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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개혁파 전진, 호남세 후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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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0-1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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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사람들

사진/ 민주당 선대위 발대식. 재야 출신과 개혁성향 의원들이 전면에 포진했다. (한겨레 김경호 기자)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9월30일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을 계기로 자신의 사람들을 대폭 불렸다. 대선기획단 시절 10명 안팎에 불과했던 현역의원들이 53명으로 늘었다. 남의 눈을 피해 김원기 고문 사무실에서 모이던 전략회의도 이제는 당사 회의실에서 공개적으로 열리는 본부장단회의로 격상됐다. ‘구멍가게’ 수준에서 제대로 틀을 갖춘 ‘법인체’로 발전한 셈이다.

노 후보를 돕는 사람들의 좌장은 여전히 김원기 고문이다. 둘이 만나면 노 후보는 아직도 김 고문을 “대표님”으로 부른다고 한다. 과거 통추 시절 맺은 인연 때문이다. 노 후보는 그때를 두고 “미리 만나 얘기를 나눈 것도 아닌데 회의가 열리면 항상 생각이 같았다”고 믿음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고문은 반노나 비노 진영의 의원들을 접촉하며 진무활동에 주력하는 한편, 노 후보가 과속할 경우 제동을 거는 역할을 맡고 있다. 노 후보의 ‘반미주의자’ 발언에 대해서는 질책을 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바른정치의원모임 여전히 큰 힘


정대철 공동선대위원장은 노 후보의 탈 호남 색채를 주도하고 있다. 그는 한화갑 대표는 물론 노 후보 주변에 있는 김대중 대통령 측근 출신들이 물러나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한 데 이어, 선대위원장 수락의 전제조건으로 당 운영의 이원화 문제 해소와 함께 동교동계의 후방배치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본부장 자리에 재야 출신들이 집중적으로 배치된 점도 대선기획단 시절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특히 이상수 총무본부장과 이해찬 기획본부장은 13대 때 노 후보와 함께 ‘노동위 3총사’로 맹활약하며 호흡을 맞춰본 경험이 있다. 당시 “이해찬 의원이 면도날처럼 예리하게 문제를 째고 들어가면, 노무현 의원이 송곳으로 정확하게 후벼팠고, 마지막으로 이상수 의원이 망치로 허물어뜨렸다”는 평가를 받고는 했다. 이 비유답게 이상수 의원은 선대위 운영에 저돌성을 발휘하고 있다. 노 후보 지원에 소극적인 한화갑 대표를 찾아가 “왜 나서서 돕지 않느냐”고 항의했다가 한 대표로부터 “다듬어지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해찬 의원은 92년, 97년에 이어 다시 한번 선거기획 전문가로서 신발끈을 조여매고 있다. 임채정 정책선거특별본부장은 책임성 강한 면모로 노 후보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선대위 출범 이전에 특별한 임무가 주어지지도 않았는데, 임 의원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 내가 직접 챙겨야겠다”며 정책위원장 자격으로 각종 회의에 참가해 노 후보로부터 “일은 임 의장처럼 하는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임 의원은 애초 국회 후반기 원구성 때 문광위원장으로 내정돼 있다가 노 후보로부터 “도와달라”는 전화를 받고 당시 정책위의장을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기남·천정배·정동영·추미애 의원 등 ‘바른정치의원모임’ 소속 의원들은 여전히 노 후보의 최대 지원군이다. 특히 천 의원은 노풍 재점화의 방향으로 정치개혁을 제안하고 정치개혁추진위 구성에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동영 의원은 정권재창출을 위한 후보단일화에 무게를 두고 한때 노 후보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가 이번에 공동선대위원장 겸 국민참여운동본부장으로 참여했다. 정 의원의 선대위 참여에는 친구 사이인 신기남 의원 등이 “노 후보 지원은 과거 우리가 벌였던 정풍·쇄신 운동의 연장선이다. 가장 중요한 때 빠져서는 안 된다”는 독촉이 주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신계륜 의원은 그동안 노 후보와 인연은 깊지 않았으나, 노 후보가 평소 눈여겨봐온 젊은 의원이어서 비서실장에 배치됐다고 한다.

자문 교수단 조직도 무시할 수 없어

노 후보의 자문교수단 조직인 ‘국가비전21위원회’도 선대위에서 빠뜨릴 수 없는 조직이다. 국민대 김병준 교수가 간사를 맡은 이 기구에는 경제분야에 유종일(KDI국제대학원)·신봉호(시립대)·이정우(경북대), 외교안보분야에 서동만(상지대), 권력분산분야에 성경륭(한림대), 행정분야에 윤성식(고려대) 교수 등 8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우리 사회에 묻혀 있는 민감한 현안들을 끄집어내 정책과 공약으로 개발해냄으로써 대선정국에서 이슈를 선점하도록 하는 역할이 맡겨졌다. 행정수도의 충청권 이전이 대표적인 경우로, 김병준·성경륭 교수 등이 노 후보의 특명을 받고 오랫동안 심도 있게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비해 노 후보의 대선기획단장·비서실장·전략기획실장으로 핵심참모 역할을 했던 문희상·정동채·이강래 의원은 한발 물러나 있는 모양새다. 정대철 선대위원장의 DJ 측근 일선 배제 주장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희상 의원은 노 후보에게서 총괄본부장을 맡아달라는 주문을 받았으나 집행위 부위원장으로 자신의 역할을 축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의원과 함께 한 대표의 측근인 조성준 의원도 조직본부장 자리를 제안받았으나 고사했다는 후문이다. 여전히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노 후보와 한 대표의 함수관계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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