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선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도 청와대에 속속 합류했다. 김희선 의원 보좌관 출신인 서양호(정무2)씨는 숭실대 학생운동권으로 전대협 정책위원을 했고, 인수위 정무분과에서도 일했다. 문희상 비서실장과 오래 호흡을 맞춰온 소문상(비서실장실)씨는 비서실장 보좌관으로 들어갔고, 정동채 의원 보좌관을 하며 문화관광분야의 전문성을 쌓은 고삼석(국내언론2)씨도 방송쪽을 맡아 전공을 살렸다. 정태호(기획조정)씨는 이해찬 의원 보좌관 출신이다.
이 밖에 부산·대구지역 인맥도 상당수 청와대에 진출했다. 부산대 운동권으로 활동하다 86년 두 번째 구속됐을 때 노 대통령이 무료변론을 해줘 인연을 쌓은 정동수(기획조정)씨는 부산선거대책본부 기획실장으로 활약했다. 성제도(시민사회2)씨는 부산에서 종교운동을 했으며, 김정호(총무 구매)씨, 윤경태(민원)씨, 장유경(참여기획)씨 등도 모두 부산대 운동권 출신이다.
대구쪽에선 남영주(민정1)씨가 눈에 띈다. 경북대 77학번이며, 경북민통련 사무처장 등 대구지역 운동권 사무국장직을 도맡아했다. 노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이강철씨와 대구에서 오래 일했다. 계명대 출신인 김학기(지방자치)씨도 이강철씨와 지방자치연구소에서 함께 일했다. 김진향(국가안보보좌관)씨는 경북대에서 정치학을 강의한 북한문제 전문가다. 인수위 외교통일분과에서도 일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사진/ 황이수, 김영배, 김현, 여택수, 강병원, 권혁기(왼쪽부터).
노무현 대통령과 오래 인연을 맺은 참모그룹도 대거 진입했다. 노 대통령과 가까운 국회의원 보좌관들과 부산과 대구의 운동권 인맥도 상당수 청와대에 입성했다. 젊음과 개혁성으로 무장한 이들이 청와대와 공직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지, 아니면 공무 출신 청와대 인사들과 마찰을 빚으며 겉돌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노 대통령의 측근그룹은 민정수석실과 부속실, 국정상황실 등 핵심보직에 자리를 잡았다. 문재인 민정수석을 보좌하는 고성규씨는 노 대통령이 총애하는 인물이다. 97년 노 대통령의 개인 영어교사로 연을 맺은 이후 민주당 경선 직전까지 그림자처럼 수행했다. 서울대 약대를 나와 약국을 경영하면서 적중토익시리즈 등 7권의 토익 관련저서를 펴낸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대통령과 가까운 인물들의 내력과 성향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 이호철 민정1비서관과 함께 노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인물로 꼽힌다. 배기찬(정책관리)씨는 비서관으로 내정됐다가 정책수석실 산하 여러 태스크포스의 업무를 조정해야 하는 업무의 성격상 나이가 지긋한 인물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행정관으로 조정됐다. 직급과 관계없이 정책조정과 관련한 중책을 담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김원기 의원과 고 이수인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고, 일본과 미국에서 리더십을 공부한 뒤 귀국해 세종리더십개발연구원 소장으로 일했다. 2000년 노 대통령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취임하면서 배씨를 정책자문관으로 데려갔다.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 <노무현이 만난 링컨> 등의 책을 기획해 신임을 얻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대선과정에서 정책분야를 총괄하며 자문교수단과 노 대통령을 잇는 다리 구실을 했다.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시절부터 노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황이수(민정1)씨는 서울대 사회대 학생회장을 맡던 중 총학생회장이 구속되면서 총학생회장 권한대행을 맡았다. 장기욱 전 의원과 김홍신 의원 보좌관 출신이다. 대선 때 수행팀장을 맡은 여택수(제1부속실)씨는 88년도 고려대 총학생회 부회장이었다. 고교시절 교내 록밴드의 리드싱어로 활약했고 기타도 잘 친다. 성이 여씨여서 붙은 별명이 ‘여비서’다. 잠시 민주당 이정일 의원 보좌관을 했다. 경선 때 짧은 기간 노 대통령을 수행한 문용욱(국정상황실)씨도 연세대 문과대 학생회장 출신이다. 백원우(공직기강)씨는 제정구 전 의원 비서관 출신이며, 대선기간엔 인터넷쪽을 맡아 사이버 선거전을 지원했고 막판엔 개혁당쪽 연락업무를 맡았다. 노무현 캠프의 홍보와 공보쪽에서 일한 이정민(정무1)씨는 광고회사에서 일한 이력과 프로덕션 프로듀서 경험을 살려 선거 때 텔레비전 토론쪽을 맡았다. 고려대 농악대 상쇠 출신으로 투옥경력도 있다. 사이버선거쪽을 맡은 송진옥(국정홍보)씨도 고려대 운동권 출신이다. 행정관중 간부출신 유난히 많아

사진/ 유송화, 임상경, 이정민, 송진옥, 유민영, 신용훈(왼쪽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