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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천정배/ “개혁안 좌절되면 신당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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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2-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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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번 민주당의 전국화 시도하는 천정배 의원… 지구당위원장 폐지는 신-구파 ‘윈윈게임’

민주당 천정배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향이 같다. 전남 신안 섬마을이다.

김 전 대통령이 1971년 대통령 선거에 떨어졌을 때, 천 의원은 서울대를 수석으로 입학했다. 목포와 신안 언저리에는 정치적 상실감을 어루만져준 소년 천정배의 이 작은 ‘위로’를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제법 된다.

김 전 대통령은 끝내 지역갈등의 벽을 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천 의원은 지역대결 구도를 깨뜨리는 데 자신의 정치인생을 건 듯하다. 그의 정치행로 곳곳에는 민주당의 전국정당화 또는 ‘탈호남’을 향한 열망이 배어 있다. 현역의원으로는 유일하게 경선 전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노 후보가 지역주의에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지지 이유였다.

천 의원은 또 한번 민주당의 전국화를 시도하고 있다. 개혁특위 간사로서 개혁안을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지구당위원장 폐지 문제를 놓고는, 초반 대다수 특위 위원들이 반대하는 어려움을 뚫고 특위안으로 관철시키기도 했다.


그는 2월21일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만일 개혁안이 좌절된다면 민주당의 장래는 어렵다고 본다. 민주당으로 총선 승리의 가망이 없어지고, 필연적으로 신당의 불가피성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고 배수진을 쳤다.

지구당 관리 7년의 경험

-왜 지구당위원장을 폐지하려 하나.

=민주당은 당원과 일반국민이 참여하는 상향식으로 국회의원 후보를 공천하려고 한다. 공천경선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구당위원장직을 가진 사람이 상당한 기득권을 지닌 채 경선에 나선다면 정확하게 국민과 당원의 의사를 반영하는 공천이 아니다. 상향식 공천이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저만 해도 7년 정도 지구당을 관리하면서 모든 당원 체제를 저 중심으로 짰다. 제가 돈 쓰고, 제가 임명하고, 제가 당원대회 열라고 해서 열고, 그 대회에서 제가 인사말 하고…. 지구당위원장의 프리미엄이란 엄청난 것이다. 당원 50%와 일반국민 50%로 경선을 하더라도, 당원의 반만 장악해도 25%는 먹고들어가는 것 아니냐. 이러면 정치권 물갈이가 가능하지 않다. 좋은 인물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이 공천받으려고 민주당의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그 때문에 ‘물갈이하려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과 저항이 있다.

=부당한 오해다. 이 제도는 누구나 승자가 될 수 있는 윈윈게임이다. 신파든 구파든 자기 지역에서 당원과 국민의 지지를 얻으면 공천을 딸 수 있는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오히려 일부 세력을 자르려면 옛날처럼 하향식 공천을 하든지, 조강특위를 만들어 중앙당에서 공천심사를 하든지 하지…. 그런데 관심이 없다. 음모적 시각에서 볼 필요가 없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제도를 통해 물갈이되는 것이고, 당원과 국민의 선택에 맡기자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누구를 치기 위해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지구당위원장 폐지만으로는 영남지역에서 사람을 끌어들이는 데 약하지 않은가.

=어떤 방식으로든 돌파해야 한다. 취약지역에서 새로운 인물을 공천하고 싶다면 공식적인 당 지도부는 안 되겠지만 개혁적인 사람들이 삼고초려도 하고, 그 지역에 내려가 공천과정에서 이길 수 있도록 지원유세도 해주는 정치적 도움이 필요하다. 또한 상향식 공천의 부작용, 돈 쓰는 선거운동을 철저하게 막아야 한다. 그 점에 관해서는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내 경선에서 절대로 돈 쓸 수 없도록 경찰·검찰·선관위를 총동원해 엄단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피력한 것으로 안다.

-2월27일 당무회의에서 개혁안이 논의된다. 전망은.

=민주당은 지금 위기다. 내년 총선에서 이겨야 한다. 그러나 이 구도가 깨지지 않으면, 지역구도가 그대로 가면 내년 총선은 한나라당이 이긴다. 영남의 지역구 65석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보다 더 어렵다. 대선은 그래도 영남에서 30%만 얻어도 된다. 그러나 지역구에서 한나라당을 꺾으려면 50%를 넘겨야 한다. 그런 면에서 국민을 감동시키는 개혁이 있어야 한다. 우리 당은 개혁의 전통을 가진 당이고, 위기에 강한 당이어서 그렇게 비관하지 않는다.

