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 당직 꿰 차고 당내 민주화 대신 부패정권 심판에 앞장선 미래연대
“국가보안법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민주인사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됐다. 고문과 조작으로 신뢰를 잃은 국보법은 폐지해야 한다.” “KAL기 납북자 등의 문제를 비전향 장기수 북송과 연계하자는 주장은 통일의지는 없고 점령의지만 있다는 것을 뜻한다.”
2000년 7월6일, 한나라당 안영근 의원은 이회창 당시 총재 등 당 지도부가 줄줄이 앉아 있는 ‘의원 연찬 토론회’에서 당론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좌중의 반응은 싸늘했지만, 안 의원은 내처 방북신청까지 하겠다고 발표했다.
친위부대의 본색?
그로부터 정확히 2년이 흐른 2002년 7월24일, 안 의원은 말했다. 이번에는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의 자리였다. “김대중 대통령과 민주당 정권은 궁색한 변명과 중상모략으로 국민을 우롱하지 말고 즉각 특검제와 국정조사 청문회를 수용해야 한다.” “대통령 아들 신분을 이용해 권력기관에까지 압력을 행사한 것은 엄연한 국정개입이요, 국기 문란범죄다.” 안 의원의 화살이 정권과 민주당을 향해 날아가자, 이를 지켜보던 한나라당 의원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이회창 대통령 후보는 직접 안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수고했다는 격려인사까지 건넸다.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의 모임인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이하 미래연대)가 어떤 궤적을 그리며 변화해 왔는지를 이처럼 극명하게 보여주는 풍경은 없다. 민중당 정책위원과 환경운동가 출신인 안 의원의 오늘은 미래연대라는 정치집단의 현주소를 웅변하고 있다. 미래연대 내부에서도 ‘중도그룹’으로 분류되는 안 의원은 당내 주류와 싸운 초년 시절을 거쳐, 이제 민주당과의 쟁투에 앞장선 야전장교가 됐다. 미래연대 소속 다른 의원들의 사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난 3월까지만 해도 공공연히 당 주류에 불만을 제기했던 미래연대 의원들은 6·13 지방선거 이후 단행된 당직개편과 함께 각종 핵심 요직에 둥지를 틀었다. 부총무를 맡은 안영근 의원을 비롯해 김부겸(대외협력위원장), 심재철(제3정책조정위원장), 박종희(대표 비서실장) 의원 등이 새로 당직을 맡았고, 김영춘 의원은 대선 기획단에서 청년정책을 담당하며 이회창 후보의 ‘브레인’ 조직에 발을 담갔다. 미래연대 ‘우파’로 꼽히는 정병국(대통령 후보 비서실 차장), 남경필(대변인), 임태희(제2정책조정위원장) 의원 등은 당직개편 이후에도 이회창 후보와 지근거리를 지키며 건재를 과시했다. 공동대표인 오세훈·이성헌 의원이 당직을 받지 못했지만, 이는 ‘모임의 대표는 당직을 겸할 수 없다’는 내부 규정에 따른 것으로, 사실상 거의 모든 회원들이 ‘한자리씩’ 꿰찬 셈이다. “이회창의 친위부대가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다”는 뼈있는 말이 당 안팎에 나도는 것도 이들의 ‘전진배치’와 무관하지 않다. ‘1인지배체제’를 비판하며 당내 민주화를 강조하고, 각종 개혁입법에 주도적이던 이들이 어느 순간 일사불란하게 이회창 후보의 주변에 포진된 형국이 됐기 때문이다. “원래 정치지향으로 뭉치지 않았다”
“알다시피 그건 물정 모르는 사람들 이야기죠. 원래부터 미래연대는 그런 조직이 아니잖아요. 솔직히 우리 회원들 면면도 그렇고….” 미래연대 회원인 한 수도권 출신 초선의원의 말이다. 최근의 ‘신상 변화’에 대한 우려를 전하자, 그는 “미래연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오해”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가 보기에는 미래연대를 개혁성향 의원들의 모임으로 정의내리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실제로 미래연대는 재야의 추억을 간직한 정치인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결사체라기보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느슨한 회합에 가깝다. 