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다 무효, 제발 다 무효!

444
등록 : 2003-01-22 00:00 수정 :

크게 작게

당선무효소송 이어 선거무효소송까지 낸 한나라당…‘뒤집기 기대’보다는 내부결속용?

한나라당을 다시 한번 결정적인 패배자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실낱같은 기대가 현실화될 것인가. 한나라당이 당선무효소송에 이어 선거무효소송을 내는 등 재검표를 통한 뒤집기에 상당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경비 4억~5억원은 한나라당이 부담

사진/ ‘창사랑’회원들이 재검표를 요구하며 당 지도부를 압박하고 있다. (이용호 기자)
당선무효소송과 선거무효소송은 차원이 좀 다르다. 당선무효소송에선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표차인 57만표를 뒤집는 결과가 나와야만 한나라당 승소가 가능하다. 이와 달리 선거무효소송은 중앙선관위가 각종 불법선거운동을 방치하는 등 선거관리를 잘못해 선거결과에 영향을 끼쳤으니 16대 대선이 무효임을 확인해달라고 요구하는 소송이다. 한나라당 진상조사위 상황실장인 이주영 의원은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토론 허용 △노사모 회원들의 선거 당일 인터넷 투표 독려 △돼지저금통 모금 △노란 목도리 사용 방치 등을 불법선거운동의 사례로 꼽았다.


사상 처음으로 받아들여진 대선 재검표는 전체 개표소 244곳 가운데 한나라당이 의심된다고 지목한 80개 투표소에서 실시된다. 전체 2400만여장의 투표용지 가운데 40%에 이르는 1천만장 정도를 일일이 손으로 확인하는 방대한 작업이다. 인건비 등 4억~5억원으로 추정되는 경비는 한나라당이 부담한다.

한나라당이 주목하는 것은 전자개표기 조작을 통한 조직적인 개표부정 가능성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살피는 것이 ‘혼표’(混票)다. 혼표란 100장 단위로 묶인 노무현 당선자 지지표 묶음 가운데 이회창 후보 지지표가 섞여 있는 것을 말한다. 만약 이런 혼표가 10장마다 1장씩 나온다든가 하는 식으로 규칙적으로 발견되면 투표용지를 인지해 분류하는 전자개표 시스템 조작 가능성이 있다는 게 이주영 의원의 주장이다. 한나라당 인터넷 사이트 등에는 “개표 시스템 조작으로 10번째의 이회창 지지표는 튕겨져나갔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구체적인 검표작업은 100장 단위로 묶인 표묶음의 보존상태를 확인하는 작업부터 시작된다. 투표용지는 고무줄로 묶고 봉투에 넣어 테이프로 붙인 뒤 선관위원의 도장을 찍어서 봉인하게 돼 있다. 개표 이후 투표용지가 바뀌었을 가능성을 검사하는 것이다. 다음은 봉인을 뜯고 혼표가 있는지 살핀다. 이상이 없으면 고무줄을 풀고 100장이 맞는지 수량을 검사한다. 이어 한장 한장 넘기면서 무효표가 유효표로 판정됐는지 등을 따진다. 판정이 어려우면 판사가 판단하도록 돼 있다.

한나라당 당직자들도 실제로 재검표와 소송을 통해 당락이 뒤집힐 가능성을 크게 기대하는 눈치는 아니다. ‘창사랑’ 회원들과 허탈감에 빠진 일부 열성 당원들의 시위를 다독이며 내부결속을 다지는 계기로 삼으려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높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 아니냐는 것이다.

재검표에서 조직적인 부정의 흔적이 발견되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그러나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을 경우 한나라당은 소송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선거결과에 대한 흔쾌한 승복의 문화에 흠집을 냈다는 비난도 한나라당이 감수해야 할 몫이다.

김영춘·김부겸·안영근 의원은 한나라당 지도부의 당선무효소송 제기 결정에 대해 “이미 많은 사람들은 대선에서의 불가능한 패배를 한 직후 또다시 이런 결정을 내린 우리 당의 정치적 판단력에 대해 정치적 금치산자 선고를 내렸다. 지금보다 더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는 정당이 되길 바란다면 모르되, 당장의 패배를 미래의 승리로 보상받기 위해선 소송을 당장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어느 쪽이 올바른 결정이었는지는 설 이전인 1월27~28일께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