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신주류쪽의 ‘지구당위원장 폐지’ 전략… 총선승리 위한 ‘탈호남’ 지렛대 역할 기대
“탈호남으로 호남당이 아닌 전국 정당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 구축.”
“동교동의 2선 퇴진과 영향력 축소만이 참신하고 유능한 인재들의 적극 동참을 유도하여 당 활성화와 민주화가 이뤄져.”
최근 민주당 개혁을 둘러싸고 이른바 ‘신주류’가 펴고 있는 주장이 아니다. 2001년 10·25 재보선 참패 직후 민주당 개혁파 의원들끼리 돌려보던 비밀문건 ‘민주당 어찌할 것인가’에 이미 나와 있는 내용들이다. 작성자는 이강래 의원이고, 회람자는 김근태·정동영·신기남·천정배 의원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탈호남, 탈동교동’이 이들의 숙원사업이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라도당’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은 고비고비마다 펼쳐졌다.
영남권의 인재풀을 끌어들여라
2001년 5월부터 시작해 10·25 재보선 뒤 절정을 이룬 쇄신파동이 첫 시도다. 당시 공격은 권노갑·박지원 두 사람에게 집중됐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민주당에서 동교동의 부정적 이미지를 털어내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경선과정에서는 이인제냐 노무현이냐는 논쟁으로 나타났다. 이인제 지지자들에게는 영남표에 눈을 돌리기보다는 호남-충청 연합을 강화하는 길만이 현실적 방법으로 여겨졌고, 노무현 지지자들에게는 영남후보를 내세워 민주당의 지역적 한계를 일거에 뛰어넘는다는 구상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정몽준 후보와의 극적 단일화가 이뤄지기 전 별달리 활로가 보이지 않았을 때는 개혁파 의원 중 일부가 노무현 후보에게 ‘탈DJ, 탈호남’ 전략을 강하게 요구해 선대위 안에서 만만찮은 노선투쟁을 불러일으켰다.
마그마처럼 민주당 밑을 흐르던 ‘탈호남, 탈동교동’ 흐름이 이번에는 ‘지구당위원장 폐지’라는 쟁점을 계기로 지각 밖으로 터져나왔다.
민주당 개혁특위 위원들은 지구당위원장 폐지가 당 개혁안의 핵심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구당위원장의 기득권 포기가 안 되면 상향식 공천이 무의미해지고, 국민이나 당원이 주인이 되는 국민참여 정당으로서의 목표는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2월10일 개혁특위 마지막 회의에서 신기남 의원이 “개혁안대로 지구당위원장을 내놓으면 우리 현역 의원들은 100% 불리하다. 그러나 당 전체로는 유리하다. 1년 전 개혁을 통해 총재 권한이 우리에게 왔다. 이제 우리 권한을 국민에게 돌리자”고 말하자, 불만이 있던 다른 위원들도 아무 말 못하고 원안을 통과시켜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안이 가지는 당위성 때문이다. 사실 지구당위원장 폐지는 정치학 교과서에 나올 법한 원론적 얘기다. 고비용 저효율 정치의 근원이자 ‘돈 먹는 하마’로 불리는 지구당을 완전히 폐지하기 위한 전단계로서, 한국정치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전주곡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구당위원장 폐지안에는 이런 당위론말고도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신주류쪽의 전략이 깔려 있다. 바로 ‘탈호남’을 위한 지렛대 역할이다.
우선 영남출신인 노무현 대통령 탄생으로 확대될 영남권의 인재풀을 최대한 민주당 틀 안으로 끌어들이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지구당위원장들의 철옹성을 무너뜨릴 필요가 있다. 옛날처럼 중앙당이 일방적으로 지구당위원장을 바꿀 수 없는 상황이라서 일단 이들의 기득권을 없앤 뒤 상향식 공천이라는 자유경쟁을 통해 합법적으로 도태시키자는 방법이다. 여기에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나 중대선거구제 등이 가미되면 영남권에서 경쟁력 있는 신진인사들로 새 진용을 갖출 수 있으리라는 것이 신주류쪽 기대다.
