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 전문가' 정형근 의원의 정보력…차기 국정원장에 줄서기인가
자타가 공인하는 ‘폭로전문가’ 정형근 의원의 활약상이 눈부시다. ‘4천억원 대북지원설’ 등 최근 한나라당 ‘폭로 드라이브’의 이면엔 어김없이 그의 이름이 어른거린다.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를 위한 정치권 로비설,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의 2400만달러 북지원 발언설 등을 제기하며 직접 ‘저격수’로도 나섰다. 그의 폭로는 사실 여부를 떠나 언론에 대서특필된다. 정국은 그의 한마디에 따라 이리저리 춤춘다. 폭로의 진위는 좀처럼 밝혀지지 않는다.
국사모가 정 의원의 정보줄로 주목
9월24일 그가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장에서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를 위한 정치권 로비설을 폭로하며 흔들어댄 ‘국정원의 도청자료’라는 3장짜리 문건의 진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녹음 테이프가 있으면 내놓으라는 추궁에 그는 “신건(국정원장)한테 달라고 하라”고 대꾸했다. 면책특권의 테두리 안이었다. 국정원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고, 민주당은 조작의혹을 제기했다. 정 의원은 얼마 전 기자들에게 국정원 내부의 세세한 정보까지 파악하고 있음을 은근히 과시했다. “민주당의 실세 중진 의원이 국정원의 한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병풍과 관련된 자료를 다 내놓으라’고 했으나 그 국장이 ‘우리도 갖고 있는 게 없다’고 했다.” 기자들이 그 의원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밝힐 수 없다. 누구라고 밝히면 당장 고소당할 텐데…. 조금씩 하자.” 면책특권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장소였다. 그의 폭로는 대개 이런 식이다.
그가 입수했다는 도청자료가 사실이라면 그는 도대체 어떻게 그런 자료를 입수하는 것일까. 자료입수 경로에 대해 그는 “국정원의 고위 간부가 울분과 정의감에서 전해줬다”며 국정원에서 입수했음을 분명히 했다. 그의 폭로에 국정원 내부사정에 대한 상세하고도 구체적인 언급이 나오는 것을 보면 어쨌든 그가 국정원의 내부 정부를 접하고 있는 정황은 분명해보인다. 국정원쪽은 정 의원에게 정보가 흘러들어가는 경로로 ‘국가를 사랑하는 모임’(약칭 국사모)을 주목한다. 국사모는 현 정권 출범 이후 직권면직된 국정원의 전직 간부 21명이 모여 99년 결성한 단체다. 경남 11명, 경북 6명 등 회원 대부분이 영남지역 출신이다. 4천억원 대북지원설을 폭로한 엄호성 의원은 국사모의 변호사로 활동했다. 국정원이 국사모를 지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국정원은 정보유출이 포착되자 나름대로 정보유출 경로를 탐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문민정부 시절 국정원에서 정치과장을 지낸 ㅅ씨와 방송과장을 지낸 ㅇ씨 등 국사모 회원 일부가 사무실을 옮겨다니며 정 의원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정황을 포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정보조직의 생리를 잘 아는 보안의 전문가들이어서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고 한다. 국정원 관계자들은 “두 사람은 핵심 보직을 맡았던 중견 간부들이어서 현직 직원들과의 인맥이 탄탄하고, 각종 정보를 가공해 수준급의 문건을 만들어낼 정도의 능력을 갖췄다”고 전했다. 정 의원 스스로도 “정보를 얻기 위해 밤에도, 새벽에도 달려갔고, 산이나 들에서도 만났으며, 기차를 타고 가서 접촉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정 의원이 비밀리에 운영하는 사무실로 서울 장안동의 무역회사 간판을 단 사무실과 여의도의 한 연구소가 지목되기도 했다. 그가 지난해 여의도 산정빌딩에 낸 국제전략연구소도 눈길을 끌었지만 공개된 곳이라는 점에서 정보팀을 운영하기엔 어려워보인다. 국정원은 급기야 자료유출을 막기 위해 ‘자료유출과의 전쟁’을 벌여야 했다. 국정원은 자료유출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청와대 등에 보내는 주요 문건에 나름의 식별장치를 해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청와대를 통해 문건이 유출된 사례가 있었는데 국정원에서 식별장치를 들이대며 경고를 내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내부 관계자가 문건을 유출했을 경우엔 경로를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워낙 ‘선수’들이어서 식별장치를 없애고 유출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정원 내부에서조차 문건을 만들지 않고 컴퓨터에만 보관했다가 상부엔 구두로 보고하기도 한다. 그만큼 내부정보 유출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비토세력도 만만치 않아
