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정치모임’ 결성한 민주당 재야 출신… 개혁성 내세워 ‘포스트 3김시대’ 도모
민주당 재야파가 다시 뭉친다. 지방선거 참패 이후 분란과 침체의 늪에 빠진 민주당이 여러 가지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재야 출신 입당파들이 하나의 깃발 아래 모이는 것이다. ‘황금방패 프로젝트’ 민주당의 한 젊은 당직자는 재야 출신 의원들의 결집을 이렇게 불렀다. 지지율 하락과 DJ와의 차별화를 둘러싼 당내 분란, 개헌논란 등 안팎에서 어려움을 겪는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지키고, 위기에 놓인 민주당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는 것이다. 재야파의 결집은 내부에서 제기되는 후보 교체론이나 개헌론 등의 움직임에 쐐기를 박는 대응 차원의 모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인제 의원의 연내 개헌론이 노무현 후보 교체를 노렸다면, 재야파의 결집은 ‘노 후보 사수’라는 의미가 있다. 혹시 있을지 모를 분당이나 신당 등 여러 변수에 대비해 재야파가 민주당의 정통적인 노선을 지키며 당의 중심을 잡기 위한 포석인 셈이다.
뿌리 찾기로 노무현 후보 사수 꾀해
7월9일 ‘개혁정치모임’이라는 문패를 내걸고 발족한 이 모임의 중심에는 이해찬·임채정 의원이 서 있다. 1988년 민주당의 뿌리인 평민당(평화민주당)에 합류해 각각 4선과 3선의 중진으로 성장한 두 의원은 6·13 지방선거 참패 뒤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감에서다. 당시는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묻는다는 이유로 ‘후보 교체론’, ‘지도부 총사퇴론’ 등이 터져나오면서 분당설까지 나돌던 때다.
6월17일 두 의원은 ‘거사’를 계획했다. 다음날 김근태·이창복·김희선·송영길 의원 등 재야 출신 17명이 모였다. 한명 한명에게 직접 전화를 한 이해찬 의원은 “재야 출신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했다. 재야라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지만 그동안 뿔뿔이 흩어져 지내온 것이었다. 준비모임 뒤에 두 의원은 노 후보와 한화갑 대표와 잇따라 만나 모임의 취지를 설명하고 지원을 당부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노 후보와 어정쩡한 관계를 유지해온 김근태 상임고문은 8·8 국회의원 재보선 특별기구 위원장으로, 임채정 의원은 정책위원장으로 중용됐다. 이후 몇 차례 준비모임을 거친 재야 출신 의원들은 개혁 성향의 소장파 의원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기로 결정한다. “옥중 동기모임이냐”는 비아냥거림을 피하면서 몸집을 불리기 위해서다. 7월2일 발족 준비를 위한 최종 모임에는 20명이 합류했다. 이해찬·이상수·이재정·함승희·김희선·김태홍 의원이 준비위원으로 나서 발족 준비를 서둘렀다. 이날 모임에는 준비위원 외에 설훈·김경재·신기남·김영환·이창복·심재권·김영진·김성호·조한천·함승희·이미경·임채정·임종석·천정배·김근태 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해찬 의원은 회원이 30명을 웃돌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여러 차례의 쇄신운동과 올 3월 대선후보 국민경선 등 민주당의 중요한 고비에서도 별다른 결집력을 보여주지 못한 재야 출신 의원들이 왜 이 시점에 단일한 대오로 모이기 시작했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민주당 안의 복잡한 역학구도를 살펴봐야 한다. 현재 민주당에는 친노무현 성향의 쇄신연대와 반노(反盧)와 비노(非盧), 중도 성향의 의원들이 뒤섞인 중도개혁포럼이라는 두 가지 조직이 있다. 두 조직 모두 주도그룹의 성향이 도드라지게 강할 뿐이지 구성원들은 느슨하게 묶여 있는 연대체이면서도 묘하게 대척적 관계가 형성돼 있다. 재야 출신 의원 대부분과 노 의원을 적극 지지하는 의원 상당수는 쇄신연대에 몸을 담고 있다. 그런데 왜 쇄신연대와 다른 ‘제3의 그룹’의 필요성이 제기됐을까. 쇄신연대에 비판적… 새틀서 개혁 추진
이해찬 의원은 “주로 정치 현안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쇄신연대와는 달리, 개혁정치모임은 전략적 차원에서 노선과 정책을 중심으로 민주당의 개혁성을 보완하고 강화하는 구실을 할 것이다. “지난해 당 쇄신과정에서 당내 모임 5개가 모여 만든 쇄신연대는 이념적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 인식차가 좁은 모임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두 모임의 차이를 설명했다. 전자는 두 모임이 병립할 수 있는 각각의 존재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고, 후자는 쇄신연대의 한계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좀더 속내를 들여다보면 후자 쪽에 무게가 쏠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개혁정치모임에 공감하는 의원들 상당수가 최근의 쇄신연대 행보를 비판하면서 “쇄신연대의 역사적 책무는 끝났다. 이제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쇄신연대가 지방선거 뒤에 김홍일 의원의 탈당과 박지원 비서실장 교체 등 청와대 개편을 요구하며 김대중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강하게 주장한 것을 내심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쇄신연대가 이제 당의 주류로 자리잡았음에도 당 내부 공격에 치중하는 ‘비주류적 정치행태’에 젖어 있다는 것이다.
