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개혁의 화두는 진성당원제와 상향식 공천…당 환골탈태 수위 놓고 여러 의견 제시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국민경선의 덕을 톡톡히 봤지만 처음에는 국민경선에 반대했다.
2001년 말 민주당 특대위가 위기 타개책으로 국민경선안을 내놓자 노 당선자는 “도대체 호남 향우회와 산악회를 무슨 수로 당해낼 수 있느냐”며 대통령 후보 경선에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방안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고 노 당선자의 측근들이 뒤늦게 털어놓고 있다.
지역적 기반도 조직력도 취약한 노 당선자로서는 국민경선에 자신의 지지자들을 ‘동원’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애초 경선 규칙대로 선거인단이 1만명 안팎 정도의 소규모라면 자신의 영남 득표력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지만, 그 수가 폭발적으로 팽창하면 차근차근 설명하기가 어려워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제왕적 지구당 위원장 해체
주저주저하던 노 당선자는 참모들로부터 “이 정도의 어려움을 뚫지 못하면 어차피 대선에서도 이길 수 없다. 시민단체나 노조 등 우리 사회 개혁세력의 지원역량을 한번 믿어보자”는 건의를 듣고 결국 국민경선안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국민경선이 예상치 않은 ‘대박’을 터뜨렸다.
노 당선자는 다시 한번 ‘국민의 힘’을 믿기로 했다. 아래로부터의 힘으로 민주당을 대대적으로 개혁하려는 것이다.
민주당 정치개혁특위가 1월3일 첫 회의를 열고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김원기 개혁특위 위원장은 당 개혁방안 마련과 관련해 “국회의원 공천과 지도부 선출에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방안도 (특위의) 검토대상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다소 부작용이 있더라도 국민을 믿고 되도록 국민의 판단에 많은 부분을 맡기는 게 발전 아니냐는 생각을 한다”고 소개했다.
김 위원장은 더 나아가 “현재는 기득권을 가진 사람이 마르고 닳도록 하게 돼 있어 제대로 된 상향식 민주주의를 하기가 어렵게 돼 있다. 제왕적 지구당 위원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당의 정강·정책에 찬동하는 사람들이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이 지구당 중심이 되도록 하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개혁의 화두가 진성당원제와 상향식 공천으로 모아지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대통령 후보뿐 아니라 국회의원과 시·도지사 후보 등을 모두 일반 당원의 손에 맡기는 대대적 ‘권력이동’이 시작된 셈이다. 이는 2002년 대성공을 거둔 국민경선의 또 다른 이름이며, 노무현과 같은 대중 정치인을 수백명씩 ‘복제’해내겠다는 야심찬 계획이기도 하다.
민주당 체질 개선의 가장 본질적 부분에 해당하는 것이 진성당원화 문제다.
현재 민주당은 170만 당원이니 200만 당원이니 말을 하지만 실제로 당비를 내고 정기적으로 정당활동에 참가하는 진짜 당원은 몇천명 수준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영국 노동당의 진성당원이 450만명, 독일 사민당이 550만명인 것에 비춰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멀리 갈 것 없이 국내 정당들을 봐도 민주노동당이 3만명이고, 개혁국민정당이 3만명이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2만명, 환경운동연합이 7만명의 회비를 내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상향식 공천 부작용을 없애려면…
민주당에서는 정당구조 뿌리에 해당하는 진성당원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를 놓고 논의가 두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미국식으로 당의 문턱을 최대한 낮춰 공직자 후보를 선출할 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개방형’이고, 다른 하나는 유럽식으로 당비도 내고 열성적으로 토론회 등에도 참여하는 활동가 중심의 ‘내실형’이다. 미국식은 단기간에 당원을 늘리기에는 적합하나 당원관리가 쉽지 않고 공직후보 선출 등 당원들이 한표를 행사할 때 과열되기 쉬운 단점이 있다. 유럽식은 당 재정이 안정되고 평상시에도 정당활동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당원규모 확대에 어려움이 따른다.