그렇다면 왜 그에게 정보가 흘러들어가는 것일까. 그도 한때는 빈약한 정보력을 드러내 한물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그 스스로는 “이제 정보가 아니라 정책에 주력하겠다”고 말했지만 정보고갈에 따른 고육지책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그 무렵 그는 기자들한테 귀동냥한 정보를 당내에 전파하려다 당내 정보통들의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대선이 다가오면서 그에게 또다시 정보가 몰리고 있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선 두 가지 이유로 추정한다. 우선 돈이다. 정보기관쪽에선 비밀 사무실을 운영하며 사설 정보팀을 꾸려가려면 못해도 1개월에 5천만원은 들 것이라고 얘기한다. 모종의 경로를 통해 그가 그런 규모의 돈을 조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보·사정기관쪽에선 정 의원의 돈줄로 퇴계로에 사무실이 있는 한 원양어업회사를 지목하기도 했으나 뚜렷한 단서를 찾지는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정권이 바뀌면 정 의원이 국정원장으로 임명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대선을 앞두고 쓸 만한 정보를 빼내 정 의원에게 바쳤다가 ‘정형근 국정원장’ 시대가 열리면 요직을 차지하겠다는 국정원 간부들의 줄서기 행태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현직 간부들과 선후배 사이로 연결된 전직 국정원 간부들이 창구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게 국정원쪽의 판단이다. 국정원 직원들도 “창피한 노릇이지만 간부들의 줄서기는 숨길 수 없는 현실”이라고 인정했다.
실제로 한나라당 주변에선 벌써부터 정 의원을 일컬어 ‘제2의 국정원장’이니 ‘한나라당 국정원장’이니 하는 말들이 나돈다. 정권이 교체되면 정 의원이 국정원장 1순위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당 내부에서도 그에 대한 비토세력이 만만치 않다. 이들은 일단 대선 때까지는 그의 정보력과 폭로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그 다음엔 오히려 한나라당과 이 후보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으로 날아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를 일컬어 ‘계륵’이라고 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때문에 이 후보가 집권을 하더라도 정 의원을 국정원장으로 앉히는 무리수를 두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시민·사회단체의 반발도 볼 보듯 뻔한 노릇이다. 국정원 재직시절의 각종 공작사건과 고문전력 시비를 묵과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 의원이 국정원에 근무한 기간은 13년. 이 기간에 그는 법률담당관을 시작으로 대공수사국장, 기획판단국장, 수사차장보, 제1국장, 제1차장 등 핵심요직만 골라 다녔다. 서경원 방북사건, 임수경 방북사건, 김낙중·이선실 간첩사건, 사노맹사건 등이 그가 직접 수사하거나 지휘한 공안사건이다. 홍사덕 의원 지역구에 뿌려진 국정원 흑색유인물 사건도 그가 관련 부서에 근무할 때 발생했다. 그는 “김문수·이우재·정태윤씨 등이 간첩 김낙중씨로부터 4천만원의 돈을 받았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지금은 한솥밥을 먹고 있는 사람 중에도 피해자들이 있는 것이다.
형체도 없고 근거도 없는…
그런데 그의 폭로실력은 과연 몇점이나 되는 것일까. 그가 더러 맞히기는 했다. 99년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그는 “군검찰로 구성된 병무비리 합동수사부가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전직 고위 관료 등 70여명을 불법 병역면제 수사 리스트에 올려놓고도 쉬쉬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로 이듬해 총선을 앞두고 검찰의 병역비리 수사가 진행됐다. 99년 ‘언론대책문건’도 그가 입수해 폭로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내지른 수많은 폭로들 가운데 과녁 근처에도 가지 않은 터무니없는 ‘오발탄’이나 진위가 뚜렷이 밝혀지지 않은 ‘불발탄’이 더 많았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지난 7월30일 제기한 ‘한화갑 대표 방북설’이다. ‘도라산 프로젝트’라는 구체적인 암호명까지 제시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8·15 때 중대발표 가능성이 있다”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답방 발표설을 예측했지만 곧 오보임이 판명됐다. 김정일 위원장과 정몽준 의원이 10월께 제주도에서 만날 것이라는 주장은 아직 시한이 남아 있으니 한번 지켜볼 일이다. 이 밖에 그의 오발탄 사례는 수두룩하다. 그는 ‘언론대책문건’의 작성자로 이강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목했지만 ‘진범’은 당시 <중앙일보> 문일현 기자임이 밝혀졌다. 민주당은 ‘정형근 의원 거짓 폭로발언 및 행태 관련 일지’를 발표하기까지 했다. 이런 사정을 빗대 김옥두 의원은 시중에 나돈 이른바 ‘정형근 삼행시’를 소개한 적이 있다. “정형근이 하는 말은, 형체도 없고, 근거도 없다.”
