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 작가 장덕균씨의 정치풍자 유머… 대선후보 3인을 향한 포복절도 웃음펀치
현실이 답답할수록 유머는 더욱 활개친다. 유머 또한 필연적으로 그 시대의 반영일 수밖에 없다. 정치풍자는 더더욱 그렇다. 문민정부에 들어선 뒤에야 대중매체에서 본격적인 정치풍자를 만날 수 있었으니….
한국 정치풍자의 효시는 뭘까.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방귀소리에 이기붕씨가 했다는 얘기가 꼽힌다. 유머는 권력의 성격에 따라 변주된다. 전두환 대통령이 방귀를 뀌었다. 장세동이 일어선다. “각하. 제가 뀐 것으로 하겠습니다.” 정치풍자엔 권력에 대한 통절한 야유가 스며 있다.
대선이 3개월 앞으로 다가온 정치의 계절, 때맞춰 유력 대선후보 3인에 대한 정치풍자 유머집 3권이 나왔다. <대쪽이야 개쪽이야, 회창이> <노풍이야 허풍이야, 무현이> <용꿈이야 개꿈이야, 몽준이>(국일미디어 펴냄)가 그것이다. 지은이는 한국방송 <개그 콘서트>의 개그 작가인 장덕균씨. 제목만 봐도 후보들의 아픈 곳이 쏙쏙 들어온다. 저자는 약점이 보이면 여지없이 비틀고, 꼬집고, 후벼판다. 그 속에 풍자와 해학이 스며 있지 않다면 생채기가 남을 터. 읽은 뒤 배시시 새어나오는 웃음은 상처를 치유하는 묘약이다.
이회창
대쪽이야 개쪽이야
좋은 학벌에 정통코스를 밟아온 엘리트적 이미지가 유머 한 꼭지에 난도질당한다. 호화빌라, 아들들의 병역문제, 며느리 원정출산 등 물의를 빚은 소재들이 도마에 오른다. 워낙 사례가 풍부한 탓인지 실제 사건을 둘러싼 유머가 많다.
예전에 이회창이 기자들과 대화 중 어떤 기자가 고려대학을 나왔다고 하자, “그런 학교 나와도 기자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얼마 뒤 이회창은 기자 간담회에서 “그때 얘긴 실수였다”며 사과했다. 집권하면 학력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해 분위기는 대번에 좋아졌다. 이회창이 기자들에게 오랜만에 저녁식사라도 같이하자며 이렇게 말했다. “서울대 출신은 요 앞 뷔페집으로, 고려대 출신은 지하 분식집으로 가주세요” 그러자 한 기자가 화를 내며 물었다. “아니 그럼 총재님, 지방대 출신은 어디 가서 식사합니까?” 이회창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했다는 말. “여기 누구, 도시락 준비 안 했나?”
이회창은 114평짜리 호화빌라 3채를 둘러싼 문제가 자꾸만 불거지자 급기야는 어렵게 결정을 내렸다. 이회창은 비서를 불러 말했다. “당장 지금 있는 빌라를 처분하고 방 한칸짜리 집을 알아보게!” “네 방 한칸짜리로요?” “그렇다니까! 당장 방 한칸짜리 집을 알아보란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단칸방은 좀 그런데요.” 그러자 이회창은 답답한 듯 소리쳤다. “200평짜리 원룸으로 알아보란 말이야.”
이회창은 며느리가 하와이에서 원정출산한 일 때문에 비난을 받고 있었다. 기자가 물었다. “손녀분의 하와이 원정출산에 대해 미리 알고 계셨습니까?” 이회창 왈, “그렇습니다”. “아니, 그걸 알고도 가만히 계셨습니까?” 그러자 이회창이 머쓱해하며 말했다. “난 부곡하와이에서 애 낳을 줄 알았지…. 진짜 하와이 가서 낳을 줄 았았나?”
지난번 대선에 이어 이번에도 어김없이 아들의 병역문제가 불거지자 이회창은 고민에 빠졌다. “정말 해도 너무들 한다. 지난번에 그렇게 씹어댔으면 됐지, 아직도 남았냐? 우리 아들이 소록도에 가서 얼마나 고생했는데. 에잇, 더럽고 치사해서 안 되겠어. 차라리 우리 아들을 군대에 보내버리고 말아야지.” 부인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여보, 그게 정말이에요?” “응, 구세군에 보내야겠어.”
노무현
노풍이야 허풍이야
용꿈이야 개꿈이야
축구와 아버지 얘기가 자주 등장한다. 그의 약점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 문제가 빠질 리 없다. 본격적인 대선행보가 늦은 탓인지 실제 사건에 대한 풍자가 좀 적다. 때문인지 조금 싱거운 유머도 눈에 띈다.
몽준이 평소에도 축구화를 신고 다니는 것 때문에 세간에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기자가 왜 평소에도 축구화를 신고 다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정몽준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대통령이 되려면 신발을 잘 신어야 합니다. 한때는 군화, 한때는 등산화. 이젠 축구화가 됩니다.”
어떤 단체에서 대권 후보 3명의 성향을 분류했다.
강박초조형 이회창: 이번에도 안 되면 큰일나는데.
자기과시형 노무현: 끝까지 간다.
한량형 정몽준: 뭐, 한번 나가보는 거지.
노동자들의 파업이 한창일 때였다. 비서가 정몽준에게 말했다. “지금 밖에 전노협 대표들이 의원님을 만나고 싶다며 찾아왔습니다.” “그래? 당장 들어오라고 해요.” 비서가 지금은 시기가 별로 좋지 않다며 말렸다. 그러자 정몽준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전노협이 뭐 어때서. ‘전국노래자랑출연자협의회’가 아니오? 난 프로보다 아마추어 노래솜씨가 좋던데….”
정몽준이 비서에게 물었다. “대통령이 되면 왜 전용기를 타는지 아나?” “왜죠?” “경운기 타면 이상하잖아.”
그러나 후보들 처지에선 유머로 넘기기엔 찜찜한 구석도 있다. 이회창 후보쪽에선 공정성에 대한 불만을 제기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저자가 교묘한 방법으로 노무현 후보를 편들었다. 이 후보는 본인을 직접 바보와 병신으로 만들어놓고 노 후보는 비교적 객관화시키는 방법으로 약화시켰다.” 이 후보의 공보파트에서 일하는 한 참모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쪽의 자의적 해석일 뿐이다. 원래 남의 떡이 커보이는 것이다. 독자들 전화를 많이 받았지만 그런 얘긴 처음 들었다. 형평성 시비를 없애기 위해 양적으로도 딱 200꼭지씩 균형을 맞췄다.” 출판사는 10월1일을 기준으로 어느 책이 많이 팔렸는지 수량을 공포할 계획이다. 저자도 서문에서 “독자들의 손이 누구의 책에 먼저 갈까”라며 “우리가 먼저 작은 선거를 치러보자”고 썼다. 지나친 상혼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한꺼번에 3권을 내는 것이 무리였을까, 밋밋한 꼭지들이 더러 눈에 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대쪽이야 개쪽이야

