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적 지원 볼모로 북한 압박하는 일본… 납북자 가족 송환·실종자 조사 등 강력 요구
일본이 식량을 볼모로 북한을 안절부절못하게 만들고 있다.
중유에 이어 식량도 거저 줄 수 없다고 일침을 놓았다. 북핵이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일본의 이런 입장이 더욱 굳어졌다. 하지만 일본은 정치문제와 인도적 차원의 식량지원을 연계하고 있어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식량전달 창구 역할을 맡고 있는 세계식량계획(WFP) 관계자들이 잇달아 최근 다시 악화되는 북한의 식량사정을 거론하며 일본 정부에 지원을 호소했으나 번번이 외면당했다. 지난달 북한의 식량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두 차례 방문한 마수드 하이더 북한주재 세계WFP 대표는 “지금까지 대규모 원조 지원국들은 인도적 문제를 정치문제와 명확히 구분해왔으나 지금은 정치적 논란이 영향을 주고 있다”고 우려하며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이 정치에 희생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올들어 전면 중단… 정치적 잇속 챙기기
그는 최근 북한에서 조사한 바로는 식량부족이 심각한 상태이며, 새로운 정치상황이 불거지면서 올 겨울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년 봄이면 참혹한 상황이 벌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WFP가 400만명의 어린이를 비롯한 600만명의 북한 주민에게 식량을 공급해왔으나 WFP의 비축식량이 빠른 속도로 고갈되고 있어 내년 1월이면 한달치밖에 남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WFP는 1차로 식량지원 대상자를 300만명으로 줄이고, 1월이 지나면 150만명으로 다시 줄여야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두들 북한의 핵문제 해결에 매달리면서 영문도 모르는 어린이를 비롯한 일반 주민들은 가뜩이나 주린 배를 채우기가 더 어려워지게 됐다. 그렇다면 일본이 식량을 무기로 이처럼 ‘튕기는’ 까닭은 무엇일까. 사실 북한 식량난을 더는 데 일본의 역할은 컸다. 지난 95년 이후 2001년까지 일본 정부는 1276억엔, 미국돈으로는 9억달러어치의 식량을 북한으로 보냈다. 반면 미국의 지원규모는 95년부터 올해 인도분까지 합쳐도 6억2천달러어치에 머문다. 북한이 애간장을 태울 만하다. 지난해만 해도 50만t의 식량을 지원받았으나 올해부터 괴선박 사건 등의 여파로 끊겼다. 북한은 7·1 경제관리개선 조처 이후 개혁개방 정책에 채찍질을 가하고 있다. 물가현실화 조처 등에 따른 각종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물량공급이 절실히 필요한 터다. 특히 일본 등 국제사회의 식량지원은 달리는 공급물량을 막는 데 결정적 보탬이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래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평소 별로 달갑게 생각지 않았던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도 열었고, 그에게 과거 일본인 납북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까지 했다. 북한의 대일 강경정책이 크게 누그러졌다는 얘기다. “경제개혁이 성공하려면 우선 평화와 안정을 확보해야 한다. 미국과의 적대관계 청산이 핵심이다. 그 다음엔 자본과 기술 도입이 가능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는 일본과의 관계개선이 중요하다. 그래서 지난 번에 고이즈미 총리가 평양 갔을 때 김 위원장이 화끈하게 사과까지 하지 않았나. 이전에는 항일전쟁을 비롯해 6·25전쟁 때 입은 피해까지 배상하라고 요구하다가, 다 집어치우고 일본의 과거사 문제는 유감만 표명했는데도 그냥 넘기고, 수교 배상금도 경제협력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부 고위 관계자의 분석이다. 핵문제로 안면 바꾸고 냉각기 즐겨
하지만 핵문제가 불거지자 일본 정부가 얼굴색을 싹 바꾸었다. 미국 눈치 안 보고 북한과 잘 지내보려는 듯 앞만 보고 달려가던 일본이 갑자기 안면을 바꾸면서 북한에 등을 돌리고 있다. 북한이 용단을 내려 일시적으로 고향에 내려보낸 납북자 5명도 돌려보내지 않는다. 마지못해 중유 중단결정에 동참한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이제는 경수로 건설까지 막을 태세다. 악화된 여론을 핑계로 내세우지만 일본 정부의 가벼운 처신이 곱게 보일 리 없다. 북한은 일본인 피랍자 5명의 송환을 거부한 데 대해 “방관하지 않겠다”는 비난에 이어, 지난 11월5일에는 외무성 대변인을 통해 북-일 정상회담 합의사항인 미사일 발사 유예를 다시 고려하겠다는 경고까지 내놓았다. 북-일 관계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일본 정부는 북한의 이런 강경자세가 오래 가지 않으리라고 본다. 겉보기에 느긋하고 속내도 그렇게 서둘러 보이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전평이다. 이미 북한 지도부의 속셈을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잘 파악하고 있다는 투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일본 정부는 북한이 수교는 안 되더라도 당장 식량지원만이라도 이뤄지기를 목이 타도록 기다려왔다”면서 “이를 잘 파악하고 있는 일본 정부가 식량을 지렛대로 협상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북한 지도부가 기존 입장에서 몇 발짝이나 뒤로 물러난 것은 단기적으로 식량 때문이었다고 귀띔했다. 북한은 납북자 문제를 잘 처리해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어놓으면 인도적 차원의 식량지원은 가능하리라고 본 듯하다. 하지만 핵문제가 불거지고, 일본인 납북자가 더 있다는 반북 세력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일본 정부는 자신들이 북한의 최대 식량공여국이라는 점에서 북한이 더는 강경하게 나가지 않으리라고 본다. 북-일 관계에서는 아직도 식량이 가장 쓸모 있는 대북 협상카드로 쓰이는 셈이다.
