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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PK여, 16.48%나 되는 PK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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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2-0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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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다니는 부산·울산·경남의 민심추적… “DJ가 괘씸하긴 하나 노무현이 안쓰럽고”

부산·울산·경남을 통틀어 일컫는 이른바 ‘PK지역’ 유권자들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의 승패가 이곳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PK지역 유권자는 부산 278만8020명, 울산 73만112명, 경남 225만933명 등 모두 576만9065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전국 유권자의 16.48%를 차지한다. 지난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전국 득표율 차이는 1.50%였다. 16.48%는 대통령을 몇번 바꾸고도 남을 만큼 엄청난 수인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표가 아직도 마음을 정하지 못해 떠다니고 있다.

“노무현이 갸가 언제 그리 컸노”


사진/ 노무현 후보가 선거운동 첫날인 11월27일 부산역 광장을 찾아 승리의 브이자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이용호 기자>
후보들은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자마자 가장 먼저 이곳을 찾았고, 계속 PK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다. 각 후보진영도 이번 선거에서 PK지역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행복한 고민에 빠진 PK지역을 두고 “누구를 찍어도, 누가 대통령이 돼도 손해볼 것 없는, 그래서 ‘꽃놀이패’를 쥐고 있는 격”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러나 PK지역 유권자들이 콧노래만 부르는 것은 아니다.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자니 이곳에서 태어나 지금껏 살 비비며 살아온 노무현 후보가 안쓰럽고, 그렇다고 노무현 후보를 찍자니 지난 5년간 DJ정권의 행태가 괘씸하기 때문이다. 이곳에 지역기반을 둔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도 눈에 밟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끼리 모여도 선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조심스럽다. 정치적 속내를 드러냈다가는 자칫 낭패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그만큼 고민이 깊다.

그나마 나도는 이야기가 있다면 민주당과 국민통합21의 후보 단일화 정도다. 그리고 “노무현이 갸가 언제 그리 컸노” 하는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그래도 아직은 대통령감이 아니야”와 “이번에 완전히 새로 보게 됐어”로 갈라진다.

어떤 대답이 맞는지는 12월20일 새벽에야 알 수 있겠지만, PK지역 유권자들은 “우리 손으로 정답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특히 20~30대의 투표율과 40대의 표심에 따라 21세기 대한민국의 첫 대통령은 결정될 것으로 본다.

이회창이 어떻게 1등을 할 것인지…

사진/ 같은날 부산 서면 거리유세에서 두손을 번쩍 치켜든 이회창 후보. 목표지지율 70%를 장담하고 있다.(한겨레 김경호 기자)
그러나 “최소한 PK지역에서는 이회창 후보가 1등을 할 것이다”는 것에 대해 “아니다”라는 사람은 없다. 다만 이회창 후보가 얼마나 압도적으로 1등을 할 것인지, 또는 노무현 후보가 얼마나 이회창 후보와의 격차를 줄일 것인지에 의견이 엇갈릴 뿐이다.

노무현 후보 득표율에 대한 PK지역 유권자들의 현재 예상은 30%대가 주류를 이루지만 낮게는 20%대 초반부터 높게는 40%대 중반까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어느 한쪽의 일방적 승리, 즉 극단적인 표쏠림 현상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부산시지부 유기현(47) 조직부장은 “한때 치솟은 노무현 후보에 대한 후보단일화 시너지 효과는 이미 사라졌다. 앞으로 후보단일화 이상의 변수가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이회창 후보는 부산에서 목표 지지율 70%를 무난히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모두 표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여론조사에 나타난 지지도가 곧 득표율이라면 왜 노무현 후보가 예전에 부산에서 치른 시장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 모두 떨어졌겠느냐”고 되물었다.

민주당의 분석은 다르다. 노무현 대통령 후보 부산선대위 안봉모(45) 대변인은 “후보단일화로 치솟은 노무현 후보 지지도가 안정기를 거쳐 이제 37%의 부산지역 기본 지지율을 회복했다”고 말했다. 노무현 후보의 부산지역 기본 지지율은 지난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와 1995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노 후보가 각각 기록한 35.69%와 37.58%의 득표율에 근거한 것이다. 그는 “노 후보가 끝까지 화끈한 정면승부를 펼쳐 당당하고 신선한 모습을 보여주면 시민들이 희망과 감동을 느낄 것이다. 부산에서 51%의 득표율을 자신한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치열한 경쟁만큼 시민들의 관심을 모으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선전 여부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자민련을 제치고 제3당의 입지를 굳힌데다 PK지역 젊은 층을 중심으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탄탄한 지지기반을 다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부산지역 공동선거운동본부 이창우(42) 홍보위원장은 “유권자들이 찍은 한표 한표의 의미를 당선 유무로만 따지는 것은 곤란하다. 비방·폭로전을 지양하고 다른 후보들과는 차별화된 정책선거를 펼쳐 지난 지방선거에서 얻은 16.8%보다 높은 득표율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사진/ 누굴 찍을까. 부산 유권자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한겨레 김경호 기자)
부산YWCA 이명옥(50·여) 프로그램부장은 “후보단일화 이후 지역 민심에 미묘한 기류가 흘러 예전 선거처럼 극단적인 표쏠림 현상은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또 “이번 선거는 예전과 달리 부산시민들에게 상당한 고민을 하지 않으면 풀 수 없는 어려운 숙제기 때문에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의 ‘묻지마 선거’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988-7373.net) 이복남(52·여) 대표는 “노무현 후보가 아무리 못 얻어도 지난 선거에서 DJ가 부산에서 얻은 15%보다는 많이 받겠지만, 아직은 이회창 후보와의 분명한 차이점을 느낄 수 없다. 전형적 귀족인 이회창 후보도 후보 개인으로는 이 지역에서 별다른 호감을 얻지 못했지만 서민인 척하는 노무현 후보 역시 아직은 이 지역에 완벽하게 뿌리내렸다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울산 최고의 관심사는 ‘몽의 역할’