‘뻐꾸기 이론’으로 표현되는 의구심
물론 이런 물갈이 대상에는 호남도 포함된다. 개혁특위 한 관계자는 “호남에서 먼저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내년 총선을 위한 상향식 공천 때 호남에서 개혁성과 전문성을 갖춘 참신한 인물들을 뽑아줄 때, 영남에서도 변화를 실감하며 민주당의 문을 두드린다. 국민경선 때 광주에서 노무현 후보를 뽑아준 감동이 전국적으로 퍼진 것과 마찬가지다. 이를 위해서도 의원들이 지구당위원장으로서 누리는 기득권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일반 당원조직에서도 호남색을 완전히 탈피하려고 한다. 현재 수도권에서 민주당 지구당 조직은 호남출신에 40대 후반 이상의 장·노년층이고, 자영업을 하는 남자가 70~8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다. 신주류쪽에서는 이렇게 호남향우회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구당 조직을 바꾸기 위해 노사모나 개혁국민정당에서 활동하는 20~30대 청년층과 일반 봉급생활자 등을 대거 끌어들일 계획이다. 그리고 지구당위원장 폐지로 그 물꼬가 트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호남을 기반으로 한 구주류로서는 가혹한 시련이 닥친 셈이다.
한화갑 전 대표가 신주류를 ‘개혁독재’라고 비판한 핵심적 이유도 지구당위원장 폐지 때문이다. 한 전 대표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개혁안에 따르면 지구당위원장을 폐지하고 관리위원장을 두는 것인데, 결국 관리위원장이 대의원을 뽑아서 전당대회에서 원하는 사람을 밀어 뽑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실질적인 민주당 해체라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의 측근은 이를 두고 ‘뻐꾸기 이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민주당이라는 둥지에 뻐꾸기 노무현 대통령이 신주류라는 알을 낳았고, 신주류 의원들이 알에서 깨어나 민주당의 적자인 한 전 대표를 비롯한 동교동계 의원들을 둥지 밖으로 떨어뜨리고 당을 독차지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개혁을 거친 당은 민주당이 아니라, 완전한 노무현 신당이라는 것이 한 전 대표쪽 시각이다.
일정한 양보는 가능하다?
특히 구주류쪽에서는 새로운 당헌에 따라 당헌 개정 뒤 1개월 이내에 지구당 운영위원장 대행이 임명된다는 조항에 주목하고 있다. 신주류가 임시지도부를 구성한 뒤 자신들의 심부름꾼을 전국 지구당에 파견해, 기존 당원들은 완전히 배제한 채 자파 당원으로만 지구당을 구성하려 한다는 의심이다. 이럴 경우 호남의 현역 의원들도 다음 총선에서 공천받을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도 이런 의구심을 대변하던 한 전 대표가 2월23일 대표직을 내던짐으로써 민주당 개혁안은 일단 순항할 것으로 보인다. 저항의 중심축이 사라짐으로써 더 이상 힘이 실리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 구주류의 불안감을 달래줄 타협안도 준비되고 있는 분위기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신주류 의원들 사이에 지구당위원장 폐지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자 “전략들이 없어”라고 혀를 차며 “일단 한목소리로 강하게 밀어붙이다가 당무회의에서 타협하면 될 텐데”라고 말했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 지구당위원장 폐지안에서 일정한 양보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문희상 비서실장은 이와 관련해 “민주당이 지난해 워낙 큰 변화를 겪어서 그렇지 선거 6개월 전 지구당위원장 사퇴만 해도 굉장한 변화다”라며 절충안을 내놓았다. 3년6개월은 지구당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6개월 전 지구당위원장을 내놓고 도전자와 동일한 조건에서 경선에 임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제안을 이번 개혁안에 적용할 경우, 기존 지구당위원장은 3월에 모두 사퇴하고 8~9월쯤 새 지구당위원장이 뽑히게 된다. 그러나 새 지구당위원장은 내년 4월 총선 6개월 전인 10월에는 지구당위원장을 내놓아야 하는 만큼 실제로 기득권을 누릴 수 있는 기간은 1~2달에 불과하게 된다. 구주류는 명분을, 신주류는 실리를 각각 얻을 수 있는 셈이다.
또 천정배 의원은 “임시지도부에 구주류 인사들을 참여시키는 방안도 찾을 수 있다”고 절충 가능성을 시사했다. 3월 각 지구당에 내려보낼 지구당 운영위원장 대행을 신주류가 독식할 것이라는 구주류의 불안감을 씻으려는 제안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 개혁안은 의외로 쉽게 신·구주류가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주류와 구주류가 그리는 민주당 개혁의 방향이 워낙 다른 만큼 실제 개혁과정에서 두 세력 간의 충돌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분당의 위험성마저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사진/ 한화갑(왼쪽) 전 대표가 2월23일 대표직을 내던짐으로써 민주당 개혁안은 일단 순항할 것으로 보인다. 저항의 중심축이 사라짐으로써 더 이상 힘이 실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영남권의 인재풀을 끌어들여라

사진/ ‘탈호남, 탈동교동’흐름이 이번에는 ‘지구당위원장 폐지’라는 쟁점을 계기로 터져나왔다. 민주당 열린개혁포럼 준비워원회 모임. (한겨레 윤운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