일본 정부는 내심 핵문제 해결도 중요하지만, 일본인 납북자 가족의 송환과 실종자에 대한 추가 조사들도 하루빨리 이뤄지길 바란다. 그런 뒤에야 여론을 살펴 북한 쌀 지원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이다. 11월12일부터 닷새간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제임스 모리스 WFP 사무총장도 최근 모테기 도시미츠 일본 외무성 부상을 만나 북한에 대한 긴급 식량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고 <지지통신>이 보도했다. 모리스 사무총장은 이날 만남에서 농촌지역, 특히 동북지역의 식량부족 상황이 아주 심각하다고 밝히고, 국제사회의 대북 식량지원 감소로 북한의 식량지원 대상자를 크게 줄일 수밖에 없는 형편에 처했다며 식량지원을 거듭 요청했다.
국제구호단체 “일본이 너무 야속하다”
그는 특히 “북한에 대한 일본의 복잡한 입장은 이해하지만 굶주리고 있는 어린이들은 정치와 관계가 없다”면서 일본 국민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생각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전에도 그러했듯 일본 정부의 반응은 차가웠다. 모테기 부상은 “일-북 수교협상이 끝나기 전에 대북 경제지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외무성 관계자는 두 사람의 회동 뒤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검토할 수 있지만 당장 식량을 지원할 계획을 세워놓은 바 없다”고 말을 맞췄다. 이처럼 북한의 피폐한 생활상을 늘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국제구호기관 관계자들에 비치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못내 야속하다.
북한을 구석으로 세게 몰아붙이는 미국의 부시 정부도 인도적 차원의 식량지원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먹는 문제를 외교무기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전통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올해도 상반기 동안에만 15만5천t의 식량을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했다. 일본 정부는 그들의 외교행태가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속담에 나오는 ‘시누이’와 같다는 비아냥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사진/ 일본이 인도적 지원을 통해 정치적 잇속을 차리려 한다. 지난 9월17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을 가졌다. (교토연합)
그는 최근 북한에서 조사한 바로는 식량부족이 심각한 상태이며, 새로운 정치상황이 불거지면서 올 겨울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년 봄이면 참혹한 상황이 벌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WFP가 400만명의 어린이를 비롯한 600만명의 북한 주민에게 식량을 공급해왔으나 WFP의 비축식량이 빠른 속도로 고갈되고 있어 내년 1월이면 한달치밖에 남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WFP는 1차로 식량지원 대상자를 300만명으로 줄이고, 1월이 지나면 150만명으로 다시 줄여야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두들 북한의 핵문제 해결에 매달리면서 영문도 모르는 어린이를 비롯한 일반 주민들은 가뜩이나 주린 배를 채우기가 더 어려워지게 됐다. 그렇다면 일본이 식량을 무기로 이처럼 ‘튕기는’ 까닭은 무엇일까. 사실 북한 식량난을 더는 데 일본의 역할은 컸다. 지난 95년 이후 2001년까지 일본 정부는 1276억엔, 미국돈으로는 9억달러어치의 식량을 북한으로 보냈다. 반면 미국의 지원규모는 95년부터 올해 인도분까지 합쳐도 6억2천달러어치에 머문다. 북한이 애간장을 태울 만하다. 지난해만 해도 50만t의 식량을 지원받았으나 올해부터 괴선박 사건 등의 여파로 끊겼다. 북한은 7·1 경제관리개선 조처 이후 개혁개방 정책에 채찍질을 가하고 있다. 물가현실화 조처 등에 따른 각종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물량공급이 절실히 필요한 터다. 특히 일본 등 국제사회의 식량지원은 달리는 공급물량을 막는 데 결정적 보탬이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래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평소 별로 달갑게 생각지 않았던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도 열었고, 그에게 과거 일본인 납북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까지 했다. 북한의 대일 강경정책이 크게 누그러졌다는 얘기다. “경제개혁이 성공하려면 우선 평화와 안정을 확보해야 한다. 미국과의 적대관계 청산이 핵심이다. 그 다음엔 자본과 기술 도입이 가능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는 일본과의 관계개선이 중요하다. 그래서 지난 번에 고이즈미 총리가 평양 갔을 때 김 위원장이 화끈하게 사과까지 하지 않았나. 이전에는 항일전쟁을 비롯해 6·25전쟁 때 입은 피해까지 배상하라고 요구하다가, 다 집어치우고 일본의 과거사 문제는 유감만 표명했는데도 그냥 넘기고, 수교 배상금도 경제협력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부 고위 관계자의 분석이다. 핵문제로 안면 바꾸고 냉각기 즐겨

사진/ 국제사회의 대북 식량지원이 줄어 식량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지난 11월13일 함경도 청진의 한 유치원에서 여자 아이들이 국수를 먹고 있다. (AFP연합)

사진/ 세계식량계획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청진의 한 공장 여성 노동자들이 과자를 포장하고 있다. (AFP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