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위원장 절대적 신임받는 연형묵씨 곧 중책 맡을 듯… 남쪽 인사 포함한 ‘아웃소싱’에도 주력
북한이 본격적인 개혁·개방에 나서면서 대체 누가 이런 변화를 주도하는지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물론 이런 흐름의 꼭지점에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자리잡고 있다. 그가 개혁·개방의 지휘봉을 휘두르고 있다는 데 이의를 다는 이는 거의 없다. 앞으로도 그의 의지가 변화의 폭과 깊이를 좌우하는 최대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는 경제재건의 수레바퀴를 홀로 끌고 갈 수는 없다. 누군가 뒤에서 함께 바퀴를 밀어야 수레가 움직일 수 있다. 실제 김 위원장 주변에는 넉넉하지는 않지만 개혁·개방의 불쏘시개 구실을 하는 적지 않은 핵심 경제 엘리트들이 포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중에는 남쪽에 낯익은 인물들도 있다. 하지만 국정원이나 통일부에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막후 실세들도 상당수 있다는 게 정보 소식통의 귀띔이다.
김용순 아태위원장도 대표적 인물
지금 이들은 분단 이후 가장 많은 일거리를 떠안고 있다. 최근 막 시동을 걸려는 신의주 특별행정구를 비롯해 개성공단, 경의선·동해선 철도연결, 금강산 관광특구 조성 사업 등 이들이 머리를 쥐어짜야 하는 굵직한 프로젝트들이 널려 있는 셈이다. 최근 몇년 동안 북한과 사업을 해온 업계 소식통들은 개혁·개방 조처의 배후 기획자로 연형묵 자강도 당 책임비서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1931년에 태어난 그는 만경대혁명학원, 김일성종합대학 등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거쳐 체코 프라하 공대에서 유학한 전문 테크노크라트다. 90년 9월부터 92년 9월 사이 2년에 걸쳐 이뤄진 남북고위급회담 북쪽 단장을 맡았다. 지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해 김 위원장이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할 때는 그를 그림자처럼 보좌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나서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연형묵은 김 위원장이 절대적으로 신임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다. 그가 한때 반대파들의 시기와 모함을 받은 적이 있다. 김 위원장이 그를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자강도 지방으로 내려보냈다. 하지만 자강도는 군수공장이 많기로도 유명한 곳이라, 자강도 당 책임비서 자리는 만만하게 볼 자리가 아니다. 그는 지방에 거주하면서도 평양에서 치러진 주요 행사 때 빠진 적이 거의 없었다. 가까운 시일 안에 그가 개혁·개방 정책과 관련한 중책을 맡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금도 평양을 수시로 오가는 한 기업인의 설명이다. 공식 라인으로는 김용순 당 비서국 대남당당 비서 겸 아태평화위원회(아태) 위원장이 여전히 북한의 변화를 주도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그는 이미 잘 알려진 바대로 금강산 관광사업의 총대를 매온 장본인이다. 이뿐만 아니라 지금 남포에 평화자동차의 자동차 조립 생산 공장을 유치해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굵직굵직한 경협사업을 성사시킨 셈이다. 북한 핵심 권력층 내에서 그만큼 바깥사정에 밝고, 개혁 마인드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실무에도 능한 인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는 게 정부쪽 관계자들의 일치된 평가다. 한때 현대아산이 심각한 재정난을 겪으며 관광 대가를 제대로 지불하지 못하는 바람에 북한 지도부 내에서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신세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다시 개혁·개방에 박차를 가하면서 김용순 비서의 위상도 덩달아 뛰고 있다. 김 비서뿐만 아니라 그의 밑을 떠받치고 있는 전금진-이종혁-안병수 등의 부위원장 라인도 튀지 않으면서 김 위원장의 유례 없는 경제실험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10년 안에 개혁세력 세대교체 이뤄지나
이들과 함께 당 외곽 조직인 민족화해협의회(회장 김영대), 민족경제협력연합회(회장 정운업)등이 최전선에서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당 중앙의 지시를 받아 남쪽과의 경제협력 문제를 비롯해 사회·문화·체육 분야 교류를 주도한다. 최근에는 30, 40대 초반의 젊은 엘리트들이 대거 충원돼 변화의 수레바퀴를 함께 돌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 활동의 초점도 경제여서 남쪽 자본의 유치에 가장 심혈을 쏟고 있다.