사진/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이정용 기자)
노풍이야 허풍이야

사진/ 노무현 민주당 후보. (이정용 기자)
거침없는 언행과 투박한 말투로 자주 입길에 오른 탓인지 말실수를 소재로 삼은 유머가 많다. 그와 <조선일보>와의 특별한 관계, 재경선을 약속했다가 후보교체론으로 곤욕에 빠진 경험, 당내 분란 등이 소재로 등장한다.
노무현이 부산 유세 도중 ”쪽팔려”라는 비속어를 써 물의를 일으켰다. 측근들은 앞으로 제발 비속어는 자제해 달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노 후보도 공감하며 약속했다. 그러나 돌아서며 중얼거린 말, “아이씨, 뚜껑 열려”.
노무현이 <조선일보> 때문에 화가 나 있었다. 그러던 중 집에서 저녁을 먹는데 이젠 부인마저도 노무현의 심기를 건드렸다. 부인이 무심코 “여보, 조선…” 하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무현이 부인에게 마구 화를 냈다. “내 앞에서 <조선일보>의 ‘조’자도 꺼내지 말라니까!” 그러자 부인이 억울한 듯 입을 열었다. “난 조선간장 좀 갖다 달라는 얘기였는데….”
부산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노무현이 배수진을 쳤다. “이번 선거에서도 표가 안 나오면 부산 태종대에서 몸을 던지겠습니다.” 한 측근이 걱정스러워 물었다. “진정하세요, 그럼 안 됩니다.” “그럼, 부산 앞바다에서 몸을 던지겠습니다.” “그것도 위험합니다, 다시는 그런 말씀 마세요.” 그러자 노무현이 멋쩍게 말했다. “그렇다고 완월동에다 몸을 던지겠다고 말할 순 없잖아.”
민주당 내부갈등이 심해져 안동선 의원이 탈당을 선언했다. 안 의원은 노무현을 만나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노 의원, 당신은 절대 안 돼. 기본이 안 돼 있는 사람이야. 자격이 없어….” 온갖 소리를 묵묵히 다 듣고 난 노무현이 조용히 말했다. “열심히 씹은 당신, 떠나라!”
정몽준용꿈이야 개꿈이야

사진/ 정몽준 의원 (이정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