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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위기탈출은 ‘선제공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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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7-2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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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이회창 때리기’로 반전 모색… 기대치 낮추고 견제심리로 돌파구 찾아

사진/ 민주당은 '부패원조론'을 내세워 강공을 펼치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와 재보선 후보들이 승리를 기원하고 있다. (이정용 기자)
“6·13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순경이 되어 민주당을 도둑으로 몰았다. 민주당은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다르다. 8·8 재보선에선 민주당이 절대로 도망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너희들이 더 큰 도둑이다’라고 맞고함을 칠 작정이다.” 이호웅 민주당 조직위원장은 8·8 재보선에 임하는 당 차원의 전략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나라당이 다시 한번 들고 나올 게 분명한 ‘부패정권 심판론’에 맞서 민주당은 이회창 후보와 관련된 5대의혹 사건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부패원조론’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더이상 앉아서 당하지는 않는다

민주당은 확실히 지방선거 때의 무기력한 모습과는 달리 나름의 일사불란함을 보여주고 있다. 노무현 후보와 한화갑 대표, 최고위원, 당3역 등 당 지도부는 연일 한목소리를 내며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겨냥한 파상공세를 퍼붓는다. 지도부가 제각각으로 딴 목소리를 내던 지방선거 때와는 사뭇 다른 모양새다. 유용태 사무총장은 7월20일 전체 당직자 월례회의에서 “보리밥 먹던 사람이 쌀밥을 먹으면 풍요롭게 느끼지만, 다시 보리죽에 보리밥을 먹을 때는 정말로 비참해지는 법”이라며 재집권에 대한 당직자들의 각오를 다그쳤다.


민주당 재보선 전략의 핵심은 ‘이회창 때리기’로 요약된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이를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양날개전략’이라고 표현했다. 이회창 후보에 대한 일제공격을 통해 외부적으론 ‘노-창 대결구도’를 형성해 부패정권 심판론을 무력화하면서 지방선거 참패 이후 무기력증에 빠진 당의 내부결속도 다지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민주당 재보선 전략의 또 다른 축은 대통령 주변 권력형 부패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다. 민주당을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대통령 주변의 부패문제를 털어내기 위해 정면돌파를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한화갑 대표는 국회 대표연설에서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어처구니없는 비리행각을 미리 막지 못한 저와 민주당은 국민 여러분의 어떤 질책이라도 달게 받겠다”고 분명한 반성을 표시했다. 또한 대통령 보좌진과 사정기관 책임자들의 책임도 거론했다. 이는 책임의 화살을 김홍일 의원 등 내부에 돌린 그동안의 차별화 전략과는 다른 흐름이다. 이낙연 대변인은 “우리가 대통령 주변 비리에 대해 통절하게 반성하고 어떤 질책도 달게 받겠다는 자세를 먼저 밝히는 것이 이회창 후보의 5대의혹 규명을 촉구하는 데 합당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야박하다는 인상만 남기고 효과도 작은 인위적인 차별화 전략보다는 국민에게 솔직하게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한 뒤 비난의 화살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쪽으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견제심리 자극도 주요한 전술이다.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에 몰표를 몰아줬으니 국정의 균형을 위해선 민주당에도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겠다는 것이다. 이호웅 조직위원장은 ‘한나라당 1당독재를 막아야 한다’는 구호를 내세워 유권자들의 견제심리에 호소할 것”이라며 ‘1당독주 견제론’이 재보선 전략의 일환임을 내비쳤다. 당 기획조정국의 한 관계자는 “공사를 구분하지 못한 이명박 서울시장의 일련의 행동을 집중적으로 부각해 유권자들의 견제심리를 자극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무소속 출마의지를 밝힌 공천 탈락자들에 대한 위무작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6·13 지방선거 당시 민주당 공천 탈락자들이 대거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바람에 패배가 더욱 커진 전철을 되밟지 않겠다는 것이다. 공천 후유증이 심각한 곳은 서울 종로와 금천, 경기도 하남, 전북 군산 등 4곳. 노무현 후보는 7월19일 하남 지구당 개편대회에 참석해 공천에서 떨어진 손 전 시장을 달랬고, 한화갑 대표도 군산의 엄대우 전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과 접촉하며 무소속 출마를 만류했다.

