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온건 비둘기파마저 등돌리게 만드는 북한의 핵카드…한국 정부가 중재에 나서야
미국 부시 행정부의 대북 핵 외교정책에 대한 워싱턴의 시각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이른바 대북 강경정책을 주도하는 매파들, 다른 하나는 대화를 주장하는 온건 비둘기파들의 시각이다. 전자는 백악관과 펜타곤 그리고 중앙정보국이 중심이 되고, 후자는 국무성과 워싱턴의 민간 외교협회 등이 주류를 이룬다.
“농담하냐”고 물었던 파월, 그러나…
매파의 대표적 인물은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그리고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이다. 이들은 현재 미국의 대외정책 결정과정에서 ‘철의 삼자동맹’을 맺고 있다. 이와 달리 대화와 설득의 힘을 내세우는 국무부의 외교적 영향력은 클린턴 행정부에 견줘 크게 떨어진다. 국무부의 수장인 콜린 파월의 역할과 활동반경도 그만큼 축소되는 셈이다.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은 거의 보이질 않는다. 외교정책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최종 발언과 정책결정 내용을 뜯어보면 거의 매파들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때문에 부시 행정부의 대한반도 정책과 북핵 문제도 매파들의 생각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현재 북한을 바라보는 매파들의 시각은 매우 부정적이고 회의적이다. 이들에게 북한과 김정일 체제는 의심과 의혹의 대상을 넘어 불신의 존재다. 독실한 감리교 신자인 부시 입장에서 본다면, 종교적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김정일 체제는 ‘악의 축’이고 ‘사탄’이다. 선의 반대편에 선 악은 정리의 대상이고, 인류의 적이다. 그만큼 북한은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존재로 워싱턴의 매파들에게 각인돼 있다. 예측 가능한 정상국가가 아니라 불확실성이 가장 큰 비정상 국가로 비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과 대화를 넘어 ‘협상’의 단계에 진입하는 것은 현재로선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지난 6월 초 있었던 일이다. 온건파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자신의 참모로부터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에 관한 최신 평가 보고를 받고 적지 않게 놀랐다. 그러면서 참모에게 “당신 농담하냐”라고 되물었다. 오히려 “지금 북한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일본과의 수교협상을 벌이는가 하면, 남한과는 비무장지대를 관통하는 철로를 개설 중에 있고, 심지어 서울에 축구팀까지 보내고 있는데 무슨 보고를 그런 식으로 하느냐”라며 “가서 좀더 자세히 알아보고 오라”고 주문했다. 파월은 북핵 프로그램에 관한 보고를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북한 핵개발 추진 프로그램에 대한 수주간의 검증작업과 몇 개월 동안의 외교적 노력 끝에 파월은 북한이 러시아와 파키스탄 그리고 중국으로부터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고도의 농축 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는 원심분리기 구입에 수년 동안 노력해왔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 이때부터 워싱턴의 온건파인 파월마저 북한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되었다. 부시의 강경정책만 강화될 듯
그 뒤 파월은 6월 말 브루나이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해 북한의 백남순 외무상과 약 15분 동안 비공식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를 통해 미국이 획득한 북핵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경고 형식으로 백 외상에게 전달했다. 그러자 백 외무상은 자신들의 핵무기 프로그램 진행사실을 부인하지 않았고, 거의 인정하는 입장을 취했다고 나중에 파월은 말했다. 그리고 불과 3개월 뒤인 10월 초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인 제임스 켈리는 부시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해 또 다른 고백을 받아낸 셈이다.하지만 북한의 이런 발언들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불러왔다.순탄하게 굴러가던 남북관계와 북-일관계마저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다. 북한이 왜 이런 미묘한 시점에 그와 같은 발언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분석이 가능하다. 여러 견해가 있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 대상으로 포함시킨 데 따른 북한의 예방외교적 대응전략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미국이 악의 축을 이루는 이라크를 공격해 사담 후세인을 성공적으로 제거하기 이전에 미국과 대화를 시작해야만 생존과 체제 안전에 대한 확실한 보장을 얻어낼 수 있으리라고 판단한 듯하다. 결국 미국과 실질적인 협상을 벌일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미국이 전쟁에 돌입하기 이전에 승부수를 띄워야 했다. 이라크전이 마무리되면 발생할지 모를 미국의 선제공격을 미리 차단해야 한다는 다급함과 두려움이 앞섰다. 또 전쟁이 끝난 뒤 북한이 미국과 협상을 시도하면 더욱 수세적인 입장에 놓이게 돼 협상이 더 어렵게 전개되리라는 점도 북한은 우려한 듯하다.
