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당선자가 신뢰하는 부산인맥들, 청와대로 입성해 ‘비밀작업’ 합류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부산인맥이 하나둘씩 서울행 열차에 오르고 있다.
노 당선자의 20년 친구인 문재인(50) 변호사가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데 이어, 노 당선자가 ‘순수한 영혼’으로 지칭한 이호철(46)씨를 비롯해 최도술·이재영씨 등 부산인사들이 서울로 올라와 부산인맥의 서울 입성을 위한 정지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가장 각별한 문재인·이호철
또 부산에서는 부산인맥의 역할분담을 위한 ‘교통정리’도 한창 진행 중이라고 한다. 부산에 남아 2004년 총선을 준비할 사람들과 서울에 올라가 노 당선자를 도와줄 사람들을 내부 논의를 통해 나누는 것이다.
‘부산 사람들’은 노 당선자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돈 잘 버는 조세 전문 변호사에서 인권 변호사로 새 삶을 살게 했고, 1980년대는 최루탄을 맞으며 함께 아스팔트를 누볐으며, 노 당선자가 지역감정의 벽에 도전할 때마다 함께 몸을 던져줬다. 정치적 사선을 함께 넘은 동지이자 형제인 것이다.
노 당선자는 1월13일 사직공원 근처의 한 한정식집에서 문재인 변호사와 이호철씨를 반갑게 맞았다. 세 사람은 오랜만에 허리띠를 풀고 술잔을 부딪치며 3시간 넘게 정담을 나누었다. 노 당선자는 이 자리에서 문 변호사에게 “당분간 비공식적으로 도와달라”며 새 정부에 기용할 인사들에 대한 사전 검증 작업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국정원과 검찰 등 권력기관에 대한 개혁작업도 ‘밀지’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문 변호사는 다음날부터 바로 서울시내 모처에서 이씨와 함께 작업에 들어갔으며, 부산집에는 “주말에나 내려가겠다”고 연락했다. 문 변호사는 경남고를 나와 4년 장학생으로 경희대에 입학했다. 강삼재 한나라당 의원이 총학생회장이던 1975년 총학생회 간부로서 대규모 시위를 주도해 구속된 뒤 공수부대에 강제징집된다. 1980년 복학해 사법시험을 준비해 2차까지 합격했으나, 5·18의 혼란기에 다시 계엄사에 구금이 돼 3차 면접시험을 치를 수 없는 처지에 빠졌다가 조영식 경희대 이사장이 신원보증을 서는 등 우여곡절 끝에 사시에 합격했다. 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했으나 학생시위 전력 때문에 판사에 임용되지 못하고, 82년 부산으로 내려가 노무현 변호사와 함께 ‘동업자’로서 변호사 사무실을 공동운영하게 된다. 문 변호사는 “노 변호사와 만났을 때 첫눈에 뜻이 통했다”고 회고한 적이 있을 정도로 의기투합했으며, 부산 신접살림도 노 당선자가 살던 부산 광안리 삼익아파트 단지 내의 전셋집에서 시작했다.
노 당선자는 지난해 11월 초 부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입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문 변호사에 대한 신뢰가 두텁다.
이호철씨는 부산대 법대 77학번으로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도망다니다 뒤늦게 잡히면서 무료변론을 자처한 노 당선자와 만나게 됐다. 이씨는 출소 뒤 ‘부산민주시민협의회’와 ‘국민운동본부’에서 노 당선자와 호흡을 맞춰 함께 일해오다 노 당선자가 88년 13대 선거에 출마하자 열성적으로 선거운동을 도왔다. 당선 뒤 노 당선자는 이씨에게 “보좌관을 맡아달라”고 권했으나 “자기가 무슨 자리를 바라서 일한 게 아니란 걸 보이고 싶었던지 홀연히 노동현장으로 돌아갔다”고 노 당선자는 자신의 저서에서 밝히고 있다. 하지만 노 당선자는 보좌관 자리를 6개월 동안 공석으로 비워두었다가 끝내 이씨를 앉힐 정도로 애정을 보였으며, 자신의 집 문간방까지 내주며 한식구처럼 지냈다.
