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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이제 영등포로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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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2-0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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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치에서 내려와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 정몽준으로 단일화 안돼 대선은 덜 쉬워져

사진/ (이용호 기자)
역시 매에는 장사가 없는 법인가 보다. 김민석 전 의원도 상처받고 신음하고 있었다. 민주당을 탈당하며 “욕 안 먹어도 되는 기득권을 버렸다”고 당당하게 소리친 그였지만, 평생 먹을 욕의 열 곱절을 한꺼번에 먹은 탓인지 그의 어깨는 처져 있었다. 스스로 “상당 기간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이 후보단일화의 ‘훼방꾼’으로 비친 데 대해서는 매우 억울해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오해고 음해라고, 단일화에 대한 충정만은 끝까지 지켰다고.

그는 정치적 고향인 영등포로 가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잘 안 될 수 있다”는 그의 첨언이 내상의 깊이를 짐작하게 했다.

노무현 후보로 단일화된 데 대한 평가는.

최악을 막은 차선의 결과로 본다. 두 후보가 각개약진하며 2등싸움 하는, 전망 없는 상황은 막았다. 그러나 정몽준 대표로 단일화되지 않으면서 선거가 덜 쉬워졌다. 고생을 좀 더 해야 될 선거가 됐다는 점에서 차선이다. 그래도 막판까지 원칙적으로 단일화에 대한 부정론이 컸고, 현실적으로 안 될 것이라는 비관론이 더 우세했는데, 이를 헤치고 성사된 것은 감사하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단일화됐지만, 김 전 의원이 구상한 그림과는 딴판이다.

형식적 단일화와 실질적 단일화 둘 다를 생각했다. 형식적 단일화는 협상과 합의에 의한 타결이고, 이걸 위해서라도 더 가능성이 있다고 보이는 쪽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실질적 단일화다. 그런데 어느 시기에 와서 사실상 혼전상태에 접어들었고, 그 상황에서는 합의와 협상에 의한 단일화밖에 남지 않았다. 막판에는 서로 승복할 수 있는 장치를 갖춰 이후 시비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런 점에서 내 나름으로 처음 생각한 방향으로 쭉 흘러왔다고 본다.

이철-이해찬 1차 협상팀 결과를 비판하는 등 한때 단일화에 반대하는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는데.

누군가 자신의 입지를 위해 내부 사정을 왜곡한 것이다. 분명한 것은 후보등록 이전 국민여론 조사에 의한 타결은 내 일관된 생각이었다. 단일화 타결 과정에서 내가 성실하게 애썼는지 여부는 민주당 협상단에게 물어보라. 자기 후보를 위해 노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단일화의 대의를 위해 객관성을 최대한 지키겠다는 의지 없이는 어려운 협상이었다.

역선택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너무 강하게 고집한 것 아닌가.

정 대표가 역선택을 문제의 핵심으로 보는 상태에서 그 문제를 풀지 않고는 승복가능한 구조를 만들 수 없었다.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1차 협상결과는 원만한 것일 수는 있어도 올바른 것일 수는 없다. 1차 협상팀 사퇴는 이른바 언론유출 문제가 강하게 제기되자 문제해결 방안의 하나로 1차 협상팀 스스로 내놓은 것이다. 왜 책임을 나한테 돌리는지 모르겠다. 부도덕한 짓이다.

김 전 의원이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오며 “노무현을 죽이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사람이 있다.

무협지 수준 얘기다. 그런 말이 회자된다는 사실을 어제(11월29일) 처음 들었다. 황당한 코미디다.

앞으로 개인 진로는.

개인적으로는 상당 기간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다. 처음에 사고칠 때부터 그런 얘기를 했지만, 어차피 정 대표로 단일화됐더라도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정치적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또 노 후보로 단일화되자 정 대표 지지자들로부터 “저게 민주당 출신이라 혹시라도 노 후보에게 유리하게 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받았다. 집사람이 ‘당신은 이제 바닥까지 갔다. 바닥에서 다시 출발하는 심정으로 10년이고 20년이고 다시 한다는 마음을 가져라’고 했다. 그게 옳다고 본다. 이번 대선기간부터 정치적 고향인 영등포에서 사람들하고 바닥에서 어울리고 싶다. 중앙정치적인 과제는 손대지 않을 생각이다. 희망하기는 다음 총선에서 지역주민으로부터 다시 평가받고 싶다. 그러나 안 될 수도 있다고 본다. 1년이라는 기간이 짧을 수도 있다. 최선을 다해 보는 거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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