‘기득권 포기’는 감동 부를 것

-개혁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안 되면 우리 당 어렵다고 본다. 개혁특위를 시작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비록 개혁특위가 민주당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그 변화의 끝은 신당이나 다름없는 당이 될 것이다. 그런 것이 환골탈태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상태라면 민주당으로 총선 승리의 가망이 없어지고, 필연적으로 신당의 불가피성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지금 제가 당장 신당을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다.

-신주류 안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민경선안을 만들어낸 1년 전 특대위에 비하면 개혁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전략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여러 가지 조건이 다르다. 특대위가 성공적인 개혁안을 만들 수 있었던 주 요인은 당시 한광옥 대표 등 당의 중심이 개혁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확고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당내 개혁파들의 주장에 밀린 것은 아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그에 필적할 만한 구심이 잘 형성돼 있지 않다.

두 번째는 당시 특대위안은 의원들의 자기 기득권 포기가 아니었다. 이해가 충돌할 여지가 적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구당위원장이라는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개혁이라는 것은 기득권을 포기해야만이 다른 부분의 개혁을 요구할 수 있는 도덕적 권위를 가지게 된다. 지금 당 밖에서는 지구당위원장이 폐지되랴 하고 생각하고 있다. 거꾸로 이를 성공시켜낼 수 있다면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내년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역할은 어떤 것인가.

=노무현 정권이 국민의 지지를 얻는 것이 민주당 승리의 관건이다. 내년에 우리가 열심히 뛰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참여정부가 총선 전에 민심의 지지를 얻는 것이다. 둘째는 민주당이 정말 국민의 지지를 회복할 수 있을 만큼 자기 개혁을 철저히 해내는 것이다. 셋째는 경쟁력 있고 신망 있는 인물들을 후보로 많이 내세우는 것이다. 당원관리 잘하고 조직을 잘 추슬러서 선거를 정치공학적으로 잘하는 것은 마지막쯤 될 것이다.

지역구도는 호남을 위해서도 깨져야

-내년 총선에서는 지역구도를 깰 수 있나.

=지역구도는 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 깨야 하지만, 저 자신 호남 시골뜨기 출신의 한 사람으로서 호남을 위해서도 깨져야 한다. 호남은 명백하게 소수파인 만큼 만약 이대로 가면 늘 전체구도에서 소외되고 차별당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전라도 유권자들이 너무나 잘 안다. 그것이 지난해 광주 경선의 결과고, 이번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90% 이상의 압도적 지지를 몰아준 호남의 민심이다.

그런 점 때문에 지역구도는 절대 불변이다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지역구도는 1987년 양김의 분열에 의해 고착된 것일 뿐이다. 그걸 깰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이해관계와 많이 결부돼 있다고 생각하며,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호남의 적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당은 지역구도를 깨지 않고도 기적적으로 두번이나 이겼다. 한번은 이인제라는 변수 때문이었고, 이번에는 그래도 우리가 영남후보 내세우고, 개혁후보 내세우면서 이긴 것이다. 그래도 지역구도는 안 깨졌다.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그 때문에 당 일각에서는 어차피 지역구도는 안 깨지는 거야, 그냥 우리끼리 가보자고 한다. 국회의원 되는 데는 그래도 되겠지만, 이 다음에 다시 대통령을 만든다거나 다수당을 형성한다거나 하는 전체를 조망하고 볼 때는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정말 전라도에서도 지역구도를 활용하고 전라도라도 할거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국민의 공적이고 전라도 사람들의 공적이다. 정치에서 추방돼야 한다. 사실 대통령 선거에서 지면, 전라도 민심이 굉장히 저항적이면서 방어적으로 갈 것을 걱정했다.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 ‘아, 이제 어쩔 수 없구나. 우리라도 똘똘 뭉쳐서 우리 세력이라도 보전해야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 같은 개혁파와 호남에서 할거하겠다는 사람들하고 서로 싸우다 공멸하고, 결국 수도권에서도 전멸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선거에서 이기고 개혁파가 한국의 중심세력이 됨으로써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개혁을 떠난 순전히 벌거벗은 낡은 지역주의에 기반한 세력이 호남에서야말로 발붙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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