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인사들의 잇단 돌출행동 물의… 서민행보에 치명상 입을까 노심초사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참모들과 소장 당직자들 몇몇은 기자에게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렇게 겸손을 당부했는데…. 정말 기본이 안 된 사람들이다. 자질이 부족하다.”, “정치를 하고 공직에서 봉직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 정도 생각밖에 못하는지. 개념 없는 몇몇이 다 된 밥에 재뿌릴까 걱정스럽다.”, 아예 “미친놈들”이라며 원색적인 욕설을 퍼붓는 사람까지 있다.
표적은 한나라당 소속 인사들의 오만한 돌출행동. 김용균·하순봉·김용갑 의원, 이명박 서울시장, 정두언 서울시 정무부시장 등등. 최근 잇따른 무리수를 더 이상 눈뜨고 지켜볼 수 없다는 것이다.
지방선거 압승 분위기 찬물 끼얹어
이회창 후보와 서청원 대표가 가장 경계하는 대목은 오만이다. 이 후보는 지난 6월14일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 이명박 서울시장, 안상수 인천시장, 손학규 경기지사를 불러놓고 잡도리를 했다. “민심의 무서움을 알아야 한다. 단체장들이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행정을 선보여 달라.” 단체장 당선 축하연도 취소했다. 의원과 당직자들에게는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주 “자세를 낮추라”고 요구했다. 지방선거에서 압승한 한나라당이 오만하게 보일 경우 즉각 거센 역풍이 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지도부의 이런 소망을 저버렸다. 지난 6월24일, 당 법률지원단장인 김용균 의원이 첫 사고를 쳤다. “민주당 의원의 선거법 위반 재판은 1심은 호남, 2심은 충청 출신 법관들이 진행했다.” 위기의 민주당은 한건 잡았다는 듯이 한나라당과 이 후보를 몰아세웠다. “지방자치단체를 싹쓸이하더니 사법부까지 자기 입맛대로 좌우하려는 일당독재적 발상”이라며 “사과”를 요구했다. 서청원 대표는 27일 서둘러 머리를 조아렸다. “취지가 크게 오해받을 수 있는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 당을 대신해 사과드린다.” 재발 방지도 약속했다. 버틸수록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수구정당’ 이미지만 굳어진다고 판단해 즉각 진화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날 이 후보의 측근으로 분류된 하순봉 최고위원이 사고를 쳤다. 그는 <주간한국>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우리나라도 명문학교를 나온 좋은 가문 출신의, 훌륭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귀족주의, 위장서민 논란을 촉발시킬 폭탄 발언이었다. 당장 민주당은 한화갑 대표를 비롯한 모든 당직자들이 나서 “일당독재의 특권공화국을 만들겠다는 발상”, “이회창 후보의 특권의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경악했다. 한 당직자는 “저 잘났다고 설치는 사람들이 큰일을 망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왔다”고 격앙된 분위를 전했다.
이에 질세라 7월2일 취임한 이명박 서울시장까지 잇따라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 취임 이틀째인 3일, 사위와 반바지 차림의 아들이 명예시민증 수여식에 참석한 거스 히딩크 축구국가대표팀 감독과 사진을 찍도록 특혜를 베푼 것이다. 태풍 라마순이 북상한 4일, 서울시 직원들은 대책 마련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이 시장은 그날, 부인 김윤옥씨가 총동문회장을 맡은 한 대학 여성고위지도자과정 하계수련회에 참석해 1시간30분 동안 특강을 했다. 5일 오전에는 히딩크 감독과 사진촬영건에 대해 한 방송사에 출연해 거짓 해명을 늘어놨다. 공사를 구분 못하는 이 시장의 돌출행동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인터넷 공간을 달궜다. 급기야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에게까지 그 불똥이 튀기 시작했다.
설치는 발언·튀는 행보에 눈물 삼킨다
한나라당 홈페이지에는 이런 글들이 끝없이 올라온다.
“서울시장 아들이 히딩크 감독에게 명예시민권을 수여하는 자리에 왜 나왔나. 그것도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 질질 끌고. 한나라당 차원에서도 도의적인 책임이 있다면 해명해야 한다. 그냥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저녁노을) “공과 사를 구분 못한 이명박 시장에 대해 수많은 시민들이 어이없어하고 있다. 한나라당에서 배출한 시장인 만큼 당에서도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사리에 맞다.”(신상진)…. “존경하옵는 이회창님의 가열찬 아들사랑, 그 찬란한 업적을 앞장서 계승하시고 계시는 시장님.”(정형영)이라는 조롱도 잇따른다. 아예 한나라당의 집권 이후를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이 후보 쪽은 아주 곤혹스런 눈치다. “이 후보가 아무리 서민행보를 거듭하고 서청원 대표가 고개를 숙이면 뭐하냐. 민심은 이런 사고 한두건에 쉽게 등을 돌린다. 계속되는 잔매에 더 몸이 상하는 법이다.” 한 핵심 측근은 “당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은 지방선거 이후 상승세만 이어가면 연말 대선 승리는 문제 없다고 믿고 있다. 최근 이 후보가 노무현 민주당 후보 지지율을 크게 앞지르고 민주당 내분이 계속되자 자심감은 더욱 강해졌다. 그런데 돌출행동들이 ‘다 된 밥’을 망친다는 것이다.