일본·중국 등 외국과의 경제교류나 외자 유치는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위원장 김용술)가 맡고 있다.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를 비롯해 최근 문을 열려는 신의주 특별행정구의 외자유치 창구구실을 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내각(총리 홍성남) 부서의 급속한 부상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들은 지금까지 주로 내부 경제건설에만 매진해왔으나 개혁·개방 조처 이후 이제는 남쪽을 비롯한 외국과도 직접 교섭하면서 경제재건에 나서고 있다. 특히 국가계획위원회(위원장 박남기), 철도성, 무역성, 보건성, 문화성 등의 활동이 도드라진다. 이들은 신의주 특구나 개성 공단 개발, 경의선을 비롯한 시베리아 횡단철도 연결 등 현안들이 발등에 떨어지면서 활동의 영역을 대폭 넓혀가고 있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은 지난 90년대 중반 이후 식량난 등으로 모진 시련에 부딪히자 당·군부 중심의 비상과도체제를 운영해왔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흐름을 보면 내각이 제자리를 찾으면서 정상국가 운영체제로 접어든 느낌”이라고 말했다.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소식통들의 말을 모아보면 아직은 50, 60대의 중간세대들이 개혁·개방의 고삐를 죄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동시에 김 위원장은 차세대 엘리트 양성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소식통들은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안에 개혁주도 세력의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는 외국 선진기술을 익히고자 시장경제연수를 다녀온 북한 엘리트들의 수를 통해서도 감지된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99년에 오스트리아, 스웨덴 등 6개 나라에 130여명의 연수생 파견을 시작으로, 2000년 170여명, 2001년에는 무려 20개 나라에 500여명을 보낸 것으로 나와 있다. 이 밖에도 외국 문물을 보고 배우기 위해 떠나는 신사유람단 성격의 단기 연수단까지 포함하면 그 인원은 몇배나 더 불어날 것이라는 게 통일부의 분석이다. 또 최근에는 김책공대 소속의 학생과 연구원들이 미국 대학들과 자매결연을 맺어 정보기술 분야에서 공동 프로젝트를 비공개로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비약적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해외 유학생과 연수자들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예사롭게 볼 대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김우중 전 대우회장이 경제자문
문제는 이들이 성장해 북한 경제재건의 주역이 될 때까지는 몇년이 걸릴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지금은 기존 세대들과 외부 인력에 기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사실 지금 잇달아 나오는 개혁·개방 조처들은 북한 지도부로서는 처음으로 시도하는 생경한 것들이다. 따라서 돌다리도 두드려 건너는 심정으로 모든 게 조심스러워 보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불가피하게 ‘아웃소싱’에 목을 매고 있는 셈이다. 경험 많고 능력 있는 외부 인재들의 손과 머리를 빌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지금 바깥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자기에게 맡겨만 주면 북한 경제를 한번 일으켜 세워보겠으니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게 해달라는 인사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들 중에는 남쪽 관계자들뿐 아니라 해외 인사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하지만 북한 당국으로서는 옥석을 가리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적임자를 가려 뽑아 활용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또 북한이 바깥 물정에 어둡다는 점을 노리거나, 도피처로 북한을 이용하려는 ‘꾼들’도 적지 않다고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귀띔해주고 있다. 최근 신의주 초대 특구행정장관으로 임명된 양빈도 이런 시각에서 보는 이들이 꽤나 된다. 지금 양빈 다음으로 신의주 특별행정장관 후보 물망에 오르는 인물은 3명으로 모아지고 있다. 물론 이 가운데는 남쪽 관계자들도 포함돼 있다. 베이징에 사업 기반을 두고 있는 이아무개씨, 박태준 전 포철 회장도 본인의 부인과는 달리 물망에 올라 있는 것이 사실이라는 게 북한 고위 인맥과 선이 닿아 있는 소식통의 전언이다. 흥미로운 점은 해외 도피중 인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이 김정일 위원장의 경제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올해만도 몇 차례 평양을 다녀간 것으로 알려진 김 회장이 북한의 경제개발 기여를 통해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려고 벼르고 있다는 얘기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사진/ 김위원장의 핵심 엘리트들? 지난해 8월 러시아를 방문한 김정일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에게 수행원들을 소개하고 있다. 왼쪽에서 다섯 번째가 연형묵 자강도 당 책임비서. (AFP연합)
지금 이들은 분단 이후 가장 많은 일거리를 떠안고 있다. 최근 막 시동을 걸려는 신의주 특별행정구를 비롯해 개성공단, 경의선·동해선 철도연결, 금강산 관광특구 조성 사업 등 이들이 머리를 쥐어짜야 하는 굵직한 프로젝트들이 널려 있는 셈이다. 최근 몇년 동안 북한과 사업을 해온 업계 소식통들은 개혁·개방 조처의 배후 기획자로 연형묵 자강도 당 책임비서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1931년에 태어난 그는 만경대혁명학원, 김일성종합대학 등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거쳐 체코 프라하 공대에서 유학한 전문 테크노크라트다. 90년 9월부터 92년 9월 사이 2년에 걸쳐 이뤄진 남북고위급회담 북쪽 단장을 맡았다. 지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해 김 위원장이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할 때는 그를 그림자처럼 보좌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나서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연형묵은 김 위원장이 절대적으로 신임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다. 그가 한때 반대파들의 시기와 모함을 받은 적이 있다. 김 위원장이 그를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자강도 지방으로 내려보냈다. 하지만 자강도는 군수공장이 많기로도 유명한 곳이라, 자강도 당 책임비서 자리는 만만하게 볼 자리가 아니다. 그는 지방에 거주하면서도 평양에서 치러진 주요 행사 때 빠진 적이 거의 없었다. 가까운 시일 안에 그가 개혁·개방 정책과 관련한 중책을 맡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금도 평양을 수시로 오가는 한 기업인의 설명이다. 공식 라인으로는 김용순 당 비서국 대남당당 비서 겸 아태평화위원회(아태) 위원장이 여전히 북한의 변화를 주도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그는 이미 잘 알려진 바대로 금강산 관광사업의 총대를 매온 장본인이다. 이뿐만 아니라 지금 남포에 평화자동차의 자동차 조립 생산 공장을 유치해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굵직굵직한 경협사업을 성사시킨 셈이다. 북한 핵심 권력층 내에서 그만큼 바깥사정에 밝고, 개혁 마인드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실무에도 능한 인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는 게 정부쪽 관계자들의 일치된 평가다. 한때 현대아산이 심각한 재정난을 겪으며 관광 대가를 제대로 지불하지 못하는 바람에 북한 지도부 내에서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신세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다시 개혁·개방에 박차를 가하면서 김용순 비서의 위상도 덩달아 뛰고 있다. 김 비서뿐만 아니라 그의 밑을 떠받치고 있는 전금진-이종혁-안병수 등의 부위원장 라인도 튀지 않으면서 김 위원장의 유례 없는 경제실험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10년 안에 개혁세력 세대교체 이뤄지나

사진/ "누구로 대체될까." 양빈(왼쪽) 어유야 그룹 회장과 김용술 북한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장이 신의주 특구 개발 조인식에서 악수하는 모습. (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