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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YS정권 몰락과정 따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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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9-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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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저항과 민심이반·집권세력 내부의 균열, 그럼에도 오만한 자신감!

(사진/노동관계법 날치기 이후 97년 1월 총파업 정국속에서 열렸던 여야 영수회담. 당시 YS정권이 처한 상황은 DJ정권의 지금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
“최근 여권의 행태는 문민정부 말기를 방불케 한다. YS는 임기 1년을 앞두고 망가졌지만 정권기반이 취약한 DJ는 임기가 2년 이상 남은 상황에서 무너져내리고 있다.” 잇단 악재 속에 허우적대는 DJ정권을 바라보며 YS정권 말기 집권 신한국당 사무총장을 지낸 민주계 강삼재 의원(한나라당)은 이런 말을 내뱉었다. 집권 초 90%에 육박하는 국민적 지지율을 구가했던 YS정권이 급격히 무너진 96년 말에서 97년 초반 상황과 DJ정권이 처한 최근 상황이 너무 흡사하다는 것이다.

DJ는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

민주계 인사와 몇몇 정치학자들은 아예 “DJ는 YS정권의 몰락 과정을 냉철히 보고 배워야 한다”고 충고한다. 도대체 당시와 최근 상황의 유사점은 무엇인가. 또 YS정권의 몰락에서 DJ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박상병 한국정당정치연구소 연구실장은 3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고 진단한다. “여당이 민심 이반의 폭이나 깊이, 정권의 역량을 정확히 읽지 못한 채 일을 벌인 뒤 무능하게 대처해 혼란상황이 거듭됐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들이 연루된 비리가 폭발하면서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었다. 그리고 집권당 내부의 분열이 본격화됐다.”

실제 YS정권이 96년 12월26일 새벽 감행한 노동관계법 날치기와 그 이후 파문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대응법은 DJ정권이 최근 잇단 악재를 처리하는 과정과 상당히 닮았다.

문민정부 파산의 결정적 단초가된 노동법 날치기는 YS와 강삼재 신한국당 사무총장, 이석채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문민정부의 마지막 개혁을 수행한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시작했다. 이들은 96년 4월부터 “경쟁력 제고”를 명분으로 노동법 연내 개정을 위한 여론조성에 나섰다. 그러나 노동계와 야당이 “정리해고 합법화”라며 반발하자 11월 초순께 이 계획을 포기하는 듯했다. 하지만 김영삼 대통령이 아펙(APEC)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온 직후인 12월8일 강경론이 다시 득세했다. 고위당정회의 등에서 청와대쪽이 당쪽의 미온적 태도를 질타하며 연내 처리로 몰아붙인 것이다. 이석채 경제수석이 “대통령의 개혁의지”를 내세우며 밀어붙였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물론 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김문수, 홍준표, 박세직 의원 등은 “이해 당사자의 합의가 부족해 국민적 저항이 우려된다”면서 반발했지만 이홍구 대표 등 지도부는 “당론에 반대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협조를 강요했다. 그리고 12월20일 자민련과 당내 보수성향 의원들의 거부감이 집중된 ‘복수노조 허용’조항을 ‘3년 유예’하는 수정을 거쳐 12월26일 아침 6시에 날치기를 강행했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YS정권의 핵심들이 수용할 수 있는 강도 이상의 역풍을 몰고온다. “노동법 개정=정리해고 가시화”로 받아들인 노동계와 국민들은 날치기를 감행한 정권의 오만함을 비판하며 YS정권에 급격히 등을 돌렸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당시 청와대 사정에 정통한 부산 민주계 한 중진은 이렇게 말했다. “YS는 날치기에 따른 반발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 악화된 경제여건 개선을 위해 노사관계 혁신이 필요하다는 이석채 경제수석 등 경제팀의 의견이 YS에게 입력됐다. 또 몇몇 강경파 인사들은 97년 대통령 선거 등을 고려할 때 노동법을 연내 처리하지 못하면 권력누수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말 안 통하는 정권

DJ정권도 교섭단체구성요건 완화를 위한 날치기와 의약분업 추진 등 현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전철을 밟는다. 의약분업의 경우 93년 여야합의로 마련된 ‘약사법개정안’에 99년 7월 시행이 규정돼 있었고, 99년 5월10일 다시 반발한 의료계와 약계-시민단체가 모여 2000년 7월 시행에 합의한 상태였다. 그런 만큼 DJ정권의 핵심들은 “시행이 불가피한 개혁조처”로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행시기가 임박하자 야당인 한나라당은 6개월 연기를 주장했고, 의료계가 강력히 반발하면서 곤경에 처한다. 하지만 지난 ‘6·15정상회담’ 이후 상승세를 타며 정국주도에 자신감을 가진 DJ정권은 “국민건강을 위한 개혁”이라며 계획대로 강행한다. 문제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 부족 등 준비소홀 상태로 밀어붙였다는 데 있다. 의료계는 “임의조제, 대체조제 전면금지를 통한 완전의약분업”을 명분으로 파업을 감행했다. 그러자 국민들은 “불편함”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여권은 이런 혼란 속에서 자민련과 공조를 위해 교섭단체구성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국회법 날치기를 감행(7월24일)하는 등 민심을 잃는 자충수를 뒀다. 도덕성과 일관성 확보를 통해 국내 정치에서 민심을 얻고 있을 때 이해관계가 얽힌 개혁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다는 기본을 무시한 채 국민의 반발을 부추기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이해당사자나 민심의 역풍에 부닥친 뒤 사태를 풀어나가는 모습도 YS정권 당시와 많은 공통점을 보인다. YS는 봇물처럼 터진 국민들의 “날치기 무효화” 요구에 대해 “밀리면 임기말 권력누수가 온다”는 논리에 기반해 초강경 대응으로 맞섰다. 또 합리적 해결을 위한 치밀한 조정력보다는 “국민의 몰이해”를 탓하면서 민심을 더욱 등졌다. 당시 각종 여론조사에서 80% 이상의 국민이 노동법 날치기가 잘못됐다고 응답했지만 YS는 97년 1월7일 연두기자회견을 통해 “노동법을 선진국 수준으로 개정한 것이다. 경제가 어려운 만큼 대국적으로 참고 견뎌야 한다”고 고개를 치켜세웠다.

