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이제 ‘사람의 교체’를 이뤄내자

416
등록 : 2002-07-03 00:00 수정 :

크게 작게

제왕적 총재를 유물로 만든 정치권 빅뱅… 이제 국민이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때

사진/ 정대화 ㅣ 상지대 교수·정치학 2004seoul@hanmail.net
“위기는 기회”이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정당에도 적용될 수 있는 교훈임이 확인되었다. 민주당에 닥쳐온 심각한 정치적 위기가 당 쇄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개혁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위기의 실체는 지난해 10·25 재보선 패배와 대통령선거에 대한 필패론의 확산이었다. 집권 민주당은 정권 말기 상황에서 당면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를 출발점으로 정당개혁을 전격 추진했다. 대통령은 총재직뿐만 아니라 민주당 당적까지 포기했다.

새로운 지도력의 실험

사진/ 총무회담 자리에서 만난 민주당 정균환(왼쪽), 한나라당 이규택 총무. 원내총무의 권한이 강화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겨레 김경호 기자)
제도의 측면에서 볼 때 정당에는 정치권의 빅뱅이라고 부를 만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선택한 정당개혁은 정당에 대한 기왕의 국민의 비판과 요구를 대폭 수용한 것으로, 그 중에서도 지도체제와 공천권의 변화가 특별히 두드러진다. 우리 정당에 대한 별칭인 총재정당, 일인정당, 보스정당은 같은 말이다. 총재 한 사람이 당의 전권을 장악하고 행사하는 제왕적 총재에서 나온 말이다. 총재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는 점에서 가신정당도 같은 말이다. 그런데 정당의 이와 같은 고질적인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그것도 총재의 권한을 축소하거나 의사결정 과정을 민주화하는 정도가 아니라 논란의 핵심으로 부각되었던 ‘총재직’ 자체를 아예 폐지해버린 것이다. 한나라당도 민주당의 뒤를 따랐다.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은 처음부터 총재직이 없었던 만큼 제왕적 총재라는 말은 이제 우리 정당사의 유물로 남게 되었다.


총재를 대신해서 집단지도체제의 지도부인 최고위원회가 정당의 중심으로 등장했다. 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 한 사람인 대표최고위원으로서 최고위원회의 결정사항을 집행하는 정도다. 당정 분리 차원에서 대선후보와 당의 대표를 분리했을 뿐만 아니라 여당의 경우에는 대통령이 당 대표를 겸직하지 못하게 하는 등 권력분산을 엄격하게 제도화했다. 강력한 지도력이라는 허울 아래 총재 한 사람이 독점했던 권력을 분산하고 집단지도체제를 통해 당내 합의를 도출하는 새로운 지도력을 실험하게 된 것이다. 이 변화는 엄청난 것이다. 총재직의 폐지가 단순히 총재가 없다거나 대표의 권력이 축소되는 정도가 아니라 수많은 파급효과를 동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간 공천권과 재정권과 인사권을 독점한 총재직은 정경유착과 지역주의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등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었다.

이런 점에서 민주적인 상향식 공천을 수용한 것 역시 획기적인 변화다. 민주당과 한나라당 모두 상향식 공천을 의결했으며, 지난 지방선거에 이어 8·8 재보선에서도 적용할 예정이다. 지난봄에 두 정당이 실시한 국민경선 역시 상향식 공천의 한 방법이다. 그런데 각 지역을 순회하면서 실시하여 ‘주말 정치 드라마’라고 불린 국민경선의 열기 때문에 상향식 공천의 의미가 국민에게 잘 알려지지 못했다. 그간 선거 때마다 총재공천이니 보스공천이니 낙하산공천이니 하면서 논란과 반발이 있었고, 돈 공천으로 인한 금품수수 문제가 늘 뒤따랐다. 그러나 앞으로는 지구당에서 당원·대의원이 선출하든 국민경선 방식으로 선출하든 상향식 공천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중앙당과 대표의 개입이 제약될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 이런 부작용은 사라질 것이다.

