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범진보진영 경선을 시작하자

424
등록 : 2002-08-28 00:00 수정 :

크게 작게

민노당 후보선출대회 앞둔 권영길 대표의 출사표…2004년 총선의 중심부대 만들 것

사진/ (이정용 기자)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는 큰 압박을 느끼는 듯했다. 12월 대선에서 민노당이 6·13 지방선거 때 얻은 8·1%의 득표 성과를 지켜내고, 진보진영의 통합도 이뤄내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9월8일 민노당 후보선출대회를 강행하는 것을 놓고 진보진영 안에서 비판적인 목소리가 적지 않다. 당 안에서는 여전히 그의 경쟁력에 의문부호를 찍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8월23일 밤, 여의도 당사에서 만난 그는 자신을 향한 비판과 의문에 진솔하게 답했다. 그는 “진보진영 대선 후보가 누구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며 “민노당 후보로 확정된 뒤 범진보진영 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을 위해 발벗고 뛸 것이며, 이 경선을 통해 진보진영을 하나로 묶어내고 다시 한번 검증받겠다”고 약속했다.

1인 보스체제 고쳐 나가겠다


권 대표가 대선에 출마해 지방선거 때 민노당이 얻는 8·1%의 득표 성과를 지켜낼 수 있을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때 이회창 대세론은 무너질 수 없는 것이라고 인식했다. 그것이 꺾이고 노무현 바람이 일었을 때도 워낙 광풍이라 대선 때까지 갈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제 정풍이 분다. 나는 진보정당 후보기 때문에 결코 지지율 4%를 넘을 수 없을 것이라고들 얘기했다. 그런데 각종 여론조사에서 그 기준을 넘어섰다. 이미 예상과는 다르게 가고 있다. 97년 대선 때 권영길의 최대 약점, 민노당 후보의 최대 약점은 사표심리다. 찍고 싶어도 의미 없는 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6·13 이후 비록 당선 안 돼도 의미 있는 표라고 인식하는 유권자가 늘고 있다. 97년 대선 때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득표를 할 자신이 있고, 현재 그런 조짐들이 보인다.

97년 대선에 출마해 신통찮게 득표했고…. 신선도도 좀 떨어지는 것 아닌가.

진보진영 안에서는 그렇게 볼 수 있다. 권영길 이름만 머리 속에 박혀 있어 자연히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일반 유권자들은 권영길을 너무 모른다. 97년 대선 때는 권영길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투표했다. 지금 국민에게 물어봐라. 내가 97년 대선에 나온 사람인 줄도 모른다.

그만큼 아직 인지도가 낮다는 것인데, 어떻게 경쟁력을 확보할 것인가.

‘국민승리21’은 진보진영 내 모든 조직이 결집했지만 97년 대선을 위해 급조된 것이었다. 선거기조를 놓고 투표가 끝나는 시점까지 논쟁하며 시간을 다 보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민노당은 창당 2년 동안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고 국민에게 깊은 인상도 심어줬다. 당비를 내는 당원만 3만명이 넘어섰다. 이 성과가 대선으로 이어질 것이다.

민노당 내부에는 ‘권영길 추대론’만 있고, 권 대표에 대한 직접적 비판은 금기대상이 된다는 지적도 있는데.

금기는 아닌데…. 그런 게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민노당과 진보진영 내부 역량을 한데 모으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 아닌가.

솔직히… 그런 면이 있다. 단독후보다 보니 당내에 후보 선출을 위한 바람이 강하지 못하다. “어차피 권영길이 될 텐데”라고 생각해 당원들의 열기가 높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후보선출대회가 끝나고 후보로 최종 확정되면 달라질 것이다.

후보보다 중요한 건 진보의 연대

1인보스 체제를 비판하면서 민노당 안에도 1인보스 체제 비슷한 게 구축됐다는 비판도 있는데.

(그는 아주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음…. 그렇게 지적하는 부분…. 민노당 내부로만 본다면 겸허히 수용하겠다. 후보 선출 과정을 통해서라도 그 구조를 바꾸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렇게 비판하는 당원들에게 분명하고 명확한 답을 던져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 정치판 기준으로 본다면 전혀 성립될 수 없는 견해다. 보수 정치판은 당내 민주주의도 없고, 당원 참여 정당도 아니다. 민노당이 당원의 참여 속에서 유지되는 정당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정책중심 정당을 표방해온 민노당이 권영길 한 인물에 그렇게 집착하는 이유가 뭔가.

민노당이 민주노총당, 노동자들만의 정당은 아니지만 그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자연스레 초대 민노총 위원장인 권영길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제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닌가.

이후에 달라질 수밖에 없고, 달라져야 한다. 앞으로 인물이 아닌 정책중심, 어떤 사람도 대표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당이 되리라고 본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나에게 과도하게 집중됐다.

