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대선주자 운명이 헷갈리네!

439
등록 : 2002-12-18 00:00 수정 :

크게 작게

대통령 선거 결과를 예측한 각종 서적 봇물… 풍수와 관상·사상체질 등으로 후보 경쟁력 평가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흔히 “대통령은 하늘이 내리는 자리”라고 말한다. 절대왕정시대의 ‘왕권신수설’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동양적 전통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큰 저항감 없이 통용되고 있다. 이 때문인지 대선이 있는 해가 되면 사주명리학·풍수학·관상학·무속신앙 따위에 근거해 아무개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것이라는 예측이 난무한다. 올해도 이런 종류의 운명론적 당선자 예측이 무성했다. 이런 얘기들은 이치나 터무니를 떠나 일단 대중 속을 파고드는 영향력이 작지 않다. 관련된 책들도 무수히 쏟아졌다.

이제 “내 판단이 틀림없다. 두고 보면 안다”고 큰소리친 술사·도사·처사들은 두 부류로 명암이 엇갈리게 됐다. 족집게처럼 맞췄노라며 어깨를 으쓱하는 축도 있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들이대며 빗나간 예측을 변명하기에 바쁜 축도 있다. 이 즈음에서 그동안 회자된 각종 예언과 비결, 점괘의 허실을 짚어보는 것은 부질없고 싱거운 일일까.

선영의 기운, 누가 덕을 볼 것인가


사진/ 누가 16대 대선의 족집게 도사가 될 것인가. 대선 관련 예언서들은 나름의 판단 근거로 '예정된 대통령'을 지목한다.
우석대 김두규 교수는 독문학을 전공했으나 풍수학도 강의하며 풍수 관련 저작을 여러 권 썼다. 그가 대선후보와 정치인들의 선영을 직접 둘러보고 펴낸 책이 <권력과 풍수>다. 그는 ‘선영의 기운’이라는 측면에서는 노 후보의 손을 들었다. “선영으로만 보면 노무현 후보가 대선후보 가운데 가장 좋다. 다만 너무 강한 기운을 다스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박정희에 이어 가장 강력한 풍수 덕을 볼 것이며, 박정희보다 강한 카리스마를 보일지 모른다.” 이회창 후보는 선영보다는 생가 터를 꼽았다. “금오산에서 선영으로 이어지는 자리에 생긴 도로가 맥을 끊어버렸다. 명당이라고 볼 수 없다. 오늘의 이 후보를 만든 것은 선영이 아니라 황해도 서흥에 있는 생가 터 덕분이라고 유추해볼 수 있다.” 김 교수는 지난 2000년 작고한 이인제 의원의 모친 묘에 대해 “배신당할 수 있는 형세”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동양학을 전공한 원광대 조용헌 교수가 펴낸 <사주명리학 이야기>도 대선후보 예측에 관한 흥미로운 얘기를 전한다. 한의학도들의 필독서인 <우주변화의 원리>를 저술한 한의사 두암 한동석(1911~68)이 1959년 사촌동생인 한봉흠 전 고려대 교수에게 했다는 예언. “박정희는 총 맞아 죽는다. 그 다음에 한 1년 반 정도 정치형세가 서너번 바뀌는 정치적 혼란기를 거쳐 군사독재가 한번 더 오고, 그 뒤엔 군인도 아니고 민간인도 아닌 어정쩡한 인물이 정권을 잡는다. 이어 금기(金氣)가 있는 사람들이 한 10년 정도 정권을 잡는다. 그 다음번엔 목기(木氣)와 화기(火氣)를 지닌 사람이 연합한다. 연합팀이 정권을 잡았을 때 비로소 남북통일이 이뤄진다.” 저자에겐 연합팀이 누구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노무현 후보를 주목하는 술사들 사이에선 <숙신비결>이라는 비결집이 떠돌았다. 이 속엔 “임오년에 문둥이 상을 한 사람이 왕이 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런데 올해가 임오년이고, 문둥이 상이란 울퉁불퉁한 서민적 얼굴의 노 후보를 뜻한다는 것이다. 이회창 후보를 지목하는 술사들 사이에선 ‘오행상생론’이 유통됐다. 화(火)의 기운에 의해 대통령에 오른 DJ 다음에는 토(土)의 기운이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데, 토에 해당하는 충청도와 연고가 있는 이 후보가 유력하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얼굴의 생김새를 동물에 비유한 대선후보 관상론도 소개돼 있다. 30년여 년 동안 관상을 봐온 황산 김동전씨의 관상평이다. 먼저 이회창 후보. “독수리의 얼굴인데 입은 원숭이에 가깝다. 만약 얼굴 전체가 독수리의 얼굴이었다면 지난번 선거에서 대통령이 됐다. 이 후보가 원숭이처럼 국민을 위해 열매도 따고 이도 잡아주고 재롱도 떨어야 한다. 불우이웃과 소외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점만 유의하면 대권에 가장 가깝게 접근한 관상이다.”

