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신당론의 태풍 속으로…노무현·한화갑·이인제의 마음 속엔 무엇이 있을까
“신당론은 UFO(미확인비행물체)다” 민주당에서 신당론이 불거져나오자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유종필 공보특보는 신당론의 정체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런데 그 유령 같은 존재가 지금 민주당을 난리통으로 몰아가고 있다.
불은 한화갑 대표가 지폈다. 한 대표는 7월30일 8·8 재보선 뒤 ‘헤쳐모여식 신당’을 창당해 대통령 후보를 다시 선출하자는, 이른바 ‘백지 신당론’을 들고 나왔다. 한 대표는 노 후보와 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지만, 엄밀히 말하면 둘 사이의 묵계가 깨진 것이다.
한화갑 대표가 먼저 치고나간 이유
한 대표가 노 후보에게 처음으로 말을 꺼낸 것은 7월19일 정례회동 때라는 것이 정설이다. 한 대표는 “후보와 대표 둘 다 기득권을 포기하고 신당을 만들어 새 출발하자”고 제의했고, 노 후보는 “신당 창당이라는 형식으로 재경선을 치르는 데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단지 재보선에 악영향을 줄 수 있으니, 선거가 끝난 뒤 얘기하자”고 답했다고 한다. 합의를 보는 데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날 저녁 둘만이 나눈 얘기가 한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흘러나오자 한 대표는 “노 후보가 나를 믿지 못하는 모양이구먼…”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특히 그는 “집단지도체제를 단일지도체제로 바꿨으면 좋겠다”고 한 말까지 보도된 것을 뼈아파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열흘 뒤, 한 대표는 문제의 신당론을 공개적으로 들고 나왔다. 이번에는 노 후보쪽에서 배신감을 토로했다. 측근 의원은 “처음 소식을 듣고 ‘한화갑이 사고쳤구나’라는 생각과 ‘분당이구나’라는 생각이 교차했다. 서로 생각하는 그림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이인제한테 멍석만 깔아준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왜 서둘렀을까? “노 후보쪽에서 8월 말 선대위 체제로의 전환이니, 개혁신당이니 하면서 분위기를 몰아가는 상황이어서 방향을 틀 필요가 있었다”고 한 측근은 설명했다. 또한 “재보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서…”라는 변명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신당 창당의 주도권을 선점하겠다는 의지가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 대표는 신당론을 놓고 100명에 가까운 의원들과 접촉했으며, 이 과정에서 자신의 입지를 넓혀갔다. 특히 한광옥·정균환 최고위원과 김옥두 의원 등 서먹서먹한 관계였던 옛 동교동계 동지들과 폭넓게 만나 “옛날로 돌아가 단결하자”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어차피 재보선 뒤 친노파와 반노파 사이에 끼어 압살당하느니, 차라리 먼저 치고 나가자는 심정이었을 것”이라는 게 한 측근 의원의 해석이다. 여기에 둘 사이의 인간관계도 배경으로 깔렸다. 한 대표는 한때 노 후보를 모시기로 작정했다고 한다. 8살 아래인 노 후보에게 공개석상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귀엣말로 보고하는 모습을 서슴지 않고 내보였다. 한 대표의 부인도 불교행사 등 가는 곳마다 침이 마르도록 노 후보를 칭찬하고는 했다. 그러나 그 신뢰관계는 점차 엷어져갔다. 최근 한 대표는 사석에서 △지식인 계층에서의 지지도 약화 △영남득표력을 입증하지 못한 점 △대통령 후보로서 자금동원력 등을 노 후보의 ‘3대 약점’으로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중심의 창당 가능할까
하지만 한 대표는 자신의 ‘백지 신당론’이 ‘반노’로 비치는 데 대해서는 심적 부담감이 대단히 큰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한 대표는 주변 사람들에게 “노무현 후보를 교체하자는 게 아니라, 당내 분란을 해결하면서 노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높이는 쪽으로 가자는 얘기다. 애초 후보 교체가 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당내 비주류가 8·8 재보선 뒤 반발할 것이 확실하니, 이를 신당의 형태로 흡수하지 않고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내가 노 후보쪽에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 밖으로 알려지면, 외부에서 사람이 들어오겠느냐?”고 항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이른바 ‘노-한 사전 밀약설’이 나오기도 했다.
