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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신검기록 파기 시점 조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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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8-0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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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후보 아들 신검부표 파기한 장복용씨…“의무사령부가 거짓말 하라 했다”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아들들의 병역면제를 둘러싼 의혹이 5년 만에 또다시 정치권을 술렁이게 하고 있다. 지난 97년엔 병역면제 자체가 논란이었지만, 이번엔 두 아들의 병역면제를 합법으로 위장하기 위해 국가기관이 총동원돼 조직적인 은폐를 시도했다는 게 논란의 초점이다.

일부러 파기 vs 이미 파기된 서류

민주당은 이번에도 국회 대정부 질문을 통해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 7월24일 신기남 최고위원은 국회 사회·문화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이 후보의 동생 회성씨가 97년 당시 전태준 국군의무사령관과 공모해 이 후보 두 아들의 병역비리 은폐를 공모했다. 병무청은 물론 국방부도 이와 관련한 대책회의를 열었고, 당시 청와대 배재욱 사정비서관이 관련수사 착수를 막았다”는 새로운 의혹도 제기했다. 신 의원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97년 7월 국회에서 병역면제 논란이 일자 이 후보의 측근 인사들과 친인척, 병무청 간부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열었고 국군의무사령부는 신검부표를 파기했으며 △국방부에서도 핵심간부들이 대책회의를 열어 병적기록표 국회공개와 관련한 각종 대책을 추진했고 △병무청 감사실과 사직동팀 등 권력 내부 조사기관도 병역면제와 관련한 수사착수를 막았다는 것이다.


신 의원의 폭로 이후 관심이 집중되는 곳은 국군의무사령부(이하 의무사령부)다.이 기관이 이 후보 두 아들의 석연찮은 병역면제 의혹을 은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신 의원의 폭로내용이 대단히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후보의 동생 회성씨가 전태준 사령관과 수차례 만나 이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은폐를 공모했다고 한다. 전태준씨는 신검판정 군의관에게 관련사실을 은폐하고 함구토록 지시했으며, 정밀 신체검사가 담겨 있는 서류(신검부표)를 파기할 것과 관련자 모두 함구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태준(55·예비역 소장)씨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전씨는 “1997년 대선 당시 이석희 국세청 차장의 소개로 이회성씨를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아들 병역비리에 개입한 사실은 없다”고 강조했다. 오랜 친구인 이 전 차장이 여당 대통령 후보의 동생이 보자고 한다기에 만났을 뿐이며, 예편(97년 11월15일)한 뒤에는 부산 쪽에 가서 이회창 후보 쪽 선거운동을 도와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신검부표는 보존연한이 5년인데, 서류가 만들어진 것이 91년 2월이니까 96년 2월에 자동적으로 파기됐다. 내가 이회성씨를 만난 것이 97년 10월께인데, 이미 파기된 문서를 어떻게 다시 파기하라고 지시할 수 있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신 의원은 7월25일 전씨의 주장을 반박하며, 이 후보 장남 정연씨의 신검부표 파기 과정과 관련한 의혹을 거듭 제기했다. 그는 “보존연한이 5년인 신검부표는 96년 2월 파기돼야 했지만, 당시 행정착오로 97년 7월까지 국군춘천병원에 남아 있다가, 정연씨 병역면제가 불거지자 윗선의 지시로 급히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은 또 “부표 파기 뒤 문서관리를 담당한 당시 춘천병원 외래행정관이 징계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담당자는 ‘상부 지시로 폐기한 것을 놓고 징계받을 수 없다’고 버텨 결국 ‘폐기목록 미작성'으로 경미한 경고를 받는 선에서 징계가 종결된 것으로 안다”는 새로운 주장을 내놨다.

96년 폐기를 94년으로?

사진/ 신 의원이 병역관련 대책회의에 참가했다고 주장한 이 후보의 동생 회성씨. (한겨레 이진홍 기자)
신 의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 후보 두 아들의 병역면제를 은폐하기 위한 조직적인 시도가 있었다는 얘기다. 당연히 부표 파기 당사자로 지목된 장복용(54·예비역 원사)씨에게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장씨는 신 의원의 주장과는 다르게 설명했다. 이 후보의 아들 정연씨의 신검부표를 윗선의 지시에 따라 파기한 것이 아니라, 5년 이상 경과한 신검부표를 일괄 파기하는 과정에서 소각했다는 것이다. 장씨는 “지난 96년 11월 춘천병원이 이사할 때 보니 전임자가 모아둔 것까지 포함해 90년부터 96년까지 7년치 신검부표가 쌓여 있었다. 별도 규정은 없지만 5년치를 모아두는 것이 관례여서 90년과 91년치는 일괄 소각했다”고 말했다. 정연씨는 91년 병역면제 판정을 받았다. 이는 신검부표를 97년 8월 이후 파기했다는 신 의원의 주장이나, 96년 2월 파기했다는 전태준씨의 주장과도 다르다.