지금 북한이 이라크와의 전쟁몰입에 열중하고 있는 부시를 상대로 자꾸 새로운 벼랑 끝 전략을 펼치는 전략도 따지고 보면 일차적으로 워싱턴의 관심을 협상 테이블에 끌어들여 일정한 관계를 맺어놓겠다는 포석인 셈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본 북한의 이런 계산과 전략은 치밀하지 못했다. 부시 행정부의 성격과 본질을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결과다. 따라서 북한의 돌출 발언은 ‘실패한 전략’이자 ‘잘못된 고백’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우선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전략과 김정일 정권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 더 이상 핵 공갈 정책과 벼랑 끝 전략에 속지 않겠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따라서 북한이 대화를 하자고 나서도 핵 프로그램부터 먼저 포기하라고 요구한다. 그런 뒤 대화에 나서겠다는 명확한 데드라인을 긋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 이라크에 모든 신경을 쏟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는 관심이 없다는 ‘인자한 무관심 전략’이다. 동시에 이라크와 전쟁을 끝낸 뒤 본격적으로 북한 문제를 다룰테니 그때까지 기다려달라는 일종의 ‘시간 지연 전략’이기도 하다.
이제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을 막을 수 있는 선제방어의 몫은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다. 하지만 북한이 만일 부시 행정부를 상대로 벼랑 끝 전략을 다시 구사한다면 이는 잘못 계산한 것이다. 오히려 동북아와 한반도에 신냉전을 유도하는 부시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나마 북한이 쌓아온 대외관계나 개혁개방 정책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한반도와 동북아에 새로운 데탕트를 바라면서 북한을 경제·정치적 고립으로부터 구원하려는 미국 내 온건 비둘기파들과 과거 클린턴 행정부 당시의 국무부 관리들, 그리고 유럽과 한국, 일본의 교류협력 세력들 모두에게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후세인보다 북이 위험” 목소리 높이는 인사들
그렇지 않아도 닉슨 행정부 당시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 카터 행정부 당시 안보담당 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부시 행정부 당시 국무장관을 역임한 제임스 베이커 등 여전히 외교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사들은 북한 위협이 이라크의 그것에 견줘 훨씬 더 위험하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담 후세인은 군사적 수단까지 동원해 응징하려 하면서 북한을 겨냥해서는 대화로 문제를 풀겠다는 주장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들의 지적은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 담당 참모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을 부시 대통령이 마냥 외면하고 지낼 수는 없는 탓이다. 특히 이번 중간선거를 통해 의회의 상·하원을 공화당이 모두 장악하면서 부시는 그야말로 날개를 달았다. 이제 악의 축 나라들과 전쟁을 펼치기 위한 정책결정을 내리는 데 더 이상의 걸림돌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반도와 동북아에 새로운 데탕트를 유도해야 할 운명에 처한 한국은 ‘동족과 동맹국’ 사이에서 새로운 국익 창출의 틀을 짤 수 있는 외교적 비전을 모색해야 한다. 부시와 김정일 사이에서 새로운 긴장을 막고 완화시킬 수 있는 완충 역할은 결국 한국 정부의 몫이다.
장성민/ 미 듀크대 국제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전 민주당 의원

사진/ 더글러스 파이스(왼쪽) 미 국방차관이 이시바 시게루 일본 방위청 장관과 회담에 들어가기 전 악수를 나누고 있다. 파이스는 북한 핵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도쿄와 서울을 방문했다. (AP연합)
현재 북한을 바라보는 매파들의 시각은 매우 부정적이고 회의적이다. 이들에게 북한과 김정일 체제는 의심과 의혹의 대상을 넘어 불신의 존재다. 독실한 감리교 신자인 부시 입장에서 본다면, 종교적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김정일 체제는 ‘악의 축’이고 ‘사탄’이다. 선의 반대편에 선 악은 정리의 대상이고, 인류의 적이다. 그만큼 북한은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존재로 워싱턴의 매파들에게 각인돼 있다. 예측 가능한 정상국가가 아니라 불확실성이 가장 큰 비정상 국가로 비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과 대화를 넘어 ‘협상’의 단계에 진입하는 것은 현재로선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지난 6월 초 있었던 일이다. 온건파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자신의 참모로부터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에 관한 최신 평가 보고를 받고 적지 않게 놀랐다. 그러면서 참모에게 “당신 농담하냐”라고 되물었다. 오히려 “지금 북한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일본과의 수교협상을 벌이는가 하면, 남한과는 비무장지대를 관통하는 철로를 개설 중에 있고, 심지어 서울에 축구팀까지 보내고 있는데 무슨 보고를 그런 식으로 하느냐”라며 “가서 좀더 자세히 알아보고 오라”고 주문했다. 파월은 북핵 프로그램에 관한 보고를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북한 핵개발 추진 프로그램에 대한 수주간의 검증작업과 몇 개월 동안의 외교적 노력 끝에 파월은 북한이 러시아와 파키스탄 그리고 중국으로부터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고도의 농축 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는 원심분리기 구입에 수년 동안 노력해왔다는 정보를 얻게 되었다. 이때부터 워싱턴의 온건파인 파월마저 북한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되었다. 부시의 강경정책만 강화될 듯

사진/ 신포 금호지구의 경수로 건설공사 현장. 북한 핵문제가 불거지면서 중단 위기에 처했다. (경수로기획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