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안고 끝나면 후유증 심각… 남쪽 주민들 관람 물꼬 틀 대승적 결단을
한국의 월드컵 축제 열기는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었으나, 아리랑 축전을 펼치고 있는 북한은 월드컵의 그늘에서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남북 간의 희비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는 셈이다. 북한 당국은 애초 6월29일 아리랑 축전의 막을 내리기로 했으나 최근 7월15일까지 연장 공연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예고된 조처이긴 하나 외국인 관람객 수가 목표에 턱없이 모자라는 바람에 축전기간을 늘릴 수밖에 없는 곤혹스런 상황에 빠진 것이다. 북한은 4월29일 김정일 생일 60돌, 김일성 사망 90돌을 기념하고, 내친김에 해외관광객을 대규모로 유치해 경제적 실리를 챙길 요량으로 사상 최대 규모의 인적·물적 자원을 총동원해 대집단체조 및 예술공연 아리랑의 첫 팡파르를 울렸다. 지금까지 몇명의 외국인이 아리랑을 지켜봤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북한 방송자료, 방북자들의 증언 등을 근거로 관람객 수가 애초 예상했던 20만명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추정한다. 북한은 5월31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약 50개 나라에서 온 700여 대표단과 관광단이 공연을 관람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관람석은 대개 북한 주민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게 현지 공연을 보고 온 인사들의 귀띔이다. 평양 주민들뿐 아니라 각 지역의 인민군 군인, 근로자, 청소년과 학생 등이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는 얘기였다.
“남쪽 관광객 한명이라도 더 유치”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소식통들은 북한이 적자를 안고 이대로 아리랑 축전을 끝낼 경우 후유증이 심각할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선 가뜩이나 어려운 북한 경제를 더 흔들어놓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989년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때도 북한은 축전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전국의 모든 인적 물적·자원을 끌어모았다. 그 뒤 북한의 각종 경제지표가 급속히 하강곡선을 그린 사례가 있어 이번 축전 결과를 범상치 않게 바라보는 전문가가 한둘이 아니다. 더욱 우려할 만한 것은 남북관계에 끼칠 악영향이다. 북한 당국은 아리랑 축전이 죽을 쑤는 것과 관련해 남쪽 당국에 원망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애초부터 이 행사가 남쪽 관광객의 동참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아는 남쪽 당국이 애써 애면하고 있는 게 야속하다는 입장이다. 북쪽은 막판에라도 남쪽 관광객을 한명이라도 더 유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어떤 방북자는 북쪽의 관광객 유치 노력이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애처롭다고까지 말한다. 지난 5월 253명의 제주도민을 비롯해 얼마 전에는 북한에서 아동급식과 의료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는 한민족복지재단(이사장 최홍준 목사) 회원 297명이 방북했으나 제주도민은 단 한명도 공연을 보지 않았고, 재단 쪽에서는 북쪽의 집요한 요구에 응해 마지못해 몇명만 아리랑 공연을 봤다. 통일부는 아리랑 축전에 참가하지 않는 조건으로 제주도민들의 방북을 허용했으며, 재단 쪽에 대해서도 단체관람은 안 된다고 통보한 탓이다. 통일부는 개인에 대해서 공연 관람을 자제해달라고 요청만 할 뿐 불가피한 경우는 묵인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공연장을 찾은 남쪽 인사들은 손꼽을 정도다. 월드컵도 아리랑 축전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데 한몫했다. 물론 고의성이 끼어든 것은 아니다. 남쪽은 아리랑 축전에 많은 관광객을 보내 혹시라도 불상사가 일어나면 기존 남북협력사업의 차질이나 지방선거, 그리고 월드컵에 끼칠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했다. 이들 행사가 끝난 뒤 당국간 대화를 열어 모든 안전조처를 취해놓은 뒤 아리랑 축전 참관을 허용할 요량이었던 것이다. 북쪽 당국도 이런 남쪽의 입장을 수긍해 그간 비난을 자제하고 월드컵이 끝나기를 기다려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팀이 예상을 뛰어넘어 승승장구하면서 월드컵 열기가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남쪽 당국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된 것 같다. 월드컵의 감동을 남북 화합으로 결국 북한만 사면초가에 빠진 꼴이 됐다. 폐막일은 코앞에 닥쳤으나 행사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당장 남쪽 관광객들이 대규모로 아리랑 축전에 참가할 가능성도 커 보이지 않는다. 사실 돌파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남쪽 당국이 요구하는 대로 관광객의 신변안전 보장을 위한 대화 테이블에 나오면 된다. 하지만 이것도 녹록지 않아 보인다. 북한은 최성홍 외교부 장관의 워싱턴 발언, 남쪽 언론에서의 금강산댐 부실 공사 시비 따위를 빌미로 남북경협추진위원회 참석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남쪽이 미워서라기보다는 이런 움직임의 배후에 미국의 음모가 숨어 있다고 본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남쪽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전반적인 대미, 대남 전략을 뒷전으로 미루고 자존심을 접으면서까지 당국간 회담에 나설 수도 없는 터다. 