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인적쇄신 서명운동 초읽기… ‘전당대회 보이콧’까지 논의중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들이 결국 칼을 뽑아들 것인가. 개혁파 의원들이 인적쇄신을 요구하는 당내 서명운동 돌입을 결정하고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 연쇄모임을 통해 서명운동 방식은 결정지었으나 특검문제와 총리인준 등 현안에 묻힐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시기선택을 고민 중이다.
거절당한 ‘대표 간선제’
서명은 말이 아니라 행동을 뜻한다. 의원들의 개별적 발언이나 언론매체를 통한 인적청산 요구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들이 서명운동에 나설 경우 보수파 의원들의 반발수위도 한층 높아지면서 대선 패배 이후 잠재돼온 한나라당 내 개혁파와 보수파의 갈등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개혁파 의원들의 모임인 ‘국민속으로’도 공식적으로는 인적쇄신을 언급하지 않던 그간의 태도를 바꿔 “인적쇄신을 포함한 강도 높은 개혁투쟁을 벌여나갈 것”이라며 선전포고를 내렸다.
개혁파들을 서명운동으로 내몬 직접적 계기는 전국 선거인단 직선으로 대표를 선출하는 이른바 ‘단일성 분권형 지도체제’를 확정지은 당 개혁특위의 결정(2월18일)이었다. 개혁파는 그동안 대표 직선을 강력히 반대해왔다. 강력한 권한을 지닌 대표가 있으면 줄세우기 관행이 사라지지 않고 결국 당을 탈바꿈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였다. 안영근 의원은 ‘직선대표 선출=영남지역당화’라고 주장한다. “현재 당내 역학관계상 결국 영남쪽에서 직선대표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 순간 한나라당은 영남지역당으로 전락하고 이전보다 더욱 우경화·보수화될 게 분명한다. 이전의 이회창 총재에겐 여러 세력을 아우르기 위해 개혁파라는 장식품이 필요했다. 하지만 최병렬 의원이나 강재섭 의원 중에 누가 대표로 선출되더라도 더 이상 이런 장식품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직선대표 선출이 그나마 좁디좁은 개혁파의 입지를 더욱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부영 의원도 “직선대표 선출은 대선 패배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두어달 뒤에 당의 전면에 다시 나서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표 간선제는 개혁파들의 핵심 요구였다. 그러나 당 개혁특위가 직선제를 채택함에 따라 개혁파들은 외부적으로 보수파에 ‘KO패’당한 것으로 비쳤고, 결국 새로운 선택을 고민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연찬회 이틀 뒤인 2월20일 아침, 국회 의원회관 106호에 ‘국민속으로’ 소속 의원 4명이 모였다. 이우재·김홍신·김부겸·안영근 의원은 죽을 시켜 아침을 때우며 연찬회에 대한 울분을 쏟아냈다. 모임 직후 ‘국민속으로’는 “연찬회에서 대선 패배에 대한 깊은 반성과 환골탈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어 매우 실망했다”며 인적쇄신 등 강도 높은 투쟁을 다짐하는 성명을 냈다. 김부겸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슬픔도 노여움도 없는 자는 진정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자’라는 네크라소프의 시구를 인용하며 심경을 토로했다. “차라리 개혁파들을 제대로 공격하기라도 좀 했으면 좋겠다. 그런 정열도 없다. 경제가 나빠지고 있고, 대북송금 사건으로 노무현 정권이 휘청거리게 돼 있으므로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이길 수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오는 게 지금 한나라당의 현주소다. 캄캄한 벽 같은 것을 느꼈다.” 10명쯤이야 갈테면 가라
이후 개혁파들은 본격적으로 서명운동을 위한 준비에 나선다. 이들 사이에서 서명 얘기나 나온 것은 오래전이었다. 안영근 의원은 이미 공개적으로 인적청산을 위해 ‘연판장’이라도 돌리겠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개혁파 의원들 일부에선 한때 “직선대표를 선출하겠다면 전당대회를 보이콧하자”는 얘기까지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원희룡 의원은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보이콧 등) 모든 것을 포함해 심각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며 개혁파들이 모종의 움직임에 나설 것임을 예고했다.
문제는 개혁파들이 꺼내든 ‘인적쇄신 서명’이라는 칼의 파괴력이 얼마나 될 것이냐 하는 점이다. 현재 ‘국민속으로’ 소속 의원은 모두 10명. 한나라당 전체 의석 151석에서 10석의 의미는 심히 미약하다. 영남지역 의원들은 “야당을 하기에 151석은 너무 무겁다”는 말까지 한다. ‘10명쯤이야 갈 테면 가라’는 얘기다.
