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당 독자후보 선출 강행에 찬반 논란…경선을 통한 진보진영 단일후보 가능한가
“1인 보스체제 중심의 기존 정당체제를 그토록 비난하던 민노당이 정작 대선과정에서 보여주는 작금의 상황들은 기존 정당과 별반 다르지 않다. 왜 정책중심이 돼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토록 권영길씨에게 집착하는가.”(이양재)
“범진보진영이라고 말하는 수많은 다른 성격의 집단들과 결합하려는 민노당이 적잖이 걱정스럽다. 민노당이 독자후보를 내고 일반 시민을 상대로 홍보해야 한다”(한재연)….
계속 제기된 ‘권영길 한계론’
권영길 후보가 9월8일 열릴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선출대회에 출마한 뒤 민노당 홈페이지(www.kdlp.org)에는 이런 엇갈린 비판이 잇달아 올라온다. 민노당이 독자후보 선출대회를 강행하는 데 대한 분노, 후보 선출 뒤 다시 범진보진영 단일후보 경선을 치르겠다는 권 대표의 방침에 대한 찬반 논란 등 그야말로 뜨겁다. 분노와 비판의 정점은 권영길 대표다. 진보진영이 올 12월 대선을 어떻게 치를 것인지 고뇌하는 중심부에 권영길 대표가 서 있기 때문이다. 97년 대선 직전 출범한 국민승리21의 성과를 계승한 민노당은 현재 진보진영 안에서 최대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전국 94개 지구당, 달마다 당비를 내는 당원만 3만명. 60만 조합원을 확보한 민주노총은 조직적으로 지원에 나섰고, 일부 빈민단체도 힘을 보탠다. 진보정당 시기상조론을 역설한 전국연합 하부조직들도 최근 합류했다. 고민은 급성장한 민노당 대선후보의 경쟁력이다. 민노당과 진보진영 일각에서 이른바 ‘권영길 한계론’이 계속 제기됐다. 97년 국민승리21 후보로 대선에 출마해 신통찮은 득표력을 드러냈고, 각종 현안에 대해서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임박한 12월 대선은 이런 고민을 한층 높였다. 권 대표가 이념과 노선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는 진보진영을 한데 어우르고, 유권자의 폭넓은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냐는 의문으로까지 연장된 것이다. 민노당 안에서는 이미 지난해 여름부터 미국식 예비경선제 등 여러 보완책이 제안됐다. 진보진영은 물론 국민 다수가 참여하는 자유경선을 통해 지도력과 카리스마가 있는 후보를 내세우자는 것이었다. 민주당이 흥행시킨 국민경선제가 좀더 일찍 논의된 셈이다. 그러나 민노당의 정체성 혼돈을 우려하는 반론이 제기됐고, 결론 없이 표류했다. 그러나 대선이 다가오면서 논쟁은 다시 불붙었고, 범진보진영 단일후보 선출론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민노당이 노동자·농민·서민의 정당을 표방하는 만큼 한국노총·전국농민회 등 이념과 노선이 조금씩 다른 진보진영에도 문을 열어놔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당·녹색평화당 등 다른 정당이 동참하고, 참여연대나 경실련 등 시민단체의 지지까지 확보하면 민노당 후보의 경쟁력은 한층 강화된다고 판단했다. 범추 경선 전 민노당 경선이 옳은가
결실을 맺는 듯했다. 지난 7월16일 민노당·민노총·한국노총·전국연합·전국농민회·교수노조 등 14개 단체 대표자들이 원칙에 합의한 것이다. 8월 말까지 ‘2002년 대선승리와 진보진영의 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범국민추진기구’(범추)를 만든 뒤 경선을 통해 단일후보를 선출하기로 사실상 의견을 모았다. 바로 이때, 권 대표를 중심으로 한 민노당 지도부가 민노당 독자후보 경선을 거친 뒤 범진보진영 예비경선에 동참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권 대표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창당 이후 지금까지 매달 당비를 내고 어려울 때 당을 지켜온 당원들이 ‘범추 경선에서 투표나 하자는 것이냐’고 반발했고, 당원의 소중한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절충했다”고 말했다. 진보정당의 생명인 정체성 논란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으면서, 진보진영 통합이란 대의명분도 살리는 묘책이라는 것이다.
과연 묘책인가.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오히려 “민노당 패권주의”, “권영길 옹립론”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당 지도부의 단독경선 움직임이 감지된 7월20일, 오종렬 전국연합 의장 등은 권영길 추대식을 중지하라며 항의성명까지 냈다. 막강한 민노당이 후보를 확정한 뒤 치를 범진보진영 경선은 사실상 요식행위라는 것이다. 민노당 지도부는 멈추지 않았다. 8월26일부터 당원 총투표 형식의 내부 경선을 시작해 9월8일 대선후보를 확정하기로 했다.
후유증도 적지 않다. 전국연합과 전국농민회 지도부는 8월9일 후보경선 동참을 선언하려던 계획을 백지화했다. 범추 실무자 모임도 사실상 중단됐다. 민노당 서울지역 한 지구당 위원장은 “진보진영의 각 계파들이 후보를 내고, 다양한 주장을 펼치며 수십만명이 참여하는 경선을 통해 진보진영 대선후보의 경쟁력을 높일 절호의 기회를 사실상 포기했다. 너무 서둘다 보니 민노당 내부 경선조차 불가능해졌다”고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언론이 보수정당 후보에만 관심을 집중하자 조급증을 느낀 당 지도부가 민노당 후보 조기 가시화로 논의를 몰고갔다”는 주장까지 덧붙였다.
