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교전 여파에도 관광객 급상승 추세… 물놀이 시설에 숙소도 늘어날 전망
긴장의 파고가 일었던 서해와 달리 동해는 평화로웠다. 물살을 가르며 장전항에 다가서는 금강산 관광선 ‘설봉호’ 주변에는 북한 어선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고기잡이에 한창이었다. 남한 관광객이 북한 어민들을 향해 “반갑습니다”라며 인사를 건네자, 그들 가운데 더러는 손을 흔들며 답례를 해주기도 했다. 그랬다. 이곳 동해와 금강산에는 6·29 서해교전 뒤의 긴장과 후유증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남한 관광객도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늘었다. 올 1월 1463명, 2월 1379명, 3월 3002명에 머무른 관광객은, 4월을 기점으로 가파른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4월 4812명, 5월 6579명, 6월 7659명에 이어 7월에는 1만여명에 이를 전망이다. 물론 관광객의 급상승 추세에 불을 댕긴 것은 정부의 관광경비 보조 결정이었다. 금강산 관광 예약업무를 맡고 있는 현대드림투어 쪽 관계자는 올 연말까지 예약이 거의 끝난 상태라고 귀띔했다.
관광경비 보조로 학생들 늘어나
금강산 관광안내를 3년째 맡고 있다는 김아무개(25)씨는 “서해교전 사태가 발생한 날 설봉호에 타고 있었는데, 동요하는 관광객이 거의 없었다. 금강산 현지에서도 다들 관광에만 열중했을 뿐 위축감이나 긴장감을 느낀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참전 군인이라고만 밝힌 한 노인은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보초를 서고 있는 북한 군인들을 보고는 ‘이놈들 때문에 내가 지난 세월 그렇게 고생했구나’라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어올랐으나 나중에는 그래도 오기는 잘했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금강산의 빼어난 경치에도 감동했지만, 무엇보다 북한 주민들이 사는 이런저런 모습을 멀리서나마 보니까 동포애 같은 것이 솟구쳤다”고 덧붙였다.
요즘 금강산은 무척이나 젊어보인다. 정부 지원금의 혜택을 받는 학생들의 수가 크게 늘어난 탓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금강산 구석구석에는 학생들의 재잘거림이나 웃음소리가 온종일 끊이지 않는다. 이전에 금강산을 가득 채운 나이 많은 실향민이나 이산가족들의 한숨이나 회한이 서린 표정은 간간이 비칠 뿐이다. 학생들이 늘어난 탓에 관광 프로그램도 다소 바뀌었다. 지난 7월10월 처음으로 문을 연 장전항 해수욕장은 단연 젊은이들의 차지다. 물론 어른들도 해수욕장을 이용할 수 있지만, 지금은 학생들이 주요 고객이다. 용인에 있는 에버랜드 캐러비안베이 못지않은 물놀이천국을 만들겠다는 현대아산 쪽 직원들은 이곳에 제트스키·워터시소·물뜀틀 등 다양한 장비들을 물 위에 옮겨놓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해수욕장은 북한의 고성읍 마을과 바로 맞닿아 있다. 북한 당국에서는 애초 주민들에게 끼칠 악영향 등을 우려해 현대아산 쪽의 해수욕장 개방 요청에 대해 한동안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들도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용인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는 한 학생은 “금강산은 어른들만 좋아하는 곳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처음에는 금강산 관광을 시큰둥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3박4일 일정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재미있다”고 말했다. 이제 누구든 금강산에 가면 산, 바다, 온천욕 그리고 교예공연까지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 아직 남한의 유명 관광지에 견줘 놀거리나 먹을거리가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북한 군인들이나 안내원들이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한 초등학생은 “솔직히 북한 사람들은 무섭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배워왔으나 실제 부딪쳐보니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금강산은 학생들에게 그야말로 북한과 그 주민들을 새롭게 이해하는 산교육장의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곳에는 북한 주민들과 많은 얘기를 직접 나눌 수는 없지만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는 적지 않다. 남한 관광객의 전용도로나 관광코스가 북한의 여러 마을 한가운데를 관통해서 뚫려 있기 때문에 북한 주민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다.