이 후보 쪽은 어떻게든 개인적 실수로 돌리려 애쓴다. 이 후보 쪽 한 정무 참모는 “김용균 의원은 이회창 후보와 전혀 교감이 없는 인물이다. 측근 정치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세진 뒤부터 하순봉 최고위원과도 확실한 거리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개별사건들일 뿐이며 서로 연관성도 없고, 그저 자질이 부족한 인사들의 돌출행동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다른 분석도 나온다. 개혁성향을 띤 한 재선 의원은 “여러 정치세력이 섞여 있는 한나라당의 현실과 일부 인사들의 오만한 속마음이 표출된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이념과 성향, 지향점이 다른 정치세력들이 뒤섞인 한나라당에서 모두가 한방향으로 가기는 어렵다. 더욱이 이 후보의 집권 가능성이 커지면서 일부 인사들 사이에 오만함이 싹트고 있다는 것이다.
하순봉 의원의 학벌주의 조장 발언은 사실 한나라당의 단골 메뉴였다. 지난해 2월 초 이회창 후보가 직접 ‘메인 스트림(주류세력) 심판론’을 제기했다. 국민을 분열시키는 이분법적 사고라는 역풍을 맞고 한달 만에 물러섰지만, 올해 초 최병렬 의원이 다시 이 문제를 꺼냈다.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진리를 보는 태도에 차이가 있다”며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고졸 학력을 비하한 발언을 한 것이다.
서해교전 이후 한나라당 내부 논란도 복잡한 사정을 잘 드러낸다. 이 후보는 서해교전 초반 “안보가 정략이나 정쟁의 대상이 아닌 만큼 재발 방지를 위한 적절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정부와 초당적으로 협력하고 필요하면 민주당과도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중하라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6월29일 국회 국방위에서 강창성 의원은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확전을 각오해야 한다. 전쟁 한번 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7월1일 보수 성향이 강한 김용갑 의원은 “입으로만 안보를 외치는 ‘친북 좌파적’ 정권의 한계를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다. ‘친북 좌파’에게 국군 통수권을 맡길 수 없는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고까지 주장했다.
김 의원의 돌출행동에 이 후보 쪽도 당황했다. 이 후보는 당 안팎에 불필요한 이념논쟁을 불러올 수 있다며 곧바로 김 의원에게 자제를 당부했다. 김 의원도 기자실을 찾아와 “이번 사태가 이념문제로까지 확산돼서는 안 되는 만큼 ‘친북 좌파’ 대목을 삭제해달라”고 한발 물러섰다. 이 후보 쪽은 “안보문제에는 적극 대응하되 이념논쟁으로 비화되는 일은 막는 것이 기본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진화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내부 갈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이부영·김원웅·서상섭 의원 등은 온건한 해법을 내놨다. 김원웅 의원은 특히 남북 당국에 서해교전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을 촉구하는 권고안을 준비하고 있다. 곧 국민공청회도 열 계획이다. 반면 김용갑 의원은 ‘친북 좌파’ 발언에 대해 “개인적으로 염두에 둔 인물은 있으나 아직 밝힐 순 없다”고 말했다. 지도부 지시에 따라 삭제했지만 신념을 바꾼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사태 전개에 따라 언제든 이념논쟁이 촉발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주머니 속의 송곳이 드러나지 않으랴
이 후보의 대선전략은 명료하다. 아들 병역문제 등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며 합리적인 국정운영 능력이 있는 지도자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러자면 불쑥불쑥 불거져나오는 ‘날카로운 발톱’을 되도록 숨겨야 한다. 서민적 풍모와 너그러움, 경륜으로 국민에게 다가서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 후보가 개혁적 보수의 기치 아래 강온 두 세력을 모두 끌어안으려 애쓰고, 서민행보를 늦추지 않는 것도 이런 까닭 때문이다.
하지만 당 소속인사들의 돌출행동이 계속되고, 대북강경론마저 득세한다면 이런 노력들은 괜한 헛고생이 될 수 있다. 이 후보 쪽 핵심 참모는 “지금은 그저 개인적 돌출행동으로 돌리며 사과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정권교체 이후 민주당이 그랬듯이 지금 우리 내부에도 점령군 행세를 하며 대의보다는 사소한 자기 이익을 챙기는 데 급급한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들이 정말 걱정스럽다”라는 우려를 표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사진/ 이회창 후보의 보혁 동거전략은 바람 잘 날이 없다. 김용갑(왼쪽) 의원과 김원웅(오른쪽) 의원이 대북정책과 관련해 입씨름을 하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사진/ 입·입·입조심! 지방선거 뒤 돌출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김용균 법률지원단장(왼쪽)과 하순봉 최고위원. (이용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