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출신들, 87년 후단-비지 이후 15년만에 맞닥뜨린 도돌이표 앞에서 다양한 변주곡
데자뷔(deja vu). 처음 경험인데도 이미 본 적이 있거나 겪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을 뜻하는 말이다. 이런 느낌은 대개 예전에 진짜로 있었던 일 때문인 경우가 많다.
2002년 대선에서 나타나는 데자뷔 현상도 1987년 대선 때 실제로 발생한 일들이다. 비판적 지지, 후보단일화, 독자후보 등 15년 전의 전술용어들이 다시 튀어나오고 있고, 당시 논쟁의 주요 인물들도 배역만 조금씩 달리할 뿐 재등장하고 있다. 과거 논쟁의 중심에는 ‘김대중과 김영삼’이 있었듯이 이번에는 ‘노무현과 정몽준’이 자리잡고 있다. 두 사람의 같은 점과 다른 점, 그리고 각각의 당선 가능성 등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되풀이되고 있다. 특히 재야 출신의 정치인들은 15년 만에 맞닥뜨린 ‘도돌이표’ 앞에서 다양한 변주곡을 들려주고 있다.
정몽준으로 기울가는 김근태
우선 독자후보론을 보자.
민중후보 백기완 추대로 나타났던 독자후보론의 흐름은 이후 한겨레당, 민중의 당, 민중당 등의 형태로 부침을 거듭하다 지금은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의 깃발 아래 결집해 있다. 과거 이 기류에는 “독자후보라는 압박 카드를 통해 양 김의 후보단일화를 이루자”는 편과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강조하는 쪽이 섞여 있었다.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는 한나라당에 입당한 경우가 많고 후자는 민노당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나라당의 제정구 전 의원과 이우재·김문수 의원, 정태윤 전 기획위원장 등이 전자라면, 후자는 민노당의 천영세 부대표, 노회찬 사무총장, 이상현 전 대변인 등이 대표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독자후보론은 ‘노무현과 정몽준’을 놓고 벌이는 논쟁과는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다.
논쟁의 불을 댕긴 것은 후보단일화론자들이다.
과거 DJ와 YS의 단일화를 추진했던 ‘후단파’는 계훈제·박형규·장기표·이부영·이재오·박계동 등이 주도했으나, 이제는 민주당의 김근태·김영환·심재권·장영달 의원 등과 김민석 전 의원이 앞장서고 있다.
김근태 의원은 10월16일 자신의 후원회에 노무현 후보가 첸틸“서운하다. 이길 수 있다. 도와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했으나 분명하게 거절했다. 김 의원은 “1 대 2로 싸우면 승리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몽준·노무현 두 후보가 함께 모여서 경선을 하면 오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87년 당시 감옥에서 비판적 지지를 천명했지만, 정작 자신이 원했던 것은 후보단일화였다고 한다. 그런 정서의 연장선에서 “6대 도시에서 텔레비전 토론을 하고, 투표를 하루에 치릿징‘미니 경선’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후보단일화론이 구체적인 방법론에서 약했던 것처럼 김 의원의 방법론도 설득력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논의를 함께 하는 의원들조차 “현실적으로 수용되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반응들을 보인다.
김 의원이 두 후보 모두로부터 외면당하는 경선을 해법으로 계속 주장하는 것은, 사실 노 후보의 ‘양보’를 에둘러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 고문이 “노 후보는 민주당 후보가 된 것에 감사하는 뜻으로 당에 보답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읽힌다. 단지 김 의원이 노 후보와 경선에서 붙었던 당사자라는 처지 때문에 최소한의 ‘금도’를 지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김 의원의 후보단일화론은 사실상 정몽준 의원에 대한 비판적 지지이기도 하다.
김영환의 ‘정몽준 활용론’
이런 점이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김민석 전 의원의 정몽준 의원 지지선언이다.
