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 가는 임동원 특사 무슨 요구 하고 어떤 보따리 풀어놓을까…2차 정상회담도 논의 될 듯
햇볕으로 모진 남북관계를 헤쳐온 DJ정권이 막판 ‘비상’을 시도하고 있다.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 특별보좌관이 1월27일부터 다시 김대중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평양 방문길에 올랐다. 이번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네 번째 만나게 된다. 현 정부의 임기가 한달도 채 남지 않은 때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한 1월12일, 남쪽에서 먼저 특사 파견을 제안했고, 보름여 만인 24일 북쪽이 수락통보를 해왔다. 그 사이 남북장관급회담, 남북적십자 실무접촉, 남북철도도로연결 실무협의회가 잇달아 열렸다. 하지만 양쪽 모두 속시원한 결과를 내지는 못했다. 애초 남쪽 당국은 조금 욕심을 냈다. 핵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복귀, 핵동결 해제 조처의 원상회복 선언 등을 이끌어내기 위해 무척이나 공을 들였다. 하지만 민족공조를 앞세우고, 북-미 간 직접 담판을 통한 해결을 선호하는 북한과의 견해 차가 너무 커 어정쩡한 타협선에서 회담을 마쳐야 했다. 또 현 정부는 경의선·동해선 임시도로 연결, 개성공단 착공, 금강산 육로관광 등 3대 경협사업을 임기 내 가시화하기 위해 전력을 쏟았으나 북한은 박자를 맞춰주지 않았다.
3대 경협 현안 타결 설득
임 특사의 방북은 이런 지지부진한 교착상태를 뒤집어보자는 성격이 강하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쪽에서도 대북특사 파견을 은밀히 준비해왔다. 하지만 임 특보를 보내는 안에 대해서는 애초 난색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세력들이 임 특보를 바라보는 탐탁지 않은 시각이 부담스러운 탓이었다. 또 미국 부시 행정부에서도 그의 북한 편향성에 적지 않은 우려를 표한 것도 짐이었다. 무엇보다 새 정부에서는 새로운 대북채널이 가동되기를 원한 것이다. 특사 파견시기도 노 당선자쪽에서는 취임식 이후를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정부 고위 관계자들도 임 특사의 재방북 가능성을 철저히 부인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불쑥 성사된 임 특사의 방북은 놀라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그가 어떤 성과를 담은 보따리를 가져올까. 대통령 특사 방북은 전례로 보아 최소한의 정치적 성과를 담보로 하는 경우가 많다. 빈 보따리로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얘기다. 특사를 보내겠다고 제의한 쪽이나 받겠다는 쪽의 결정 이면에는 뭔가 주고받을 것이 있음을 감안했기 때문에 합의가 성사됐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번에도 어느 정도 기대를 걸어봄직하다. 임 특사는 김 위원장을 집중적으로 설득하는 임무를 맡을 게 뻔하다. 남북관계가 이런저런 이유로 교착될 때마다 임 특사는 특유의 정연한 논리로 김 위원장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고, 실제로 돌파구를 찾은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 임 특사는 남북문제는 우리끼리 풀어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고, 실제로 남북한의 교류협력 심화가 궁극적으로 민족이 살길이라는 논리를 폄으로써 김 위원장과 측근들의 마음을 녹여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에도 핵문제 해결 없이는 북한 스스로의 생존은 물론 남북관계의 진전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김 위원장의 통큰 결단을 이끌어내려 할 것이다. 미국의 부시 정권은 북한이 먼저 핵포기 선언을 하면 협상을 통해 식량이나 에너지 지원을 적극 고려하겠다고 내비치며 공을 북쪽에 넘긴 상태다. 하지만 북한은 ‘선 핵포기’ 조건제시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내심 주판을 튕기고 있으나 겉으로는 미국이 던진 공을 다시 차버린 셈이다. 하지만 임 특사는 지금이 북한과 미국이 대화에 나설 수 있는 적기라고 판단한 듯하다. 