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노파 반발 속 정개위 주도로 당 개혁 착수…진성당원 제도·중앙당 폐지 등 가속화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민주당을 ‘수술대’ 위에 올렸다. ‘호남당’이나 ‘DJ당’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는 민주당을 완전히 뜯어고치겠다는 야심찬 계획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민주당 개조작업은 후보 직속의 ‘정치개혁추진위원회’(정개위·위원장 조순형)에 맡겨졌다.
조순형 위원장은 지난 10월2일 기자회견에서 “이젠 정치의 주도세력이 바뀌어야 합니다. 도덕적 정당성과 실천적 능력을 갖춘 새로운 정치주체들이 낡고 부패한 정치세력을 완전히 교체해야 합니다”라고 선언했다. 여기서 ‘낡고 부패한 정치세력’이란 1차적으로 민주당 밖의 보수·수구세력을 가리키지만, 내부에도 칼 끝을 겨누었음이 분명해보인다.
“우리 보고 나가라는 소리 아니냐”
이는 이날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의원들의 면면을 살펴봐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조 위원장을 비롯해, 정동영·신기남·천정배·송영길·이미경 의원 등 지난해 5월 이후 동교동계 등 민주당 주류와 각을 세우며 정풍·쇄신 운동을 펼쳐온 주역들이다. 이제 이들이 개혁세력 중심의 ‘노무현당’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며, 민주당의 새 주인임을 자임하고 나선 것으로 비칠 수 있는 대목이다. 노 후보의 한 측근은 “이들이 과거 정풍·쇄신 운동을 벌이며 당에 새 기운을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상황을 주도적으로 돌파한 그 역량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전면배치의 이유를 설명했다. 당연히 정개위에 노 후보 진영의 역량이 집중적으로 투입됐다. 노 후보의 최측근인 신기남 최고위원과 천정배 의원이 각각 본부장과 총괄간사를 맡았고, 윤석규 비서실 차장 등 최강팀으로 실무진이 구성됐으며, 비좁은 공간을 헤집고 후보실이 있는 중앙당 8층 국가전략연구소 자리가 비워졌다. 신 최고위원은 “선거대책위의 다른 기구가 한점 한점 점수를 따는 역할이라면, 이 기구에는 일거에 정국을 반전시키는 임무가 주어졌다”고 역할을 설명했다. 당연히 반노파와 비노파 의원들 사이에서는 반발의 목소리가 높다. 박상천 최고위원은 “노 후보가 진보정당하겠다는 것으로 우리 보고 나가라는 소리가 아닌가. 다 교체하겠다는데 누가 거기에 있겠느냐”고 말했다. 한화갑 대표도 주도세력 교체론에 대해 “합당하지 못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이런 반발은 10월4일 의원 34명이 참여하는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 구성으로 이어졌다.
노 후보가 이런 당내 반발을 감수하면서도 민주당 개조작업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현재의 민주당 틀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정서를 잘 대변해주는 사람이 영화배우 문성근씨다. 문씨가 전국 순회강연을 통해 설파하는 논리를 요약해보면 이렇다. “국민참여 경선 직후 치솟은 노 후보 지지율은 광주경선을 보고 감동한 영남사람들이 다시 돌아섬으로써 크게 떨어졌다. 노 후보가 ‘호남당’의 꼭두각시로 보였기 때문이다. 지지율을 회복할 방법은 ‘노무현=김대중의 양자’라는 등식을 깨는 것이다. 그렇다고 DJ 인형을 만들어 장작으로 두들겨팰 노무현은 아니다. 노무현을 호남당·민주당에서 벗어난 새롭고 참신한 전국정당의 후보로 만들어줘야 한다.”
노 후보 진영에서는 노 후보가 민주당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는 한 지지율 상승이란 있을 수 없고, 그 틀을 깨는 출발점은 ‘개혁성 강화’여야 한다고 믿고 있다. 또 개혁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지난 3∼4월에 분 ‘노풍’의 원천이 개혁과 변화에 대한 국민적 갈망이라고 파악했기 때문이다.
신진 정치세력에겐 ‘기회의 땅’
이와 관련해 천정배 의원은 “노 후보의 지지율을 상승시킬 수 있는 길은 변화를 바라는 국민적 욕구를 충실히 대변하는 것 뿐이다. 하늘의 축복이 내리고 있으니,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라고 비유했다. 노 후보의 다른 측근은 “민주당 대 한나라당의 구도를 잘 엮어서 이길 수 있는 싸움이 결코 아니다. 진지전을 펼쳐서는 앉아서 죽을 게 뻔한데 문을 열고 나가서 싸울 수밖에 없다”고 표현했다.
민주당 개혁의 도구로는, 당비를 내는 당원에게만 당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진성당원 제도’와 ‘중앙당 폐지’ 두 가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순형 정개위 위원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민주당을 전면적으로 개혁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겠다. 이를 위해 당을 100%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의 정당으로 바꾸고, 당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인터넷을 활용한 ‘전 당원투표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조 위원장은 또 “이런 과정을 밟으면 소수 최정예 당원이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진성당원 제도가 현실화하면 민주당 내부적으로 상당한 ‘물갈이’가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민주당원은 230만명가량이라지만, 이 가운데 당비를 내는 당원은 약 7천명에 그치고 있다. 당원은 그저 명목상 존재일 뿐, 지구당 위원장이 관리하는 ‘동원대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우리 정치의 현주소다. 그런데 당비를 내는 당원에게 국회의원 후보를 선출할 수 있는 권한 등을 주면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가능해진다. 당장 유시민씨가 주도하는 개혁적 국민정당(개혁신당)만 해도 당비를 납부한 당원이 2만5천명이 넘어, 민주당과 통합할 경우 당의 주도권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호남세가 중심인 기존 지구당 위원장들에게는 커다란 위협이 되고, 신진 정치세력에게는 ‘기회의 땅’이 열리는 셈이다. 노 후보 진영에서는 이런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측근 의원 20∼30여명이 먼저 지구당 위원장직을 사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개위는 또 중앙당 폐지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미국의 정당 조직과 운영 방안을 본떠서, 현재의 중앙당을 사실상 없애는 대신 전국 16개 시·도지부에서 3명씩 모두 48명으로 집행위원회를 구성해 중앙당 기능을 대신하도록 하고, 의원총회를 당 최고의결기관으로 격상시켜 원내총무가 사실상 당 지도자 역할을 하는 방안 등을 심도 깊이 논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되면 현재 동교동계가 중심인 민주당의 핵심 권력구조는 소멸의 길로 들어서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혁명적 변화가 대선 전에 당장 구체화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조순형 위원장은 “진성당원이든 중앙당 폐지든 모두 전당대회를 거쳐야 가시적 성과가 나타날 수 있다. 다만 대선 전이라도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최대한 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개혁신당과의 통합의 시간 필요
노 후보가 강한 의욕을 보이는 개혁신당과의 통합도 속도가 붙으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유시민씨는 “민주당과 우리 당은 서로 종이 다른 나무라, 억지로 접붙일 수는 없다. 그러니 서로 공조해 숲을 이루면 된다”고 말했다. 통합 대신 정책연합을 통해 노 후보를 지원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판단이다. 정책연합을 이루면 민주당의 전국 227개 지구당 조직 가운데 반노세력 등이 빠져나가 붕괴가 예상되는 100여곳 정도에서 개혁신당이 조직을 대체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유시민씨 예상이다. 개혁신당은 10월19일 창당발기인 대회를 열어, 이번 대선에서 독자후보를 낼지 민주당과 정책연합을 추진할지 인터넷 투표를 통해 결정할 예정이다.
조순형 위원장도 “최근 재집권에 성공한 독일 사민당도 녹색당과 연정을 구성할 뿐 합당을 시도하지는 않는다. 노 후보에게 통합 시도를 중단하도록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따라서 민주당 개혁을 둘러싼 당내 갈등 양상은 오히려 대선 이후 더 첨예화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대선 전에는 유리한 정치지형을 만들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는 단계지만, 대선 직후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전당대회에서는 민주당의 진로를 놓고 진검승부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신기남 최고위원은 “노 후보가 당선되면 당 개혁이 탄력을 받아 순조롭게 진행되겠지만, 대선에서 실패하면 상당한 저항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해 노 후보는 “대선에서 지면 다시 후보로 재수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지만, 민주당 개혁을 위해서는 힘을 보태겠다”는 뜻을 측근들에게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의겸 기자 kyummy@hani.co.kr