과거 ‘후단파’였던 김 전 의원은 자신의 파격적 행보에 앞서 87년 상황을 반추해보았다고 한다. 그는 “87년에도 상식적 대세는 단일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후단은 마지막까지 도덕적 요구만 했지 강제할 현실적 힘이 없었고, 비지는 현실적 선택을 내려서 힘을 몰아야 하는데 실패했다. 그때 대중적 정서는 차라리 YS였고 표 결과도 그랬다”고 말했다. 결국 김 의원은 단일화의 방법으로, 정 의원쪽에 확실하게 힘을 몰아주어 노 후보를 고립시키고 궁극적으로 거꾸러뜨리자는 전략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노 후보가 아닌 정 의원을 택한 것은 노 후보가 이미 분명한 한계를 보인데다, 진보적인 노 후보 지지자들이 현실적인 승리를 위해 눈높이를 낮춰 정 의원을 지지할 수는 있어도, 그 역의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다.
김영환 의원은 김 전 의원의 탈당에 대해 “굉장히 위험도가 높은 선택인데 김민석은 참으로 담대하다. 나는 몇달째 꾸무럭거리기만 하는데…”라고 동조의사를 표시했다. 단지 김 의원은 자신의 선택은 ‘줄탁동기론’으로 정리했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때 어미닭이 밖에서 함께 껍질을 쪼듯이, 김 전 의원 등은 밖에서, 자신은 당내에 남아 후보단일화를 계속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후단파의 이론가답게 후보단일화론의 맹점으로 꼽히는 정 의원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분명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는 “정몽준 개인의 성향이 문제가 아니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력의 문제다. 정 의원은 지금 홀홀단신이니, 우리가 옹립하면 우리의 후보가 되는 것이다. 정 의원이 현대에서 장관을 갖다 쓸 수 있겠나. 결국 우리쪽에서 재집권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종의 ‘정몽준 활용론’인 셈이다.
김 의원은 또 87년에 비해 현재의 상황이 후보단일화에 여러 가지 유리한 점이 많다고 주장했다. 양김씨는 오세월 영남과 홰꼭지역적 기반으로 삼아 독자적인 세력을 키워온 탓에 합치기가 쉽지 않았으나, 두 후보는 이미지의 정치인이기 때문에 포기가 쉽다는 것이다. 또 15년 전에는 누구 지지가 더 높은지 알 길이 없었으나, 지금은 여론조사가 활성화돼 국민적 여망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이미 국민들 사이에서는 후보단일화가 이뤄져가고 있다. 이길 수 있는 사람을 밀어주자는 전략적 투표를 하는 것이다. 후보단일화는 다만 사표를 방지하고,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자는 것이다”라고 87년과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87년의 비판적 지지론은 현재 노무현 후보 선대위에 참여하고 있는 의원들에게 그 정서가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시의 비판적 지지는 문익환 목사를 필두로 임채정·이해찬 의원 등이 주도했으며, 당시 재야인사들의 절대다수가 이 진영에 가담했다.
노 지지자들은 “87년과 비교하지 말라”
하지만 노 후보 지지 의원들은 현재의 상황을 87년과 비교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후보단일화론자들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15년 전 상황을 끌어들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우선 DJ와 YS는 민주화 운동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난 쌍생아이나, 노 후보와 정 의원은 같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또 87년에는 후보단일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것을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노 후보의 한 측근은 “87년에는 술집에서도 미장원에서도 국민들이 후보단일화를 놓고 얘기했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그만큼 높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거꾸로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허구적인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절차적 정당성을 문제삼는 경우도 있다. 87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장준영 비서실 차장은 “그래도 그때는 DJ와 YS 두 사람을 불러다 몇 시갼정책검증을 거치고, 민통련 전체 투표를 통해서 지지 후보를 정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누구도 그런 합의의 과정을 시도하지 않고 있다. 그저 여론조사 결과만을 말할 뿐이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민통련 사무처장 출신의 임채정 의원은 재야 출신 동료 의원들에 대한 서운함을 거침없이 토로한다.
임 의원은 “한국사회에서 개혁세력의 존재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깨닫고 있다. 조중동 거대 언론들이 우리들을 고립시키려고 그 아우성을 치는데, 동료의원들이 힘을 실어줘야지 구경꾼 역할만 하면서 평론만 쓰고 있다”고 말했다. 임 의원은 특히 김근태 의원에 대해서는 “개인감정말고는 김 의원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으며, 김민석 전 의원에 대해서는 “한국정치를 혼자서 다 움직이는 것으로 착각하는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힐난했다.