북핵이 유엔 안보리이사회로 회부되면 문제가 더욱 복잡해지고 남한의 주도적 역할이 더 퇴색하리라 우려했다는 게 관계자의 귀띔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월3일 특별이사회를 열어 북한 핵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그렇다면 북한 지도부의 자존심을 세워주면서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게 하는 묘안은 무엇일까. 현 정부가 북한에 풀어놓을 보따리 내용은 그리 넉넉지 않아 보인다. 임기 종료를 코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 특사는 노무현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북한 핵포기 이후의 당근 보따리를 김 위원장 눈앞에 펼쳐놓을 가능성이 크다. 보따리 내용은 노 당선자의 특사자격으로 세계경제포럼(WEF) 연례포럼에 참석하고 있는 민주당 정동영 의원의 발언을 통해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정 의원은 1월24일 기조연설을 통해 “만약 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포기하고, 다른 안보상의 우려요인을 제거한다면 북한은 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경제적·외교적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북한 경제재건 계획을 이른바 ‘북한판 마셜플랜’이라고 했다. 임 특사는 또 핵문제를 남북한이 주도적으로 풀기 위해서라도 당장 3대 경협 현안을 우선 타결짓자고 요구할 게 뻔하다. 물론 이 문제도 북한이 우선적으로 양보해야 한다. 유엔사의 옷을 입고 있는 미군이 군사분계선 통과문제와 관련해 통행합의서에 “관리구역에서 제기되는 민간인의 군사분계선 통과문제는 정전협정에 따라 협의 처리한다”는 수정안을 내놓았으나 북한군은 여기에 ‘남북 쌍방이’라는 문구가 들어가야 한다고 팽팽히 맞서고 있는 터다. 임 특사쪽 입장은 남북한 철도·도로가 이어지면 실리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핵문제를 둘러싼 국제사회 비난도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논거로 설득할 요량이다. 북한의 핵문제 해결 의지가 관건
나머지 관심사는 2차 남북정상회담이다. 이제 김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기 전에 김 위원장이 서울을 답방하기에는 물리적으로 어려워보인다. 따라서 임 특사는 햇볕정책의 계승자임을 자임하고 있는 노 당선자의 의중을 전달할 가능성이 크다. 노 당선자는 이른 시일 안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이미 여러 번 밝혀왔다. 이번 특사 방북기간 중에는 정상회담의 구체적 시기와 절차가 논의될 것이 분명하다. 노 당선자는 1월24일 과의 인터뷰에서도 북한 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김 위원장과의 회담을 제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6·15 공동선언 이행을 강조하고 있는 김 위원장도 이 제의를 마다할 까닭이 없어 보인다. 북한 지도부는 입만 열면 민족 공조를 외치고 있는 터다. 나라 안팎에 공조를 과시하기 위한 제스처로 남북정상회담 개최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이번 특사 방북을 통해 두 번째 정상회담 일정이 잡히고, 남북 사이에 철도와 도로가 이어지며, 개성공단 건설 삽질이 시작되면 북한 핵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밖에 없다. 다만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북한쪽이 어느 정도 성의를 보여주느냐가 관건이다. 이는 북-미 간 협의사항이라고 고집을 부리면서 구체적 실천조처를 내놓지 않으면 현 정부나 차기 노 정부도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북한이 핵포기 선언과 검증에 대한 더 분명한 실천의지를 보여줘야 남북관계가 길게 순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모든 게 임 특사와 김 위원장 두 사람의 사활풀이 능력에 달린 듯하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사진/ 지난해 4월 북한을 방문하기 전 청와대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임동원 특사. 1월27일 방북하면 그는 김정일 위원장을 네 번째 만나게 된다. (한겨레 이정우 기자)

사진/ 1월23일 열린 제9차 남북장관급회담 1차 전체회의. 핵 문제 등에 대해 양쪽 모두 속시원한 결과를 내지는 못했다. (사진공동취재단)
