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시장에서 잘 나가는 휘파람자동차… 자동차산업에 남다른 애착 지닌 북한 지도부
“어젯밤에도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 벌써 몇달째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
북한 총각들은 지금도 처녀를 꼬실 때 휘파람을 분다. 그런데 이번에는 휘파람이 자동차로 화려하게 변신해 북한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평화자동차(사장 박상권)가 올 4월 완공한 남포 평화자동차종합공장에서 ‘휘파람’ 이름을 단 승용차가 인기를 몰고 다니고 있다. 최근에는 220대를 한꺼번에 사겠다는 주문이 들어와 평화자동차 관계자들을 잔뜩 흥분시켰다. 다들 처음에는 북한에서 차가 제대로 팔릴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한 터였다. 아직도 일각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먹고사는 사람들이나 손에 넣을 수 있는 자동차가 술술 팔린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다. 휘파람 대당 가격이 미국돈 1만4천달러로 결코 싼 자동차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아직은 다른 나라에서의 판매실적을 고려하면 보잘것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휘파람 열기는 조용하면서도 꾸준하게 북한 전역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평화자동차는 창사 한돌인 내년 4월까지 시범적으로 1천대만 뽑아낼 생각이지만, 판매 추이를 봐서 생산량을 더 늘릴 요량이다. 지금도 1만대 생산은 끄떡없다. 많게는 20만대까지 만들 수 있다. 박상권 사장은 “자동차 생산공장을 세운 지 1년이 채 안 됐으나 솔직히 북한 안에서 이렇게 잘 팔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북한의 시장잠재력을 다시 평가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이름 지어
평화자동차는 당분간 북한 내수시장만 파고들 작정이다. 지금까지 차를 사간 고객은 주로 북한의 관공서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영기업 사장들도 주요 고객이다. 그렇다고 개인용도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회사 이름으로 계약하는 것으로 봐서 공용으로 쓰이는 모양이다. 아직은 일반 주민이 차 열쇠를 받아간 경우는 없다는 얘기다. 다만 북한의 경제개혁이 순탄하게 이뤄지면 머지않아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주민이 생길 것으로 예상한다. 평양에 주재하는 외국 대사관 관계자, 적십자사 요원 등 국제기구 파견원들도 알짜 고객이다. 또 외국업체들 특히 유럽계 회사들도 휘파람을 애용한다고 평화자동차 관계자들은 귀띔한다. 평화자동차는 빠른 시일 안에 자체 모델을 만들어 중국을 비롯해 유럽 지역, 동남·서남 아시아, 미국까지 판로를 넓힐 생각이다. 차종도 소형 미니밴, 트럭, 구급차, 소방차 등으로 늘릴 계획이다.
휘파람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지은 차 이름이다. 그 동기가 재미있다. 그는 외국어로 된 브랜드를 싫어한다. 순수 우리말을 찾다가 ‘사랑’과 ‘평화’를 상징하는 대표적 단어인 ‘휘파람’을 골랐다. 평화자동차는 조만간 소형 지프도 생산할 예정인데, 벌써 브랜드 이름을 정했다. ‘뻐꾸기’다. 아이가 첫울음을 터트리기도 전에 이름을 정한 셈이다. 이 이름 역시 김 위원장이 직접 고른 것으로 알려졌다. 뻐꾸기 역시 북한에서는 청춘남녀의 애틋한 연정을 담은 상징어로 꼽힌다. 이탈리아 피아트사의 ‘시에나’ 모델인 휘파람은 배기량이 1600cc로, 남쪽에서 현대자동차가 만든 아반떼와 가장 비슷하다. 이 차의 가장 큰 장점은 험한 길을 많이 달려도 끄떡없다는 점이다. 북한의 열악한 도로 사정을 헤아린 작품이다. 평화자동차 이정용 연구실장은 “피아트는 원래 충돌 안정성이 뛰어난 차다. 차체의 프레임 변형이 적기 때문에 특히 산악지대가 많은 북한에 가장 적합한 차종”이라고 말했다.
평화자동차는 남북경협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부를 만하다. 지난 10여년간 북한과 사업을 벌인 무수히 많은 기업치고 북한 안에서 판로를 개척해 돈을 번 사람은 거의 없다. 또 자동차 합영생산은 남북관계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간 남북 간 사업이 대부분 의류·전자제품 임가공 등에 머물러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까닭에 평화자동차가 이룬 성과를 부러워하는 기업인들이 적지 않다. 성공 배경은 무엇보다 북한 지도부가 자동차산업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갖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것에 있다.
일반적으로 자동차산업은 많은 우수한 인력과 기술을 통해서만 우뚝 설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단순하게 싼 노동력만으로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셈이다. 평화자동차도 자동차생산 관련 인재양성에 가장 치중했다. 이 연구실장은 “올 4월 자동차 생산라인을 가동한 이후 처음 몇 개월은 불량품이 많이 나와 애먹었다. 하지만 품질관리 교육을 집중적으로 한 결과 8월 이후 에러율이 뚝 떨어졌다”고 말했다. 평양에서 42km 떨어진 남포에 세운 평화자동차 조립생산 공장에는 150여명의 북한 기술자들이 북한의 자동차산업을 도약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지금도 땀을 흘리고 있다. 이들은 주로 패널 조립, 용접, 도색, 전기선 배치, 엔진, 트랜스미션 분야의 선진 조립기술들을 집중적으로 터득했다. 또 자동차 한대 생산에 수많은 부품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산업연관과 파급효과가 적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남포를 대단위 자동차 공단으로