전략적 엄살작전… 어려운 싸움 예고

사진/ 민주당은 서울에서 열세를 보이고 있다. 영등포을의 장기표 후보, 종로의 유인태 후보, 금천의 이목희 후보(왼쪽부터). (이용호 기자/ 한겨레/ 박승화 기자)
민주당에선 최악의 경우 광주 북갑 1곳밖에 건질 수 없다는 매우 비관적인 전망이 공공연히 나온다. 민주당 정세분석국에서도 “현재로선 군산도 쉽지 않다. 수도권에선 하남 1곳 정도만이 해볼 만할 뿐 나머지는 어렵다”고 분석하였다. 심지어 “이번 재보선은 민주당이 수도권에서 1곳을 이기면 이기는 것이고 1석도 못 건지면 지는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런 얘기들은 민주당의 자체 여론조사에 근거를 두고 있다. 실제로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민주당이 후보등록도 하기 전에 패배를 자인하는 것은 어딘가 이상하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전략적 엄살작전’으로 설명했다. 대부분의 경우 선거를 앞두고선 큰소리를 치는 게 보통인데 민주당이 죽는 소리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먼저 재보선에 대한 당 안팎의 기대치를 낮추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민주당에선 지방선거에 이어 재보선에서도 참패할 경우 노무현 후보의 위상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비주류는 “재보선까지는 참되 그 뒤엔 할말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노 후보 자신도 ‘재보선 이후 재경선 수용’ 카드를 제시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보선 자체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면 선거승패를 규정하는 기준도 낮아진다. 곧 수도권에서 1곳도 이기기 어렵다고 미리 방어벽을 쳤다가 그 이상의 결과가 나올 경우 이를 민주당의 승리로 몰고 가면서 당내 불만을 봉쇄하겠다는 계산인 것이다.

민주당은 또한 엄살작전을 통해 지지자들의 위기의식을 높이고 이에 따른 지지표 결집효과도 노린다. 이대로 가면 한나라당에 다 내준다는 위기의식을 부추겨 지방선거에서 대거 기권한 민주당 지지자들의 투표참여를 이끌어내자는 것이다. 이회창 후보에 대한 융단폭격도 민주당 지지자들을 결집하는 데 보탬이 될 것으로 본다.

민주당이 이런저런 전략을 세웠음에도 재보선 승패에 대한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민주당은 일단 경기 하남과 광명, 서울 영등포와 종로 등 4곳에서의 승리를 목표로 삼았다. 현재의 정당 지지도 등을 고려하면 쉽지 않지만 목표치는 그렇게 잡았다는 얘기다. 정세분석국에선 휴가철과 겹치는 재보선의 투표율이 25% 안팎에 머물 것으로 예상한다. 따라서 이번 재보선이 조직표의 대결구도로 짜일 수밖에 없고, 이 경우 민주당 고정 지지표가 결집하기만 하면 뜻밖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데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다.

사진/ "수도권에서 1석만 건져도 승리다." 민주당이 승리를 전망하는 경기 하남의 문학진(가운데)후보. (이정용 기자)
공천 직후 민주당 정세분석국의 여론조사 결과 영등포을은 10%, 종로는 20%, 광명은 15% 정도의 격차로 한나라당 후보에 뒤지는 것으로 나왔다. 다만 경기 하남의 경우 공천에서 탈락한 손영채 전 시장이 무소속으로 출마하지 않을 경우 투표에 참여하겠다는 층에서 3% 정도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민주당은 하남 이외에 영등포을을 그나마 승산이 있는 곳으로 꼽는다. 장기표 후보와 한나라당 권영세 후보의 대결을 재야운동의 대표선수와 공안검사의 대결로 몰아가고, 이회창 후보의 사위인 최명석 변호사의 공천 개입설을 집중적으로 공략할 경우 추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북 군산은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공천에 앞서 실시한 민주당 자체 여론조사에선 강봉균 후보보다 10% 이상의 차이로 앞선 함운경씨가 무소속 출마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참패당하면 내홍 휘말려

재보선 결과에 따라 민주당은 또 한 차례 내홍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강도는 지방선거 이후보다는 작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영입대상으로 지목된 정몽준·박근혜 의원 등이 민주당 입당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노 후보 이외의 대안을 주장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지지도가 급격히 상승한 정 의원이 권력분점형 개헌론에 대해서도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민주당 비주류가 주장하는 개헌론이 강한 탄력을 받기도 어려워졌다.

노 후보가 7월20일 부산에서 “8월 말이나 9월 초께 당을 선대위체제로 전환해 12월 대선이 끝날 때까지 당을 장악하겠다”고 선대위 발족시기를 밝힌 것도 이런 사정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이런 언급은 일단 재보선 이후 재경선을 수용하겠다고 한 자신의 제안과 상충된다. 재경선 실시와 동시에 선대위체제로 전환하는 것은 모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노 후보가 선대위 발족시기를 적시한 것은 재보선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재경선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적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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