장씨가 신검부표 파기와 관련해 의무사령부 자체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징계를 받았다는 신 의원의 주장은 사실로 드러났다. 그는 “97년 9월 초 징계위원회에서 서면경고를 받고, 1달쯤 영내 대기명령을 받고 당직근무를 섰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 의원의 폭로내용과 장씨의 설명 사이에는 일정한 간극이 있다. 장씨가 징계에 대해 부당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신 의원의 주장과 다른 탓이다. 장씨는 “보존연한 규정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은 신검부표를 파기했다는 이유로 ‘직무태만’이라고 처벌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었다. 당시 징계위원회에 출석했을 때 여러 차례 이 점에 대해 항의했으며, 아직도 억울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당시 의무사령부가 이 후보 두 아들의 병역면제 의혹을 은폐하기 위해 모종의 조처를 취했다는 신 의원의 폭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전태준씨의 주장처럼 이미 신검부표가 파기된 상태였다면, 이를 은폐하기 위해 다시 ‘위험’을 무릅쓸 까닭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씨의 입에서 새로운 ‘폭탄발언’이 튀어나왔다. 당시 징계위원회에 출두를 앞둔 장씨에게 의무사령부 고위 관계자가 부표를 파기한 시점을 앞당겨 진술하도록 주문했다는 것이다. 만약 장씨의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의무사령부에서 무슨 까닭에서인지 부표의 파기시점을 조작하려 시도했다는 얘기다. 이 부분에 대한 장씨의 진술은 매우 구체적이고 세밀하다. “징계위원회를 앞두고 의무사령부 인사처장이 ‘부표 파기시점을 94년 12월말로 하라’고 하기에 그 말을 따랐다. 진술서에도 신검부표를 94년 12월 말에 파기했다고 썼다. 그런데 징계위원회가 열려 막상 참모장 등 징계위원들 앞에 서서 가만 생각해보니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뭘 잘못해서 거짓말을 하느냐는 생각도 들고, 분명히 난 96년 11월에 부표를 소각했는데 94년 12월 말에 파기했다고 말하면 허위진술이라는 걱정도 생기더라. 그래서 진술을 번복해 96년 11월 파기했다고 말해버렸다. 그랬더니 인사장교가 나한테 욕설을 하고 난리가 났다. 결국 그날 징계위원회가 열리지 못했고, 다음날 또다시 열려 우여곡절 끝에 직무태만으로 징계를 받았다. 가장 가벼운 경고라고 했다.”

의무사령부는 완강히 부인

그러나 당시 의무사령부 인사처장이던 김아무개(50·예비역 대령)씨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김씨는 “당시 장 원사가 징계를 받은 것은 신검부표를 파기한 뒤 문서파기대장에 이를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표파기 시점은 징계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는데 내가 왜 파기 시점을 앞당겨 진술하라고 했겠느냐”고 반박했다. 김씨는 또 “당시 장 원사 외에도 춘천병원 인사행정과장과 신검과장 등 3명도 문서관리 규정과 문서파기 절차를 지키지 않아 서면경고를 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장씨와 김씨의 진술은 정면으로 엇갈린다. 두 사람 가운데 누군가는 무슨 까닭에서인지 거짓말을 한다는 얘기다. 당시 의무사령부 참모장으로 근무하면서 징계위원장을 맡았던 강선재(56·예비역 대령)씨는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어느쪽 손도 들지 않았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장씨의 주장대로 부표파기 시점이 96년 11월이라면 굳이 부표파기 시점을 94년 말로 조작할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이 후보 두 아들의 병역면제 문제가 불거진 97년 이전이라는 점에서 96년이든 94년이든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의무사령부에서 부표파기 시점을 94년 말로 앞당기려고 시도했다는 장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거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 대목에선 아직 상상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어느시점에선가 부표가 파기됐고, 뒤에 국회에서 문제가 되자 파기시점을 일치시킬 필요가 있었으나 말을 맞추는 과정에서 이견이 생겼다고 추론해볼 수는 있겠다.

의혹을 풀어줄 수 있는 기록은 이미 파기됐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쏟아지면서 논란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증언은 제각각이다.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려면 좀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97년 당시 병무청과 국방부에서도 각각 ‘대책회의’가 열렸다는 신 의원의 폭로도 마찬가지다. 대책회의 참가 의혹을 받고 있는 관련자들이 하나같이 부인하고 있지만, ‘정황증거’를 말하는 이들도 많다. “국가권력이 총동원돼 여당 대선후보 아들의 병역비리를 은폐했다”는 주장과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병역면제 처분을 받았으니 은폐할 이유가 없다”는 반박 사이에 감춰진 진실은 무엇일까.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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