안내원들, 다음 정권에 관심 보여
이곳에서 만나는 40여명의 북한 관광안내원들은 남북 민간인 사이의 상설 대화채널 구실을 하고 있다. 남한 관광객들이 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북한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다. 이번 관광길에는 유난히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다. 서해상에서의 군사 충돌사건을 모르는 안내원들은 거의 없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서해사태가 금강산 관광에 먹구름을 몰고 오지 않을까를 적지 않게 우려하는 표정이었다. “북남 군인 간의 서해충돌사태가 금강산 관광에 나쁜 영향을 끼칠 것 같습니까?” “000가 다음 대통령이 되면 금강산 관광이 중단될지 모른다는데 기자 선생도 그렇게 봅니까?” “이번 서해사건은 누구 잘못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미국이 수작을 부린 것이지요. 북남은 서로 이득이 안 되는 것을 뻔히 아는데 뭐하러 이런 짓을 저질렀겠습니까?” 이들이 빠트리지 않는 단골 얘깃거리는 또 있다. 남한이 지나치게 외세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과, 주한미군의 만행을 왜 그냥 지켜만 보느냐는 목소리다. “주한미군 장갑차가 남쪽의 여중생을 깔아뭉갰다는 데 남쪽 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물론 이들 북한 안내원들과 내내 정치적인 내용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은 야한 농담이 오가기도 하고, 서로의 가족에 대한 얘기로 웃음꽃을 피우기도 한다. 이들은 수많은 남한 관광객을 만나온 탓인지 이제는 친절이 몸에 배어보인다고 평가하는 관광객들이 적지 않다.
그간 부족한 남한 관광객들을 위한 숙소 마련도 조만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아산 쪽은 폭주하는 관광객을 다 수용하지 못해 애간장을 태워왔으나, 북한이 현지에서 운영해온 금강산려관을 빌려 곧 개·보수작업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애초 임대료 등의 문제로 협상에 난항을 겪었으나 이제는 합의서에 최종 서명만 하면 된다. 이 여관은 북한에서 직접 운영하겠다고 나선 것으로 알려져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남한 관광객이 묵는 선상 해금강호텔은 현대아산 쪽광에서 조선족 종업원들을 고용해 운영하고 있다.
위태로운 순항… 철로 이을 수 있나
그렇다면 금강산 관광은 이제 탄탄대로에 들어선 것일까. 금강산을 찾는 관광객 수로 보면 분명 금강산 관광은 순항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이는 사업 주체인 현대아산 관계자들의 표정에서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정부 지원으로 간신히 버티기는 하나 이런 방침이 내년까지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다들 확신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정부 지원이 끊어지면 구조적으로 금강산 관광은 또 풍랑을 맞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금강산 관광의 돌파구는 육로개통이나 관광특구 실현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곧 착수될 것으로 알려진 스키장이나 골프장 건설도 관광특구 지정과 맞물려 있어 지금으로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여전히 주판알만 튀기고 있을 뿐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이런 와중에 서해교전마저 터져 올해 안에 육로와 관광특구가 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지는 더욱 불투명해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 5월, 한국미래연합 대표인 박근혜 의원을 만나 금강산 관광지역을 관통하는 동해북부철도(강원도 양양∼원산)를 잇자는 파격적인 제안까지 내놓았으나 그 뒤 아무런 소식이 없다. 전문가들은 이 철도만 이어지면 육로와는 견줄 수 없을 정도로 금강산 관광객 증대에 기여할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금강산= 글·사진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사진/ 금강산에는 해수욕장이 생기는 등 갈수록 놀거리가 풍성해질 전망이다. 지난 7월10일 장전항 해수욕장이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사진/ 3박4일 금강산 관광을 즐기는 초등학생들. 금강산은 이들에게 북한과 그 주민들을 이해하는 산교육장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