울산의 민심은 부산과는 또 다른 미묘한 기류를 형성하고 있다.

민주당과 국민통합21의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가 울산에 지역기반을 둔 정몽준 의원을 누르고 단일후보가 됐기 때문이다. 대체로 시민들은 정몽준 의원으로 단일화됐더라면 이회창 후보에게 갈 상당수 표가 정 후보쪽으로 옮겨가겠지만, 노무현 후보로 단일화됐기 때문에 이 후보쪽 표의 이탈이 덜할 것으로 보고 있다.

평등사회를 위한 납세자연대 권필상(32) 사무국장은 “울산은 후보단일화와 관계없이 평소에도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높았고, 이번 선거에서도 부산 다음 정도의 지지율이 예상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영남권 도시들과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노무현 후보를 DJ의 양자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이번 선거는 진보(노무현)와 안정(이회창)의 대결로 보는 것이 마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울산은 열린 도시다. 전체 시민의 70% 정도가 외지인이고, 30~40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는 신한국당 2명, 민주당 2명, 무소속 1명(정몽준)이 울산지역 5개 의석을 고루 나눠 가지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울산은 지역색을 완전히 벗고 후보의 인물 됨됨이와 정책을 보고 투표하는 모습이 뚜렷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울산 중구에서 국회의원 보궐 선거가 대통령 선거와 함께 열리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선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다.

울산경실련 김창선(38) 사무국장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울산지역 최고 관심사는 정몽준 의원이 어떤 역할을 할지가 관건이다. 정 의원의 활동 정도에 따라 울산 동구를 중심으로 각 후보 지지율은 상당한 변화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DJ정권은 지방선거와 총선을 거치며 이미 어느 정도 국민의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에서까지 DJ정권을 심판하겠다는 여론이 들끓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민주당 심판과 정치개혁의 사이

현대자동차 등 노동계의 움직임에도 관심이 쏠린다. 현대자동차노조 박달준(37) 정책4부장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 극좌·급진·보수·수구세력·정권교체 등의 말이 오가지만 울산의 노동자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모두가 보수의 범주 안에 있기 때문이다. 또 이회창 후보가 당선된다고 해도 정권교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울산시지부 김태문(51) 사무처장은 “후보단일화가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다. 단일화를 논의할 때는 긴장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로 단일화됐기 때문에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정몽준 의원으로 단일화됐다면 아무래도 울산에서는 피곤했을 것이다. 이회창 후보가 울산에서 60% 이상 득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은 좀더 진행되는 상황을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다만 마산·창원 지역은 진보적이고, 서부 경남은 다소 보수적이라는 고정관념은 흔들리고 있다.

마·창·진 참여자치시민연대 조유묵(39) 사무처장은 “이곳이 대통령 선거의 승부처라는 말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누구를 찍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DJ정권을 비판해야 한다는 생각과 노무현 후보 개인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 같다. 결국 이번 선거에서는 지역색이 많이 완화될 것인데, 언론들이 지역색을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자유총연맹 창원시지부 정진용(42) 사무국장은 “나이에 따라 의견이 많이 엇갈린다. 중장년층은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아 민주당의 잘못을 벌해야 한다지만, 젊은이들은 노무현 후보를 통한 정치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누가 뭐래도 경남에서는 이회창 후보가 이기겠지만, 노무현 후보도 기본 30%는 얻을 것이고, 정몽준 의원과 젊은이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최소 10%의 표가 왔다갔다할 것”으로 내다봤다.

노무현의 고향, 김해에선

노무현 후보의 고향인 김해도 아직은 별다른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김해여성회 이주영(30·여) 사무국장은 “다른 지역 보다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높기는 하겠지만 노 후보의 고향이라는 점이 투표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며 “어쨌든 노 후보로 단일화되면서 부동층이 늘어났고, 많은 사람들이 누구를 찍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부 경남의 중심도시인 진주에서도 후보 단일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진주환경운동연합 김석봉(46) 사무국장은 “후보 단일화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고 또 다들 잘했다고 한다”며 “DJ를 욕하는 사람은 많아도 노 후보를 욕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는 “아직 정책선거 단계는 멀었고 대부분 사람들이 후보들에 대한 느낌과 인상, 분위기를 중요시하는데 후보 경선과 단일화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이 노 후보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새롭게 보게 됐다”고 말했다.

부산=최상원 기자/ 한겨레 사회2부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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