미래연대가 만들어진 것은 16대 총선을 앞둔 지난 99년 9월. 당시 김영선·남경필 의원과 김부겸·원희룡·오세훈 등 원외지구당 위원장이 공동대표를 맡았다. 창립을 주도한 김영선 의원은 “민주당의 젊은 정치세력에 맞서고, 우리 당의 취약점인 20∼30대 층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프로젝트 그룹’의 성격이 강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16대 총선에서 당선된 몇몇 한나라당 초선의원들은 마지막까지도 민주당의 ‘러브콜’을 받다가, 미래연대라는 지붕에 이끌려 막판에 한나라당에 둥지를 틀기도 했다. 당연히 개별 의원들의 ‘정치지향’보다는 연령 중심으로 모임이 만들어졌다. 학생운동권 출신부터 율사 출신에 이르기까지 ‘좌파’, ‘우파’, ‘중도파’로 분류되는 각양각색의 의원들이 미래연대를 구성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올해 초부터 한나라당을 뜨겁게 달군 이른바 ‘정풍운동’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미래연대 소속의 한 원외지구당 의원장은 “각자의 출신이나 지향과 관계없이 우리가 발딛고 선 지지기반이 개혁성향을 부추기고, 우리를 보호하고 있는 거대 정당의 그늘이 그 예각을 무디게 하고 있다”고 말한다. 미래연대 소속 현역 의원 18명 가운데 14명은 서울·경기 등 수도권 출신이다. 30대 중반부터 40대 초반의 이들을 국회로 보내준 유권자들은 한나라당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영남 정서’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의원들 스스로도 87년 6월항쟁 등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고, 97년 대선에서 실패한 한나라당의 좌절을 각인한 상태에서 정치에 입문했다.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을 거치며 당료와 각료를 오가고 안정적으로 공천을 따내며 ‘양지’만 쫓아다닌 대부분의 중진 의원들과 비교할 때, 정치에 대한 이들의 ‘인지구조’가 다른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한 의원은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가 좋아서라기보다 DJ가 너무 싫어서 여기에 왔지만, 그렇다고 이 후보에게 끌려다닐 수만은 없는 사람들이 미래연대 회원들”이라며 “당장의 이익을 위해 그 뿌리를 떨쳐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이후까지 모임 지속될까
지난 3월 집단지도체제 도입 등 당내 민주화 요구를 거부한 이회창 후보의 결정은 이런 미래연대의 ‘임계점’을 건드린 사건이었다. 당시 미래연대는 좌우로 갈린 내부 격론 속에서 지극히 낮은 수준의 ‘우려’의 뜻을 공표했다. 미래연대를 일약 ‘한나라당의 개혁세력’으로 부각시킨 이 사건은 이 후보의 구심력이 강했던 한나라당의 특성상 그 정도의 액션만으로도 일파만파의 효과를 드러낸 ‘정치환경’의 결과였다. 미래연대 의원들 스스로도 “우리 정도의 성향은 민주당에 가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데는 이런 정황이 숨어 있다.
대선을 4개월여 앞둔 지금 미래연대의 임계점은 지지기반의 뿌리로부터 거대정당의 그늘쪽으로 옮겨왔다. 대부분이 초선인 이들의 지상과제는 ‘정권 교체’가 아니라 ‘공천 확보’다. 16대 국회 초반, 미래연대 내부의 개혁성향 의원들이 득세했던 것도 결국 “당 지도부가 다음 총선 공천을 보장해주지 않으며, 우리의 미래는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생존논리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러나 현 정권의 실정과 함께 여론이 급속히 이회창 후보쪽으로 쏠리면서 이들이 ‘스스로 개척할’ 정치행보의 여지도 줄어들었다. 미래연대 의원들의 단골메뉴인 개혁입법과 정당민주화가 ‘부패정권 심판’이라는 급류에 휩쓸려버렸기 때문이다.