실제 민노당은 당내 경선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 당 안에서는 6·13 지방선거에서 높은 득표력을 보여준 김석준 부산시장 후보와 여성 당대회 부의장을 지낸 심상정씨가 경선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들은 권 대표와의 대결을 포기했다. 사실상 권 대표 후보추대식으로 결정나면서 당원들의 관심도 식었다. 권 대표 스스로 “당원들 사이에 ‘뭐 뻔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 투표율을 높이는 게 급선무지만…. 솔직히 쉽지 않다”고 현실을 인정했다.
단독경선 하지 않았더라면…
권 대표를 비롯한 민노당 지도부는 아직 상황을 낙관한다. 9월8일 민노당 대선후보가 된 뒤 범진보진영 경선을 위해 발벗고 나서면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특히 오종렬 전국연합 의장 등이 예비경선에 동참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민노당 내 좌파성향이 강한 노동자 조직인 평등연대에서도 독자후보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 결국 범진보진영 경선판이 벌어지고, 진보진영의 힘은 하나로 결집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아직 고심 중이다. 정윤광 평등연대 대표(민노당 노원을 지구당 위원장)는 “당 지도부가 단독경선을 고집하지 않고 문을 열어놨다면 여러 진보진영 후보가 진검승부를 펼치는 축제가 벌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민노당이 권 대표를 대선후보로 확정한 상황에서 경선이 무슨 실익이 있는지 의문이다. 고민만 할 뿐 뚜렷한 결론은 못 내리고 있다”고 전했다.
권영길 대표쪽도 다양한 상황을 상정하고 있다. 9월 말 독자신당 창당을 목표로 뛰고 있는 한국노총과 합당해 한국노총 대선후보와 권 대표 간 경선도 구상하고 있다. 민노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한국노총은 박인상 전 위원장을 대선후보로 내놓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실화하면 우리와 공개 경선하는 문제까지 한국노총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노총이 창당에 성공할지, 민노당과 어떤 관계를 설정할지, 박인상 전 위원장이 민주당 전국구 의원직을 내던지고 경선에 나설지 걸림돌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권 대표는 “진보진영 경선이 무산될 경우 공동선거대책본부가 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최악의 상황이 올지라도 대선에 출마해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번 감정이 상한 진보진영 내부에서 힘을 제대로 모아줄지 의문이다.
권 대표는 지방선거에서 민노당이 확인한 8.1%의 득표력과 5%를 넘어선 개인 지지율을 앞세워 일단 진보진영 내부에서 대선후보 지위를 선점했다. 그러나 그 승부수가 권 대표의 권위와 경쟁력을 더 약화시키는 부메랑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사진/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권영길 대표. 진보진영 일간에서는 '권영길 옹립론'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정용 기자)
권영길 후보가 9월8일 열릴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선출대회에 출마한 뒤 민노당 홈페이지(www.kdlp.org)에는 이런 엇갈린 비판이 잇달아 올라온다. 민노당이 독자후보 선출대회를 강행하는 데 대한 분노, 후보 선출 뒤 다시 범진보진영 단일후보 경선을 치르겠다는 권 대표의 방침에 대한 찬반 논란 등 그야말로 뜨겁다. 분노와 비판의 정점은 권영길 대표다. 진보진영이 올 12월 대선을 어떻게 치를 것인지 고뇌하는 중심부에 권영길 대표가 서 있기 때문이다. 97년 대선 직전 출범한 국민승리21의 성과를 계승한 민노당은 현재 진보진영 안에서 최대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전국 94개 지구당, 달마다 당비를 내는 당원만 3만명. 60만 조합원을 확보한 민주노총은 조직적으로 지원에 나섰고, 일부 빈민단체도 힘을 보탠다. 진보정당 시기상조론을 역설한 전국연합 하부조직들도 최근 합류했다. 고민은 급성장한 민노당 대선후보의 경쟁력이다. 민노당과 진보진영 일각에서 이른바 ‘권영길 한계론’이 계속 제기됐다. 97년 국민승리21 후보로 대선에 출마해 신통찮은 득표력을 드러냈고, 각종 현안에 대해서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임박한 12월 대선은 이런 고민을 한층 높였다. 권 대표가 이념과 노선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는 진보진영을 한데 어우르고, 유권자의 폭넓은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냐는 의문으로까지 연장된 것이다. 민노당 안에서는 이미 지난해 여름부터 미국식 예비경선제 등 여러 보완책이 제안됐다. 진보진영은 물론 국민 다수가 참여하는 자유경선을 통해 지도력과 카리스마가 있는 후보를 내세우자는 것이었다. 민주당이 흥행시킨 국민경선제가 좀더 일찍 논의된 셈이다. 그러나 민노당의 정체성 혼돈을 우려하는 반론이 제기됐고, 결론 없이 표류했다. 그러나 대선이 다가오면서 논쟁은 다시 불붙었고, 범진보진영 단일후보 선출론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민노당이 노동자·농민·서민의 정당을 표방하는 만큼 한국노총·전국농민회 등 이념과 노선이 조금씩 다른 진보진영에도 문을 열어놔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당·녹색평화당 등 다른 정당이 동참하고, 참여연대나 경실련 등 시민단체의 지지까지 확보하면 민노당 후보의 경쟁력은 한층 강화된다고 판단했다. 범추 경선 전 민노당 경선이 옳은가

사진/ 서울지역 단위노조간부 합동수련회에 강사로 초청된 권영길 대표. 대선에 대한 민노당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이정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