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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김영춘/ “피를 흘릴 각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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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2-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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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인적쇄신 주도하는 김영춘 의원… 양식 있는 집단이라면 정당한 요구 확산될 것

한나라당 김영춘 의원이 ‘인적쇄신’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그는 대선 패배 직후 지도부의 당선자 무효소송 제기를 의원직을 걸고 반대했다. 이후 “혁명할 각오로 덤벼들지 않으면 한나라당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당 개혁의 고삐를 죄었다. 그가 이번엔 “피를 흘릴 각오를 하지 않으면 옥동자가 태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인적쇄신’을 주도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이탈’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놨다는 그를 2월2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국민속으로’틀에 연연하지 않겠다

-당 개혁특위는 개혁파가 강하게 반대해온 직선 방식으로 대표를 뽑기로 결정했다. 개혁파가 완패한 것 아닌가.


=솔직히 역부족을 느낀다. 당내에 변화한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정도의 공감대는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과거의 의식 그대로 똘똘 뭉쳐 있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의원 대다수의 생각인 것을 확인하고 깊은 좌절감을 느꼈다.

-개혁파가 얘기하는 인적쇄신의 대상은 누구인가.

=박희태 대표가 일전에 ‘한나라당이 시대에 졌다’고 한 적이 있다. 한나라당이 과거 개발독재시대의 사고방식과 체질에 스스로를 가뒀기 때문에 진 것이다. 당 개혁을 하자면 지도체제의 개혁도 중요하지만 결국 70~80년대식의 구태의연한 사고에 갇힌 분들이 이선으로 물러나고 다변화된 정보화사회에 걸맞은 국가비전을 지니고 정치하는 분들이 당의 전면에 포진해야 한다. 이래야 당의 개혁이 본질적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달라. 이름을 적시하지 않더라도 이러이러한 분들이 물러나야 한다고 범주화할 수는 없나.

=고민스런 부분이다. 인적대상의 범주를 넓게 잡으면 당 개혁이 아니라 깽판을 놓자는 것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 또 너무 좁게 잡으면 과연 그들만의 문제냐는 반론에 부닥친다. 기준이 애매하다. 과거의 사람들을 어느 정도의 기준으로 준별해낼 것이냐에 대해 개혁파가 지금부터 논의를 시작할 것이다. 그동안 산발적으로만 문제가 제기됐다. 궁극적으로는 한나라당을 인적으로 쇄신해서 시대정신을 반영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자는 것이다. ‘국민속으로’ 소속 의원들도 이에 대해 집중적으로 토론할 것이다.

-인적쇄신 요구를 어떤 방법을 통해 관철시킬 계획인가.

=방법에 대해선 ‘국민속으로’ 회원들 간에 좀더 고민이 돼야 한다. 이 싸움을 제대로 해내려면 ‘국민속으로’라는 현재의 틀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 우리의 취지에 공감하는 분들이 있다면 모임을 확대해서라도 공감의 폭을 넓혀보자는 것이다. ‘국민속으로’ 소속 10명만으로는 힘이 드니까 더 많은 사람들의 뜻을 모을 것이다.

-취지에 공감하는 분들을 어떤 식으로 모으겠다는 것인가.

=인적쇄신의 취지를 설명하는 문서를 작성하고 거기에 공감하는 의원들을 규합할 것이다. 그것이 서명운동일 수도 있고, 연판장을 돌리는 것일 수도 있다. 인적쇄신의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대오를 다시 짜게 될 것이다.

해당행위 아닌 구당적 차원의 행위

-인적쇄신을 하자는 것은 ‘국민속으로’가 애초 내걸었던 제도개혁보다 요구의 강도가 좀더 높은 것 같다. 취지에 공감하는 인원이 ‘국민속으로’ 소속 10명보다 더욱 늘어날 수 있다고 보나.

=‘국민속으로’는 당내 개혁투쟁이 험난할 것으로 보고 작게 시작했다. 인원을 늘리려면 더 늘릴 수도 있었다. 낮은 요구를 걸고 낮은 기대에서 출발한 게 아니다. (서명을 통해) 단 몇명이라도 더 늘릴 수만 있다면 좋겠다.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인적쇄신 서명운동을 시작하면 당내 보수파 의원들의 반발과 압박의 강도도 높아질 것 같은데.

=그럴 것이다. 이름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더라도 내심 ‘나보고 하는 소리가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거칠어질 것이다. 결국 심판은 국민 몫이다. 당 지도부 선출과정에서도 시대가 바뀌었으며, 그에 걸맞은 사람들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와 판단의 근거들을 당원과 유권자들에게 알릴 것이다. 우리가 당원들에게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우리의 얘기가 절대적 근거는 아니겠지만 판단근거의 하나로서 당 내부의 문제제기도 매우 중요하다.

