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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부처의 미소 ‘오매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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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7-2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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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불자들의 극진한 불심잡기… 앙금 떨치려 시도별 전담반까지 꾸려

사진/ "부처님 마음을 잡아라."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국난 극복을 위한 법회에 참석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신심을 갖고 부처님을 좀더 극진히 공양하라.”

최근 한나라당 불자들에게 떨어진 특명이다. 지난 7월18일 오전 여의도 한나라당사 5층 당무회의실에는 불심 깊기로 소문난 의원들이 모여들었다. ‘의원 불자회’와 일반 당원 조직인 ‘불교신도회’를 통폐합한 뒤 창립한 ‘한나라당 불자회’ 임원 간담회가 열렸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이회창 후보는 “불교행사에 참석해보면 우리 당에 대한 불교계의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앞으로 사찰 방문과 불자들과의 접촉을 통해 외연을 확대해달라”고 주문했다. 메시지는 명료했다. 불심을 한나라당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발벗고 뛰라는 것이다. 초대 불자회 회장에 임명된 하순봉 최고위원도 “97년 대선 뒤 오랜 시간 과연 우리 당이 불심을 제대로 샀는지 자기 반성을 했다. 불교계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자”고 독려했다.

이회창 후보의 특명 “지극 공양하라”


정치권의 모든 움직임은 12월 대선으로 수렴된다. 불자조직 통폐합도 대선을 의식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의원 및 당원 불자수에서 민주당을 압도한다고 자부해왔다. 하지만 97년 대선 이후 불교계와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97년 대선에 출마한 이회창 후보는 당시 법정홍보물에 ‘거짓말·속임수’의 상징으로 ‘파계승 탈’ 그림을 실었다. 불교계는 분노했다. 이 후보가 홍보책임자의 사표를 받고, 언론에 사과광고까지 냈다. 하지만 불교계의 불신은 잦아들지 않았고, 대선에서 큰 악재로 작용했다.

김대중 정권 등장 이후에도 한동안 불편한 관계는 지속됐다. ‘의원 불자회’ 회장인 함종한 전 의원 등 몇몇 인사들이 불교계에 공을 들였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함 전 의원은 “정권을 빼앗긴 뒤 불교계에 좀더 관심을 기울이자고 얘기했지만 누구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반면 민주당은 한화갑·김중권 등 중량급 인사들이 전국 사찰을 돌며 불교문화재 보호예산 확대를 약속하는 등 전방위 공세를 펼쳤다. 결국 2001년 1월19일 정대 조계종 총무원장이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집권하면 단군 이래 희대의 보복정치가 난무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까지 말하게끔 되었다.

충격에 휩싸인 한나라당은 이때부터 불교계에 본격적으로 정성을 쏟기 시작했다. 함 전 의원을 비롯해 김태호·권익현 의원 등이 정대 총무원장과 화해를 모색했다. 법당을 멀리한 이회창 후보도 수덕사(충남 예산), 겁외사(경남 산청), 성주사(창원), 구인사(충북 단양) 등 유명사찰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후보의 부인 한인옥씨는 아예 불교신도회 성지순례단을 이끌고 전국 사찰순례에 나섰다. 한씨는 최근까지 매주 3곳 이상 사찰을 찾았다.

한나라당은 최근 불교계 분위기가 우호적으로 바뀌었다며 잔뜩 고무돼 있다. 이 후보의 한 측근 참모는 “요즘 불교계에서 먼저 신경써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올 정도”라고 전했다. 하순봉 의원의 한 측근도 “최근 불교계 인사들이 한나라당에 불교계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새로 출범한 불자회는 이런 우호적 분위기를 12월 대선까지 지속·확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불자회 임원인 한 의원은 “본사 큰 스님들은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지만 말사 주지 스님들은 정당에 대한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특히 영남지역 전체 유권자의 70%가 불자들인데, 우리가 그동안 너무 소홀하게 대접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공을 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승리를 위해 좀더 공세적으로 불교계를 감싸안는다는 것이다.

사찰 순례에 고무… 불교계 현안 주목

불자회는 이를 위해 16개 시도별로 전담반까지 구성했다. 서울 김기배, 부산 김진재, 대구 이상배, 인천 조진형, 제주 양정규 의원 등 시도별 대책위원장 임명도 끝냈다. 강원지역 대책위원장을 맡은 함종한 전 의원은 “불교계 행사가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이회창 후보가 모두 신경쓰기는 어렵다. 앞으로 전담 의원들이 나서 해당지역 불교계 요구를 적극 수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한인옥씨가 도맡은 사찰순례도 이회창 후보가 직접 소화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이 후보와 불교계의 앙금이 상당히 해소됐고, 한씨의 잦은 대외활동에 대한 비판여론을 의식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또 조만간 북한산 관통도로 건설 등 사찰 주변환경 파괴, 사찰 관람료 인상, 사찰문화재에 대한 정부 지원 확대문제 등 현안에 대한 대안도 내놓을 계획이다. 부처님은 과연 한나라당에 미소를 지을까.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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