사실 북한의 기존 자동차산업은 별로 내세울 게 없었다. 북한의 승용차는 다 합쳐봐야 3천대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남 덕천에 있는 승리자동차연합기업소가 독일제 ‘벤츠190’의 부품과 겉모습을 본뜬 ‘백두산’, ‘평양’ 등을 생산해왔다. 전문가들은 자동차부품 공급률이 50% 정도고, 핵심부품은 거의 수입에 의존할 것으로 본다. 몇해 전부터는 전력난 등으로 더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터에 모습을 드러낸 휘파람은 자동차산업뿐 아니라 경제 전반에 심리적으로나마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후문이다. 평화자동차 관계자들에 따르면 북한 지도부는 실제로 무척이나 고무된 것으로 보인다. 북녘 땅에서 그것도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자동차가 속속 선보이면서 자신감이 생겨난 탓이다. 나라 안팎의 팍팍한 정세로 답답한 북한 지도부로서는 휘파람이 숨통을 틔워주는 청량제 구실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이는 9월 중순, 평양에서 열린 ‘국제기술 및 하부구조 전시회’에서 보여준 북한 지도부의 뜨거운 관심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전시회는 국내 언론들이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평화자동차의 휘파람을 비롯한 외국기업들의 자동차·기계 제품들이 다수 선보인 보기 드문 행사였다. 인기몰이 주역은 단연 휘파람이었다. 김 위원장 측근인 김용순 대남 담당비서뿐 아니라 송호경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알려지지 않은 ‘실세들’이 휘파람만 에워싼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지금 자동차산업을 국가우선사업으로 지정해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자동차산업이 경제전반에 끼치는 파급력을 익히 들어온 북한 지도부로서는 군침을 삼킬 만하기 때문이다. 남포의 노른자위 땅 40여만평을 자동차공장 터로 선뜻 내준 것부터 그렇다. 이 공장에서 남포 항구까지는 불과 2km이며, 평양까지 8차선 고속도로를 새로 닦았다. 남포를 중장기적으로 대단위 자동차산업 공단으로 만들기 위한 포석 차원이다. 평화자동차쪽은 남쪽의 다른 자동차 관련부품업체 등이 현지 진출에 관심을 보이면 적극 돕겠다는 자세다. 남북 합영기업인 남포평화자동차공장은 평화자동차가 70%, 북한의 대표적 종합무역회사인 조선련봉총회사가 30%의 지분을 갖고 있다. 자동차 조립생산뿐 아니라 북한의 중고차 수리, 일본차 개조 등 여러 사업에 손대고 있다. 북한 당국은 평화자동차쪽에 중고자동차 수출입에 관한 독점권뿐 아니라 기업소득세 50% 감면과 재산세 5년간 면제, 수출입 물자의 관세 면제 등 다소 파격적 대우를 해주고 있다.
평화자동차 박상권 사장의 뚝심
휘파람 탄생과 관련해서는 평화자동차 박상권 사장의 열정과 뚝심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민족화해와 통합에 남북경협만큼 요긴한 수단이 없다는 그는 자칭 ‘평양 민족자본가 1호’를 꿈꾼다. 그의 성공에는 남다른 비결이 있다. 그는 평화자동차공장을 북한뿐 아니라 적어도 동북아시아의 대표적 기업으로 키운 뒤 언젠가는 북쪽에 통째로 거저 넘겨줄 생각이다. “평화자동차는 남의 것이 아니라 북한 기업이라는 주인의식을 심어주고자 노력했다.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는지 비법을 전수하는 데도 치중했다. 이런 시도가 북한 지도부는 물론 생산 기술자들의 의욕과 자신감을 크게 고취시켰음은 물론이다.” 그는 무려 63번이나 평양 땅을 밟았다. 국내 최다 방북기록 보유자다. 그는 당장은 휘파람을 전 세계에 알리고 파는 데 매진할 생각이다. 이를 위해 조만간 100만달러를 들여 외국인이 가장 붐비는 평양고려호텔 옆에 자동차 전시관을 세울 작정이다. 북한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자동차 전문 전시장이다. 평양과 남포 몇 군데에 주유소도 만들 예정이다. 휘파람 등 앞으로 뽑아낼 차들의 품질 유지를 위해서는 자체 유류공급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뿐이 아니다. 자동차 판촉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홍보영상물을 만들고 있으며, 대형 입간판을 평양순안비행장 입구부터 눈에 잘 띄는 평양시내 곳곳에 세우기로 북한 당국과 합의했다. 평양 방문객들이 거리에서 햄버거나 코카콜라 광고가 아닌 남북이 함께 손잡고 만든 휘파람 광고를 볼 날이 멀지 않은 셈이다. 휘파람이 노래만큼이나 계속 사랑받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사진/ 휘파람 제작사인 평화자동차가 촬영한 광고용 사진. 평양 인근의 도로를 휘파람 자동차들이 시원하게 달리고 있다. (평화자동차 제공)

사진/ 남포에 세운 평화자동차종합공장의 전경. (평화자동차 제공)

사진/ 공장 내부 모습. 당장 많게는 1만대까지 '휘파람'을 생산할 수 있다. (평화자동차 제공)

사진/평양시내 개선문 앞에 선 홍보용 '휘파람'(왼쪽)과 평화자동차의 후속모델인 소형 지프 '뻐꾸기'(오른쪽)

사진/ 김정일 국방위원장 측근인 김용순 노동당 비서가 앞으로 평화 자동차가 생산할 다양한 차 모델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평화자동차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