임 의원은 후단파들의 주장에 대해 신뢰를 강조한다 “노 후보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민주당 내분인 만큼, 우선 노 후보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먼저 헌신해야 한다. 그렇게 신뢰를 쌓은 다음에 단일화를 해야만 하는 이유와 당위성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방관만 하다가 쓰면 뱉고 달면 삼키겠다는 태도로는 그나마 조금 있는 단일화 가능성마저 아예 닫아버리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본적인 자세와 품성을 문제삼는 것이다.
사실 노 후보 지지 의원들 사이에서도 막판 후보단일화 가능성을 말하는 의원들이 제법 된다. 이상수·이재정·이효椒ㅁ瘟堧의원 등은 민주당 내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회장 최명헌·김원길) 소속 의원들을 만나 설득하면서 “11월에 가서도 노 후보의 지지도가 현재 상태 그대로 답보라면, 나라도 먼저 나서서 정몽준으로 단일화하도록 노 후보를 설득하겠다”고 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은 노 후보에게 아예 기회를 주지도 않고 처음부터 공개적으로 후보단일화를 요구하는 것은 노 후보를 향한 ‘악마의 주문’으로 여기고 있다.
“야당할 각오”를 주장하는 의원들
노 후보 진영에는 더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야당할 각오”를 주장하는 의원들도 있다. 이번 기회에 현재 지역 대결구도를 타파하고, 진보 대 보수로의 정치지형을 바꿔놓지 않는 한 한국정치의 진전은 없다는 믿음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민주개혁세력의 단일대오를 강조하며, 그런 힘을 바탕으로 한 2004년 총선과 2007년 대선 대비를 얘기한다. 이 지점에서 현실적 승리에 최우선적 가치를 두는 후보단일화론자와 노무현 후보 지지 의원들 사이의 철학적 갚蔓엿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재야 출신 의원들 사이에서 두 흐름이 벌어진 데는 이런 논리적 이유 못지않게 인같喚壅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때 ‘잇몸과 입술’로 비교되던 노무현 후보와 김근태 의원 사이에서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 많이 있다.
김 의원은 지난해 동교동 해체를 주장하며 일전을 벌였을 때 노무현 후보쪽의 지원을 기대했다가 실망했다. 올해 초 경선과정에서는 민주개혁연대를 위해 사퇴하라는 압박을 받으며 적잖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이후 8·8 재보선 특대위원장으로서 공천을 둘러싸고 노 후보와 적잖은 이견을 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김 의원 진영에서는 “김 의원이 설사 서운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정도는 삭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더라도 지금이 김 의원에게는 최대의 위기라는데 김 의원의 측근들도 동의하고 있다. 한 측근은 “그동안 몇번의 위기가 있었다. 민주당에서 국민회의로 갈 때, 정대철·김상현 의원 등과 함께 경선에 도전했을 때 등이다. 그러나 지금은 원칙과 명분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김 의원의 정치생명과 직결돼 있다”고 말했다.
김근태 의원 개인에게 위기이듯이 재야 출신 전체에게도 큰 시련이다. 15년 전 세 갈래로 나뉜 이후 그 후유증을 제대로 극복 못한 이들이 다시는 치유할 수 없는 치명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명분’ 면에서 밀리는 후보단일화론자들에게 그 부담이 한층 더 커보인다.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할 경우 ‘게도 구럭도 다 잃는’ 결과를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15년 만에 비슷한 시험지를 받아든 이들이 이번에는 최종적으로 어떤 답안을 작성해낼지 궁금하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사진/ 노무현(왼쪽) 후보와 정몽준 의원. 재야 출신의 정치인들 사이에선 두 사람의 같은 점과 다른 점, 당선 가능성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 87년 대선을 앞두고 '후단'과 '비지'로 진통을 겪은 DJ와 YS의 한가로운 한때. 지금은 '국민통합21 창당기획단장'으로 가있는 강신옥(왼쪽) 전 의원과 '양심수 전원석방' 어깨띠를 두른 이인제(오른쪽)의원의 모습이 흥미롭다. (강재훈 기자)

사진/ 김근태 의원은 노무현 후보가 "서운하다. 이길 수 있다. 도와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했으나 분명하게 거절했다. (이용호 기자)

사진/ 김근태 의원의 후보단일화론은 사실상 정몽준 의원에 대한 비판적 지지에 다름아니다. (사진공동취재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