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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부패정권’ 약발은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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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7-2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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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공격적 전략으로 승부수 띄워… 압승 예상에도 일부 후보 자질론 대두

사진/ 한나라당은 재보선 압승을 기대하고 있다. 서청원 대표가 부패 정권 심판론 재가동을 통한 재보선 승리를 촉구하고 있다. (이정용 기자)
지난 7월19일 한나라당 당직자들은 일제히 민주당을 향해 거친 분노를 내뿜었다. “특검제와 청문회를 수용하지 않으면 시국강연회를 검토하겠다”(김영일 사무총장), “민주당이 부정적으로 나오면 자민련과 손잡고 공적자금 국정조사를 강행처리하겠다”(이규택 원내총무)….

한화갑 민주당 대표가 국회 대표연설에서 이른바 ‘이회창 후보 5대의혹’ 규명을 공언하자 총반격에 나선 것이다. 당직자들은 “저쪽이 먼저 더러운 전쟁을 시작했다.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선다는 ‘맞불작전’이었다.

한나라당의 분노 뒤에는 8·8 재보선과 12월 대통령 선거를 겨냥한 정교한 전략이 숨어 있다. 한 대표의 연설 직후, 이회창 후보의 핵심 측근들은 오히려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건수가 없어 고민했는데 차라리 잘됐다. 저쪽이 먼저 도발해왔으니 우리도 부패정권 심판론을 다시 되살릴 수 있게 됐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렸다’는 것이다.

민주당 선제공격에 공격력 되살아나


다 그만한 사정이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부패정권 심판론으로 짭짤한 재미를 봤다. 하지만 재보선은 좀 달랐다. 지방선거 직후 새 이슈 발굴에 나섰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공적자금 손실문제를 쟁점화하자, 곧 서해교전이 터졌다. 안보논쟁은 연평도 어민의 월선조업 논란이 겹치면서 ‘날’이 무뎌졌다. 부패정권 심판론을 다시 내걸기도 마땅찮은 게 고민이었다. 지방선거에서 압승했고, 김대중 대통령의 두 아들이 이미 구속된 상황에서 네거티브 전술을 고집할 경우 역풍이 불 것으로 예측했기 때문이다. 후보공천 직전까지도 한나라당에서는 “이 후보 집권 뒤 펼쳐질 새 정치의 청사진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새로운 인물들을 내세워 정면승부하자”는 주장이 강세였다. 그러나 이 전략도 물 건너 갔다. 공천자 13명 가운데 전직 국회의원이 5명, 지구당 위원장 등 당직자가 5명이고 영입인물은 3명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의 선제공격은 탈출구를 제공했다. 양휘부 공보특보는 “민주당이 총공세를 펼치는 상황에서 부패정권 심판론을 다시 되살리는 것보다 효과적인 재보선 전술은 없다”고 말했다. 다시 한번 ‘부패정권 재심판론’으로 승부수를 띄우겠다는 것이다. 한화갑 대표 스스로 대통령 보좌진의 책임을 거론했고, 먼저 ‘이회창 때리기’에 나선 만큼 네거티브 전술에 대한 역풍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다.

7월21일, 김영일 사무총장은 정확한 공격방향을 제시했다. “모든 정보기관을 장악한 민주당 스스로 사건의 진상을 밝히지 않고 의혹, 의혹만 외친다. 그러면 CIA가 와서 밝혀야 하냐.” 앞으로 민주당을 무능·무책임·몰염치 정당으로 몰겠다는 것이다. 김 총장은 이날 “한화갑 대표 스스로 대통령 최측근을 자임했고, 대통령 비서실장이 연달아 대표를 맡은 정당에서 대통령 보좌진이나 사정기관에 책임을 떠넘긴 것은 도덕불감증을 의심할 만한 행태”라고 공격수위를 한껏 높였다.

김진재 최고위원 등 한나라당 지도부는 △대통령 보좌진 및 사정기관 책임자 문책 △공적자금 국정조사 △권력비리에 대한 한시적 특별검사제 도입 △아태재단 해체 및 국고환수 △중립내각 구성 등 6개항에 대해 “국회결의 및 양당 공동 조사특위를 설치해 당장 실천에 옮기자”고 요구하고 나섰다. “한화갑 대표의 연설과 노무현 후보의 주장 등을 볼 때 6개항에 대한 두 당의 의견은 이미 일치한다”는 이유다. 남경필 대변인은 “한나라당은 내일 당장이라도 실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도 고도의 전략적 판단이 녹아 있다. DJ와 연결고리를 끊으려는 한 대표와 노 후보의 최근 언행을 국민을 기만하는 ‘악어의 눈물’로 몰아세우며, ‘실천론’으로 차별화하려는 것이다. 민주당이 가동한 ‘이회창 후보 5대의혹 사건 진상규명특위’에 맞서 조만간 ‘김대중 대통령 일가 부정축재진상조사위원회’도 구성하기로 했다.