민주당 정치개혁 특위가 두 가지 방식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할지, 아니면 두 방법을 섞는 혼합형으로 나갈지는 논의과정을 좀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2004년 총선에서는 당 지도부가 공천자를 낙점하는 하향식은 사라지고 상향식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상향식에 따른 부작용이다. 민주당으로는 상향식 공천에 대한 쓰라린 기억이 남아 있다. 2002년 6·13 지방선거 때 상향식을 실험적으로 도입한 것이 참패를 불러온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 때문이다. 경선과정에서 일부 후보들이 돈을 쓰고, 경선에 진 후보들이 불복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등의 부작용을 낳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노 당선자는 최근 참모들과 민주당 개혁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내가 5년 동안 검찰과 경찰을 동원해 돈쓰는 사람을 철저하게 색출해내 응징하면 돈 문화가 근절되지 않겠느냐”며 상향식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정분리 원칙대로 자신이 직접 민주당 개혁의 깃발을 들고 나가지는 않겠지만, 민주당이 개혁의 방향으로 나가도록 든든한 후원자 구실을 해주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상지대 정대화 교수는 “모든 정당이 상향식 공천을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어느 정당은 상향식 공천을 하고 다른 정당은 안 하면 결국 상향식 하는 정당이 이길 것이다. 상향식 공천을 받은 사람은 국민후보가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밀실야합으로 나온 후보가 되기 때문에 국민의 선택이 분명해진다”라고 또 다른 해법을 제시했다.
민주당의 이런 개혁과제 모두 궁극적으로 2004년 총선에서 제1당이 되는 데 목표를 맞췄다. 노 당선자는 17대 총선 이후에는 다수당에 총리 지명권을 주겠다고 약속한 만큼, 민주당의 제1당 확보는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이다. 실패하면 노 당선자는 1년짜리 대통령으로 단명하고, 나머지 4년은 실세 총리 뒷전에서 허수아비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제1당이 되기 위해서는 제도적 개선책과 더불어 인물교체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민주당 내 개혁성향 의원들의 생각이다. 이런 물갈이를 통해 민주당이 호남당 이미지를 벗어던지지 않고서는 제1당은커녕 언제든지 ‘고립’되는 상황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지도부 교체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대통령이 동교동계 해체를 선언함으로써, 최대 저항세력으로 떠오를 수 있는 상황을 미리 막아놓았기 때문이다. 또 ‘반노파’의 수장처럼 돼 있는 정균환 원내총무와 박상천 최고위원의 반발기세도 한층 누그러졌다. 정 총무의 한 측근은 “2월 전당대회에서 당권에 도전할지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1월 말쯤 방향 결정
더 나아가 내년 총선 공천과정에서 반노파 의원들에게 도전하겠다는 정치 지망생들이 벌써 쇄도하고 있다. 노 당선자의 한 측근은 “노무현을 흔든 사람 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의 대립구도로 가면, 아무리 거물 정치인이라 할지라도 민주당 당원을 상대로 한 경선에서 이길 수 있다”며 호남의 한 지역구에 도전할 의지를 나타냈다. 또 인적 쇄신을 위해서는 2000년 민주당 창당 이후 당 재정에 대한 감사를 통해, 부패에 연루된 당시 지도부를 털어버리는 강경론까지 거론하는 의원들이 있다.
문제는 하층부, 특히 민주당의 취약지역인 영남에서 어떻게 토대를 구축하느냐다.
이 때문에 민주당 개혁성향 의원들은 민주당이라는 집을 완전히 허물고, 개혁국민정당, 시민단체 일부, 각계각층의 개혁적 인사들을 대거 결합하는 신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개혁국민정당 유시민 대표도 “지도부와 주도세력만 바꾸고 당명을 바꾸는 신장개업형 민주당과의 통합은 단호히 거부한다. 그러나 기대를 갖고 민주당의 개혁과정을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정치개혁 특위 첫날 회의에서 김경재 의원은 “환골탈태를 하더라도 민주당이란 이름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등 개혁의 수위를 놓고 여러 이견들이 제시되고 있다.
정치개혁 특위는 민주당을 어느 방향으로 몰고 갈지 1월 말쯤 결정을 낼 예정이다. 그때까지는 민주당 내에서 개혁 방향을 놓고 백가쟁명식 논의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제왕적 지구당 위원장 해체

사진/ 지난해 3월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 광주 경선. 국민경선안을 두고 노무현 당선자는 처음에 난색을 표했으나 결과는 대박이었다.

사진/ 지난 1월3일 민주당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당개혁특별위원회. 김원기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용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