그의 폭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른다. 관중의 환호와 감독의 격려는 폭로의 폭탄을 끌어안고 질주하는 선수에게 힘을 주는 연료다. 이회창 후보가 그를 일컬어 “부산의 자존심을 지킨 사람”이라고 치켜세운 것은 2000년 총선 때였다. 이제는 그만 경기를 끝낼 때가 아닐까.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사진/ 대선이 가까워지며 정형근 의원의 폭로가 열기를 더하고 있다. 정 의원에게 정보가 흘러들어가는 경로가 주목된다. (한겨레 김경호 기자)
그가 입수했다는 도청자료가 사실이라면 그는 도대체 어떻게 그런 자료를 입수하는 것일까. 자료입수 경로에 대해 그는 “국정원의 고위 간부가 울분과 정의감에서 전해줬다”며 국정원에서 입수했음을 분명히 했다. 그의 폭로에 국정원 내부사정에 대한 상세하고도 구체적인 언급이 나오는 것을 보면 어쨌든 그가 국정원의 내부 정부를 접하고 있는 정황은 분명해보인다. 국정원쪽은 정 의원에게 정보가 흘러들어가는 경로로 ‘국가를 사랑하는 모임’(약칭 국사모)을 주목한다. 국사모는 현 정권 출범 이후 직권면직된 국정원의 전직 간부 21명이 모여 99년 결성한 단체다. 경남 11명, 경북 6명 등 회원 대부분이 영남지역 출신이다. 4천억원 대북지원설을 폭로한 엄호성 의원은 국사모의 변호사로 활동했다. 국정원이 국사모를 지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국정원은 정보유출이 포착되자 나름대로 정보유출 경로를 탐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문민정부 시절 국정원에서 정치과장을 지낸 ㅅ씨와 방송과장을 지낸 ㅇ씨 등 국사모 회원 일부가 사무실을 옮겨다니며 정 의원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정황을 포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정보조직의 생리를 잘 아는 보안의 전문가들이어서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고 한다. 국정원 관계자들은 “두 사람은 핵심 보직을 맡았던 중견 간부들이어서 현직 직원들과의 인맥이 탄탄하고, 각종 정보를 가공해 수준급의 문건을 만들어낼 정도의 능력을 갖췄다”고 전했다. 정 의원 스스로도 “정보를 얻기 위해 밤에도, 새벽에도 달려갔고, 산이나 들에서도 만났으며, 기차를 타고 가서 접촉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정 의원이 비밀리에 운영하는 사무실로 서울 장안동의 무역회사 간판을 단 사무실과 여의도의 한 연구소가 지목되기도 했다. 그가 지난해 여의도 산정빌딩에 낸 국제전략연구소도 눈길을 끌었지만 공개된 곳이라는 점에서 정보팀을 운영하기엔 어려워보인다. 국정원은 급기야 자료유출을 막기 위해 ‘자료유출과의 전쟁’을 벌여야 했다. 국정원은 자료유출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청와대 등에 보내는 주요 문건에 나름의 식별장치를 해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청와대를 통해 문건이 유출된 사례가 있었는데 국정원에서 식별장치를 들이대며 경고를 내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내부 관계자가 문건을 유출했을 경우엔 경로를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워낙 ‘선수’들이어서 식별장치를 없애고 유출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정원 내부에서조차 문건을 만들지 않고 컴퓨터에만 보관했다가 상부엔 구두로 보고하기도 한다. 그만큼 내부정보 유출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비토세력도 만만치 않아

사진/ 9월25일 재경위 국감에서 정형근 의원이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과정에서 불거져서나온 의혹을 설명하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