관상평 중계해 유권자 판단 돕는다

노무현 후보는 시라소니에 비유됐다. “인파이터로는 시라소니가 최고다. 이인제가 물린 것이다. 시라소니가 고개 숙이는 것 보았는가. 고졸 학력으로도 기죽거나 굽실거리지 않고 여기까지 걸어왔다. 광대뼈 부분의 살이 도톰해 혁명가의 기질이 강하고 정면공격을 선호한다. 좋게 다듬으면 한 국가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관상이다. 권하고 싶은 부분은 신독(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도록 삼감)이다.”

권영길 후보는 산양(山洋)의 얼굴상이다. “산양은 평지에서 편안하게 주는 사료나 먹으며 안주하는 동물이 아니다. 제사에 희생양으로 사용되는 동물이다. 양(羊)자 밑에 큰 대(大)를 붙이면 아름다울 미(美)가 된다. 산양은 천연기념물이어서 국가에서 보호해준다. 권영길은 국민이 끝까지 보호해줄 것이다.” 국민통합 21의 정몽준 대표는 얼룩말로, 하나로국민연합의 이한동 후보는 사자의 얼굴로 각각 분류됐다.

<조선일보>는 11월29일치 ‘만물상’ 난에 이 책에 나온 대선후보 관상평을 발췌해 소개했다. 그러나 치우친 보도가 문제였다. ‘2002대선 미디어공정선거 국민연대’는 12월12일 중앙선관위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선거법 위반으로 고소했는데, 이 기사를 <조선일보>의 편파사례로 들었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관상이 더 좋다’며 지지할 것을 은연중에 강요해 독자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는 이유였다. 대선국면에서 나오는 예언들이 과학적 타당성이나 논리적 정합성을 떠나 얼마나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사람의 사주팔자를 뜯어보고 운명을 예측하는 역술인들이나 점괘와 신의 소리에 의존한다는 무속인들도 적중률에 따라 명암이 엇갈렸다. 남덕역학연구소를 운영하는 남덕 소장은 “이회창과 이인제는 금수가 용신(用神)인데 올해는 불(火)의 기운이 강해 맥을 못 춘다”고 예측한 바 있다. 기업형 역술을 선언하고 나선 애스크퓨처닷컴(www.askfuture.com)의 이수 대표는 지난해 말 ‘3남1녀’의 대권구도를 예측하며 “이인제씨가 대통령이 된다”고 확언했다. 에두르지 않고 딱부러지게 찍어 말했지만 결과가 빗나갔다. 정·재계의 유력인사들이 즐겨찾는다는 무속인 최옥순씨는 지난해 12월 “아직은 눈에 띄는 사람이 없다. 2002년 3~4월이면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무속인 심진송씨는 “이름에 일(日)과 월(月)이 들어가는 여성이 대통령이 된다”고 점쳤다. 민주광명당의 명승희씨가 출마의사를 밝히자 심씨가 예언한 인물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았지만 명씨는 막판에 후보등록을 포기했다.

동국대 황태연 교수의 최근 저작인 <사상체질과 리더십>(들녘)은 이제마의 사상체질론(四象體質論)에 입각해 정치인의 리더십 유형을 논하고 국민성을 판별하는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예언이나 예측과는 거리가 멀지만 타고난 체질을 리더십의 결정적 인자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운명론과 맥이 닿아 있다. 그에 따르면 이회창 후보는 소양인이다. 소양인은 사회·정치적 흐름에 밝고 남과 잘 어우러지며 재간이 많지만 지구력과 인내심이 필요한 협상과 뚝심이 필요한 일에는 약하다. 체질적으로 소양인은 소음인과 사이가 좋지 않다. 지난 5년 동안 그치지 않은 여야 무한정쟁도 소음인인 DJ와 이 후보의 체질적 상극관계 때문에 증폭됐다는 게 황 교수의 진단이다. 김영삼·전두환 전 대통령과 김종필 총재, 이인제·정동영·정균환·이만섭·이부영·이재오 의원과 김민석·김한길 전 의원 등이 소양인으로 분류됐다.

DJ와 이회창이 화해할 수 없는 까닭은…

소음인인 노 후보는 부끄러움을 잘 타는 내성적인 성격에 시비지심이 강해 비판에 능하고 입바른 소리를 잘한다. 또 풍자와 반어를 좋아하고 강인하며 초지일관하는 성정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근태·천정배·함승희 의원, 신건 국정원장이 소음인으로 꼽혔다. 태음인은 점잖치만 우유부단해 좀처럼 전략적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대신 일단 결단을 내리면 황소처럼 끝까지 밀어붙인다. 협상에 강하지만 ‘뿔뚝성질’을 부리기도 하고 화를 속에 오래 간직한다. 윤보선·박정희·최규하·노태우 전 대통령과 정몽준 대표, 한화갑·김원기 의원, 한광옥 전 의원 등이 태음인으로 꼽혔다. 태양인은 언변이 분명하고 사람을 포용하는 매력이 있어 교우에 능하지만, 가족이나 친족 등 사적인 가치행위에 관심이 없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태양인으로 꼽혔다.

18년 동안 사상체질론을 탐구했다는 저자의 설명과 64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 저작에 맺힌 땀방울을 짐작하게 한다. 저자는 “독자들의 비판적 검증을 거쳐야 하므로 아직은 가설 단계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고백했지만 새롭고 흥미로운 시도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