그것은 인정하는 것인가.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나. 지도부의 의지 부족이 아니라 그것은 현실이다.

민노당 후보 경선에 단독 출마한 데 따른 한계도 적지 않은데. 다른 후보가 경쟁에 나올 수 있도록 좀더 기다렸어야 하는 것 아닌가. 보수정당의 후보가 정해지고 언론이 그쪽에만 집중하니까 민노당 지도부가 조급증에 빠져 후보선출대회를 강행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런 지적이 일각에 있다. 범추(범진보진영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전국민 추진기구)에 참여한 단체들도 강하게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민노당이 당내 후보를 결정하는 것은 범진보진영 예비 경선을 배제하거나 도외시하는 게 아니다. 범진보진영 강화를 위해서는 범추 단위에서 한번에 후보를 선출하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민노당 당원들, 창당 이후 지금까지 매달 당비 내고, 가장 어려울 때 당을 키웠는데…. 이 열성적인 당원들이 “그럼 우린 뭐냐”, “그냥 범추 경선에서 투표나 하자는 것이냐”고 불만을 표출한다. 민노당의 정체성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이런 당원의 목소리도 소중하게 담아내야 한다. 그래서 절충한 것이다.

나도 알고 있다. “들러리 서라는 말이냐”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보수정치와 우린 다르다. 후보가 누구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진보진영 안에는 여러 노선이 있고, 단일화 논의 과정에서 이런 차이를 긍정적으로 모아낼 수 있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단일후보를 옹립하지는 못해도 분명한 색깔, 한 노선으로 정리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진보진영 안에는 올 대선 때도 갈라서면 영영 그 차이를 묶어내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있다. 의외로 진보진영 내부 경선이 될 수 있다. 더 노력하면 당내 후보 선출 뒤 범추 경선을 통해 힘을 더 모을 수 있다고 본다.

사회당과의 통합 진전 있다

다른 후보들이 과연 경쟁에 나오려 할까.

소강상태에 있던 범추 공동실무단이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범추 발족에 참여한 민노총, 전국연합, 전국농민회, 민노당 대표들이 최근 모여 8월 말까지 범추 활동을 재개하자고 합의했다. 여기서 예비선거가 치러질 수 있는지 없는지를 논의할 것이다. 아직 민노당 권영길 외에 나올 사람이 없다고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만약 범추 경선에 다른 후보가 안 나오고 경선이 무산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진보진영 공동선거대책위로 발전돼야 한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다.

진보진영 경선을 위해 민노당 후보의 기득권을 포기할 생각은 없나.

당내 후보 확정을 위한 선출대회를 앞둔 현 시점에서 당 대표인 내가 그런 얘기를 할 때는 아니다. 그러나 후보 확정 뒤 당 안에서 민노당 후보가 어떤 조건으로 경선에 참여할지,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 논의하고 조정할 것이다.

사회당 김영규 대표는 최근 “민노당은 보수 제3 정당”이라며 올 대선에 독자후보를 내겠다고 말했다.

당원의 수, 현실적 힘에 관계없이 사회당과 민노당 통합은 아주 중요하다. “얼마 되지 않는 진보진영, 그 안에서 뭐 또 갈리냐”고 비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회당과 당 대 당 통합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까지 비관적 견해가 지배적이었지만, 최근 급변하고 있다. 김영규 대표가 8월21일 민노총 지도부와 만나 당 대 당 통합에 대해 아주 긍정적인 의지를 밝혔다. 사회당 안에서 곧 논의할 것이다. 의외로 좋은 결과가 있을 수도 있다.

솔직히 올 대선 목표치가 뭔지 알고 싶다.

그 질문을 회피하려는 답변이 아니라, 난 실제로 진보진영 후보는 표 수로 목표를 세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 대선기획단은 수치로 목표를 세운다. 그러나 난 그 수치를 얘기하지 않겠다. 민노당 후보가 올 대선에서 할 일은 2004년 총선에 열정적으로 뛸 중심부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권영길이 표를 많이 받지 못해도, 구성원들이 그런 합의를 이끌어내고 열심히 뛰어 중심부대만 형성하면 2004년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내가 놀랄 만큼 많은 표를 얻었다 해도 중심부대가 형성되지 못하면 그것은 실패한 선거다. 그런 성과는 2개월만 지나면 다 없어진다. 흘러가는 표에 불과하다. 현재 3만 당원이 정말 발벗고 뛰어도…. 그것 가지고는 부족하다. 올 대선에서 이보다 더 큰 부대를 형성해야만 한다. 이게 목표다. 표를 더 많이 얻기 위해 분명한 제 색깔을 내지 못하고, 열성 운동원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실패한 선거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