원내총무 권한 강화로 정책정당화 촉진

사진/ 지난해 11월8일 김대중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내용이 담긴 편지를 발표하는 심재권(가운데) 총재비서실장. 총재를 대신해서 최고위원회가 정당의 중심으로 등장했다. (한겨레 이정우 기자)
원내총무의 권한 강화와 의원총회의 의결기구화 역시 가볍게 넘길 대목이 아니다. 의원총회는 원내총무가 소집하고, 의원총회는 법안과 정책에 대해 의결권을 가진 만큼 원내총무의 권한이 강화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정당개혁을 주도한 민주당의 경우 원내총무를 당연직 최고위원으로 하여 원내총무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높였다. 한나라당의 경우에는 당연직 최고위원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원내총무의 권한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의원총회를 의결기구로 한 것은 국회 운영에서 국회의원들의 역할을 강화하는 조치로, 정당의 속박에서 벗어나 국회의원들이 자율적으로 국회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그 결과 원내정당화와 정책정당화가 촉진될 것이다. 특히 정략적인 목적으로 의안의 날치기와 변칙처리를 시도하거나 의사일정 문제로 국회가 파행을 겪는 일이 줄어들 전망이다.

정당 운영의 민주화 역시 중요하다. 모든 조직에서 운영의 핵심은 인사와 재정이고, 정당도 예외가 아니다. 그동안 정당의 재정권과 인사권은 총재나 그 직계 가신이 장악하였다. 당연히 문제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고 안팎의 불만이 누적되었다. 정당의 민주적 운영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으로 인사와 재정을 공개하고 투명하게 운영하기로 한 것은 이러한 상황인식에 대한 공감대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국회직 선출시 의원총회의 의견을 묻고, 중앙당 사무처 인사는 인사위원회를 설치하여 운영하기로 했다. 회계감사위원회의 회계보고서를 당무위원회에서 보고하도록 한 것도 재정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중요한 제도적 장치라 할 수 있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정당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정치에서 정당이 차지하는 중심적인 역할 때문이다. 정치는 정치인이 하지만 정치인은 정당에 소속되어 있다. 정치는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하지만 국회의원 역시 정당 소속이다. 그리고 국회는 정당의 또 다른 이름인 원내교섭단체에 의해 운영된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선거는 후보가 하지만 후보는 정당 소속이고 정당의 공천을 거쳐 출마한다. 정당이 정치의 중심이며 정당의 수준이 정치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정치의 문제는 정당의 문제이고, 정치가 국민으로부터 불신받고 외면당하는 이유는 전적으로 정당 때문이다. 군사독재정권의 시녀가 되었던 여당이나 두 김씨에 의해 사당화되었던 야당 할 것 없이 정당은 권력과 지도자의 사병이었다. 망국적인 지역대결구도는 정당의 사병화를 더욱 촉진했다.

여전히 모호한 당원의 권한

이런 상황에서 총재직이 폐지되고 공천 민주화가 이루어졌으니 상전벽해의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이루어진 변화가 엄청난 변화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남은 과제는 더 많다. 국회의원의 권한은 강화되었지만 당원의 권한은 여전히 모호하다. 상향식 공천은 시작되었지만 공천권을 행사할 대의원을 지구당 위원장이 ‘사실상’ 선발하는 한 민주적 공천은 겉치레 절차일 뿐이다. 당원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규정도 모호하다.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이 없는 상황에서 지구당의 활성화는 그림의 떡이다. 중앙당과 더불어 정당의 한 축을 구성하는 지구당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공천권과 재정권이 확보되어야 하지만, 공천권은 불완전하고 재정권의 기초가 되는 당비 납부는 기약도 없다. 정당의 지역주의적 대결구도를 해소하는 일이나 제대로 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여 유권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일도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늦었지만 정치권의 지각변동은 시작되었다. 양김정권은 막바지에 이르렀고 3김씨는 정치적 퇴장을 준비하고 있다. 아무도 이 흐름을 막지 못할 것이다. 개혁의 요건을 제도와 사람의 변화라고 할 때 제도의 변화가 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교체도 임박한 상황이다. 기왕의 제도적 변화를 현실정치에 접목시켜 안정화하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고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정당개혁에서 시작된 정치개혁에 불이 붙은 것은 사실이다.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정치학 2004seoul@hanmail.net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