개혁파들이 ‘국민속으로’라는 이름을 내걸고 서명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 김영춘 의원 등 몇몇 의원 개인의 이름으로 서명을 받을 예정이다. ‘국민속으로’가 그동안 당내에서 개혁을 독점하는 집단으로 비쳤고, 결국 서명 추진에 되레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러나 이들의 기대처럼 인적쇄신 서명 참여자가 10명보다 더 늘어날 것인지는 미지수다. 당내 제도개혁을 내건 ‘국민속으로’에 10명이 참여했는데 그보다 수위가 높은 인적쇄신을 요구하는 서명에 더욱 많은 수가 참여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안영근 의원은 “당의 주도세력 교체에 대한 공감대가 꽤 형성돼 있으니 서명 참여인원이 조금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큰 숫자는 아닐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들이 내심 염두에 두고 있는 서명 목표 인원은 17명 안팎이다. 교섭단체를 꾸릴 수 있는 20명이면 더없이 좋겠지만 17명 정도의 서명만 받더라도 위협적인 수가 되리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영남쪽 보수파 의원들은 ‘인적청산론=탈당을 위한 수순’으로 규정하며 개혁파 의원들을 거세게 몰아붙일 태세다. 백승홍 의원은 “도대체 국민들이 뽑아준 국회의원을 누가 청산하느냐. 이상한 사람들이다”라고 쏘아붙였다.
4월 보궐선거를 주목하라
당내에선 개혁파들의 마음이 이미 한나라당을 떠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돈다. 인적쇄신 요구 이후 개혁파들에 대한 보수파들의 압박과 ‘왕따’의 강도도 더욱 높아질 게 분명하다. 이렇게 되면 인적쇄신을 둘러싼 당내 개혁파와 보수파의 파열음도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개혁파 의원들의 이탈이 당장 가시화될 것 같지는 않다. 뭔가 계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부겸 의원은 “나 혼자 잘살겠다고 당을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해볼 만큼은 해보겠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당내에선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첫 선거인 4월 보궐선거를 주목하는 이들이 많다. 한나라당이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잠복해 있던 대선 패배의 후유증이 일거에 분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개혁파 한 의원의 분석. “4월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하면 1년 뒤 총선에 대한 두려움을 체감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구·경북쪽 의원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동요한다. 당이 새롭게 재편되느냐, 갈라지느냐의 기로에 설 것이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사진/ 한나라당 개혁파 모임인 ‘국민속으로’의 회동
개혁파들을 서명운동으로 내몬 직접적 계기는 전국 선거인단 직선으로 대표를 선출하는 이른바 ‘단일성 분권형 지도체제’를 확정지은 당 개혁특위의 결정(2월18일)이었다. 개혁파는 그동안 대표 직선을 강력히 반대해왔다. 강력한 권한을 지닌 대표가 있으면 줄세우기 관행이 사라지지 않고 결국 당을 탈바꿈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였다. 안영근 의원은 ‘직선대표 선출=영남지역당화’라고 주장한다. “현재 당내 역학관계상 결국 영남쪽에서 직선대표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 순간 한나라당은 영남지역당으로 전락하고 이전보다 더욱 우경화·보수화될 게 분명한다. 이전의 이회창 총재에겐 여러 세력을 아우르기 위해 개혁파라는 장식품이 필요했다. 하지만 최병렬 의원이나 강재섭 의원 중에 누가 대표로 선출되더라도 더 이상 이런 장식품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직선대표 선출이 그나마 좁디좁은 개혁파의 입지를 더욱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부영 의원도 “직선대표 선출은 대선 패배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두어달 뒤에 당의 전면에 다시 나서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표 간선제는 개혁파들의 핵심 요구였다. 그러나 당 개혁특위가 직선제를 채택함에 따라 개혁파들은 외부적으로 보수파에 ‘KO패’당한 것으로 비쳤고, 결국 새로운 선택을 고민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연찬회 이틀 뒤인 2월20일 아침, 국회 의원회관 106호에 ‘국민속으로’ 소속 의원 4명이 모였다. 이우재·김홍신·김부겸·안영근 의원은 죽을 시켜 아침을 때우며 연찬회에 대한 울분을 쏟아냈다. 모임 직후 ‘국민속으로’는 “연찬회에서 대선 패배에 대한 깊은 반성과 환골탈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어 매우 실망했다”며 인적쇄신 등 강도 높은 투쟁을 다짐하는 성명을 냈다. 김부겸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슬픔도 노여움도 없는 자는 진정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자’라는 네크라소프의 시구를 인용하며 심경을 토로했다. “차라리 개혁파들을 제대로 공격하기라도 좀 했으면 좋겠다. 그런 정열도 없다. 경제가 나빠지고 있고, 대북송금 사건으로 노무현 정권이 휘청거리게 돼 있으므로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이길 수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오는 게 지금 한나라당의 현주소다. 캄캄한 벽 같은 것을 느꼈다.” 10명쯤이야 갈테면 가라

사진/ 한나라당 국회의원 지구당위원장 회의. 대선 패배 이후 잠재돼온 한나라당 내 개혁파와 보수파의 갈등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사진/ 한나라당 지구당위원장 연찬회에서 개혁파쪽인 미래연대 소속 원희룡 의원이 의사진행 발언을 요구하자 현경대 정개특위 위원장이 이를 제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