사진/ 민주당 개혁의 깃발이 올랐다. 지난 10월2일 노무현 후보가 여의도 민주당사 현관에서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박수를 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기자)
이는 이날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의원들의 면면을 살펴봐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조 위원장을 비롯해, 정동영·신기남·천정배·송영길·이미경 의원 등 지난해 5월 이후 동교동계 등 민주당 주류와 각을 세우며 정풍·쇄신 운동을 펼쳐온 주역들이다. 이제 이들이 개혁세력 중심의 ‘노무현당’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며, 민주당의 새 주인임을 자임하고 나선 것으로 비칠 수 있는 대목이다. 노 후보의 한 측근은 “이들이 과거 정풍·쇄신 운동을 벌이며 당에 새 기운을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상황을 주도적으로 돌파한 그 역량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전면배치의 이유를 설명했다. 당연히 정개위에 노 후보 진영의 역량이 집중적으로 투입됐다. 노 후보의 최측근인 신기남 최고위원과 천정배 의원이 각각 본부장과 총괄간사를 맡았고, 윤석규 비서실 차장 등 최강팀으로 실무진이 구성됐으며, 비좁은 공간을 헤집고 후보실이 있는 중앙당 8층 국가전략연구소 자리가 비워졌다. 신 최고위원은 “선거대책위의 다른 기구가 한점 한점 점수를 따는 역할이라면, 이 기구에는 일거에 정국을 반전시키는 임무가 주어졌다”고 역할을 설명했다. 당연히 반노파와 비노파 의원들 사이에서는 반발의 목소리가 높다. 박상천 최고위원은 “노 후보가 진보정당하겠다는 것으로 우리 보고 나가라는 소리가 아닌가. 다 교체하겠다는데 누가 거기에 있겠느냐”고 말했다. 한화갑 대표도 주도세력 교체론에 대해 “합당하지 못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이런 반발은 10월4일 의원 34명이 참여하는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 구성으로 이어졌다.

사진/ (한겨레 이정용 기자)

사진/ 지난해 12월 민주당 쇄신연대 모임. 당시 당 개혁의 주축이던 의원들이 정개위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