한 대표의 진의를 확인할 길은 없다. 일단 철저한 ‘등거리 외교’를 펼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측근들은 “신당 경선에서 노 후보가 이기면 노 후보를 밀고, 안 되면 어쩔 수 없고…”라고 말한다. “이기는 편이 우리 편”이라는 식이다.
노 후보는 한 대표의 이런 ‘실리 전략’으로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됐다. 좀더 심하게 표현하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이기도 하다.
노 후보는 애초 나름대로의 구상이 있었다. 일종의 민주당 확대·재편론이다. 민주당을 토대로 개혁성향의 전문가, 소장학자, 영남권의 시민운동가 등을 끌어들여 노무현 색채에 맞는 당을 만들자는 전략이었다. 직접 만나기도 하고, 유아무개씨 등 대리인을 내세우기도 했다. 적잖은 성과도 거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측근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은 옛날에 재야를 수혈하면서 면모를 바꾸는 수법을 썼다. 그런데 지금은 재야가 바닥나 이제는 없겠지 했는데, 알고 보니 그 정도 수준은 가능하더라”고 말했다. 또 이런 구상은 당헌·당규상 규정된 선대위를 8월 말쯤 구성해, 노 후보가 인사·재정 권한을 독점적으로 확보한 뒤 추진하겠다는 일정과도 맞물려 있었다.
노 후보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신당에 참여할 경우 후보직이 자동으로 소멸된다는 점이다. 한 측근 의원은 “우리로서는 가장 두려운게 신당이다. 신당이면 모든 기득권을 버려야 하고, 당은 카오스 상태가 된다. 노무현은 용도폐기될 수 있다. 그렇다고 저항하면 자칫 기득권에 연연한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노 후보 진영에서는 한 대표의 신당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자는 의견이 주류를 형성해나가는 분위기다. 강하게 반발했던 의원들도 심리적 거부감이 많이 약화됐다. 한 대표의 측근인 배기선 기조위원장의 설득이 주효했다는 전언이다.
노 후보 주변 신당론자들의 말은 이렇다. “기존 후보의 지위를 고집하면 후보의 지위는 안정될지 모르지만, 본선 경쟁력은 약화된다. 노무현다운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신당론을 방어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적극적으로 위기를 타고 넘어야 한다.”(재선의원) “노무현은 여전히 담백하다. 민주당을 위해 후보직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태도다. 대선을 위해, 민주당의 재집권을 위해 신당 창당이 진행된다면 신당에 참여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초선의원)
노 후보와 동지적 관계인 김근태 의원도 “신당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신당이 불가피하다면 적극적으로 해나가야 한다”고 가담했다. 노 후보 자신도 최근 가까운 의원들에게 “후보의 기득권을 버리고 신당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인제 '선 민주당 해산 후 신당 창당'
그러나 노 후보쪽은 당내에서 많이 얘기되는 ‘반창 연대’나 민주당·자민련·민국당·미래연합·정몽준 의원 등 5자 연대 방식 등으로 신당이 성립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한 의원은 “결국 의미 있는 후보는 정몽준 의원 정도인데, 정 의원도 결국 밥상 다 차려놓으면 숟가락만 들겠다는 계산 아니냐. 또 당내 상당수 의원과 지구당 위원장들이 도와주겠다고 적극적으로 달라붙지 않는 한 결코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이한동 전 총리 정도로는 재경선의 의미가 살아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신당 창당 과정에 노 후보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개입해 자신이 뜻하는 방향으로 신당을 만들어나갈 것이라는 게 측근 의원들의 얘기다. 또 노 후보는 신당 논의로 한정 없이 시간을 끄는 상황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노 후보는 이미 “8월 말까지는 도전자와 경선의 룰 등이 정해져야 한다”고 못을 박았고, 문희상 대선기획단장은 “9월21일 추석 전까지는 신당의 후보가 결정돼야 한다. 10월을 넘기면 지지도의 변화가 1∼2%를 오르락내리락할 뿐, 굳어져버린다”고 시한을 못박았다.