한나라당은 승리를 낙관한다. 일단 민주당의 부패·무능·몰염치를 공략할 새로운 실탄이 비축돼 있다. △마늘협상 은폐의혹 △다국적 제약사의 약값정책 개입의혹 △장상 총리 서리 임명 논란 등이 그것이다. 정당 지지도에서도 민주당을 압도하고 있다. 일정기간 이전투구가 지속돼도 결코 불리하지 않다는 것이다. 당직자들은 “후보별 여론조사에서도 10% 이상씩 앞선 것으로 나타난다. 큰 실수만 없으면 광주북갑과 군산을 제외한 11개 지역에서 압승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물론 만사태평한 것은 아니다. 이회창 후보의 한 소장 참모는 “주·객관적 조건을 모두 고려할 때 수도권 일부 지역은 마냥 자신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전반적인 판세는 우세하지만, 몇몇 위험요인들이 잠복해 있다는 것이다.

가장 우려하는 것은 지방선거 압승 이후 한나라당 지지자들 사이에 부패정권 심판 의지가 약화되었다는 점이다. “제발 낙승 예상지역으로 쓰지 말아라. 부탁이다. 정말 심각하다.” 서울 금천에 출마한 이우재 전 의원의 측근 인사는 요즘 기자들에게 이렇게 하소연하고 다닌다. 이 전 의원은 92년 민중당 후보로 첫 출마한 뒤 10년째 이곳에 공을 들였다. 경쟁자인 민주당 이목희 후보는 지역에선 무명인사에 가깝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이번에도 못 이기면 이민가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란다. 이 전 의원 쪽은 이런 분위기가 오히려 부담스럽다. “8월8일은 여름 휴가 절정기다. 투표율 30%를 넘기기가 어렵다. 금천 전체 유권자 19만명 가운데 5만7천명 정도가 투표하고, 3만표만 얻으면 금배지를 거머쥐는 상황이 된다. 이 정도라면 조직동원으로 얼마든 승패를 뒤바꿀 수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당연히 이긴다.휴가나 가자’고 말한다.”

투표율 저조 고심… 이회창 후보 사위 개입설

상대 후보와 경쟁이 가열될 경우 일부 약한 고리가 생겨날 수도 있다. 영등포을과 종로가 대표적이다. 영등포을에 출마한 권영세 변호사는 영입 성공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그의 삶은 마지막 재야로 불려온 민주당 장기표 후보와 너무 대비된다. 권 변호사는 수원지검 공안부 검사로 법무부와 서울지검을 거쳐 94년부터는 안기부장 특보실 정책연구관까지 지냈다. 민주당 강세지역에서 공안검사와 재야인사의 대결구도가 정립되면 힘겨운 싸움이 될 수 있다. 공천과정에서 이회창 후보의 사위 최명석 변호사가 지원했다는 소문도 부담이다. 권 변호사와 이회창 후보 쪽은 “최 변호사 지원설은 낭설일 뿐이고, 검사 시절에도 통일관련 법안을 연구했을 뿐”이라며 승리를 자신했다. 종로에 출마한 박진 특보는 이회창 후보의 최측근 인사라는 점과 아들의 이중국적 논란이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의 경우처럼 당 소속 시·도지사들이 공사 구분 못하고 물의를 일으키는 사태도 막아야 한다. 민주당의 “1당독재 견제론’이 힘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7월24일 시·도지사 정책협의회를 열어 다시 한번 단체장들이 물의를 일으키지 않도록 잡도리했다.

한나라당의 재보선 목표치는 물론 압승이다. “8·8 재보선도 압승하면 민주당은 패배주의에 빠져 분열할 것이다. 전의를 상실한 상대와 12월 대선에서 만난다고 해도 승부는 뻔한 것 아닌가.” 이 후보 측근의 설명이다. 이 목표를 위해 한나라당은 부패정권 심판론 쟁점화에 모든 당력을 집중할 것이다. 이는 개별후보들의 난관도 넘기고, 이회창 후보를 겨냥한 민주당의 ‘원조부패’ 공세까지도 무력화할 수 있는 ‘양수겸장’ 카드인 셈이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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