여권의 이런 강공책에 국민은 “정권타도”와 “YS하야”로 응답했다. 1월10일께부터 이만섭, 이회창 등 신한국당 상임고문들이 강공책을 비난하는 등 내부분열이 본격화됐다. 청와대는 결국 이홍구 대표마저 오락가락하는 등 내부의 혼선이 극에 달한 1월21일 백기를 들었다. YS가 이날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 자민련 총재 등과 영수회담을 열고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복수노조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무엇이든 국회에서 다시 논의해도 좋다”며 사실상 저항에 굴복했다.

물론 현재 의약분업 문제는 노동법 파문과는 본질적 차이가 있다. 시민사회단체가 원칙적 이행을 촉구하고, 국민은 “불편을 호소”하며 실시여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어쨌든 DJ정권은 일 처리 과정에서 비슷한 무능함을 보였다. 민심의 흐름과 정권의 현실 역량을 냉철히 고려한 합리적 조정력을 찾지 못한채 상황에 끌려다녔다. 특히 의료계의 파업에 대해 의보수가 63% 인상안을 내놓는 등 국민부담만 가중시키는 무원칙함은 민초들이 DJ정권에 등을 돌리게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진/YS는 끝내 국민적 의혹의 핵심인 현철씨만은 성역으로 남겨두려 했으나, 결국 그의 ‘국정개입’사실이 밝혀지면서 YS정권은 반신불수 상태에 빠졌다)
노동법으로 휘청거린 YS정권은 뒤이어 불거진 한보사태와 현철씨 국정개입 사건 해결에서도 비슷한 오류를 반복함으로써 끝내 파국을 맞았다. 당시 야권은 한보부도(1월23일) 직후 “한보에 대한 특혜대출설”을 주장하며 “김현철 및 청와대 개입설” 전면 공세에 나섰다. 여권은 초반 며칠 동안 “노동법 파문에 이어 여권의 분열을 노린 야당의 정치공세”라며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노동법 파동으로 돌아선 민심은 “한보의 92년 대선자금 제공 의혹”에 솔깃했고, 다급해진 YS는 1월27일 성역없는 수사의지를 표명하며 정면돌파에 나섰다. 2월12, 13일 민주계 최측근인 홍인길, 정재철, 황병태 의원과 김우석 내무장관을 억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했다. 그러나 한보사태의 ‘몸통’으로 지목된 현철씨만은 끝내 성역으로 남겨뒀고 의혹은 더욱 확산됐다. 그리고 3월10일 박경식(G클리닉 원장)씨의 ‘현철씨 국정개입 확인 테이프’가 <한겨레>를 통해 보도되면서 현철씨는 구속되고 YS정권은 반신불수 상태에 빠졌다.

이런 상황은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과 상당한 유사성을 갖고 있다. DJ정권은 박지원 문화부 장관이 외압의 실체라는 국민적 의혹이 증폭됐지만 “박 장관은 결백하고 억울하다”며 처리를 미뤘다. 오히려 동교동계 등 여권핵심은 “박 장관이 사임할 경우 힘의 균형이 야당쪽으로 쏠리면서 가뜩이나 소수인 정권이 더욱 취약해질 것”이라는 권력누수에 대한 우려 속에서 “야당이 여권 분열을 위한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는 공박만 계속했다. 그러나 등돌린 민심은 마치 노동법 파동 이후 YS정권 2인자인 현철씨의 심판을 요구했듯, DJ의 최측근으로 분류된 박 장관에게서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흉흉한 민심을 감지한 민주당 최고위원들은 지난 9월19일 한빛은행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와 날치기된 국회법 개정안 재심의 등을 야당에 약속하면서도 박 장관의 사퇴만은 막으려 했다. 하지만 민심은 박 장관에 대한 결단을 요구하는 쪽으로 흘렀다. 결국 몰릴대로 몰린 청와대와 여당은 지난 9월20일에서야 박 장관을 중도하차시켰다. 그러나 불법대출 의혹에 대한 특검제를 요구하는 야당과 아직도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는 민심이 어떤 방향으로 튈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권력누수에 대한 집착으로 적절한 타이밍을 놓침으로써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막는’ YS정권의 실수를 다시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YS정권 말기에 김현철씨와 가까웠던 한 민주계 핵심인사는 “남북회담 등 상승분위기와 권력누수 우려에 매몰돼 국정책임자인 대통령이 현실과 동떨어진 상황인식을 계속한다는 점은 그때와 너무 비슷하다”면서 “권력누수를 우려하기보다는 현실의 한계와 문제를 정확히 인정하고 개선하는 솔직함이 더욱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박재창 교수(숙명여대 의회행정학)도 진실한 접근만이 YS정권과 같은 파국을 막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고꾸라질 게 두려워 밀리지 않으려고 버티면 사태는 더 악화된다. 특히 소수정권은 임기말이 가까워올수록 버티기 어렵다. 체구가 작으면 그 깜냥대로 현실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며 인사탕평 등을 통해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신승근 기자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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