하지만 반노 진영은 결코 노무현식 신당 창당을 방관하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 중심에 이인제 의원이 있다. 이 의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에서 짐을 싸는 것으로 비쳐졌다. 서해교전 직후 사실상 햇볕정책 폐기를 주장했고, 국회 대정부 질문을 통해서는 김대중 대통령을 ‘실패한 대통령’으로 규정했다. 김종필·정몽준·박근혜 의원 등과의 ‘4자 연대’ 내지 ‘중부권 신당’을 염두에 두고 탈당 수순을 밟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었다. 그러던 그가 7월 말께 한 대표를 만나 신당론 구상 설명을 들은 직후부터 민주당 잔류쪽으로 궤도를 튼 것으로 보인다. 또 이 의원은 어느 최고위원으로부터 “8·8 재보선 다음날 열리는 최고위원회의에 신당 창당 결의안이 제출될 것이며, 현재로는 반대하는 사람이 신기남·추미애 최고위원 정도밖에 없으니 통과될 것”이라는 고무적인 소식도 전해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구상하는 신당 추진경로는 노 후보의 방식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는 최근 “집을 지으려면 우선 다이너마이트로 기존 장애물을 폭파해 평지를 만드는 것이 원칙”이라고 ‘선 민주당 해산 후 신당 창당’을 주장했다. 그는 또 “전국구 의원의 경우 법으로는 합당의 경우에만 의원직이 승계되도록 돼 있으나, 당이 해산해버리는 경우도 의원직은 유지된다. 나중에 신당에 다시 합류하면 된다”고 말해 상당히 깊숙한 부분까지 구상을 구체화한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노무현 무력화 전략이다. 이는 민주당 해체와 신당 창당을 동시에 하려는 노 후보나 한 대표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이어서 한판 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8월9일, 대격돌의 시작?
그렇다면 이 의원은 이 싸움에서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최근 그의 말을 뜯어보면 정몽준·박근혜 의원 등 외부인사를 영입해 ‘킹메이커’가 되는 쪽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는 최근 정 의원의 지지도 상승에 대해 “언론이 자꾸 바람을 넣어주니까 부풀어오르는 거지”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바 있다. 또 ‘영입에 나설 것이냐’는 질문에는 “지금은 사람을 놓고 생각할 때가 아니라, 우선 새집을 크게 짓는 데 주력할 때”라고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그는 직접 후보경선에 나설지 여부에 대해 “나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지금 나는 겨울이고 밤이니 다시 봄과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오히려 직접 뛰겠다는 쪽과 가까운 것이다. 이와 관련해 그의 한 측근은 “요행히 천운이 닿아 길이 열린다면 모를까, 지금은 분명 마음을 비운 상태”라고 말했다. 마음을 비웠다는 증거는 아마 5단이라는 그의 바둑 스타일에도 간접적으로 투영되고 있다. 그는 경선 전까지만 해도 오로지 대마사냥에만 승패를 걸며 급박하게 판을 짜갔으나, 최근에는 유장하게 참고 기다릴 줄 아는 바둑으로 변했다. 이 때문인지 그의 바둑 승률은 급상승 중이다. 이 의원 스스로도 “요즘 다들 내 앞에서 쩔쩔매”라고 즐거워하며 “마음을 비웠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이 의원이 자신의 말대로 비운 채로 심리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의 정국변화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어 좀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어쨌든 8월9일 열리는 민주당 최고위원회의는 재보선 결과가 회의석상에 올라오는 날이자 신당 논의가 본격화되는 날이다. 이후 신당 창당 여부와 그 방향을 놓고 민주당 내 각 계파는 대회전을 벌일 것이 확실하다. 민주당은 지난해 10월 재보선 패배 뒤에는 국민경선제라는 돌파구를 마련해 ‘노풍’을 일으키는 등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도 그런 반전이 가능할지, 아니면 내부 붕괴의 길로 들어설지 민주당은 기로에 서 있다. 그리고 다음에는 기회가 결코 다시 한번 주어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김의겸 기자/ 한겨레 정치부 kyummy@hani.co.kr