그렇다면 이번에는 그가 어떤 성과를 담은 보따리를 가져올까. 대통령 특사 방북은 전례로 보아 최소한의 정치적 성과를 담보로 하는 경우가 많다. 빈 보따리로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얘기다. 특사를 보내겠다고 제의한 쪽이나 받겠다는 쪽의 결정 이면에는 뭔가 주고받을 것이 있음을 감안했기 때문에 합의가 성사됐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번에도 어느 정도 기대를 걸어봄직하다. 임 특사는 김 위원장을 집중적으로 설득하는 임무를 맡을 게 뻔하다. 남북관계가 이런저런 이유로 교착될 때마다 임 특사는 특유의 정연한 논리로 김 위원장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고, 실제로 돌파구를 찾은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 임 특사는 남북문제는 우리끼리 풀어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고, 실제로 남북한의 교류협력 심화가 궁극적으로 민족이 살길이라는 논리를 폄으로써 김 위원장과 측근들의 마음을 녹여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에도 핵문제 해결 없이는 북한 스스로의 생존은 물론 남북관계의 진전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김 위원장의 통큰 결단을 이끌어내려 할 것이다. 미국의 부시 정권은 북한이 먼저 핵포기 선언을 하면 협상을 통해 식량이나 에너지 지원을 적극 고려하겠다고 내비치며 공을 북쪽에 넘긴 상태다. 하지만 북한은 ‘선 핵포기’ 조건제시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내심 주판을 튕기고 있으나 겉으로는 미국이 던진 공을 다시 차버린 셈이다. 하지만 임 특사는 지금이 북한과 미국이 대화에 나설 수 있는 적기라고 판단한 듯하다. 북핵이 유엔 안보리이사회로 회부되면 문제가 더욱 복잡해지고 남한의 주도적 역할이 더 퇴색하리라 우려했다는 게 관계자의 귀띔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월3일 특별이사회를 열어 북한 핵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그렇다면 북한 지도부의 자존심을 세워주면서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게 하는 묘안은 무엇일까. 현 정부가 북한에 풀어놓을 보따리 내용은 그리 넉넉지 않아 보인다. 임기 종료를 코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 특사는 노무현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북한 핵포기 이후의 당근 보따리를 김 위원장 눈앞에 펼쳐놓을 가능성이 크다. 보따리 내용은 노 당선자의 특사자격으로 세계경제포럼(WEF) 연례포럼에 참석하고 있는 민주당 정동영 의원의 발언을 통해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정 의원은 1월24일 기조연설을 통해 “만약 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포기하고, 다른 안보상의 우려요인을 제거한다면 북한은 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경제적·외교적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북한 경제재건 계획을 이른바 ‘북한판 마셜플랜’이라고 했다. 임 특사는 또 핵문제를 남북한이 주도적으로 풀기 위해서라도 당장 3대 경협 현안을 우선 타결짓자고 요구할 게 뻔하다. 물론 이 문제도 북한이 우선적으로 양보해야 한다. 유엔사의 옷을 입고 있는 미군이 군사분계선 통과문제와 관련해 통행합의서에 “관리구역에서 제기되는 민간인의 군사분계선 통과문제는 정전협정에 따라 협의 처리한다”는 수정안을 내놓았으나 북한군은 여기에 ‘남북 쌍방이’라는 문구가 들어가야 한다고 팽팽히 맞서고 있는 터다. 임 특사쪽 입장은 남북한 철도·도로가 이어지면 실리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핵문제를 둘러싼 국제사회 비난도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논거로 설득할 요량이다. 북한의 핵문제 해결 의지가 관건

사진/ 평양 고려호텔에서 열린 철도·도로 연결 제 2차 실무회담. 임동원 특사는 3대 경협 현안 타결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 김경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