‘개혁적’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기억해줄 유권자들도 많지 않은 상태에서 당분간은 이 후보의 대권도전에 힘을 싣는 것이 국민적 인지도를 쌓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게 이들의 솔직한 심경이다. 그럼에도 미래연대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소속 의원들조차 이 모임이 대선 이후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에 물음표를 붙인다. 지금으로선 대선 이후 논공행상 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의 당내 지위가 상승하고, 나머지는 뒤처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치적 ‘지향’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전망’ 때문에 모임이 분화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미래연대의 한 관계자는 그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당 지도부가 이회창 후보의 개혁성향을 ‘데코레이션’하는 차원에서 몇몇 의원들을 발탁한다고 해도, 그게 이 당에서 얼마나 생명력을 가질까요. 지금 당장 ‘측근’이니 ‘주류’니 하는 소리를 듣더라도 그게 다음 공천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누가 장담할 수 있습니까.”
안수찬 기자/ 한겨레 정치부 ahn@hani.co.kr

사진/ 지난 3월까지만 해도 당 주류를 비판하던 미래연대 의원들. 그들은 시작부터 정치지향보다는 연령 중심으로 모임을 만들었다. (이용호 기자)
그로부터 정확히 2년이 흐른 2002년 7월24일, 안 의원은 말했다. 이번에는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의 자리였다. “김대중 대통령과 민주당 정권은 궁색한 변명과 중상모략으로 국민을 우롱하지 말고 즉각 특검제와 국정조사 청문회를 수용해야 한다.” “대통령 아들 신분을 이용해 권력기관에까지 압력을 행사한 것은 엄연한 국정개입이요, 국기 문란범죄다.” 안 의원의 화살이 정권과 민주당을 향해 날아가자, 이를 지켜보던 한나라당 의원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이회창 대통령 후보는 직접 안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수고했다는 격려인사까지 건넸다.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의 모임인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이하 미래연대)가 어떤 궤적을 그리며 변화해 왔는지를 이처럼 극명하게 보여주는 풍경은 없다. 민중당 정책위원과 환경운동가 출신인 안 의원의 오늘은 미래연대라는 정치집단의 현주소를 웅변하고 있다. 미래연대 내부에서도 ‘중도그룹’으로 분류되는 안 의원은 당내 주류와 싸운 초년 시절을 거쳐, 이제 민주당과의 쟁투에 앞장선 야전장교가 됐다. 미래연대 소속 다른 의원들의 사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난 3월까지만 해도 공공연히 당 주류에 불만을 제기했던 미래연대 의원들은 6·13 지방선거 이후 단행된 당직개편과 함께 각종 핵심 요직에 둥지를 틀었다. 부총무를 맡은 안영근 의원을 비롯해 김부겸(대외협력위원장), 심재철(제3정책조정위원장), 박종희(대표 비서실장) 의원 등이 새로 당직을 맡았고, 김영춘 의원은 대선 기획단에서 청년정책을 담당하며 이회창 후보의 ‘브레인’ 조직에 발을 담갔다. 미래연대 ‘우파’로 꼽히는 정병국(대통령 후보 비서실 차장), 남경필(대변인), 임태희(제2정책조정위원장) 의원 등은 당직개편 이후에도 이회창 후보와 지근거리를 지키며 건재를 과시했다. 공동대표인 오세훈·이성헌 의원이 당직을 받지 못했지만, 이는 ‘모임의 대표는 당직을 겸할 수 없다’는 내부 규정에 따른 것으로, 사실상 거의 모든 회원들이 ‘한자리씩’ 꿰찬 셈이다. “이회창의 친위부대가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다”는 뼈있는 말이 당 안팎에 나도는 것도 이들의 ‘전진배치’와 무관하지 않다. ‘1인지배체제’를 비판하며 당내 민주화를 강조하고, 각종 개혁입법에 주도적이던 이들이 어느 순간 일사불란하게 이회창 후보의 주변에 포진된 형국이 됐기 때문이다. “원래 정치지향으로 뭉치지 않았다”

사진/ 미래연대 의원들은 6·13지방선거 이후 단행된 당직개편에서 요직을 차지했다. 당내 민주화를 강조하던 이들이 갑자기 이회창 후보의 주변에 초진한 형국이다. (이용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