사진/ 신당 창당을 둘러싼 노무현·한화갑·이인제·정몽준 등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 8월9일 열리는 민주당 최고회의에서 신당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정용 기자)
한 대표가 노 후보에게 처음으로 말을 꺼낸 것은 7월19일 정례회동 때라는 것이 정설이다. 한 대표는 “후보와 대표 둘 다 기득권을 포기하고 신당을 만들어 새 출발하자”고 제의했고, 노 후보는 “신당 창당이라는 형식으로 재경선을 치르는 데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단지 재보선에 악영향을 줄 수 있으니, 선거가 끝난 뒤 얘기하자”고 답했다고 한다. 합의를 보는 데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날 저녁 둘만이 나눈 얘기가 한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흘러나오자 한 대표는 “노 후보가 나를 믿지 못하는 모양이구먼…”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특히 그는 “집단지도체제를 단일지도체제로 바꿨으면 좋겠다”고 한 말까지 보도된 것을 뼈아파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열흘 뒤, 한 대표는 문제의 신당론을 공개적으로 들고 나왔다. 이번에는 노 후보쪽에서 배신감을 토로했다. 측근 의원은 “처음 소식을 듣고 ‘한화갑이 사고쳤구나’라는 생각과 ‘분당이구나’라는 생각이 교차했다. 서로 생각하는 그림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이인제한테 멍석만 깔아준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왜 서둘렀을까? “노 후보쪽에서 8월 말 선대위 체제로의 전환이니, 개혁신당이니 하면서 분위기를 몰아가는 상황이어서 방향을 틀 필요가 있었다”고 한 측근은 설명했다. 또한 “재보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서…”라는 변명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신당 창당의 주도권을 선점하겠다는 의지가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 대표는 신당론을 놓고 100명에 가까운 의원들과 접촉했으며, 이 과정에서 자신의 입지를 넓혀갔다. 특히 한광옥·정균환 최고위원과 김옥두 의원 등 서먹서먹한 관계였던 옛 동교동계 동지들과 폭넓게 만나 “옛날로 돌아가 단결하자”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어차피 재보선 뒤 친노파와 반노파 사이에 끼어 압살당하느니, 차라리 먼저 치고 나가자는 심정이었을 것”이라는 게 한 측근 의원의 해석이다. 여기에 둘 사이의 인간관계도 배경으로 깔렸다. 한 대표는 한때 노 후보를 모시기로 작정했다고 한다. 8살 아래인 노 후보에게 공개석상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귀엣말로 보고하는 모습을 서슴지 않고 내보였다. 한 대표의 부인도 불교행사 등 가는 곳마다 침이 마르도록 노 후보를 칭찬하고는 했다. 그러나 그 신뢰관계는 점차 엷어져갔다. 최근 한 대표는 사석에서 △지식인 계층에서의 지지도 약화 △영남득표력을 입증하지 못한 점 △대통령 후보로서 자금동원력 등을 노 후보의 ‘3대 약점’으로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중심의 창당 가능할까

사진/ 8월1일 열린 한화갑 대표와 노무현 후보의 주례 조찬회동. 한대표와 노 후보는 일단 논의를 재보선 이후로 미뤘다. (이정용 기자)

사진/ 민주당의 개혁의원모임 소속 의원들. 신당 창당과정에서 노 후보에게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정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