신상우·김정길씨도 중용 예상
그러나 이씨는 노 의원의 임기가 끝나자 또 떠났다. 각종 선거 때마다 나타나 도와주었지만 선거만 끝나면 조용히 사라지곤 했다. 그의 이런 초연한 기질은 학원운영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남미대륙 오지를 6개월 동안 배낭여행하는 등 5대양 6대주를 돌아다니는 데서도 나타난다. 최근에는 아예 부산대 앞에 배낭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배제항공여행사를 차려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노 당선자의 요청을 받아들여 문 변호사와 함께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중견 실무진으로 일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아울러 386참모들의 맏형으로서 이들을 추스리는 ‘규율부장’ 역할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문·이 두 사람의 비밀작업에는 부산에서 올라온 최도술·이재영씨도 합류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노 당선자의 부산상고 후배로, 20년 넘게 변호사 사무장 등으로서 노 당선자의 살림을 맡아왔다. 청와대에 들어가서도 총무수석실 등지에서 ‘집사’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연세대 영문과 79학번으로, 군대에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비방했다가 남한산성으로 끌려가 1년3개월 옥살이를 한 경력의 소유자다. 부산에 내려와 노동운동을 하다가 노 당선자와 인연을 맺었으며, 문 변호사 사무장 겸 참모로 일해왔다.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과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도 중용이 예상되는, 노 당선자의 빼놓을 수 없는 부산 후원자다.
신 전 부의장은 부산팀으로부터 “사심 없이 노 당선자를 도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노 당선자가 아들 주례를 맡길 정도로 의지하고 있다. 주변에서는 차기 국정원장으로 거론하고 있으나, 막상 본인은 “국정원이 국내업무보다는 해외업무에 주력하게 될 터인데, 정치만 해온 나로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인은 오히려 차기 전국구 의원으로 국회의장에 뜻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정길 전 장관은 노 당선자와 마찬가지로 90년 3당합당을 거부하고 부산을 사수했으며, 이후 통추 등에서 쭉 같은 길을 걸어온 동지이자 선배다. 2002년 1월 선거법 위반 혐의로 150만원 선고와 더불어 향후 5년간 모든 공직 선거에 출마할 수 없는 족쇄가 채워졌다. 그러나 노 당선자가 부산 유세에서 정치적 복권을 언급한 바 있다.
서울보다는 부산에서 역할을 찾게 될 인물로는 김재규·설동일씨가 있다.
김재규씨는 70년대 민청학련 사건 연루자로 이 지역 운동권의 ‘맏형’으로 통한다. 노 당선자와는 부림사건으로 인연을 맺었고, 대선 때는 부산 국민참여본부장으로 활약했다. 설동일씨는 서울대 75학번으로 부산에 내려와 노동운동을 하며 ‘노동자를 위한 연대’ 등 노동운동단체를 주도했다. 역시 부림사건으로 노 당선자와 인연을 맺었고, 현재 부산 민주항쟁기념관 관장으로 있다.
부산 재야의 대부로 불리는 가야성당의 송기인 신부는 노 당선자가 항상 고개를 숙이며 경의를 표하는 대상이다. 88년 총선 출마에 미온적이던 노 당선자를 끌고 당시 김영삼 민주당 총재에게 찾아가 공천을 받게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 당선자에게 민심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부산대 총학생회장 3인방은 잔류
부산대 총학생회장 3인방도 주목받고 있다. 83학번인 정윤재(부산 사상 위원장)씨는 88년 총선 때 대중연설 경험이 전혀 없는 노 당선자에게 날계란과 식초를 먹여가며 웅변연습을 시킨 이래 줄곧 노 당선자를 지켜왔다. ‘부산의 노무현’이라고 불릴 정도로 노 당선자와 가까운 사이다. 85학번인 최인호(부산 해운대 기장갑 위원장)씨는 2000년 총선 때 노 당선자를 위해 헌신적으로 뛰었으며, 지난해 8·8 보궐선거 때는 노 당선자가 출마한 최씨를 위해 달동네인 반송동 구석구석을 돌며 최씨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88학번으로 부산인맥의 ‘막동이’인 송인배(경남 양산 위원장)씨는 98년 노 당선자가 종로 보궐선거에 당선된 뒤 국회 비서관으로 들어간 이후 해양수산부 장관 비서관, 대선 캠프의 의전담당관 등으로 지근 보좌를 해오다 2002년 2월 양산 지구당 위원장으로 고향에 내려왔다.
현재 인수위 정무분과 전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정씨를 포함해 이들 3인방은 2004년 총선에 대비해 부산 현지에 남겠다는 뜻을 노 당선자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부산대 83학번 출신으로 노무현··문재인 두 변호사의 연속 변론을 받았던 정동수씨도 노 당선자가 신뢰하는 부산인맥이다. 정씨는 2000년 총선 직후부터 최도술씨와 함께 은밀히 노 당선자의 ‘대권 프로그램’을 부산에서 작동해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사진/ 88년 거리의 노무현. 노태우 정권퇴진을 요구하며 거리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노무현 당선자의 부산인맥들. 왼쪽부터 문재인·김정길·신상우·송기인 씨

사진/ 노무현 당선자의 부산인맥들. 왼쪽부터 김재규·설동일·정윤재·최인호 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