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어민들의 반발로 몇차례 시도 무산…서해의 어업 협력은 군사적 신뢰구축 이후에야
남북 어민들이 언제쯤 서해 북방한계선을 걷어치우고 꽃게잡이를 함께할 수 있을까.
서해교전 사태 이후 전문가들은 ‘공동어로’를 약방의 감초처럼 재발 방지책의 하나로 내놓았다. 하지만 공동어로가 실제로 성사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험난한 산이 많아 보인다. 무엇보다 당사자인 남한 어민들의 뜻을 모으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이들에게는 공동어로가 생존권 문제와 직결돼 있다.
“정부가 특정 기업에 특혜준다”
남북한 공동어로는 성사 직전단계까지 간 적이 한두 차례 있었다. 1999년에는 서해 북방한계선 위쪽에서 공동어로 사업을 벌이기로 남북한이 합의했다. 이 역사적인 사업은 초기부터 남한 어민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쳐 무산됐지만 지금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부산의 수산물업체인 (주)해주가 공동어로 부문 남북경협 협력사업자로 지정된 때는 99년 1월이었다. 해주는 북한의 광명성총회사와 ‘풍어수산물합작회사’를 세워 서해 대동강 하류의 북위 38.5∼39.5도 해역에 120t급 쌍끌이 기선저인망 3척을 투입할 계획이었다. 전체 투자규모는 397만달러로 이 가운데 75.3%에 이르는 299만달러는 해주가, 나머지 98만달러를 북한에서 대기로 했다. 남한은 선박과 어로 기술을, 북한 어장과 노동력을 제공하는 조건이었다. 합의서에 따라 남북한은 5년간 꽃게를 비롯해 조기와 홍어 등을 함께 잡아 국내로 들여오거나, 해외에 수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소식이 바깥에 알려지지마자 어민들이 발끈했다. 그해 3월께 인천지역 연근해와 서해 다섯섬 지역 어민들은 정부가 특정 기업에 특혜를 주려 한다고 크게 반발한 것이다. 이들이 남북 공동어로를 반대한 까닭은 세 가지였다. 먼저 서해안 어장은 옹진반도를 중심으로 한 황금어장인데, 이 어장의 북한 길목에서 공동어로를 할 경우 남한 어민들은 큰 피해를 본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서해 다섯섬 어민들은 그간 선반안전 조업규칙에 따라 제한된 어장 안에서 무장한 남북 해군의 눈치를 보는 등 지리적 악조건을 견뎌가면서 10t에도 못 미치는 작은 배로 생계를 꾸려왔다. 이런 터에 누구는 아무런 눈치도 보지 않고 맘껏 값나가는 고기를 잡는다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또 어장이 훼손돼 생계 유지가 더욱 힘들어질 게 뻔하다고 우려했다. 서해의 특정 해역은 마지막 남은 청정바다로 남북 공동조업이 이뤄지면 어장의 황폐화를 불러온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어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자 결국 정부는 최종 사업승인을 내줄 수가 없었다. 이 경우는 개별 기업 차원의 사업이긴 하나, 서해를 남북 공동어장으로 만드는 게 쉽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동해 공동어장 남한 어민들에 불리
서해뿐 아니라 동해에서도 남북한의 공동어로가 이뤄질 뻔했다. 2000년 2월의 일이다. 남한의 전국어민총연합회(전어총)가 북한의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대표를 중국 베이징에서 만나 ‘남북 민간어업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서명한 것이다. 합의서에 따르면 남한은 전어총 소속의 어선들인 대게저자망 5척, 통발 10척, 근해연승 10척, 오징어채낚기 10척, 잠수기 조업선 5척, 활어운반선 2척 등 모두 42척을 투입하고, 북한은 어장을 내줘 생긴 이익을 반반으로 나누게 돼 있었다. ‘은덕어장’이라고 불릴 예정이던 공동어장은 북한 동해의 북위 38도, 동경 130도의 점과 북위 40도, 동경 131도 점들을 이은 원산에서 150∼200km 떨어진 지역이었다. 전어총은 이곳에서 대게·털게·가자미·명태 따위를 잡아 주로 남한으로 들여와 국내에서 팔 요량이었다. 계약기간은 일단 2000년 봄부터 2005년 봄까지로 정했다.
당시에도 동해안 어민들의 반발이 거셌다. 공동어로를 반대한 서해 쪽 어민들의 불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북한 동해안에서 남북 공동어장이 생기면 남한 어민들의 밥줄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였다. 어민들은 명태·대구·꽁치 등 동해안에서 잡히는 고기들은 대부분 회유성 어종들이라 은덕어장에서 조업을 하면 남쪽으로 내려오는 어류들의 회유를 차단해 어획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또 북한 어장에서 잡은 고기들이 대량으로 남한에 반입되면 시장 가격을 떨어뜨려 채산성을 악화시킬 게 뻔하다고 주장했다. 전어총이 대표성이 없다는 다른 지역 어민들의 반발도 가세했다.