더구나 남쪽에서는 아리랑 축전 참관 문제를 협의할 실무접촉을 먼저 요청하지 않고 있다. 남쪽도 내부적으로 나름대로 여러 가지 전략적인 고려를 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북한은 남쪽 당국이 순수 민간행사- 아리랑 축전 참관- 를 ‘상급회담’(당국간 회담)으로 유도하기 위해 술수를 부린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남쪽 정부가 미적거리는 배경이 미국의 압력 때문이라는 시각도 담고 있다. 남쪽의 입장은 확고해 보인다. 아리랑 공연 내용의 비정치성이나 관람객들의 신변안전이 북한 당국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한 적어도 수천명에서 많게는 수만명에 이를 관광객들을 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8·15 통일축전 행사 때의 악몽이 이런 결심을 하는 데 단단히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아리랑 축전을 참관하고 온 관광객의 얘기를 들어보면 북쪽 당국에서 공연내용의 정치색이나 이념색을 떨어버리려고 애쓴 흔적은 엿보이나 여전히 남쪽 일반 대중이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 녹아 있다”면서 “남북관계를 고려하면 뭔가 결정을 내리긴 내려야 하나 북쪽에서 당국간 회담에 나오겠다는 뜻을 비치지 않는 상태에서는 계속 이렇게 어정쩡하게 나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남쪽 단체 관계자들은 정부의 처지를 수긍하면서도 대승적인 차원에서 먼저 결단을 내릴 것을 촉구하는 분위기다. 김연갑 한민족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는 “아리랑 공연은 기존의 것들과 달리 많은 부분이 민족적 색채를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6·15 공동선언의 요체이기도 한 ‘자주’와 ‘평화’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기획된 것”이라면서 “정부가 제한적이고 선별적이라도 남쪽 관광객의 아리랑 축전 참관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남북한이 대규모 인적교류를 통해 결코 북한이 ‘악의 축’이 아니라는 사실을 온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민족아리랑연합회는 북한으로부터 남쪽 관광객 모집 업무에 대한 ‘위임장’을 비롯해 ‘직항로 담보서’까지 받아놓았다. 북한은 또 매년 아리랑 공연을 남북합동 문화행사로 열 수 있으며, 이를 이번 아리랑 축전 폐막식에서 ‘공동성명’으로 발표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고비를 남쪽 정부가 지혜롭게 넘기면 월드컵의 벅찬 감동과 열기를 남북한이 함께 치르는 축전을 통해 이어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패로 끝나면 개방파 입지 준다 다른 민간단체 관계자는 “시간이 촉박하다”면서 “북한이 아리랑 축전을 7월15일까지 연장했지만 월드컵이 끝나면 7월로 바뀌고, 어렵사리 남쪽 주민들의 아리랑 참관 물꼬가 트여도 여유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아리랑 축전은 비록 김일성 사망 90돌, 김정일 생일 60돌을 기념해서 기획한 행사이기는 하나, 그 이면에는 남쪽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교류협력을 통한 생존을 모색해보려는 전례없는 개방실험의 성격이 녹아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행사가 실패로 끝나면 북한 내 개방파의 입지가 크게 줄어들 게 뻔하고, 그 책임은 남쪽 당국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남한 당국이 어떤 묘수를 던질지 주목된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사진/ 아리랑 축전은 6·15 공동선언의 요체이기도 한 '자주'와 '평화'를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제한적이라도 남쪽 관광객을 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소식통들은 북한이 적자를 안고 이대로 아리랑 축전을 끝낼 경우 후유증이 심각할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선 가뜩이나 어려운 북한 경제를 더 흔들어놓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989년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때도 북한은 축전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전국의 모든 인적 물적·자원을 끌어모았다. 그 뒤 북한의 각종 경제지표가 급속히 하강곡선을 그린 사례가 있어 이번 축전 결과를 범상치 않게 바라보는 전문가가 한둘이 아니다. 더욱 우려할 만한 것은 남북관계에 끼칠 악영향이다. 북한 당국은 아리랑 축전이 죽을 쑤는 것과 관련해 남쪽 당국에 원망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애초부터 이 행사가 남쪽 관광객의 동참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아는 남쪽 당국이 애써 애면하고 있는 게 야속하다는 입장이다. 북쪽은 막판에라도 남쪽 관광객을 한명이라도 더 유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어떤 방북자는 북쪽의 관광객 유치 노력이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애처롭다고까지 말한다. 지난 5월 253명의 제주도민을 비롯해 얼마 전에는 북한에서 아동급식과 의료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는 한민족복지재단(이사장 최홍준 목사) 회원 297명이 방북했으나 제주도민은 단 한명도 공연을 보지 않았고, 재단 쪽에서는 북쪽의 집요한 요구에 응해 마지못해 몇명만 아리랑 공연을 봤다. 통일부는 아리랑 축전에 참가하지 않는 조건으로 제주도민들의 방북을 허용했으며, 재단 쪽에 대해서도 단체관람은 안 된다고 통보한 탓이다. 