개혁정치모임의 한 의원은 “쇄신연대에 문제가 많았다. 일하는 것을 보면 불쑥불쑥 내지르다가 당내에서 쥐어박히기나 하고 무슨 일을 해결 못하더라.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뒤섞여서 무슨 긴밀한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재야 출신이 처음 집권한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크다. 그에 대비하는 준비가 필요하다. 노 후보가 당선이 안 되면 야당을 하는 건데 그런 상황대로 당을 지킬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8·8 재보선 이후에 당이 요동칠 수도 있는데 쇄신연대에는 당을 등질 사람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건, 그렇지 않건 간에 당내 새로운 범재야모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쇄신연대와 같은 인적 구성으로는 험난한 파도를 헤쳐나가기 어렵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쇄신연대를 주도하는 의원들의 심기가 편할 리 없다. 쇄신연대 총괄간사를맡고 있는 장영달 의원 등은 “(쇄신연대와 개혁모임이) 비슷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고, 구성원 상당수가 겹치는데 굳이 따로 모임을 차리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지난해 당 쇄신과정에서 일정한 역사성을 획득했고, 외연이 넓은 쇄신연대를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상황에 맞는 새로운 역할이 필요하다면, 굳이 새 모임을 만들 것이 아니라 쇄신연대에 새 인물과 기능을 보강해 ‘신장개업’ 하면 된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그 사람들이 하는 일을 믿을 수 없다. 당 쇄신과정에서 동교동 구파에 부역하던 이들이 무슨 자격으로 ‘개혁지킴이’라고 자부하느냐”고 험하게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양쪽 모두 재야 출신과 소장세력의 분열로 비칠 것을 우려하고 있지만, 일단 두 모임은 당분간 병립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양쪽 모임 모두에 속한 한 소장파 의원은 “아무래도 정체성이 더 강한 개혁정치모임 쪽으로 자연스럽게 무게중심이 이동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민주당의 노선·정체성 지켜낸다”
개혁정치모임은 정책과 노선 중심을 표방하고는 있지만, 정책과 노선이 외화되는 각종 정치 현안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태세를 보이고 있다. 당장 최근에 불거진 ‘개헌론’에 대해 이해찬 의원은 “국가의 노선을 정립하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모임 구성 뒤에 논의해 입장을 표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사견임을 전제로 “개헌론이 외연확대와 연결되면 오해가 생긴다. 개헌론과 대통령 후보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인제 의원과 정균환 총무, 박상천 최고위원 등의 개헌론에 대해 각을 세운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박근혜·정몽준 의원 등의 영입문제에 대해 “민주당의 정강정책에 동의하고 당에 들어와 경선에 참여한다는 전제 아래에서만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정치세력 재편은 있을 수 있지만 민주당의 노선과 정체성을 이어간다는 전제 아래에서만 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혁지킴이’를 자임하고 나선 개혁정치모임이 수없이 생겼다가 사라진 여러 정치조직 가운데 하나가 될지, 아니면 ‘포스트 3김시대’에 새로운 정치흐름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성장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8·8 재보선이 끝나고 당이 요동치는 과정에서 이들의 방패가 금빛인지 구릿빛인지가 드러날 전망이다.
김보협 기자/ 한겨레 정치부 bhkim@hani.co.kr

사진/ 민주당 재야파는 '개혁 지킴이'로 황금방패를 만들어낼 것인가. 개혁정치모임은 평민당에 합류했던 이해찬(오른쪽), 임채정(왼쪽)의원이 주도했다.
6월17일 두 의원은 ‘거사’를 계획했다. 다음날 김근태·이창복·김희선·송영길 의원 등 재야 출신 17명이 모였다. 한명 한명에게 직접 전화를 한 이해찬 의원은 “재야 출신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했다. 재야라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지만 그동안 뿔뿔이 흩어져 지내온 것이었다. 준비모임 뒤에 두 의원은 노 후보와 한화갑 대표와 잇따라 만나 모임의 취지를 설명하고 지원을 당부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노 후보와 어정쩡한 관계를 유지해온 김근태 상임고문은 8·8 국회의원 재보선 특별기구 위원장으로, 임채정 의원은 정책위원장으로 중용됐다. 이후 몇 차례 준비모임을 거친 재야 출신 의원들은 개혁 성향의 소장파 의원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기로 결정한다. “옥중 동기모임이냐”는 비아냥거림을 피하면서 몸집을 불리기 위해서다. 7월2일 발족 준비를 위한 최종 모임에는 20명이 합류했다. 이해찬·이상수·이재정·함승희·김희선·김태홍 의원이 준비위원으로 나서 발족 준비를 서둘렀다. 이날 모임에는 준비위원 외에 설훈·김경재·신기남·김영환·이창복·심재권·김영진·김성호·조한천·함승희·이미경·임채정·임종석·천정배·김근태 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해찬 의원은 회원이 30명을 웃돌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여러 차례의 쇄신운동과 올 3월 대선후보 국민경선 등 민주당의 중요한 고비에서도 별다른 결집력을 보여주지 못한 재야 출신 의원들이 왜 이 시점에 단일한 대오로 모이기 시작했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민주당 안의 복잡한 역학구도를 살펴봐야 한다. 현재 민주당에는 친노무현 성향의 쇄신연대와 반노(反盧)와 비노(非盧), 중도 성향의 의원들이 뒤섞인 중도개혁포럼이라는 두 가지 조직이 있다. 두 조직 모두 주도그룹의 성향이 도드라지게 강할 뿐이지 구성원들은 느슨하게 묶여 있는 연대체이면서도 묘하게 대척적 관계가 형성돼 있다. 재야 출신 의원 대부분과 노 의원을 적극 지지하는 의원 상당수는 쇄신연대에 몸을 담고 있다. 그런데 왜 쇄신연대와 다른 ‘제3의 그룹’의 필요성이 제기됐을까. 쇄신연대에 비판적… 새틀서 개혁 추진

사진/ "한 지붕 두 가족?" 친노무현 성향 쇄신연대 의원들은 개혁정치모임 발족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이정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