결국 동해에서도 남북 공동어장 운영 합의는 물거품이 되었다. 동해에서든, 서해에서든 남북 공동어로를 하려면 남한 어민들끼리 먼저 합의를 해야 한다는 점을 잘 보여주었다. 통일부 관계자도 “북한과 공동어로 사업을 벌이겠다며 협력사업을 신청한 기업이나 개인은 그 뒤로 없었다. 이 사업이 제대로 성사되려면 먼저 주변 어민들의 이해관계와 조화를 이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특혜시비를 없애기 위해서는 특정 어민이나 업체와 단체가 아닌 수협과 같은 대표성 있는 기관이 나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남북 공동어로는 추진할 만한 사업이라고 말한다. 공동어로가 잘 이행되면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데 크게 기여할 뿐만 아니라 양쪽 어민들에게 수익을 안겨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어획 기술이 떨어지고 선박을 포함한 각종 장비도 노후화돼 서해안만 해도 생산 잠재력의 10%만 이용하는 실정이다. 남한도 한·중·일 세 나라의 어업협정체결로 어장이 크게 줄어들었고,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뉴라운드 협상에 따른 국제기구의 수산물 자유화와 수산 보조금 축소압력이 높아졌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수산물 수요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남북한 사이의 어업협력은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홍순직 박사의 설명이다. 공동어로 사업은 남한 어선이 북한 내 제한된 해역에서 조업하는 대신 입어료를 지불하거나, 잡은 고기들을 일정 비율로 나눠 갖는 방식이 선호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럴 경우 입어료는 현금 지급방식보다는 어선과 어구 자재, 연료 등을 제공하거나, 어획물 등의 현물지급 방식과 병행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추진할 만한 사업, 북한도 반기긴 하나…
북한도 어업협력을 반기는 기색이다. 지난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는 두 차례나 어업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당국자 간 회담을 열자고 제의했다. 또 북한 동해 어장의 일부를 남한에 일정기간 제공할 뜻도 밝혔다. 홍순직 박사는 “북한으로서는 어업 협력에 따른 원재료 등의 추가부담이 없는데다가 노동력을 대고, 어장을 빌려줌으로써 적지않은 외화를 벌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북한은 한 발짝 더 나아가 민간 선박들이 서로 상대방의 영해를 지나갈 수 있도록 허용하는 문제도 함께 내놨다. 하지만 정작 분쟁의 불씨로 남아 있는 서해 쪽에서 협력하자는 제의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바라보는 북한 지도부의 착잡한 심경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서해에서의 어업협력은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내다본다. 북한이 공동어로 부문만 따로 떼내어 문제해결을 시도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서해 NLL은 북한의 전반적인 군사·안보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하는 문제인 만큼 공동어로는 우선순위가 아닐 뿐더러, 남북한 사이나 북-미 간에 초보적인 군사적 신뢰구축 조처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공동어로가 오히려 분쟁의 불씨를 제공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일각에서는 6월 한달 꽃게철에만 한시적으로 공동어로 사업을 벌이자고 제안해보자는 견해도 있으나 북한이 받아들일지는 불투명하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사진/ 지난해 11월 금강산에서 열린 제6차 남북장관급회담. 북한은 두 차례나 어업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당국자 간 회담을 열자고 제의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남북한 공동어로는 성사 직전단계까지 간 적이 한두 차례 있었다. 1999년에는 서해 북방한계선 위쪽에서 공동어로 사업을 벌이기로 남북한이 합의했다. 이 역사적인 사업은 초기부터 남한 어민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쳐 무산됐지만 지금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부산의 수산물업체인 (주)해주가 공동어로 부문 남북경협 협력사업자로 지정된 때는 99년 1월이었다. 해주는 북한의 광명성총회사와 ‘풍어수산물합작회사’를 세워 서해 대동강 하류의 북위 38.5∼39.5도 해역에 120t급 쌍끌이 기선저인망 3척을 투입할 계획이었다. 전체 투자규모는 397만달러로 이 가운데 75.3%에 이르는 299만달러는 해주가, 나머지 98만달러를 북한에서 대기로 했다. 남한은 선박과 어로 기술을, 북한 어장과 노동력을 제공하는 조건이었다. 합의서에 따라 남북한은 5년간 꽃게를 비롯해 조기와 홍어 등을 함께 잡아 국내로 들여오거나, 해외에 수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소식이 바깥에 알려지지마자 어민들이 발끈했다. 그해 3월께 인천지역 연근해와 서해 다섯섬 지역 어민들은 정부가 특정 기업에 특혜를 주려 한다고 크게 반발한 것이다. 이들이 남북 공동어로를 반대한 까닭은 세 가지였다. 먼저 서해안 어장은 옹진반도를 중심으로 한 황금어장인데, 이 어장의 북한 길목에서 공동어로를 할 경우 남한 어민들은 큰 피해를 본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서해 다섯섬 어민들은 그간 선반안전 조업규칙에 따라 제한된 어장 안에서 무장한 남북 해군의 눈치를 보는 등 지리적 악조건을 견뎌가면서 10t에도 못 미치는 작은 배로 생계를 꾸려왔다. 이런 터에 누구는 아무런 눈치도 보지 않고 맘껏 값나가는 고기를 잡는다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또 어장이 훼손돼 생계 유지가 더욱 힘들어질 게 뻔하다고 우려했다. 서해의 특정 해역은 마지막 남은 청정바다로 남북 공동조업이 이뤄지면 어장의 황폐화를 불러온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어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자 결국 정부는 최종 사업승인을 내줄 수가 없었다. 이 경우는 개별 기업 차원의 사업이긴 하나, 서해를 남북 공동어장으로 만드는 게 쉽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동해 공동어장 남한 어민들에 불리

사진/ 1999년 남북한은 서해 북방한계선 위쪽에서 공동어로 사업을 벌이기로 합의했으나 남한 어민들의 반대로 인해 무산됐다. 연평도 꽃게잡이 배(왼쪽)와 잡아온 꽃게를 다듬는 어민들. (김종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