-지도체제 확정에 따라 당권경쟁이 급류를 탈 것 같다. 인적쇄신 주장이 당권투쟁으로 인식될 가능성도 있지 않나.

=그렇게 돼선 안 된다. 우리가 당권경쟁에 직접 개입하거나 누구를 지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로 할 것이다.

-인적쇄신을 주장하려면 용기도 필요하고, 자기희생도 필요할 것 같다. 각오가 돼있나.

=피 흘릴 각오를 해야만 옥동자가 태어난다. 한나라당이 거듭나기 위한 불가피한 산통이다. 그 과정에서 희생자가 나올 수도 있고, 우리가 당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지금은 비록 수가 적고 힘도 미약하지만 우리는 시대정신을 타고 있다. 한나라당이 양식 있는 집단이라면 우리의 정당한 요구가 확산되고 당의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밖에선 불가능하다고 보겠지만 경우에 따라선 100분의 1의 가능성이 의외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개인이 왕따당하거나 표적이 되는 것은 개의치 않는다. 다만 좀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

-구체적 성과가 없으면 그 뒤엔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일단 당 안에서 최선을 다해봐야 한다.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작은 목소리로 출발했지만 안 된다는 생각은 안 한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볼 것이다. 해당행위가 아니라 구당적 차원의 행동이다. 당을 살리고 제대로 된 개혁적 보수 내지는 중도보수 정당으로 거듭나자는 것이다. 당내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나가라, 마라 할 자격은 없다.

-보수파쪽에선 인적쇄신 요구를 결별을 위한 예고된 수순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그들의 의식 수준에선 그 정도밖에 생각 못한다. 모든 문제를 70~80년대식의 음모론적 사고로 본다. 이것이 과거의 사고방식이다. 대선에서 진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사고다. 흑이 아니면 백으로 보면서 의심하고 불신하니까 국민에게 감동 주는 정치를 못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물러나야 한다. 이 사람들이 바로 인적쇄신의 대상이다. 지금 우리가 하는 것은 몸부림이다. 건강한 정치를 위해 몸바쳐 충성하려는 몸부림이다. 국회의원 또 한번 더 하려고 이러는 게 아니다. 그러려면 마음에 안 들더라도 참고, 내부 양심의 소리에도 귀를 닫으면 그만이다. 그러면 편하다. 그러나 이제 편안하고 누리는 정치, 재선만을 위해 양심과 소신을 숨기는 정치는 더 이상 안 하겠다는 것이다. 내면의 자아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다.

우리도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

-개혁파들은 반성할 부분이 없나.

=당연히 우리도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 과거의 정치는 분명히 지역주의라는 고정된 변수 위에서 정치를 바라봤고, 선거를 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에 편승해 있었다.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대세에 휩쓸려다녔던 오류를 반성해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분명하다. 지역주의와 권위주의의 극복이다. 이 두 가지 면에서 우리에게도 철저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민주당쪽에서도 비슷한 고민이 있는 것 같던데.

=이 시대의 고민하는 정치인이라면 생각의 근저나 출발, 목표는 비슷할 것이다. 민주당이 깨지면 정치권 전반에 충격을 주고 큰 변화의 동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개혁파의 시도가 좌절되고 한나라당의 변화와 개혁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우리는 또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한나라당을 이탈할 수도 있다. 왜 정치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고민부터 시작해 모든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놓을 것이다. 민주당으로 가는 것 빼고는 다 생각해볼 것이다.

-민주당과 한나라당 개혁파가 공감하는 제3의 신당 창당 가능성은.

=그것도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경우의 수다. 부패와 지역주의, 권위주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개혁정당이 생긴다면 규모가 작더라도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의 미래를 좀 전망해달라.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의 목소리가 비록 당내에서 소수의 목소리지만 올곧게 진실을 얘기하다 보면 의외의 돌파구가 열릴 수 있다고 본다. 지도체제 개편과 전당대회가 일대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반대로 현상 고착의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우리 정치의 중요한 한 축인 거대야당, 원내 과반을 점하는 한나라당의 변화 없이 어찌 우리 정치의 긍정적 변화를 얘기할 수 없다. 한나라당의 변화와 개혁은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다. 국회가 무한정쟁의 장이 아니라 나라를 걱정하고 민의를 대변하는 전당으로 거듭나려면 한나라당의 개혁이 정말로 중요하다. 개혁파의 목소리가 미약하더라도 성원을 보내줘야 한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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