통일부는 개인에 대해서 공연 관람을 자제해달라고 요청만 할 뿐 불가피한 경우는 묵인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공연장을 찾은 남쪽 인사들은 손꼽을 정도다. 월드컵도 아리랑 축전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데 한몫했다. 물론 고의성이 끼어든 것은 아니다. 남쪽은 아리랑 축전에 많은 관광객을 보내 혹시라도 불상사가 일어나면 기존 남북협력사업의 차질이나 지방선거, 그리고 월드컵에 끼칠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했다. 이들 행사가 끝난 뒤 당국간 대화를 열어 모든 안전조처를 취해놓은 뒤 아리랑 축전 참관을 허용할 요량이었던 것이다. 북쪽 당국도 이런 남쪽의 입장을 수긍해 그간 비난을 자제하고 월드컵이 끝나기를 기다려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팀이 예상을 뛰어넘어 승승장구하면서 월드컵 열기가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남쪽 당국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된 것 같다. 월드컵의 감동을 남북 화합으로 결국 북한만 사면초가에 빠진 꼴이 됐다. 폐막일은 코앞에 닥쳤으나 행사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당장 남쪽 관광객들이 대규모로 아리랑 축전에 참가할 가능성도 커 보이지 않는다. 사실 돌파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남쪽 당국이 요구하는 대로 관광객의 신변안전 보장을 위한 대화 테이블에 나오면 된다. 하지만 이것도 녹록지 않아 보인다. 북한은 최성홍 외교부 장관의 워싱턴 발언, 남쪽 언론에서의 금강산댐 부실 공사 시비 따위를 빌미로 남북경협추진위원회 참석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남쪽이 미워서라기보다는 이런 움직임의 배후에 미국의 음모가 숨어 있다고 본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남쪽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전반적인 대미, 대남 전략을 뒷전으로 미루고 자존심을 접으면서까지 당국간 회담에 나설 수도 없는 터다. 더구나 남쪽에서는 아리랑 축전 참관 문제를 협의할 실무접촉을 먼저 요청하지 않고 있다. 남쪽도 내부적으로 나름대로 여러 가지 전략적인 고려를 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북한은 남쪽 당국이 순수 민간행사- 아리랑 축전 참관- 를 ‘상급회담’(당국간 회담)으로 유도하기 위해 술수를 부린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남쪽 정부가 미적거리는 배경이 미국의 압력 때문이라는 시각도 담고 있다. 남쪽의 입장은 확고해 보인다. 아리랑 공연 내용의 비정치성이나 관람객들의 신변안전이 북한 당국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한 적어도 수천명에서 많게는 수만명에 이를 관광객들을 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8·15 통일축전 행사 때의 악몽이 이런 결심을 하는 데 단단히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아리랑 축전을 참관하고 온 관광객의 얘기를 들어보면 북쪽 당국에서 공연내용의 정치색이나 이념색을 떨어버리려고 애쓴 흔적은 엿보이나 여전히 남쪽 일반 대중이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 녹아 있다”면서 “남북관계를 고려하면 뭔가 결정을 내리긴 내려야 하나 북쪽에서 당국간 회담에 나오겠다는 뜻을 비치지 않는 상태에서는 계속 이렇게 어정쩡하게 나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남쪽 단체 관계자들은 정부의 처지를 수긍하면서도 대승적인 차원에서 먼저 결단을 내릴 것을 촉구하는 분위기다. 김연갑 한민족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는 “아리랑 공연은 기존의 것들과 달리 많은 부분이 민족적 색채를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6·15 공동선언의 요체이기도 한 ‘자주’와 ‘평화’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기획된 것”이라면서 “정부가 제한적이고 선별적이라도 남쪽 관광객의 아리랑 축전 참관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남북한이 대규모 인적교류를 통해 결코 북한이 ‘악의 축’이 아니라는 사실을 온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민족아리랑연합회는 북한으로부터 남쪽 관광객 모집 업무에 대한 ‘위임장’을 비롯해 ‘직항로 담보서’까지 받아놓았다. 북한은 또 매년 아리랑 공연을 남북합동 문화행사로 열 수 있으며, 이를 이번 아리랑 축전 폐막식에서 ‘공동성명’으로 발표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고비를 남쪽 정부가 지혜롭게 넘기면 월드컵의 벅찬 감동과 열기를 남북한이 함께 치르는 축전을 통해 이어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패로 끝나면 개방파 입지 준다 다른 민간단체 관계자는 “시간이 촉박하다”면서 “북한이 아리랑 축전을 7월15일까지 연장했지만 월드컵이 끝나면 7월로 바뀌고, 어렵사리 남쪽 주민들의 아리랑 참관 물꼬가 트여도 여유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아리랑 축전은 비록 김일성 사망 90돌, 김정일 생일 60돌을 기념해서 기획한 행사이기는 하나, 그 이면에는 남쪽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교류협력을 통한 생존을 모색해보려는 전례없는 개방실험의 성격이 녹아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행사가 실패로 끝나면 북한 내 개방파의 입지가 크게 줄어들 게 뻔하고, 그 책임은 남쪽 당국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남한 당국이 어떤 묘수를 던질지 주목된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